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윤국영/"베다니 세례터에서 가나 혼인잔치 가는 길"/목회와 인문학


"베다니 세례터에서 가나 혼인잔치 가는 길 "

윤국영 박사(기독인문학연구원 상임연구위원)


광야를 벗어나 다시 세례터로

유대 광야는 고독하다. 인적이 잦은 길을 조금만 벗어나면 심연에 들어 간 듯 적막하다. 활짝 열린 사방 황무지 언덕들의 거리를 도통 가늠할 수 없다. 모든 주변이 먼 듯 가까운 듯 맞닿아 있는 곳. 인간의 복잡다단한 인 생사를 내려놓고 하나님과 독대할 수 있는 유대 광야 북쪽 끝에서 예수께 서는 오롯이 자신을 하나님께 맡기셨다. 사단의 강렬한 유혹과 광야의 혹 독함이 교차하는 40일이 어느덧 지났을 때, 예수께서는 공생애를 시작할 준비를 마치시게 된다. 광야 산에서 내려오시며 종려 마을 여리고에서 다 시 보게 되는 인간 세상의 모습. 여위고 마른 모습으로 멀리 보이는 요단 강 베다니 마을을 향해 다시 발걸음을 옮기신다.

오늘날은 세상의 스트레스와 허전함, 혹은 더 섬세해진 입맛을 달래기 위해 음식으로 육체를 채우는 것이 흔한 일상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예수 께서는 매일매일 필요한 양식으로 족한 줄 알라고, 아니 그 최소한 육체 의 양식마저도 말씀의 양식보다 앞서지 못한다고 하신다(마 4:4, 6:11; 눅 11:3). 영과 육의 양식에 갈급한 로마 치하 많은 영혼을 향하여 메마른 얼굴의 저 예수는 장차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하나님의 아들에게 주어진 그리 길지 않은 3년여 시간. 그 앞길에 육체와 명예와 권력의 욕구도 삼킨 바 되었다. 이제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저들 이 원하는 방식이 아닌, 하나님의 방식으로.

푸른 갈대 사이 요단강 나루를 건너면 바로 지척에 베다니 마을이 있다. 가나안 정복 시대에 법궤가 통과했다고 전해지는 요단강 이 지점에 예수 시대에도 많은 순례객과 여행객의 발길이 오간다. 수십 일 전 이곳 요단강 변에서 회개의 세례를 베푸는 세례 요한 앞에 나타나셨던 예수는 초췌한 모습으로 다시 그 앞에 나타나신다. 자신이 메시아가 아니라 지금 눈앞에 다시 나타난 저 여윈 청년이 바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 라고 증언할 때, 세례 요한을 따르던 제자 중에 예수를 좇는 자들이 생겨 난다. 예수에게서 메시아를 기대하는 이들. 그렇게 만난 베드로, 안드레, 나다나엘, 빌립은 훗날 열두 제자로 택함을 받게 된다.

“예수께서 돌이켜 그 따르는 것을 보시고 물어 이르시되 무엇을 구하느냐 이르 되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하니 (랍비는 번역하면 선생이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보라 그러므로 그들이 가서 계신 데를 보고 그 날 함께 거하니 때가 열 시쯤 되었더라” (요 1:38-39)


갈릴리를 향하여

나사렛 인근 가나 마을에서 혼인식이 열리니 참석해 달라는 기별을 받으 신 예수는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를 향해 길을 떠난다. 보통 4일은 가야 하 는 길이지만, 청년이 밤낮없이 부지런히 걸으면 3일에도 갈 수 있을 것이 다. 전통 아랍 마을에는 수천 년간 이어오며 고대 팔레스타인의 관습을 보 존하는 경우가 많다. 1백여 년 전 연구된 팔레스타인 전통 결혼 풍습 연구에 따르면, 아랍 시골 마을 혼례의 경우, 마을 전체가 참여하고 인근 마을사람 중에도 초대했다고 한다. 예수께서는 목수로서 나사렛은 물론 인근 지역을 활발하게 오가며 건축 일을 하셨을 것이다. 혹 이러한 인연으로 예 수와 그 가족이 가나의 혼인식에 초대받지는 않았을까? 이제 막 예수를 따 르게 된 자 중에는 이 가나 마을 출신 나다나엘도 있다. 나사렛이 가나보 다 더 초라한 마을이기 때문이었을까? 바로 전날까지도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고 말했던 나다나엘.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 심령의 정직함을 칭찬하신다. 잘못 알았던 것은 제대로 알고 고치면 된다. 정직한 자가 회개할 수 있다.

