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다원주의 사회에서의 복음 著이충환 (Richard C.H. LEE 기독인문학연구원 연구생)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

-다원주의 사회에서의 복음 레슬리 뉴비긴 著-

 이충환(Richard C.H. LEE 기독인문학연구원 연구생)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필자는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가장 힘쓰고 있는 ‘전도’라는 것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는 계기를 가지게 되었다. 그의 삶을 통해 그는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절실하게 그리고 성실하게 섬기는 사람으로 살아갔다는 것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 중에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지 못한 부분들도 적지 않게 존재했음을 볼 수 있었다. 내가 가장 인상 깊게 읽었던 부분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가장 먼저는 그의 어릴적 삶이다. 그는 어린 나이에 교회에 나가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나서 그는 한 가지 간절한 기도제목을 하나님 앞에 들고 나오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자기의 가족들이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그는 초등학생이라는 믿기지 않는 나이에 불신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지옥에 갈 수 밖에 없음을 인지하고 그 때부터 그의 어머니와 형, 누나가 교회에 나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새로운 삶을 살기 원한다. 그리고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순탄치 못했다. 필자는 평소 잘 알고 지내던 한 목사님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분이 초등학생 때 처음으로 교회에 나가 소요리문답을 배우셨는데, 그 이후 집에서 제사 지내는 때가 오면 제사상을 엎어버리기도 하고, 아버지로부터 술을 사오라는 심부름을 받으면 그렇게는 못한다고 하면서 아버지를 피해 도망다니셨다고 한다. 이 책의 저자인 손현보 목사님도 이와 비슷한 일을 어릴 적에 경험하셨다. 그는 자신의 가족이 구원받는 것을 목표로 고등학교 3년동안 하루도 안 빠지고 새벽기도를 오랫동안 하셨다고 한다. 이러한 기도는 정말 진심으로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생각하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것이다. 새벽에 일어난다는 것, 그것도 어른도 아닌 학생이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은 그 만큼 그의 기도가 간절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의 표현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새벽마다 그의 어깨를 두드려 깨우셨다"고 한다. 실로 하나님께서 함께 한 일이 분명하다. 이렇게 지극정성으로 하루 하루를 주님께 나아오고자 했으나 그의 어머니께서는 교회에 나가는 것에 대해 강경한 태도를 보이셨고, 그는 그에 맞서 어머니가 교회에 나가실 때까지 식사를 하지 않겠다는 초강수를 둔다. 평소 어느 정도 단련이 되어있지 않은 사람은 밥을 한 끼만 굶어도 버티기가 힘든데, 그는 정말 사흘을 식사하지 않았고, 결국에는 어머니께서 교회를 나가시게 이끌어낸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교회를 나가시지 않는 고모가 생각났다. 고모는 하나님을 아직 만나시지 못했고, 시댁에서 제사 드리는 때 누구보다도 가장 정신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신다. 나는 어릴 적에도 고모가 교회에 나가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정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비록 손현보 목사님처럼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고모를 만나면 하나님에 대해 꼭 전하고 싶다는 마음이 계속해서 들었다.

 

  전도학 첫시간에 이승진 교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또한 생각난다. 교수님께서는 이 자리에 전도에 대해 관심없는 전도사님들도 있을 것이라고 하셨다. 그러나 전도학이야말로 우리가 신학을 공부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필요하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렇다. 나도 처음에는 전도학이라는 과목이 뭔가 추상적으로 다가왔고, 전도학이라는 과목을 통해 무엇을 배울지 감이 안 잡히는 학생 중 하나였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전도학이야말로 장차 목회자가 될 사람들에게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토대를 다지게끔 하는 과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도는 신약성경에서도 볼 수 있듯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사도로 세우실 때 말씀하신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떼들에 보내는 것과 같다”고 하신 것처럼, 이 세상은 확실히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포근하고 안락한 곳이기보다 험악하고 각박한 시선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들은 우리가 전도할 때 말하는 “예수님을 믿으세요 그 분을 믿으면 구원을 받고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라는 말 자체를 매우 혐오한다. 요즘 같은 코로나가 존재하는 때에 만약 이 말을 거리에서 했다면 험한 욕설과 함께 두들겨 맞을 확률이 높다. 또한, 교회에서 방역수칙이라도 안 지켜서 감염자들이 많이 나오거나, 선교단체와 연관이 된 대규모 감염이 발생했을 때 메스컴에서는 교회를 가장 큰 화제거리로 다루는 것은 비일비재하다. 한 번은 이러한 일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교회의 이름에 달걀을 던지는 행동까지 보이기도 했다. 그렇다. 세상은 예수님과 그들을 믿는 사람들을 매우 싫어한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 속에는 세상의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아는 것조차 원하지 않는 어둠이 존재한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3:16)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하려 하심이라 (요3:17)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요3:18)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요3:19)

 

