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숙(기독인문학연구원 상임연구위원, 복음주의교회연합 공동대표)
<처치 걸>(IVP)은 보수 복음주의에서 말하는 '성경적 여성' 혹은 '상호보완주의'가 가부장제 권력과 연관된 것이지 예수님과 연관된 것이 아님을 성경적·교회사적으로 입증하면서, 이와 같은 억압적 가르침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도록 도전하는 책이다. 이 책의 저자 베스 앨리슨 바(Beth Allison Barr)는 복음주의 전통 안에서 침례교 정체성을 지닌 중세 역사 전공자로서, 현재 베일러대학교에서 유럽 여성과 역사를 가르치는 교수다. 그는 서두에서 이 책이 "목사의 아내이자 학자인 한 백인 여성이 남성의 머리 됨과 여성의 복종이라는 복음주의 가르침을 거부한 경험에 관해 쓴 책"(59쪽)이라고 밝힌다.
그가 이 책을 쓴 결정적 계기가 된 사건은 2016년 9월에 일어났다. 저자의 남편 목사가 청소년부에 여성 리더십을 허락해 달라고 제안한 것에 대해, 교회 지도부는 거절했을 뿐 아니라 그에게 해고를 통보했다. 이로 인해 저자는 교회를 떠나 복음주의적 가르침을 거부하고 그에 맞서 싸웠다.
바의 이야기를 들으니 2016년 2월, 총신대학교에서 강의 도중 '여성 안수'와 '여성 리더십'을 주장했다는 이유로 '현대사회와 여성' 과목의 강의 자격을 박탈당한 내 경험이 떠올랐다. 같은 해에 저자 또한 미국 교회에서 여성 리더십을 제안하다가 그의 남편이 해고당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하기야 바 교수가 언급했듯이, 미국의 존 파이퍼(John Piper)나 웨인 그루뎀(Wayne Grudem) 같은 보수 복음주의 목사들은 지금도 페미니즘을 배격하며 '여성의 종속'을 '성경적'이라고 우기고 있으니 아주 놀랄 일은 아니다. 바 교수의 학문적 관심과 신학적 관점, 그리고 복음주의 교회에서 거부당한 일련의 경험과 강의 및 글쓰기 행보를 보면서, 나는 일종의 '동지애'가 느껴져 몰입하며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의 영어 제목 'The Making of Biblical Womanhood: How the Subjugation of Women Became Gospel Truth(성경적 여성의 형성: 여성의 종속은 어떻게 복음의 진리가 되었나)'에서도 알 수 있듯, 바 교수는 '성경적 여성' 사상이 어떻게 여성의 종속을 벽돌 쌓듯 차곡차곡 복음의 진리로 만들었는지를 교회사적으로 파헤친다.
기독교 역사 속 가부장제의 실상
1장은 가부장제를 다루는데, 4장 '복음주의 여성이 치른 종교개혁의 대가', 6장 '신성화된 종속', 7장 '복음 진리가 된 성경적 여성'과 연결하여 읽으면 매우 유익할 것이다. 이 장들에서는 보수 복음주의 안에서 작동하는 가부장제가 '성경적 여성'이라는 허울 아래, 어떻게 남성성의 특권을 신성화하면서 여성의 종속을 강화해 왔는지 역사적 사건과 증거들을 통해 보여 준다.
미국 남침례교 윤리및종교자유위원회(Ethics and Religious Liberty Commission of the Southern Baptist Convention) 회장인 러셀 무어(Russell Moore)는 "복음주의가 가부장제라는 단어를 포기하는 것은 이 시대의 세속에 굴복하는 것"(33쪽)이라는 그럴듯한 말을 했다. 그러면서 그는 '기독교 가부장제'는 여성이 모든 남성에게 복종을 부추기는 '이교도 가부장제'와는 다르게, 아내가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는 데만 관심을 둔다고 덧붙인다. 하지만 무어의 말은 성속 이원론적 세계관에 근거하여 '기독교'가 '가부장 교리'를 신봉하는 '가정 종교'로 전락했음을 보여 줄 뿐이다.