가나는 사복음서 중 요한복음에만 세 번 등장한다(요 2:1-11, 요 4:46- 54, 요 21:2). 오늘날 가나의 유력한 추정지는 갈릴리 북동쪽 키르벳 카 나(Khirbet Qana)다. 이 마을은 나사렛으로부터 북쪽으로 약 14km 떨 어져 있다. 유대사가 요세푸스(Josephus)는 로마의 갈릴리 진격에 대비한 유대 방어 지역을 기술하면서 주요 요새인 요데파트 (Yotabata/Yodefat), 가바라(Gabara)를 갈릴리 가나 와 함께 언급한다. 이 세 성 읍은 서로 인접해 있으며, 키 르벳 카나의 위치는 요세푸 스의 기록에 잘 부합한다. 오늘날 키르벳 카나는 발굴을 통해 주 후 1세기 유대인 성 읍의 모습을 잘 드러낸다. 나사렛 북동쪽 근교에는 가나 의 또 다른 후보지인 카프르  카나(Kafr Qana)가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혼인 잔치 기념 교회들이 세 워져 있어서 오늘날 예수 시대 가나 마을로 많이 방문하는 곳이지만, 더 후대 전통에 근거하고 있어 예수 시대의 마을 흔적은 미약한 편이다. 초기 기독교 전통과 고고학 유적, 요세푸스의 기록 등에 비추어 볼 때, 오늘날 키르벳 카나를 신약성경의 가나 마을로 보는 견해가 더 유력하다.

예수 일행은 벧산 계곡의 동편 산기슭을 타고 베레아 지역을 지나 어느덧 벧산-스키토폴리스 인근에 다다른다. 수십 일 전 보았던 이 화려한 로마식 도시를 스치듯 다시 지나며 길보아 산기슭을 따라 빠르게 발을 내디딘다. 저녁 가나 마을 혼인식 일정에 맞추려면 서둘러야 한다. 이즈르엘 평원을 가로질러 멀리 보이던 나사렛 산지가 어느덧 가까워지고, 고향 나 사렛의 정겨운 풍경이 눈앞에 들어온다. 어머니 마리아는 가나를 향해 이 미 출발했을까, 아니면 아직 아들 예수를 기다리고 있을까?

예수 시대에, 나사렛에서 가나까지는 2가지 도보 루트가 있다. 나사렛 서북쪽으로 거대 도시 세포리스를 경유하며 가나 마을에 이르는 루트는 잘 정비된 도로다. 반면, 동북쪽 샛길은 작은 산지 마을들을 거쳐 가나까 지 이른다. 이제 곧 갈릴리 각 마을을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하실 예수의 모습은 헬라화된 거대 도시 세포리를 경유하는 대로보다는 동북쪽 산지 샛길에 더 어울릴 것 같다(마 10:5-6). 많은 수의 무리가 아니라, 적은 수라도 들을 귀 있는 자에게라야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이 드러난다.


