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리는 저녁 숲가에 서서 바라보는 일은 무엇일까.
12월입니다. 12월은 한 해의 마지막 달, 나를 돌아보게 되는 지점입니다. 한 해를 여행으로 친다면 마지막 종착지이지요.
1월에 어떤 의도를 지니고 시작한 그 여정이 목적을 이루었는지요. 올해의 여행이 끝날 것이라면 내년의 여행은 어떨런지요.
여행은 늘 과정입니다. 출발점에서 목적지까지 가는 과정이 바로 여행인 것이지요. 긴 여행이라면 모를까 짧은 여행에서는 특별한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저 지나가는 풍경에 시선을 두거나 잠깐의 휴식을 취하거나 혹은 자신을 내려놓습니다. 혹은 목적지에서 할 일을 정리하기도 하지요.
목적지로 가는 도중 때로 우리는 아름다운 풍경 앞에 머무릅니다. 눈길을 앗아가는 무언가 있는 곳이지요.
간혹은 그 앞에서 삶을 돌아보기도 합니다. 그 매혹이 무엇이건 아름다움은 내 안을 들여다보게 하는 힘을 갖습니다.
프로스트의 ‘Stopping by Woods on a Snowy Evening’ 「눈 내리는 저녁 숲 가에 멈춰 서서」 또한 그러합니다.
시는 평이합니다. 길을 가던 화자가 숲 가에 멈추어 잠시 숲을 바라보다가 떠난다는 아주 평범한 내용이지요.
눈 내리는 저녁 숲가에 멈춰서서
이 숲이 누구의 숲인지 알 것 같다.
그러나 그의 집은 마을에 있어
내가 여기 멈추어 온통 눈으로 덮인
그의 숲을 바라보고 있음을 알지 못하리.
내 조그만 말은 이상하게 여기겠지
한 해 중 가장 어두운 저녁
근처에 농가라고는 없는
숲과 얼어붙은 호수 사이에 멈춘 것을.
말은 고개를 흔들어 방울을 울린다.
무언가 잘못했느냐고 묻는 것처럼
그 외에 들리는 건 부드러운 바람과
깃털 같은 눈송이가 내리는 소리뿐.
숲은 사랑스럽고 어둡고 깊다,
그러나 나는 지켜야 할 약속이 있어
잠들기 전 먼 길을 가야 한다,
잠들기 전 먼 길을 가야 한다.
이 시를 만난 것은 아주 오래 전입니다. 우리는 수업 시간에 시를 읽었고 이 시가 지닌 어떤 무서움에 매혹되었지요. 새로운 감상이었고 놀라움이었습니다.
그 후에도 이 시를 몇 번 읽었습니다. 매번 새로웠으니 아마도 나이가 먹는 만큼 삶에 대한 이해가 깊어저셔가 아닐까요.
이 시의 저자,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 1874~1963)는 오래전 타계했지만 현재도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시인입니다. 그는 처음으로 대통령 취임식 때 시를 읽은 시인이기도 했습니다.
1961년 그가 케네디 대통령의 취임식 때 자신의 시를 읽은 이후 미국 국민들 사이에는 시에 대한 관심이 널리 촉발되었다고 하지요. 퓰리처상도 4회나 수상했지만 그가 미국의 국민 시인이라고 불리는 것은 그래서만은 아닐 겁니다.
무엇보다 그의 시는 쉽습니다. 소박하고 어휘가 정겹습니다. 뉴 햄프셔에 농장을 갖고 그 풍성한 자연에 묻혀 살았던 그의 삶이 고스란히 반영되는 듯한 시어들이 그의 시를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사용한 일상적인 어휘 속에는 깊은 의미가 숨어 있습니다. 상징이 들어 있는 것이지요.
이 시 또한 그러합니다. 누군가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처럼 씌어있어 술술 읽힙니다.
눈 내리는 저녁, 화자는 볼일이 있어 말을 타고 떠납니다. 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날을 화자는 한 해중 가장 어두운 저녁이라고 말합니다.
날을 특정하지 않기 때문에 혹자는 한 해 마지막 날이 아닌가 생각하고 혹자는 동지가 아닌가 생각하기도 합니다. 각자의 경험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다르게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눈이 내리고 있는 가운데 길을 가던 그는 숲 가에 멈추어 섭니다. 그는 이 숲의 주인이 같은 마을 사람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숲의 주인은 화자가 숲을 바라보는 것을 모릅니다. 그저 지나가면서 보는 숲을 굳이 타인의 숲이라고 명시해놓은 것은 어떤 이유가 있어서일까요. 숲의 주인이지만 눈 내리는 숲의 아름다움을 알지 못해서가 아닐까요.
여느 사람이라면 그냥 지나갈 곳이므로 멈춰 선 것을 사람들은 이상하게 여길 겁니다. 화자는 그 생각을 자신의 말에게 옮깁니다.
이 어두운 저녁, 갈 길이 바쁜데 농가라고는 없는 외딴곳에 숲과 얼어붙은 호수 사이에 멈춘 것이 이상하지 않는가 하고요.