이제부터는 저자가 '성경적 여성'을 형성해 온 가부장제의 교회사적 실상에 대해 알려 준 몇 가지 중요한 통찰을 나눠 보려 한다. 첫째, 여성이 여성 리더십을 주장할수록 남성은 더욱더 권력을 장악하고자 했으며, 남성의 권위는 여성의 성性을 통제하는 데 몰입했다는 점이다. 저자는 교회가 오랜 시간 여성의 '타고난' 타락성을 강조하면서 여성의 몸을 통제하려고 사투를 벌였고, 이를 위해 여성의 억압을 '성경적'이라고 기만해 왔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실상은 초대 교부들, 중세 신학자들, 종교개혁자들, 청교도들 그리고 현재 보수 복음주의자들에게서 드러난다. 2003년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교단 총회장이었던 임 아무개 목사의 발언, "어디 여자가 기저귀 차고 강단에 올라와?"에서 그 실례를 확인할 수 있다.
둘째, 가부장제는 '거룩'을 왜곡시켰다는 것이다. 저자는 린들 로퍼(Lyndal Roper)의 말을 빌려, "하나님에 관한 언어가 근대 초 유럽의 성별 위계와 결탁했고, 종속된 아내라는 신분이 경건한 여성과 동의어가 되었다"라고 하면서 "16세기에 초래된 사회 변화기(종교개혁 시기) 동안 '아내가 되라'는 성경적 여성에 대한 강조는 더욱 강화되고 보강되었다"고 증언한다. '거룩한 가정', '순결한 여성', '거룩한 결혼'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 종교개혁 시대의 가부장제는 가정을 신성화하는 가운데 여성의 종속을 '거룩'이라는 이름으로 바꿨다. 이런 행태는 '언어 기만'에 불과하다.
셋째, 여성 리더십을 배제하기 시작한 것은 종교개혁 시대였으며,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남성 중심의 언어를 사용한 영어 성경 역본 역시 종교개혁의 결과라는 것이다. 사실 성경 영어 역본은 11세기 고전 영어 육경(시편과 구약의 첫 여섯 권)과 웨스트 색슨 복음서, 14세기 존 위클리프의 역본 등 종교개혁 훨씬 이전부터 존재했다. 종교개혁 이후 틴들과 커버데일 역본, 1539년 그레이트성경과 제네바성경 그리고 1611년 킹제임스성경(KJV)으로 이어지는 영어 역본이 생겨났고, 이 역본들은 "여성을 그녀의 남편과 아버지라는 정체성 뒤에 정치적·법적·경제적·사회적으로 감추려는 맥락에서 번역되었다"(192쪽). 종교개혁 이후의 성경 영어 역본들은 교회 리더십에서 여성을 배제하는 가부장적 '거짓 보편 언어'가 돼 버린 것이다.
바울이, 예수님이 진정으로 말하려던 것
저자는 2장에서 '만일 성경적 여성이 바울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면?'이라는 제목으로 바울의 여성 관련 본문(엡 5장, 고전 11·14장, 딤전 2장, 골 3장)을 다룬다. 그는 역사가로서 중세 후기 잉글랜드 설교들이 현재 복음주의 세계의 설교와는 다르게, 바울의 본문들을 설교하지 않았다고 전해 준다. 저자는 한 가지 실례로 12세기 유명한 스콜라학자 피에르 아벨라르(Peter Abelard)의 설교를 가져오는데, 그는 예수님에게 기름을 부은 여성을 다루는 성경 본문에 대해 "오로지 남성들만 행했던 왕에게 기름 붓는 일을 여성에게 허락하심으로써 남자의 머리 됨을 뒤집으(셨다)"고 설교했다(73쪽).
저자는 또한 에베소서 5장이 남편의 권위와 위계에 근거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는 삶의 방식에 기초하고 있다고 말한다(21절). 왜냐하면 에베소서에서 바울이 말하고 있는 가정 교회의 기독교 구조는, 로마제국에서 작동했던 가부장 세계에 저항하는 삶의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저자는 로마서 16장에 나오는 일곱 여성 뵈뵈·브리스가·마리아·유니아·드루배나·드루보사·버시의 사역이 인정받았다는 점, 바울이 스스로를 묘사하면서 '임신한 어머니', '해산한 어머니', 심지어 '젖 먹이는 어머니'와 같은 모성 이미지를 일곱 번이나 사용했다는 점을 언급한다. 무엇보다도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라는 갈라디아서 3장 28절에, 가부장적 권위를 버리면서 인종·신분·성별을 뛰어넘는 바울의 급진적 사상이 가장 잘 나타난다고 저자는 말한다.
