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현
2020-09-01
2020년 8월 15일. 정부를 규탄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광화문으로 모여든 군중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바이러스의 매개체로 작용했습니다. 1만여 명이 모인 대규모 집회의 후폭풍은 컸습니다. 집회에서 비롯된 n차 감염으로 우리 사회가 커다란 어려움을 겪게 된 것이죠.
광화문 대규모 집회의 주축은 전광훈 목사와 사랑제일교회 신도들을 위시한 보수 기독교인들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 시대의 기독교인들이 빛과 소금은커녕, 사회적 혼란의 기폭제가 되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이번 8월 31일, 기독인문학연구원에서는 부끄러움이 되어버린 한국 기독교의 현재를 성찰하고, 새로운 미래를 모색하는 독서 세미나가 열렸습니다. 기독인문학이 이번 달에 다룬 도서는 백석대학교의 장동민 교수님이 저술한 『포스트 크리스텐덤 시대의 한국 기독교』였습니다. 장동민 교수님이 직접 강연에 나서, ‘크리스텐덤(christendom)’이라는 개념으로 한국 기독교의 현재와 미래를 분석하고, 토론하는 알찬 세미나였습니다.
‘크리스텐덤’이란 기독교와 기독교의 교리가 사회 각 시스템의 원리로 작동하는 ‘기독교 국가’를 의미합니다. 서양의 경우 오랫동안 ‘크리스텐덤’이 유지돼 왔습니다. 모든 사람이 명목적으로 그리스도인이었고, 기독교가 정치‧경제‧문화‧교육‧가정 등을 지배하는 원리로 작용했던 것이죠.
한국은 사실 엄밀하게는 ‘크리스텐덤’의 개념으로 분석될 수 없을지 모릅니다. 한국은 ‘기독교 국가’를 천명하는 나라가 아니기 때문이죠. 그러나 장동민 교수님은 한국을 ‘유사크리스텐덤’을 겪은 나라로 분석합니다. 우리나라에는 국교가 없고, 기독교는 당연히 한국의 국교가 아니었지만, 기독교는 국교 이상의 심대한 영향력을 행세했던 것이죠.
독재정권과 산업화시기 동안, 한국의 기독교는 ‘반공‧산업화‧친미’라는 틀 안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세했습니다. 한국 교회의 역사에서 그 기간은 가장 ‘영광스러운 시간’이기도 하지요. 당시 기독교 집회에는 수백만 명이 모이기 일쑤였고, 수많은 사람들이 전도를 통해 기독교로 개종했습니다. 기독교는 공산주의를 물리치고, 국가 경제를 발전시키는, 국가의 지도 원리처럼 작동했던 것이죠.
이러한 크리스텐덤의 개념을 통해, 이번 8.15 집회에 나선 기독교인들의 생각을 추론해볼 수 있습니다. 장동민 교수님은 7, 80년대 당시 우리 사회에 심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영광’을 누렸던 ‘유사 크리스텐덤’의 시기를 그리워하는 심리가 집회에 참여한 기독교인들에게 존재했을 것이라고 분석합니다. 현재의 기독교인들은 이미 시대가 바뀌었음에도, 과거 기독교가 한국 사회에 미쳤던 영향력과 파급력을 되찾고 싶어하는 것이죠.
그러나 이미 시대는 변했습니다. 장동민 교수님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과거로 돌아가고자 하는 태도를 고수한다면, 기독교는 더욱 빠르게 몰락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합니다. 기독교가 기존의 영향력을 상실한 지금의 시대는 ‘포스트 크리스텐덤’ 시대로 지칭됩니다. 장 교수님은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신학이 필요함을 역설하고, 그 새로운 접근방안을 3가지 키워드로 전달합니다.
‘선교적 교회’, ‘공공신학’, ‘공동체 교회’가 그가 제시하는 한국 교회의 미래 방향입니다. 교회가 기존의 양적 팽창을 지양하고, 복음이 필요한 사람과 세상 속으로 나아가야한다는 것이 ‘선교적 교회’의 핵심입니다. 여기에 교회가 공공영역에도 관심을 가지는 ‘공공신학’과 성도들의 깊은 교제를 실현하는 ‘공동체 교회’가 중요한 대안으로 함께 제시되는 것입니다.
이번 강연에서 참석자들의 적극적인 호응을 이끌어낸 주제는 ‘주일성수’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대체로 일요일을 한 주의 처음이자, ‘주일(主日)’로 구별하며 예배를 의무적으로 드리고자 노력합니다. 그런데 과연 그것이 성경에 근거한 행동일까요?
장동민 교수님은 주일성수에 대한 강박적 태도는 성경 자체가 말하는 내용이 아니라, 주일 성수를 강조하고 있는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서’에 의한 것이 아닌지 검토해볼 것을 제안합니다. ‘
이는 주일 성수의 가치를 절하하기 위한 공격적인 주장이 아닙니다. 우리 시대에는 공장노동자, 플랫폼노동자 등 주일 성수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사람들이 많이 존재합니다. 성경 또한 주일이 언제에 대한 소모적인 논쟁을 중단하라고 말합니다.(롬 14:5-6상, 골 2:16, 17) 장동민 교수님은 변화한 시대에 맞춰, 성경을 해석하는 시선을 확장할 것을 제안하는 것이죠.
‘포스트크리스텐덤 시대’는 기독교인들이 당면한 현실입니다.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존경을 받고, 전도만 하면 회심이 일어났던 ‘크리스텐덤 시기’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옛날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다시 크리스텐덤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노력은, 이번 집회에서 보았듯 괴기한 모습으로 발현돼 시민들의 지탄을 받게 될 뿐입니다.
장동민 교수님의 저서 『포스트 크리스텐덤 시대의 한국 기독교』가 한국 기독교의 현실을 진단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지도가 될 수 있길 바랍니다. 기독인문학연구원도, 기독교와 우리 사회의 바람직한 관계를 꾸준히 성찰하고, 준비하는 건강한 단체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 노력에 동참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그럼, 다음 달 세미나도 기대해주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