화자는 지금 숲의 매력에 붙잡혀 있습니다. 아름답고 어둡고 깊은 숲. 그 숲에 무엇이 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혹 안다고 해도 그것은 환한 낮의 일, 지금은 오직 눈과 숲, 그리고 어둠만이 있어 그곳을 매혹적인 장소로 만들고 있습니다.
야생의 숲은 무언가 신비롭습니다. 금기된 것, 혹은 미지의 것을 품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어둠은 그 위에 빨려들어갈 듯한 매혹을 더합니다.
그 매혹이 무엇인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화자는 눈 내리는 숲을 바라보면서 한 해를 되짚고 있을 수도 있지만 새로운 세계를 꿈꾸고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길을 가다가 멈추어 서는, 그리고 매혹적인 장소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다는 이러한 일은 누구나 겪는 일입니다. 살아온 과정을 돌아보면 우리 안에는 무언가 있으니까요.
그러나 화자는 문득 기억해 냅니다. 지켜야 할 약속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잠들기 전, 가야 할 길이 멀다는 것을.
"잠들기 전"이라는 어휘에서 우리는 한 번 더 멈춥니다. 잠들기 전, 그 잠은 영원한 잠이 아닐는지요.
여행의 처음과 끝을 생각한다면 잠은 목적지입니다. 그것이 삶입니다. 잠들기 위해 가는 것. 지금 여기 숲가에 멈춰 선 나는 잠들기 위해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요.
평상시에는 결코 생각하지 않는 일. 지금 이 순간만이 전부인 것처럼 몸부림치며 사는 일, 그것이 우리의 일상 아닌지요. 말이 재촉하듯 쉬지 말고 어서 가야 하는 그 일상.
일상은 끊임없이 새로운 일을 만들어냅니다. 사람과의 관계도 게을리하면, 놓으면 안 됩니다. 모든 것이 일상이니까요. 그렇게 살아가면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 수 있을까요.
이 시는 그런 것들을 묻고 있습니다. 때로 내 안을 들여다보고 있는지를.
극히 일상적이고 평범한 어휘로 시를 쓰되 결코 가볍지 않은 것이 프로스트의 시입니다. 사실 일상이 나의 삶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때로 멈추어 서서 걸어온 삶을 돌아보되 내가 갈 길을 잊지 않는 것이 지혜로운 삶이 아닐까요. 지금 여기에 충실하되 방향을 잃지 않는 삶이.
2024. 12. 13.
출처 : 마음건강 길(https://www.mindgil.com/news/articleView.html?idxno=84103)
눈 내리는 저녁 숲가에 서서 바라보는 일은 무엇일까.
12월입니다. 12월은 한 해의 마지막 달, 나를 돌아보게 되는 지점입니다. 한 해를 여행으로 친다면 마지막 종착지이지요.
1월에 어떤 의도를 지니고 시작한 그 여정이 목적을 이루었는지요. 올해의 여행이 끝날 것이라면 내년의 여행은 어떨런지요.
여행은 늘 과정입니다. 출발점에서 목적지까지 가는 과정이 바로 여행인 것이지요. 긴 여행이라면 모를까 짧은 여행에서는 특별한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저 지나가는 풍경에 시선을 두거나 잠깐의 휴식을 취하거나 혹은 자신을 내려놓습니다. 혹은 목적지에서 할 일을 정리하기도 하지요.
목적지로 가는 도중 때로 우리는 아름다운 풍경 앞에 머무릅니다. 눈길을 앗아가는 무언가 있는 곳이지요.
간혹은 그 앞에서 삶을 돌아보기도 합니다. 그 매혹이 무엇이건 아름다움은 내 안을 들여다보게 하는 힘을 갖습니다.
프로스트의 ‘Stopping by Woods on a Snowy Evening’ 「눈 내리는 저녁 숲 가에 멈춰 서서」 또한 그러합니다.
시는 평이합니다. 길을 가던 화자가 숲 가에 멈추어 잠시 숲을 바라보다가 떠난다는 아주 평범한 내용이지요.
눈 내리는 저녁 숲가에 멈춰서서
이 숲이 누구의 숲인지 알 것 같다.
그러나 그의 집은 마을에 있어
내가 여기 멈추어 온통 눈으로 덮인
그의 숲을 바라보고 있음을 알지 못하리.
내 조그만 말은 이상하게 여기겠지
한 해 중 가장 어두운 저녁
근처에 농가라고는 없는
숲과 얼어붙은 호수 사이에 멈춘 것을.
말은 고개를 흔들어 방울을 울린다.
무언가 잘못했느냐고 묻는 것처럼
그 외에 들리는 건 부드러운 바람과
깃털 같은 눈송이가 내리는 소리뿐.
숲은 사랑스럽고 어둡고 깊다,
그러나 나는 지켜야 할 약속이 있어
잠들기 전 먼 길을 가야 한다,
잠들기 전 먼 길을 가야 한다.
이 시를 만난 것은 아주 오래 전입니다. 우리는 수업 시간에 시를 읽었고 이 시가 지닌 어떤 무서움에 매혹되었지요. 새로운 감상이었고 놀라움이었습니다.