나 역시 복음주의가 말하는 '성경적 여성'은 남성의, 남성에 의한, 남성을 위한 성 위계적 질서 체계로, 로마 체계에 저항하셨던 예수님과 바울의 사상이나 여성관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현재 복음주의가 내세우는 가부장제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적 존재의 존엄성·독특성·상보성을 무시한 결과, 도덕적 해이와 성폭력, 억압과 종속을 불러와 그리스도의 복음과는 상반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 해방과 자유야말로
성경적이며 복음적이다
이 책은 교회 역사에서 가부장제의 목표가 끊임없이 변신하는 와중에도 여성들은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하고 가르칠 방식을 찾았다면서, 여성 리더십의 역사적 증거들을 제공한다. 책에서 이야기하듯, 캐서린 브레커스(Catherine Brekus)는 1740~1845년 사이 미국 교회에서 약 20개 개신교 교단 출신 123명의 여성이 설교하고 권징한 기록을 찾아, 각 여성을 학술 문헌의 부록으로 남겨 놓았다. 여성들이 하나님의 소명을 느끼고 이에 응답했다는 사실은 참으로 가슴 벅찬 이야기다. 가부장제의 압박과 폐허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하나님 구원의 생명과 사랑을 외친 용감한 여성들, 그리고 오늘날에도 여성들의 헌신과 도전을 기뻐 받으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위로가 넘친다.
저자는 '성경적 여성'은 성경적이지 않으며, 상호보완주의는 가부장제 권력에 의한 '여성의 종속'을 주장하는 사상이라고 결론 내린다. 그리고 예수님이 여성을 해방하셨음을 믿고 자유로이 나아가라고 촉구한다. 이것이야말로 성경적이며 복음적이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오셨고,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기 때문이다(눅 4:18, 갈 5:1~13).
밭에 감춘 보화를 발견한 사람을 '여성'이라고 상상하며 마태복음 13장 44절을 읽으면, 그는 주체적 결단으로 일상의 삶에서 '하늘의 보화를 찾는 자유'를 보여 준다. 신앙적 자유가 없는 여성은 진리의 보화를 발견할 수 없다. 진리란 추상적이고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접근 가능한 하나님의 현실이니 말이다. 진리를 찾는 자유로움이란 억압과 종속에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 신앙으로 그리스도 복음을 실천하고자 분투하는 일상적 삶의 태도라고 믿는다.
<처치 걸>은 단순히 역사 이론과 교리를 읊어 대는 '말의 모음'이 아니다. 오히려 교회사 전문가로서 직접 몸으로 깨닫고 삶으로 부딪히면서 마주한, 그리스도 복음이 요구하는 진정한 자유와 해방을 말하고 있다. 복음주의 안에서 바 교수처럼 신앙적 소신과 학자적 양심을 걸고 여성 리더십을 주장하는 사람을 찾아보기란 참 어렵다. 그렇기에 복음주의 안에서 힘들게 여성 리더십을 외치고 있는 나로서는, 이 책 <처치 걸>의 출간이 무척이나 반갑고 고맙다.
모쪼록 복음주의에 속한 여성과 남성 모두가 학문적 소신과 신앙적 삶을 던져 쓴, 베스 앨리슨 바 교수의 <처치 걸>을 꼭 읽어 보면 좋겠다. 이 책이 여러분에게 그리스도께서 주신 자유와 해방을 선사하리라 믿는다.