“그는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 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마 12:19-20)


가드헤벨과 인근 유대 마을

고대 나사렛에서 북동쪽으로 거의 직선으로 이어지는 길은 오늘날 현 대 아랍 도시 나사렛을 관통하는 주요 도로다. 아랍 도시를 벗어나면서 오른쪽 언덕 위로 오늘날 유대인이 거주하는 또 다른 나사렛(Nazareth Illit=Nof Hagalil)이 높이 솟아 있다. 이렇듯 고대 지명을 두고 아랍 전통 도시와 유대 신생 도시가 병존하는 모습은 이스라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언덕을 넘어서면 나사렛 산지 북쪽 경사면을 따라 완만한 구릉 들이 이어지다가 마슈하드(Mashhad)라는 아랍 마을이 나온다. 고대 나사 렛에서 약 5km 떨어진 이 마을은 구약 시대 요나 선지자의 고향 가드헤벨 (Gath Hepher)로 알려져 있다(왕하 14:25).

오늘날 나사렛 북동부 일대는 주로 아랍 지역이지만, 신약 시대에는 이 지역을 비롯한 갈릴리 전역이 대부분 유대 마을이었다. 유대사가 요세푸스(Josephus) 기록에 따르면, 주 후 1세기 중반 갈릴리는 204개의 성읍과 마을이 있었고, 인구가 밀집하고 토양이 비옥하며 토산이 풍성했다고 한다. 고고학 조사에 따르면, 주 후 1세기 초 갈릴리 마을은 보통 인구 수백 명에서 1천 명 수준의 중소형 규모이며, 대부분 좁고 불규칙한 마을 구조 를 가진다. 회당이 중심 역할을 했지만, 모든 마을에 회당이 존재했던 것 은 아닌 듯하다. 마을 내에서 이따금 드러나는 넓은 공간은 시장 등과 같 은 공적 용도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1세기 초 유대교의 관습이 드러나는 생활 문화는 회당, 정결례탕, 돌 용기, 형상 배제 등을 통해 잘 드러난다. 일부 토기 타입이 분석 결과 갈릴리가 아닌 유대 땅에서 제작되었다는 점 은 두 지역 간 밀접한 인적, 물적 교류가 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또한 시 신의 2차 매장, 뼈 상자(ossuary), 수평 벽감형 매장 형태(loculus)는 유대 인 마을을 둘러싼 무덤에서 볼 수 있는 특징적인 유대 장례 방식이다. 갈 릴리 유대인의 이러한 생활 양식은 계율과 정결을 중시하는 바리새적 교 훈과 예루살렘 성전 중심의 순례 패턴을 잘 반영한다. 

예수 구원 사역의 시작은 분명 이러한 갈릴리 유대인 마을을 중심으로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 초점이 맞춰졌다(마 10:6, 15:24). 예수의 눈에 비친 저들은 목자 없이 유리하며 기진한 양의 모습이었다. 마을들은 대개 허름하고 소박한 모습이었겠지만, 물질적 초라함을 두고 저들을 긍휼히 여기시지는 않으셨을 터이다. 양들이 기진한 것은 목숨을 다하여 양 을 이끌며 꼴을 먹일 목자가 없기 때문이다(요 10:1-21). 오늘날 세계 일류를 꿈꾸는 ‘풍요한’ 시대를 사는 우리의 모습은 예수의 눈에 어떠한 모 습으로 비칠까? 산간 마을 사이로 해가 뉘엿한 늦은 오후에 가나의 혼인 잔치를 향해 걸음을 재촉하시는 예수와 그 제자들. 가드헤벨을 지나 경사 면을 내려가면 북쪽으로 작은 평원이 보이고, 그 평원 너머에 가나 마을이 나타날 것이다.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마 9:35-36)


세포리스와 벧 느도바 평원

나사렛 산지의 북쪽 경사면을 다 내려오면 벧 느도바(Beit Netofa)라는 평원이 펼쳐진다. 평원은 남북 방향으로 좁고 동서 방향으로 16km 정도 길게 뻗어 있다. 평원이 끝나는 남서편 언덕에는 갈릴리의 양대 도시 중 하나인 세포리스(Sepphoris)가 있다. 마치 새가 둥지를 틀고 앉아 있는 형국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세포리스는 서쪽으로 지중해 해안의 주 요 항구 도시 돌레마이(Ptolemais)와 동쪽으로 갈릴리 호수 연안 티베리아(Tiberias)를 잇는 내륙 정중앙에 있다. 

