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이강선/"봄날의 고요함"/마음건강 길


봄날의 고요함(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김영랑)

이강선 교수(기독인문학연구원 연구위원, 성균관대 번역대학원)


수십 년 전, 교과서에서 이 시를 접했을 때, 시인이 여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모든 어휘가 대단히 섬세했기 때문입니다.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처럼 가볍기도 하고 환하기도 한 이런 어휘는 아무나 빚어낼 수 없다고 느꼈던 것이지요.

시를 읽어가노라니 햇살이 환한 가운데 돌담, 풀밭의 샘물, 에메랄드빛 하늘이 차례차례 떠올랐습니다. 그리고는 막연한 감상에 젖었습니다.

얼마 전, 강진 영랑 생가와 그 옆 시문학파 문학관에 들렀습니다. 그리고 작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시와 그의 이미지는 너무도 달랐던 것입니다. 시인이 여성이 아니라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만 그의 시구 덕분에 제 머릿속에는 섬약한 청년의 이미지가 강했던 것이지요.

그러나 당시의 기록에서 그가 학생 시절 독립운동가이자 나이들어서도 신사 참배를 거부한 절개 곧은 지식인이었다는 글 읽고 나서 이미지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모두에게, 특히 지식인들에게 신사참배를 강요하던 엄혹한 시절, 많은 이가 변절했습니다만 그는 일제 마지막까지도 변하지 않았던 것이지요.


이제 이 시를 읽으면, 시인이 노래하는 것이 단순히 눈앞의 아름다운 풍경만이 아니라 그의 마음속 깊이 남은 '고향'일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그것은 모두가 잃어버렸거나, 아니면 언젠가 한 번쯤은 겪어보았을 법한 '고요한 순간'에 대한 기억일지도 모릅니다.

시를 읽자마자 마음이 대번에 평온해지는 그 풍경은, 눈앞의 실제 풍경이라기보다는 시인의 마음속에만 온전히 남아 있는 어떤 그리움의 형상이겠지요.

이것은 시의 언어가 '사실'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 아님을 볼 때 더욱 명확해집니다.

햇발은 실제로는 속삭이지 않습니다. 샘물이 사람처럼 웃지도 않지요. 하늘을 어찌 실비단에 비할 수 있겠습니까.

시인은 봄날의 아름다운 정수를, 돌담에 내려앉은 햇살을 속삭임으로, 풀잎 아래 샘물을 웃음으로, 하늘을 실비단에 빗대어 압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속삭임', '웃음', '실비단'이라는 어휘들은 모두 부드러움과 평온함, 고요함의 이미지를 강하게 담고 있습니다.


시인은 거친 겨울이 지나고 찾아온 봄날의 한순간, 자신이 느꼈던 그 부드럽고 평온한 이미지를 이러한 언어로 압축시켜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는 것이지요.

물론 이러한 봄날의 고요하고 아름다운 광경을 시로 그려내기 위해 시인은 생애 동안 경험했던 수많은 평온한 순간들을 마음속으로 되돌아보아야 했을 겁니다.

그리고 현실에 대한 마음속바람을 담아 마치 꿈속에서 본 것 같은 풍경을 언어로 빚어냈을 테지요.

결국 시인은 잠시 멈추어 서서 우리 주변에 흔히 존재하는 사물들을 바라봄으로써, 자신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들'의 속성, 즉 평온함과 고요함을 형상화하여 독자인 우리마저 그 평온에 젖게 만드는 것입니다.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을 이렇게 수십 년에 걸쳐 다른 방식으로 읽고 느끼며 이 두 가지 단계를 겪었습니다.

처음에는 피상적인 아름다움에 끌렸고, 시인에 대한 정보를 통해 충격을 받았으며, 결국 시의 언어와 시인의 내면을 더 깊이 들여다보며 시가 가진 본질적인 울림과 시인의 창작 의도까지 이해하게 된 것이지요.

이 시를 만나는 여러분은 어떠하신가요? 여러분의 마음에는 어떤 울림과 생각들이 떠오르나요?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김영랑)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풀 아래 웃음 짓는 샘물같이

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 길 위에

오늘 하루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

새악시 볼에 떠오는 부끄럼같이

시의 가슴 살포시 젖는 물결같이

보드레한 에머랄드 얇게 흐르는

실비단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


2025. 06. 04.


출처 : 마음건강 길(https://www.mindgil.com/news/articleView.html?idxno=860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