[수강후기]강의후기] <영문학 고전 새롭게 읽기> 강의를 끝내면서

고재백
2022-11-30

강의후기] <영문학 고전 새롭게 읽기> 강의를 끝내면서

                                                                                                          - 이강선 교수(성균관대학교 초빙교수, 기독인문학연구원 연구위원)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을 마지막으로 5회에 걸친 영문학 고전 읽기가 끝났다. 왜 굳이 고전 읽기를 기획했을까. 고전하면 우선 고리타분하고 어렵다는 인상이 강하게 박혀 있다. 굳이 고전이 아니더라도 읽을 책들은 많다. 어디 책뿐일까. 영화, 드라마, 게임, 읽고 즐길 거리는 차고도 넘친다.

 

그런데도 많은 이들이 고전을 읽고 있다. 영문학 고전 100선, 세계 명작 100선 등이 추천 도서로 올라와 있고 대학을 비롯해 학교마다 저마다의 기준으로 고전 읽기를 장려하고 있다. 한편으로 수많은 어린이용 고전 도서가 나와 있거나 요약판들이 즐비하다. 그래서일까. 어떤 고전의 제목을 들으면 이미 읽었다고 착각한다. 내용을 알고 있으므로 그렇다. 그러나 과연 내용을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 그 책을 이해했다고 자부할 수 있을까.

 

어린 시절에 읽은 고전은 내용만으로 이뤄져 있다. 어린이 혹은 청소년이 읽기에는 버겁다고 여겨지는 내용이나 지나치게 길다고 여겨지는 경우 사정없이 잘려져 나가고 편집되는 것이다. 발달 수준을 고려한 고전 읽기 방법으로 이 방법은 물론 그 고전과 친숙해지도록 만든다.

 

그런가 하면 성인이 되어 읽는다고 해도 내용만으로 섣부른 결론을 내리기도 한다. 얼마 전 모 대학 도서관 독후감 코너에 이런 글이 올라왔다. 「노인과 바다」가 고전이라 해서 읽었는데 노인이 잡은 거대한 물고기가 상어에게 다 먹혀 허무했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결과적으로 이 작품이 왜 명작으로 꼽히는지를 모르는, 그 안에 담긴 노인의 철학과 삶, 사회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 못한 독후감이었다.

 

노인과 사자, 노인과 물고기, 노인과 바다, 그리고 노인과 소년의 관계를 세밀하게 읽지 않으면 이런 독후감이 나오게 된다. 더욱이 작가와 작가가 살았던 시대를 알지 못하면, 작품 탄생 배경을 알지 못하므로 관계에 대해 놓치기 쉽다. 어떤 작품이 나오기 위해서는 작가가 살아온 삶이 필요하다. 작가에게 영향을 끼친 주변 정황, 시대적 사고도 필요하다.

 

대표적인 예로 어린이들은 그리스 신화를 재미로 읽는다. 다양한 인물상, 무한한 힘을 지닌 신들, 그리고 괴물들이 등장하는 신화는 상상력을 펼치기 좋은 매혹적인 공간인 것이다. 그러나 어른들이 신화를 읽으면 그 신화 속에는 변하지 않는 인간성과 사회 제도, 시대적 변모가 들어 있음이 나타난다. 그리스 당대의 사고방식을 안다면 여성에 대한 사고방식도 읽어낼 수있다. 이러한 것들을 읽어낼 수 있다면 그저 재미있는 이야기가 아닌 그야말로 인간과 사회, 제도에 관한 영원한 고전이 된다. 한편으로 서양인들의 사고방식을 이루는 양대 산맥 중 하나를 읽는 방법이 된다.

 

물론 어느 작품이건 읽는 이는 자신의 생각만으로 읽어낼 수 있다. 문학작품뿐 아니라 예술작품도 마찬가지다. 작품은 작가의 손을 떠났으므로 독자 마음대로 읽어낼 수 있는 것이다. 기법이나 시대적 배경이 필요 없고 오직 자신의 감성만으로 읽어내는 이 방법은 예술 혹은 문학작품에 다가갈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그러나 이 방법은 피상적인 이해에 그친다.

 

줄거리는 이해하되 감동을 주거나 깨달음을 야기하는 수많은 날실과 씨실의 접점들을 놓치는 것이다. 깨달음이나 감동은 작가의 경험에서 온다. 그 경험을 이해하도록 만드는 것은 독자의 삶이다. 결국 작가의 삶과 독자의 삶이 만나는 것이 독서다. 삶이 어디 경험뿐일까. 작가의 사상, 이념 또한 그의 삶 속에 녹아들어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겪은 만큼 이해한다는 말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때 겪은 만큼은 실제와 생각 모두를 말한다.

 

어른이 되어 다시 읽는 고전은 자신을, 자신의 삶을, 자신의 변화를 돌아보는 좋은 방법이다. 그 작품이 탄생한 시대에는 물론 좋았고 그 시대가 흘러간 이후에 읽어도 좋다. 어렸을 때 읽어도 좋았지만 어른이 되어 읽으면 더 좋은 작품이 고전이다. 어느 시대, 어느 시기에 읽어도 좋은 것이다. 독자가 삶을 더 깊이 이해하고 있음을 깨닫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고전은 항상 고전이다.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좋은 강의를 들었다는 후기들이 올라왔고 목표했던 바가 이뤄진 듯해서 기쁘다. (2022-1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