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강호숙/"여성의 하나님 나라 사역, 남성들에게 허락받을 일 아니다"/뉴스앤조이


21세기에도 여전히
'여성 안수'를 외쳐야만 하는가


인권과 남녀평등을 중요하게 여기는 21세기 현대사회에서 '여성 안수'를 외치고 있다는 게 한심하기 짝이 없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예장합동) 교단은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찬송은 잘도 부르면서, 정작 여성에게 '임시직'만 부여함으로써 "차별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으로 취급하고 있다. 하지만 여성이 남성과 똑같이 하나님 형상을 입었다는 창조 교리(창 1:27)는 '남성 왕'만이 신의 형상이라고 믿었던 고대 근동 사회의 신관과 인간관으로 볼 때 가히 혁명적인 천명이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원형상인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타락으로 왜곡되고 굴절된 차별과 편견의 벽을 허물어, 남녀 모두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하여 자유와 평화가 있는 하나님나라 구원의 공동체 일원임을 삶과 말씀으로 친히 보여 주셨다. 따라서 남녀 모두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창조 교리는 그 어떤 교리들보다 본질적이며 우선적인 기독교 교리이다.

하지만 예장합동은 '남녀 질서'라는 전근대적인 가부장 교리를 '성경적'이라 우기며 창조 교리와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정신을 훼손하고 있다. 게다가 중세 교회의 성직자 중심주의를 벗어나 하나님 형상을 입은 모든 신자는 제사장이 될 수 있다는 직분 평등 사상과 인간성 회복을 외친 종교개혁의 '만인제사장설' 정신마저 역행하고 있다.

총신대와 예장합동에서의
서럽고 암담했던 경험들


나는 지금껏 박사 논문과 강의, 그리고 <성경적 페미니즘과 여성 리더십>(새물결플러스, 2020) 저서 등을 통해 '여성 안수'와 여성 리더십에 관해 신학적, 성경적, 그리고 실천신학적으로 계속 주장해 왔다. 게다가 이전 글에서 김세윤 교수가 세 번에 걸쳐 '바울서신에서 본 여성 안수'에 관한 성서신학적인 글을 썼기에, 이번에는 총신대와 예장합동에서의 사역 경험 속에서 왜 '여성 안수'가 필요한지를 얘기하고 싶다.

예장합동에 속한 교회에서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엄청난 핍박을 받으며 신앙을 지켜 온 가운데, 하나님 말씀을 배우고 싶어 총신 신학대학원에 입학하면서부터 마치 출구를 찾을 수 없는 미로에 갇힌 듯 고립돼 버렸다. 오랫동안 알고 지낸 교인과 사역자들의 눈빛이 차가워졌으며, 신대원 남학생들은 "집에 가서 애나 볼 것이지 왜 신대원에 와서 남학생 1명을 떨어뜨렸느냐"며 비난하였다.

3살과 7살인 두 딸을 키우랴, 가사 일과 며느리 역할 모두 감당하느라 힘에 부쳤던 건 고사하고, 교인과 사역자들, 그리고 교회와 학교 그 어디에서도 신학 공부하는 여성에게 싸늘하기만 하였다. 남성과 똑같이 경쟁해서 어렵게 신학을 공부했건만, 교인들은 "애 팽개치고 자기 욕심에 이끌린 이기적인 엄마"라는 냉소적인 시선을 보였다.

하지만 이것들보다 더 힘들었던 건, 하나님이 마치 '남성 편'인 듯한 교회 내 완악한 가부장적인 분위기에 눌리다 보니, 하나님에 대한 원망과 죄책감, 그리고 억울함과 낙심이 늘 나를 위태롭게 하였다. 그런 가운데서도 여성으로 지으신 하나님의 뜻이 있을 거라는 실낱같은 희망 속에서 참고 또 참아 가면서 고독한 순간들을 이겨 내어 마침내 남성들만 공부하는 총신대 실천신학에서 보수 교단에선 처음으로 '교회 여성 리더십'이라는 주제로 박사 학위를 취득하게 된 것이다.

총신대 홈페이지에서 공개 채용 공고를 보고 이력서를 내었는데, 당초에 지명되었던 강사가 취소되면서 기적적으로 교양 과목인 '현대사회와 여성'을 7년간 강의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당시 총장은 내가 평소 강의에서 여성 안수와 여성 리더십을 주장한다는 걸 표적 삼아, 총신대와 평생교육원, 그리고 중독재활상담대학원에서의 모든 강의를 박탈해 버려 '부당 해고'를 감행하였다.

나는 이 일을 겪으면서 총신대는 신학 공부한 여성이 '여성 안수'를 외치면 가차 없이 내쫓아 버리는 곳이며, 오랫동안 함께 공부한 선후배 남성 목사들과 교수들도 학교 편에 편승하여 가차 없이 등 돌려 버리는 잔인한 남성 카르텔 집단임을 뼈저리게 느꼈다. 이후로 '부당 해고'를 당한 설움은 고사하고, '모교'와 '모교회'가 없는 신세가 되었고, 10년 이상 총신대에서 함께한 선후배와 교수들, 그리고 45년간 예장합동에서의 신앙생활을 해 왔던 교인들과의 관계도 안개처럼 사라져 버리는 황망함을 경험하게 되었다.