또한 남동쪽으로 벧산-스키토폴리스를 통해 데가볼리 지역으로 갈 수 있고, 남서쪽으로 팔레스타인 남부와 해안 지역으로 이어지는 전략적 요충지다.

세포리스는 주후 20년경 티베리아가 건설되기 전까지 헤롯 안디바 (Herod Antipas)의 갈릴리 통치 수도였다. 안디바는 주전 4년 갈릴리 분 봉왕이 된 이래 세포리스를 수도로 삼고 대대적으로 로마식 도시 재건 사 업을 벌였다. 이러한 정황으로 인해 예수께서 공생애 전 이 도시에서 목수 로 일하셨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주 후 1세기 초 세포리스 인구는 유 대인이 주류를 차지했지만, 동시에 헬라인과 로마인 등 여러 인종이 공존 했다. 이 도시에서는 주 후 1세기부터 비잔틴 시대에 이르기까지 정결례 탕이나 회당 등 유대교적 흔적이 지속적으로 발견됨과 동시에, 건물의 바 닥을 화려하게 수놓은 신화적 모티브의 모자이크들이 발견되어 로마적 생 활 문화가 이곳 세포리스의 또 다른 일상이었음을 보여준다. 유대인 1차 반란으로 성전이 파괴되고 예루살렘 중심의 유대 세계관이 강제 해체되면서 세포리스는 유대인의 종교와 문화 중심지로 크게 부상하고, 주후 2세기 이래 미슈나 편찬에 중요한 장소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화려한 도시 세포리스의 북동쪽에는 벧 느도바 평원이 펼쳐져 있다. 갈 릴리 산지 한가운데 위치한 벧 느도바 평원 일대는 비옥하여 고대로부터 농경지로 활용되었다. 오늘날도 아랍 마을과 유대인 마을이 이 평원 주변 에서 나란히 이 땅을 경작한다. 나사렛에서 멀지 않은 이 평원을 예수께서 는 어린 시절부터 공생애 기간까지 아마도 여러 번 지나셨으리라. 이 평원 을 따라 동쪽으로 가면 갈릴리 호수 서쪽 해변에 도달할 수 있어서, 예수 께서 나사렛에서 가버나움으로 가실 때 택하신 루트 중 하나이다.

해가 이미 서쪽으로 기울었을 무렵, 이제 예수와 제자들은 가나 마을 혼 인 잔치에 참석하시기 위해 약 6km 남짓 벧 느도바 평원을 남북으로 가 로지른다. 겨울철인 주현절 이후 수십 일이 지난 시점이라면, 가나의 혼인 잔치는 아마도 우기가 한창인 파릇파릇한 늦겨울이나 초봄이었을 것이다. 곡식이 영글어가는 들판을 지나시며 임박한 천국 복음 전파를 생각하시며, 예수께서는 무엇을 떠올리셨을까? 농경을 소재로 한 하나님 나라의 비유들. 씨 뿌리는 자, 알곡과 가라지, 좋은 땅, 좋은 열매, 밭에 감춰진 보 화, 포도원과 포도나무, 주인과 일꾼, 그리고 돌아온 탕자. 이 근방 어딘가 에 이방 땅 베니게나 데가볼리 한 도시에서 방황하는 아들을 기다리는 아 버지의 농장이 있는 듯하다. 왜 씨앗이고 왜 열매일까? 이 땅에서 생명의 근원은 오직 하나님뿐이시기에. 사람이든 식물이든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 의 힘으로 살아가는 것이기에.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 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 15:5)


가나 혼인 잔치(키르벳 카나)