그 후에도 이 시를 몇 번 읽었습니다. 매번 새로웠으니 아마도 나이가 먹는 만큼 삶에 대한 이해가 깊어저셔가 아닐까요.
이 시의 저자,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 1874~1963)는 오래전 타계했지만 현재도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시인입니다. 그는 처음으로 대통령 취임식 때 시를 읽은 시인이기도 했습니다.
1961년 그가 케네디 대통령의 취임식 때 자신의 시를 읽은 이후 미국 국민들 사이에는 시에 대한 관심이 널리 촉발되었다고 하지요. 퓰리처상도 4회나 수상했지만 그가 미국의 국민 시인이라고 불리는 것은 그래서만은 아닐 겁니다.
무엇보다 그의 시는 쉽습니다. 소박하고 어휘가 정겹습니다. 뉴 햄프셔에 농장을 갖고 그 풍성한 자연에 묻혀 살았던 그의 삶이 고스란히 반영되는 듯한 시어들이 그의 시를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사용한 일상적인 어휘 속에는 깊은 의미가 숨어 있습니다. 상징이 들어 있는 것이지요.
이 시 또한 그러합니다. 누군가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처럼 씌어있어 술술 읽힙니다.
눈 내리는 저녁, 화자는 볼일이 있어 말을 타고 떠납니다. 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날을 화자는 한 해중 가장 어두운 저녁이라고 말합니다.
날을 특정하지 않기 때문에 혹자는 한 해 마지막 날이 아닌가 생각하고 혹자는 동지가 아닌가 생각하기도 합니다. 각자의 경험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다르게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눈이 내리고 있는 가운데 길을 가던 그는 숲 가에 멈추어 섭니다. 그는 이 숲의 주인이 같은 마을 사람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숲의 주인은 화자가 숲을 바라보는 것을 모릅니다. 그저 지나가면서 보는 숲을 굳이 타인의 숲이라고 명시해놓은 것은 어떤 이유가 있어서일까요. 숲의 주인이지만 눈 내리는 숲의 아름다움을 알지 못해서가 아닐까요.
여느 사람이라면 그냥 지나갈 곳이므로 멈춰 선 것을 사람들은 이상하게 여길 겁니다. 화자는 그 생각을 자신의 말에게 옮깁니다.
이 어두운 저녁, 갈 길이 바쁜데 농가라고는 없는 외딴곳에 숲과 얼어붙은 호수 사이에 멈춘 것이 이상하지 않는가 하고요.
화자는 지금 숲의 매력에 붙잡혀 있습니다. 아름답고 어둡고 깊은 숲. 그 숲에 무엇이 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혹 안다고 해도 그것은 환한 낮의 일, 지금은 오직 눈과 숲, 그리고 어둠만이 있어 그곳을 매혹적인 장소로 만들고 있습니다.
야생의 숲은 무언가 신비롭습니다. 금기된 것, 혹은 미지의 것을 품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어둠은 그 위에 빨려들어갈 듯한 매혹을 더합니다.
그 매혹이 무엇인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화자는 눈 내리는 숲을 바라보면서 한 해를 되짚고 있을 수도 있지만 새로운 세계를 꿈꾸고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길을 가다가 멈추어 서는, 그리고 매혹적인 장소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다는 이러한 일은 누구나 겪는 일입니다. 살아온 과정을 돌아보면 우리 안에는 무언가 있으니까요.
그러나 화자는 문득 기억해 냅니다. 지켜야 할 약속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잠들기 전, 가야 할 길이 멀다는 것을.
"잠들기 전"이라는 어휘에서 우리는 한 번 더 멈춥니다. 잠들기 전, 그 잠은 영원한 잠이 아닐는지요.
여행의 처음과 끝을 생각한다면 잠은 목적지입니다. 그것이 삶입니다. 잠들기 위해 가는 것. 지금 여기 숲가에 멈춰 선 나는 잠들기 위해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요.
평상시에는 결코 생각하지 않는 일. 지금 이 순간만이 전부인 것처럼 몸부림치며 사는 일, 그것이 우리의 일상 아닌지요. 말이 재촉하듯 쉬지 말고 어서 가야 하는 그 일상.
일상은 끊임없이 새로운 일을 만들어냅니다. 사람과의 관계도 게을리하면, 놓으면 안 됩니다. 모든 것이 일상이니까요. 그렇게 살아가면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 수 있을까요.
이 시는 그런 것들을 묻고 있습니다. 때로 내 안을 들여다보고 있는지를.
극히 일상적이고 평범한 어휘로 시를 쓰되 결코 가볍지 않은 것이 프로스트의 시입니다. 사실 일상이 나의 삶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때로 멈추어 서서 걸어온 삶을 돌아보되 내가 갈 길을 잊지 않는 것이 지혜로운 삶이 아닐까요. 지금 여기에 충실하되 방향을 잃지 않는 삶이.
2024. 12. 13.
출처 : 마음건강 길(https://www.mindgil.com/news/articleView.html?idxno=84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