2023. 07. 31
출처: 뉴스앤조이 (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305538)
강호숙(기독인문학연구원 상임연구위원, 복음주의교회연합 공동대표)
<처치 걸>(IVP)은 보수 복음주의에서 말하는 '성경적 여성' 혹은 '상호보완주의'가 가부장제 권력과 연관된 것이지 예수님과 연관된 것이 아님을 성경적·교회사적으로 입증하면서, 이와 같은 억압적 가르침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도록 도전하는 책이다. 이 책의 저자 베스 앨리슨 바(Beth Allison Barr)는 복음주의 전통 안에서 침례교 정체성을 지닌 중세 역사 전공자로서, 현재 베일러대학교에서 유럽 여성과 역사를 가르치는 교수다. 그는 서두에서 이 책이 "목사의 아내이자 학자인 한 백인 여성이 남성의 머리 됨과 여성의 복종이라는 복음주의 가르침을 거부한 경험에 관해 쓴 책"(59쪽)이라고 밝힌다.
그가 이 책을 쓴 결정적 계기가 된 사건은 2016년 9월에 일어났다. 저자의 남편 목사가 청소년부에 여성 리더십을 허락해 달라고 제안한 것에 대해, 교회 지도부는 거절했을 뿐 아니라 그에게 해고를 통보했다. 이로 인해 저자는 교회를 떠나 복음주의적 가르침을 거부하고 그에 맞서 싸웠다.
바의 이야기를 들으니 2016년 2월, 총신대학교에서 강의 도중 '여성 안수'와 '여성 리더십'을 주장했다는 이유로 '현대사회와 여성' 과목의 강의 자격을 박탈당한 내 경험이 떠올랐다. 같은 해에 저자 또한 미국 교회에서 여성 리더십을 제안하다가 그의 남편이 해고당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하기야 바 교수가 언급했듯이, 미국의 존 파이퍼(John Piper)나 웨인 그루뎀(Wayne Grudem) 같은 보수 복음주의 목사들은 지금도 페미니즘을 배격하며 '여성의 종속'을 '성경적'이라고 우기고 있으니 아주 놀랄 일은 아니다. 바 교수의 학문적 관심과 신학적 관점, 그리고 복음주의 교회에서 거부당한 일련의 경험과 강의 및 글쓰기 행보를 보면서, 나는 일종의 '동지애'가 느껴져 몰입하며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의 영어 제목 'The Making of Biblical Womanhood: How the Subjugation of Women Became Gospel Truth(성경적 여성의 형성: 여성의 종속은 어떻게 복음의 진리가 되었나)'에서도 알 수 있듯, 바 교수는 '성경적 여성' 사상이 어떻게 여성의 종속을 벽돌 쌓듯 차곡차곡 복음의 진리로 만들었는지를 교회사적으로 파헤친다.
기독교 역사 속 가부장제의 실상
1장은 가부장제를 다루는데, 4장 '복음주의 여성이 치른 종교개혁의 대가', 6장 '신성화된 종속', 7장 '복음 진리가 된 성경적 여성'과 연결하여 읽으면 매우 유익할 것이다. 이 장들에서는 보수 복음주의 안에서 작동하는 가부장제가 '성경적 여성'이라는 허울 아래, 어떻게 남성성의 특권을 신성화하면서 여성의 종속을 강화해 왔는지 역사적 사건과 증거들을 통해 보여 준다.
미국 남침례교 윤리및종교자유위원회(Ethics and Religious Liberty Commission of the Southern Baptist Convention) 회장인 러셀 무어(Russell Moore)는 "복음주의가 가부장제라는 단어를 포기하는 것은 이 시대의 세속에 굴복하는 것"(33쪽)이라는 그럴듯한 말을 했다. 그러면서 그는 '기독교 가부장제'는 여성이 모든 남성에게 복종을 부추기는 '이교도 가부장제'와는 다르게, 아내가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는 데만 관심을 둔다고 덧붙인다. 하지만 무어의 말은 성속 이원론적 세계관에 근거하여 '기독교'가 '가부장 교리'를 신봉하는 '가정 종교'로 전락했음을 보여 줄 뿐이다.
이제부터는 저자가 '성경적 여성'을 형성해 온 가부장제의 교회사적 실상에 대해 알려 준 몇 가지 중요한 통찰을 나눠 보려 한다. 첫째, 여성이 여성 리더십을 주장할수록 남성은 더욱더 권력을 장악하고자 했으며, 남성의 권위는 여성의 성性을 통제하는 데 몰입했다는 점이다. 저자는 교회가 오랜 시간 여성의 '타고난' 타락성을 강조하면서 여성의 몸을 통제하려고 사투를 벌였고, 이를 위해 여성의 억압을 '성경적'이라고 기만해 왔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실상은 초대 교부들, 중세 신학자들, 종교개혁자들, 청교도들 그리고 현재 보수 복음주의자들에게서 드러난다. 2003년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교단 총회장이었던 임 아무개 목사의 발언, "어디 여자가 기저귀 차고 강단에 올라와?"에서 그 실례를 확인할 수 있다.