벧느도바 평원이 끝나는 북단의 한 언덕 위에 요한복음 2장의 가나 마 을로 유력시되는 키르벳 카나가 있다. 발굴에 의하면 키르벳 카나는 헬라 시대부터 비잔틴 시대까지 주로 유대인이 거주했던 농경 마을이었다. 언 덕 정상부에 회당으로 추정되는 건물이나, 정결례탕, 돌그릇, 동전, 무덤 양식 등은 이 마을이 전형적인 유대 마을이었음을 보여준다. 마을 주변에는 비둘기 사육장(Columbarium), 올리브 기름틀과 같은 농경 설비는 물론 염색이나 피혁 같은 다양한 산업의 증거도 발견된다. 예수 당시 인구가 천명을 웃돌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가나 마을은 평평한 언덕 정상에 큰 건 물들을 중심으로 남쪽을 제외한 주변 경사면에 집들이 빼곡하게 밀집된 형태다. 동쪽과 서쪽 사면에 마당도 없이 층계식으로 연결된 작은 집들이 발견된다. 남쪽 사면은 가팔라서 평원에서 바로 올라오지 못하니, 예수께 서는 이 동서쪽 사면을 따라 어느 좁은 골목으로 마을을 오르시지 않았을까? 언덕에 다 올라서면 예루살렘 방향을 향해 서 있는 회당 건물의 흔적이 정상 남쪽에서 발견된다. 예수께서는 갈릴리 온 회당을 다니셨으니 아마 이곳에서도 가르치셨을 것이다.

키르벳 카나는 샛길을 통해 벧 느도바 평원 주변 여러 농경 마을과 연결 된다. 어둠 속 평원 건너편에는 세포리스의 불빛이 보이고, 원근 일대 여러 마을에서 많은 하객들이 흥겨운 혼인 잔치를 위해 하나둘씩 모이는 듯하 다. 신부가 신랑집에 도착한 후 시작되는 이 잔치는 7일 동안 밤낮으로 이 어지며 특히 저녁 식사 잔치가 중요하다. 근대 팔레스타인 농촌 일대의 아 랍 전통 결혼 풍습도 첫날과 마지막 날의 저녁 식사 잔치를 중심으로 7일 간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가나 마을 어느 집이었을까? 이미 일 년 전부터 구별되어 준비하라는 의 미의 약혼(Kiddushin)의 시간이 끝나고, 이제 본격적인 농사에 들어가기 전, 가을의 풍요가 아직 남아있고 기쁨을 더해줄 삶의 여유가 있는 늦겨울이나 초봄 어느 하루를 택해 드디어 혼인식(Nissuin)을 올린다. 이제 오랫동안 준비했던 모든 기다림의 과정이 끝나고, 신랑은 친구 및 친척과 함께 신부의 집에 가서 그녀를 신랑의 집으로 맞이한다. 저녁 혹은 늦은 밤, 예수와 마리아, 그리고 나다나엘을 비롯한 제자들도 함께한 자리, 빼곡히 둘러싼 하객 앞에서 신랑과 신부는 이제 적법한 부부임이 선포된다. 정결한 두 남녀의 수년간 신뢰가 결실을 맺는 순간이다. 기쁨의 잔치는 수일간 지 속된다. 포도주가 떨어진 것도 모른 채, 예수께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심도 알지 못한 채, 계속되는 잔치 속에 모두는 기뻐한다. 혼인식이 초라하건 호화롭건 상관없이, 저 부부가 이제 기뻐할 수 있는 것은 지나온 약혼과 결혼의 과정에서 서로를 향해 순결하고 정직했기 때문이다. 저들을 바라 보시며 예수께서는 이제 시작하는 공생애 동안 하나님과 당신 백성의 관계가 이러해야 할 것이라 말씀하실 것이다. 물이 포도주로 화하고, 하나님 의 나라가 말로만 아니라 능력으로 임함을 보게 되는 아름다운 밤이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 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계 19:7-8) 


2025. 07. 04.


출처: 교회설장연구소(portal.icg21.com/board/board.php?bbs_id=humanities&ptype=view&kbbs_doc_num=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