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이강선/"삶을 살아내는 방식"/마음건강 길


이병률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무언가 쑥 하고 몸에서 빠져나갈 때

스윽 할 때도 있고 흐응 할 때도 있고

굉장히 큰 것이 기관을 거치지 않고 맥없이

흘러나갈 때가 있단다


옷으로 스며들어 얼룩을 만들 때 있단다


열려 있는 문틈으로 바람이 들어와

가만히 앉은 등을 째고 속엣것을 꺼내갈 것 같을 때

문짝만 한 바람이 내 등 뒤를 떠민 것뿐인데

등 전체가 흐느끼고 있음을 알 때도

실은 찔끔 혹은 호로록 새나가는 것이란다

바람에 천막이 열리고 닫힌 것뿐인데

그사이 기억조차 내가 그어놓은 막을 빠져나가버리면

허물만 두고 모두 끝나버리는 건 아닌가 싶단다

아찔하지만 그래도 괜찮단다

지나가는 것은 아픈 것이 아니란다


세상 모든 끝나버리는 것을 몰랐던 몸을 버리고

한 칸씩 한 칸씩

무수한 뒷날의 모두를 놓친 정신은

사방이 흰 방

그 뒷방에 모여들어 똬리 틀고 안정한 한 시절을 지낸단다




주의를 기울이면 내가 앉아 있는 방이 보입니다.

주의를 기울이면 지금 막 가지고 온 컵이 보입니다.

주의를 기울이면 컵 안에 있는 물이 보이고

그 물에 담긴 식물이 보입니다.

주의를 기울이면 그 식물의 잎사귀들이 아주 강한 초록이라는 것이 보입니다. 초록을 만들기 위해 햇빛과 바람과 물과 흙이 협동했음이 보입니다.

주의를 기울이면,


세상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음이 보입니다.

시는 주의를 기울이는 방법입니다. 시를 읽고 있으면 그 안에 있는 사물이 보이고 생각이 보입니다.

시인이 그려 놓은 생각을 통해 나는 그가 말하는 감정을 읽습니다. 그리곤 그걸 내 것으로 삼지요. 그러면 나는 간접 경험을 하는 것이고 그러면 나는 실체인 감정이 몰아닥쳤을 때 그 감정에 휘몰리지 않게 됩니다. 나를 조절할 수 있게 되는 거지요.

오늘 가져온 이병률 시인의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면서”는 우리가 삶을 살아내는 방식을 아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수많은 사건을 겪습니다. 그 어떤 것은 가만히 빠져나가기도 하고 그 어떤 것은 핏자국을 남기기도 하고 그 어떤 것은 내 몸을 온통 째어 속엣것을 빼 가기도 하지요.

그 모든 것을 겪어 낸 나의 영혼은 배움으로 끝을 맺습니다. 어쩌면 한바탕 웃음으로 끝낼지도 모르지요.


2024. 11. 29.

출처 : 마음건강 길(https://www.mindgil.com/news/articleView.html?idxno=83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