  사도바울은 인간에게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것이 마음에 있다고 하였다. 이것은 불신자일지라도 어느 정도는 그 분에 대해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하나님에 대해 알지 못하며 아는 것을 원하지 않는 이유는 인간이 타락하여 죄를 지었기 때문이고 그들은 진노의 자식이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그 분의 아들을 보내시어 우리를 그 분의 자녀로 삼고자 하셨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 이유와 목적은 바로 이것에 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우리의 의지로 하는 것이 아니다. 믿음은 신앙으로 하며 신앙은 믿음에서 나온다. 그리고 이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시기를 포도원 주인이 자신의 아들을 보내면서 그들이 그는 공경할 것이라 생각하시면서 보냈는데 농부들이 생각하기를 ‘아! 아들이 온 것을 보니 포도원의 주인이 죽은 것이 틀림없다. 저 아들을 죽이면 이것은 우리 것이다!’라고 여기며 그 아들을 죽였다면 그 소식을 들은 포도원 주인이 그들을 전부 가만 두겠느냐? 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다. 하나님은 포도원 주인이시고 예수님께서는 그 아들이다. 그리고 세를 맡은 농부들은 바로 세상에 사는 인간들이다. 이들을 위해 자신의 아들까지 내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에게 정말 말로 다할 수 없는 큰 은혜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을 통해, 그리고 그 제자들은 자신들이 세운 직분에 있는 자들로 초대교회에서 그 사명을 감당하게 하였다.

 

 따라서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 전도라는 것은 교회사에서, 그리고 방금 언급한 신약 시대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고 지금까지 이 방식은 계속 이어져오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 이 시대를 살아가는, 특히 주의 말씀을 감당할 목회자들과 목회자 후보생들은 전도에 대해 누구보다 더 열심히 하고 더 관심을 받고 더 힘써야 된다는 것이 내가 하고 싶은 주장이다. 물론, 이에 대해 많은 반론들이 존재한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그 중에는 그 말은 정말 중요하고 맞는 말이긴한데, 요새도 전도를 이전만큼 꼭 잘해야 된다는 원칙이 있는건 아니지 않습니까? 라든지 또는 그러면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요즘에 전도는 어떤 식으로 해야 합니까? 라는 주장을 할 수 있다.

 

  전자에 대해서는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예수님께서는 ‘전도의 원칙’이라는 것을 따로 만들어서 관리하라고 말씀하시지는 않으셨다. 그러나 전도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이루는 비유컨대 몸의 중요한 지체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전도가 만일 존재하지 않는다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실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신 주님의 말을 청종하기 힘들 것이다. 그 만큼 전도는 그리스도인의 기본적인 정체성 중 하나를 이루는 골격과도 같은 것이다. 또한 후자의 주장인 코로나 시대에 어떻게 전도를 할 수 있느냐? 라는 물음에 대해서는 전도는 물론 할 수 있을 것이지만은 상황이 상황인만큼 이전과 같은 오프라인식 전도는 당분간 힘들 것 같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러나 이 말이 ‘코로나 기간에는 전도를 할 수 없다’는 주장인 것은 아니다. 전도는 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여러 매체들을 통해서 비대면 예배들도 드릴 수 있는 상황인데, 전도라고 꼭 대면해서 오프라인 식으로 해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상황에서도 늘 우리와 함께 하시며 자신의 자녀들이 언제나 그 분을 찾고 부르짖는 것을 바라고 계실 것이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을 의존하며 살아가도록 그 분의 형상으로 지음받았고,(웨스트민스터 대소요리문답 제1문) 항상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본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물론, 전도를 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 중에 하나이고 시행착오도 많이 겪게 되는 과정이 존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모름지기 처음 전도를 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의 많은 걱정과 근심도 있을 것이고, 무엇보다 두려움이 자주 들 수 있다. 특히 ‘내가 이 사람은 꼭 전도해서 하나님을 알게 하고 싶은데, 만약 거절하면 어떡하지?’ 라던가 또는 ‘이 사람하고 이제껏 잘 지내왔는데, 전도를 해서 안 좋은 인상을 줘서 다시 예전 같이 절친한 관계로 돌아가지 못하면 어떡하지?’ 라는 걱정이 들 수 있다.

 

  이것은 지극히 정상적이며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처음부터 너무 많은 욕심을 가지고 접근하지 말고 ‘천 릿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말처럼 전도를 하고 싶은 대상에게 전도를 하되,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라는 말씀처럼 우리가 먼저 마음의 결심을 하고 주님께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우리가 먼저 주님께 꾸준히 나아간다면 그 분께서는 우리의 간구를 들으시고 우리의 걱정과 근심을 평안과 위로로 바꾸어주실 것이다. 우리가 먼저 낮아지고 그 분을 간절히 찾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 책의 저자인 손현보 목사님이 자신의 가족을 위해서 특히 그 분의 어머니를 위해 고등학교 3년간 새벽기도를 2시간씩 하신 것처럼 우리도 한 영혼을 향한 간절함과 애통함으로 나아가야 한다.

 (2022. 11.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