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주원규/"냉소를 넘어서는 가능성을 꿈꾸며"/주간기독교



김용완 연출 《돌풍》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로 공개된 12부작 《돌풍》은 이미 《추적자(The Chaser)》와 《황금의 제국》, 《펀치》같이 권력층의 비리와 이를 돌파하는 작품으로 잘 알려진 박경수 작가의 최근작이다. 그의 작품을 특별한 것으로 만드는 부분은 이른바 대결 구도다. 권력 3부작으로 알려진 《펀치》와 같은 작품에서 도드라지게 나타나듯 온갖 카운터펀치가 난무하면서 이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는 아비규환의 세상을 그려 내는데, 《돌풍》 역시 박경수 작가의 숨 쉴 틈 없이 몰아치는 작법을 유감없이 선보이는 작품이다.

이러한 《돌풍》의 주요 소재는 그 시작부터 파격적인데, 바로 대통령 시해 시도다.

《돌풍》의 시작이자 로그 라인은 국무총리 박동호(설경구 분)의 대통령 장일준(김홍파 분) 시해 시도다. 둘은 개혁의 기수로서, 한때 운명 공동체와 같은 정치적 결사체였다. 정경 유착의 썩은 고리를 뽑아내겠다는 것이 둘의 공동 목표였다. 하지만, 그런 장일준이 대통령이 되자 돌변했다. 장일준을 유일한 재벌 개혁의 보루로 믿고 그를 대통령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하는 데 헌신했던 박동호가 발견한 진실은 참담했다. 대진그룹이라는 속칭 정경 유착의 상징과도 같은 족벌 기업이 정관계에 무차별적으로 살포한 비자금을 추적하던 중, 대통령이 금품을 수수한 정황을 포착한 것이다. 대통령을 돌이키려 했던 박동호, 하지만 칼날은 오히려 박동호를 금품 수수 혐의로 구속하려는 황망함뿐이었고, 그 극적인 절망 앞에서 박동호는 장일준 시해를 결심하고 만다.

“야무진 놈이다 싶어서 국무총리 옷을 입혀 줬더이, 동호야 내가 입혀 준 옷으로 내 허물 덮어 주는 게 그리 어렵드나.”

대통령 장일준이 생각한 박동호의 국무총리직은 자신의 허물, 부패와 비리를 덮어 주는 이른바 동지의 방패막이였다. 하지만, 박동호는 전혀 달랐다. 박동호는 자신의 신변 보호에 목숨을 거는 게 아니라 재벌 개혁의 마지막 퍼즐을 맞추기 위해 도저히 꿈꿀 수 없던 일을 시도한다. 대통령이 피우는 전자 담배 액상의 약물을 교체하고, 그로 인해 대통령은 의식을 잃는다. 지병이던 대통령의 심근경색이 재발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명백한 약물 교체로 인한 시해 시도가 분명하다.

박동호는 왜 이런 초유의 사태를 초래했을까. 대통령 유고 시 국무총리가 그 권한을 대행한다는 헌법이 결정적이었다. 박동호는 권한대행을 수행하는 동안 장일준을 부패와 타협의 대통령으로 전락시킨 족벌 대기업의 총수 대진그룹과, 한때 운동권 출신이었지만 권력을 쥐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서슴지 않는 괴물로 변해 버린 정수진(김희애 분) 경제부총리를 축출하는 개혁을 완수하고자 한 것이다. 하지만, 권력에 기생하는 괴물들은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박동호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수행하는 동안 그의 권한대행을 말 그대로 대행의 수준에만 머물게 하려고, 권력의 불나방들은 언론과 정치권력을 총동원해 박동호의 개혁을 혼란과 오염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다.

 

드라마 《돌풍》은 처음엔 박동호와 장일준의 대결 구도가 주요 볼거리였지만, 드라마 전면에 걸쳐 투쟁하게 되는 대결 구도의 정점엔 박동호와 정수진이 자리 잡는다. 물론 이러한 둘의 싸움은 결코 페어플레이 내지는 정석적인 루틴을 따라가지 않는다. 교활한 술수로 기생해 온 대진그룹의 재벌 2세 강상운(김영민 분)이 때론 정수진의 편에서, 때론 박동호의 편에 서며 둘의 정치 싸움을 탁류의 혼탁한 물길 속으로 몰아넣는다.

또한, 박동호와 정수진의 대결 구도에서 정치인의 신념, 그 타락할 수밖에 없는 민낯을 촉발하는 조연들의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한때 운동권 투사였지만 지금은 타락하고 비루한 권력의 뒤란만을 탐하는 정수진의 남편 한민호(이해영 분), 박동호와 같이 끝까지 정의의 편에 서고자 발버둥 치는 서울중앙지검장 이장석(전배수 분), 한때 신선한 정치의 아이콘이었지만 이제는 입만 열면 악취가 풍기는 교활한 능구렁이가 되어 버린 노회한 여당 중진 국회의원 박창식(김종구 분), 공안 검사 출신의 야당 당 대표 조상천(장광 분), 거기에 족벌 대기업 체제의 선봉에 선 대진그룹 강 회장(박근형 분) 등과 같은 조연들이 박동호가 걷고자 하는 개혁의 길에 끝없는 변수와 암초를 만들어 내면서 드라마 《돌풍》은 예측 불허한 이야기 소용돌이로 시청자를 몰아세운다.

결국, 드라마 《돌풍》은 정치인들의 입바른 소리, 원론적인 말들은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다는 회의주의는 때론 엄청난 집념의 에너지로 증폭하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런 복마전의 한가운데에 시민의 역할과 목소리가 철저히 선동에 묻혀 있다는 안타까움을 낳는데 그 메시지를 집중한다. 시민들은 정치인의 말 한마디, 언론의 뉴스 한 조각에 놀아나는 몽매한 집단으로 그려진다. 이는 시민이 무지하다는 게 아니라 그만큼 이 사회의 집단 지성을 농락하는 정치, 언론 권력의 강고함에 관한 회의주의적 고발로 봐야 할 것이기에 오늘의 우리에게 역설적인 한 생각에 눈을 뜨게 한다. 회의주의와 냉소를 넘어선 가능성에 관해 말이다.

2024. 12. 17.


출처 : 주간기독교(http://www.cnews.or.kr/news/articleView.html?idxno=31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