남성 리더십, 남성 안수라는 말이 없듯,
여성 리더십, 여성 안수라는 말도불필요한 단어일 뿐


예장합동은 오히려 남녀평등이 시대정신인 현대사회에 들어섰음에도, 마치 유대 가부장 사회로 회귀하려는 양, 그리스도 복음의 정신을 거슬러 '여성 안수 반대'를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복음서를 읽노라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인권 개념조차 없으며 모든 차별이 당연시되었던 유대 가부장 신분 사회에서도 모든 믿는 자에게 차별이 없음을 선포하며 하나님나라 구원의 평등성과 전복성, 인격성을 보여 주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까닭에 그리스도 복음은 그 당시 부귀와 권세를 가지고 있던 자들보다는 특히, 약자들과 눌린 자들 및 여성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기꺼이 따르며 구원의 기쁨과 자유를 맛보게 해 주었다. 예수께서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2)고 하신 말씀은 '역할 규정'을 따져 강제하며 억압하라고 주신 말씀이 아니라, 남녀 모두가 그리스도 복음 안에서 진리의 자유와 구원의 기쁨을 경험하게 하는 '인격적인 태도'를 말씀하신 것이다. 해서 남성 리더십, 남성 안수, 남성 목사라는 말이 없듯, 여성 리더십, 여성 안수, 여성 목사라는 말 역시 불필요한 단어일 뿐이다.

성경 해석과 신학의 헤게모니를 쥔
예장합동은 여성에게 임한
하나님의 성령을 훼방하고 있다


예수를 출산한 엄마 마리아, 로마 군병의 삼엄함을 뚫고 주님을 끝까지 따라가 마침내 십자가와 부활의 첫 증인이 된 막달라마리아가 전한 예수의 생애와 참된 인간성, 그리고 예수의 부활 증언은 남성 제자들의 '허락을 받아서' 한 일이 아니었다. 이는 오롯이 성령의 뜻을 좇아 그녀들의 주체적 결단과 헌신으로 이뤄진 것이다. 또한,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빈 무덤을 찾아온 베드로를 만나 주지 않았으나, 그 당시 증인의 효력도 없었던 막달라마리아를 만나 주셔서 오히려 남성 열두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요 20:18)며 사도의 권위로서 부활 소식을 선포하는 자로 세워 주셨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여성이 하나님나라 복음을 위해 사역하는 일은 남성들의 허락을 받을 사항이 아니다. 그것은 여성이 하나님의 부르심과 성령의 능력에 따라 주체적인 선택과 결단으로 이뤄져야 할 일이다. 한국교회가 오늘에 이르게 된 건,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전에 분부하신 말씀대로, 오순절 성령 충만을 체험한 120명의 남녀 제자들이 땅끝까지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었기에 가능하지 않았던가! 그러므로 성령의 지혜와 은사를 받은 여성이 하나님 말씀을 설교하지 못하도록 입을 틀어막는 건 패역함이며, 영원한 하나님나라의 거룩한 성에 들어가는 여성을 임의적이며 유한한 공간인 당회, 노회, 총회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는 건 인격 모독이요 불신 행위일 뿐이다.

 

인간성 실현을 위한 관문, '여성 안수'


'여성안수추진공동행동'(여안추)이 여성 안수 1000명 지지 서명운동에 나서며, <뉴스앤조이>에 '여성 안수 시행하라'는 기고문을 연재하며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니까, 예장합동 교권주의자들이 "여성 안수를 허락하면 성경의 권위가 무너진다"느니, "교회가 세속의 길로 간다"느니 하면서 무슨 큰일이 날 것처럼 반박 글을 쏟아 내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목사들의 성추행과 성폭력 범죄에 대해선 이상하리만치 잠잠하고 있다. 어느 쪽이 성경의 가르침에서 벗어나 교회를 부패와 타락으로 이끄는가? 성경은 음행한 자를 '악독한 누룩'이라 하여 사귀지도 말며 내어쫓으라고 엄히 명령하고 있건만(고전 5:11-12), 예장합동의 의사 결정 기구인 당회, 노회, 총회는 성범죄 목사들을 감싸느라 여념이 없다.

이쯤 되면, 성경에 언급되지도 않은 '여성 안수'가 예장합동을 망가뜨리는 게 아니라, 예장합동의 '여성 안수 반대'가 오히려 남성 목회자들이 절제와 견제 없는 메커니즘으로 여성의 성을 함부로 취하도록 부추김으로써, 점점 더 '성적 타락의 늪'에 빠져드는 '죄의 블랙홀'이 되고 있다고 보는 게 더 설득력이 있지 않은가?

베드로는 요엘 선지자의 말을 빌려, "말세에 남종과 여종에게 하나님의 영을 부어 주리니 예언할 것이라"고 하였다(행 2:17). 따라서 하나님의 영을 받은 자들에게 필요한 건 케케묵은 '남녀 질서'가 아니라, 하나님나라 상속 동반자로서 그리스도 복음을 위해 대표직과 지도력을 발휘하는 '남녀 파트너십'이다. '남녀의 평등한 하나 됨'이야말로 정의와 평화를 이루는 지름길이요, 교회를 교회답게 만드는 변혁적 도전이요, 하나님의 형상 회복을 구현하는 정도(正道)이다.

예장합동은 그만 가부장적 독점 리더십을 내려놓고, 세대와 계층을 뛰어넘어 남녀 모두가 각자의 소명과 전문성에 따라 하나님나라를 위해 자유로이 헌신하며 윈윈(win-win)하도록 더는 지체하지 말고 여성 안수를 즉각 시행하라!

2024. 09. 17.


출처: 뉴스앤조이(https://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306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