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윤성덕/우리 한국인의 정치적 정체성/국제신문/2021.12.01

역대급 내년 비호감 대선, 논리 없는 극한 대결 양상

선거는 국민 뜻 표현 수단, 민주주의 제대로 사용해야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석 달 앞으로 다가오는데 후보자들의 정책 공약에 관한 논의가 시작되기도 전에 대규모 비리 의혹들이 불거지면서 전례 없는 비호감 선거라는 빈축을 사고 있다. 이런 상황은 정치 풍조 자체가 변하면서 일상으로 자리 잡고 있다. 1980~90년대 정치인들이 이념에 따라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 선거에 뛰어들었다면, 2000년대 이후에는 사회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집단 정체성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배타적인 정치 동맹을 구성하고 경쟁하는 선거를 보여준다.

그러다 보니 전통적으로 정치의 역할이라고 여겼던 주제를 다양하게 다루거나 폭넓은 보편 정치를 놓고 나름대로의 생각을 다투기보다는, 미리 정해진 관점에 따라 전략적으로 주제를 정하고 국민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자극적인 표현으로 선전하는 양상을 보여준다. 이런 ‘정체성 정치’가 특정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효과적이라고 하는 모양이지만, 정치판 자체가 이런 식으로 변하면서 대화와 타협이 사라진 극한 경쟁을 목격하게 된다. 그리고 인신공격을 일삼는 정치인들의 싸움에 공감을 하는 국민보다는 정치에 흥미도 희망도 잃은 중도파와 부동층만 늘어난다.

사실 민주공화제를 선택한 대한민국에서 선거는 권력의 주체인 국민이 자신의 뜻을 표현하는 매우 엄중한 행위인 동시에 한국사회 전체가 어느 방향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 확인하고 조정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기는 선거를 목표로 삼고 있는 정치인들에게 국민의 뜻은 투표자의 선호도에 불과하고 선거전략의 표현 방식이나 문체를 결정하는 기준으로 전락하는 것 같다. 정당의 신념이나 전통은 사라지고 설문조사가 절대적인 판단기준이 되고 있다는 사실도 매우 상징적이다.

그럼 내년 선거를 준비하는 후보자들이 참고할 자료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예를 들어 동아시아 연구원에서 펴낸 ‘2020년 한국인의 정체성’이라는 설문조사가 있다. 민주주의, 대외관계와 정부조직, 다원화 사회와 통합 가치 등 사회 각 부분에 관한 다양한 주제에 대해 2005년부터 5년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조사하고 있기 때문에, 의견이 변화하는 추이까지 짐작할 수 있다.

이 조사에 따르면 국민은 민주주의 제도에 원칙적으로 동의하지만, 실제로 진행되는 민주화 과정에 불만이 많다. 그 이유는 지난 선거 결과나 경제 상황이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분석됐다. 또한 정치적 견해와 상관없이 경제적으로 계속 발전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서, 규제 완화와 혁신기업 육성책 등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사회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공공 서비스도 강화되어야 한다고 답하여 상반된 자세를 보이기도 한다. 비슷한 이유에서 세계화의 폐해가 심하고 한국사회라는 울타리를 더 엄정하게 지키고 싶어 한다.

현재 상황에서 이주노동자들은 국가경쟁력을 강화하고 문화적 다양성을 보장해주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의 권리를 인정하는 데는 소극적이고 오히려 그들을 현실적 위협으로 인식한다. 시민사회가 민주주의를 발전시켰지만 일상생활에서 괴리되는 단점을 보인다고 생각하고, 소속감 없이 개인화되는 경향이 심화되고 있다.

만약 이 설문조사가 국민의 뜻을 대표한다면 선거에서 이기는 방법은 매우 단순하다. 논리적인 설득보다 폭로와 고소고발로 감정적인 갈등을 일으키고 정치적 양극화를 조성하여 든든한 지원세력을 확보한다. 파편화되어있는 부동층 표를 잡기 위해서 규제 완화와 기업육성이 포함된 화려한 경제 발전계획을 제시한다. 그에 더하여 사회안정을 헤칠까 봐 불안 요인으로 꼽히고 있는 조건들을 점검하여 기존 질서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는 인상을 주면 그만이다.

코로나19 대유행 때문에 심화되고 있는 빈부격차나 난민문제, 갈수록 심각해지는 기후문제, 개선의 속도가 전혀 보이지 않는 여성과 어린이 인권문제 등은 신경도 쓸 필요가 없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심해지는 상황 속에서 우리나라의 입지가 날이 갈수록 좁아지고 있어도 뾰족한 대응책이 없으니 역시 언급을 회피하는 것이 낫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면 부끄러운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선거는 정치인들의 성적표인 동시에 우리 국민의 정치적 정체성을 비추어 보여주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우리 국민은 1948년 5월 10일에 보편적인 민주주의 선거제도를 처음으로 경험했고, 새로운 세상을 향한 열망은 있었지만 그 목표를 성취할 민주주의라는 방법을 제대로 사용할 줄도 모르는 자신을 확인했다. 그 후 군부정권이 시행한 선거에도 참여했지만, 총칼을 앞세운 세력 앞에서 무력하게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는 비참한 자화상을 보고 말았다. 내년 봄이 되어 선거라는 거울 앞에 서면 우리는 어떤 자화상을 보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