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현
2020-07-31
지난 30일 기독인문학연구원에서는 ‘철학적 해석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한스 게오르그 가다머에 관한 강의가 진행됐습니다. 이번 박성철 교수님의 콜로퀴움 주제가 바로 <철학적 해석학>이었으니, 이번에 다룬 ‘가다머’는 가히 이번 콜로퀴움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도 있지요.
가다머의 철학적 해석학은 그의 저작 『진리와 방법』에 집대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가다머 평생의 역작으로 평가받는 『진리와 방법』은 ‘철학적 해석학’을 알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되는 책입니다. 이 책에는 가다머의 방대한 지식뿐만 아니라 칸트와 헤겔, 하이데거 등 여러 철학자들의 논의 또한 담겨있어 일반 독자들이 접근하기에는 다분히 난해하기도 하죠.
하지만 박성철 교수님의 커리큘럼을 착실히 따라왔다면, 가다머의 높은 장벽도 한번 도전해 볼법합니다. 가다머를 이해하기 위해서 짚고 넘어가야할 해석학의 선구자, ‘슐라이마허’, ‘딜타이’, ‘하이데거’에 관한 강좌가 이미 지난 세 번의 강의를 통해 진행됐기 때문이죠.
가다머의 ‘철학적 해석학’을 알기 위해선 우선 앞서 말씀드린 철학자들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먼저 ‘근대적 해석학’을 출발시킨 슐라이마허는 텍스트에 대한 자의적 해석을 반대하고, 누구나가 보편적으로 동의할 수 있는 이해의 기술을 강조했던 학자입니다.
슐라이마허가 ‘이성’을 통한 보편적 이해를 강조했다면, 이후의 딜타이는 인간을 ‘정신’을 가진 특별한 존재로 규정하면서, 텍스트를 진정으로 헤아리고자하는 ‘정신’과 ‘추체험’을 해석학의 기본 토대로 두었습니다. 슐라이마허는 ‘이성’을 딜타이는 ‘정신’을 핵심으로 삼아, 근대철학이 보다 공통적이고 일반적인 이해와 해석으로의 기반을 제공하길 바랐던 것이죠.
다음으로 하이데거가 등장해 ‘근대적 해석학’의 기본 전제인 공통적이고 보편적인 해석의 원리를 비판하기 시작합니다. 하이데거는 인간이라는 유한한 ‘존재자’와 무한하고 초월적인 ‘존재’를 구별했고, ‘세상에 내던져진’ 불완전한 인간이란 존재자는 자신을 넘어선 세계와 텍스트를 결코 제대로 이해하고 해석할 수 없다고 분명한 한계를 그은 것이죠.
인간의 해석은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고 여긴 하이데거의 ‘존재론적 해석학’은 이번 수업의 주인공 ‘가다머’에게도 이어집니다. ‘가다머’에게 있어 인간은 필연적으로 선입견을 가진 존재이고, 그 선입견을 떨쳐내고 세상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해석하는 것은 인간의 능력 바깥인 것이죠.
그렇다면 인간의 이해와 해석은 저마다의 편견이란 굴레에 벗어날 수 없을까요? 인간이 편견에 벗어날 수 없다면 어떻게 타인과의 소통할 수 있을까요? 가다머의 ‘철학적 해석학’은 바로 이러한 질문에 대응하여, 타고난 선입견에 갇힌 인간이 어떻게 그 편견을 넘어 외부의 텍스트를 해석해나갈 수 있는지에 대한 기반을 설명합니다.
가다머에 따르면 인간은 저마다의 선입견, 역사적으로 형성된 편견을 내재화한 존재입니다. 하지만 그 선입견이 없이는 우리는 우리 바깥의 텍스트를 인식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역사와 공동체로부터 전수받아온 ‘지평’을 가지고 세상과 소통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예컨대 ‘보수적이고, 남성적이고, 권위적인’ 문화 속에서 자라온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역사와 삶에 따라 ‘보수적이고, 남성적이고, 권위적인’ 해석의 지평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한 해석자는 그 시선으로 성경을 읽게 되고, 성경은 그 해석자의 지평에 맞게 보수적이고 차별적인 방향으로 해석되죠.
그러나 그 지평은 고정적인 것이 아닙니다. 텍스트 또한 자신의 ‘지평’을 갖고 있고 그 ‘지평’은 해석자의 ‘지평’과 상호작용하며 새로운 ‘지평’을 창조해나갑니다. 그 과정은 ‘지평융합’이라고 불립니다. ‘보수적이고, 남성적이고, 권위적인’ 해석자가 성경의 지평에 자신을 개방시키고, 건강히 상호작용한다면, 그의 해석의 지평은 변화할 것이고, 동시에 성경의 지평 또한 변하게 되는 것이죠. 상호작용을 통해 ‘성경을 해석하는 해석자’도, ‘해석자가 해석하는 성경’도 모두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가다머의 해석학은 ‘선입견을 해석학의 필수불가결한 조건’으로 바라본 것으로 특징지어집니다. 과거의 선입견을 어느 측면에선 강조하고 있는 가다머의 해석학은 후대의 ‘비판이론’에 의해 보수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것으로 비판받기도 했지요. ‘비판이론’이 어떻게 가다머를 바라보고, 넘어서고자 하는지는 다음 주 강의에서 논의될 예정입니다.
20세기 해석학의 거장, ‘폴 리쾨르’에 관한 강좌로, ‘철학적 해석학’ 콜로퀴움은 마무리됩니다. 다음 주, 그 대미를 함께 해주시기를 바랄게요^_^ 그럼 계속 해석학으로의 여정을 함께 해주시길 바라며... 다음에 만나요: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