둘째, 가부장제는 '거룩'을 왜곡시켰다는 것이다. 저자는 린들 로퍼(Lyndal Roper)의 말을 빌려, "하나님에 관한 언어가 근대 초 유럽의 성별 위계와 결탁했고, 종속된 아내라는 신분이 경건한 여성과 동의어가 되었다"라고 하면서 "16세기에 초래된 사회 변화기(종교개혁 시기) 동안 '아내가 되라'는 성경적 여성에 대한 강조는 더욱 강화되고 보강되었다"고 증언한다. '거룩한 가정', '순결한 여성', '거룩한 결혼'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 종교개혁 시대의 가부장제는 가정을 신성화하는 가운데 여성의 종속을 '거룩'이라는 이름으로 바꿨다. 이런 행태는 '언어 기만'에 불과하다.
셋째, 여성 리더십을 배제하기 시작한 것은 종교개혁 시대였으며,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남성 중심의 언어를 사용한 영어 성경 역본 역시 종교개혁의 결과라는 것이다. 사실 성경 영어 역본은 11세기 고전 영어 육경(시편과 구약의 첫 여섯 권)과 웨스트 색슨 복음서, 14세기 존 위클리프의 역본 등 종교개혁 훨씬 이전부터 존재했다. 종교개혁 이후 틴들과 커버데일 역본, 1539년 그레이트성경과 제네바성경 그리고 1611년 킹제임스성경(KJV)으로 이어지는 영어 역본이 생겨났고, 이 역본들은 "여성을 그녀의 남편과 아버지라는 정체성 뒤에 정치적·법적·경제적·사회적으로 감추려는 맥락에서 번역되었다"(192쪽). 종교개혁 이후의 성경 영어 역본들은 교회 리더십에서 여성을 배제하는 가부장적 '거짓 보편 언어'가 돼 버린 것이다.
바울이, 예수님이 진정으로 말하려던 것
저자는 2장에서 '만일 성경적 여성이 바울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면?'이라는 제목으로 바울의 여성 관련 본문(엡 5장, 고전 11·14장, 딤전 2장, 골 3장)을 다룬다. 그는 역사가로서 중세 후기 잉글랜드 설교들이 현재 복음주의 세계의 설교와는 다르게, 바울의 본문들을 설교하지 않았다고 전해 준다. 저자는 한 가지 실례로 12세기 유명한 스콜라학자 피에르 아벨라르(Peter Abelard)의 설교를 가져오는데, 그는 예수님에게 기름을 부은 여성을 다루는 성경 본문에 대해 "오로지 남성들만 행했던 왕에게 기름 붓는 일을 여성에게 허락하심으로써 남자의 머리 됨을 뒤집으(셨다)"고 설교했다(73쪽).
저자는 또한 에베소서 5장이 남편의 권위와 위계에 근거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는 삶의 방식에 기초하고 있다고 말한다(21절). 왜냐하면 에베소서에서 바울이 말하고 있는 가정 교회의 기독교 구조는, 로마제국에서 작동했던 가부장 세계에 저항하는 삶의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저자는 로마서 16장에 나오는 일곱 여성 뵈뵈·브리스가·마리아·유니아·드루배나·드루보사·버시의 사역이 인정받았다는 점, 바울이 스스로를 묘사하면서 '임신한 어머니', '해산한 어머니', 심지어 '젖 먹이는 어머니'와 같은 모성 이미지를 일곱 번이나 사용했다는 점을 언급한다. 무엇보다도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라는 갈라디아서 3장 28절에, 가부장적 권위를 버리면서 인종·신분·성별을 뛰어넘는 바울의 급진적 사상이 가장 잘 나타난다고 저자는 말한다.
나 역시 복음주의가 말하는 '성경적 여성'은 남성의, 남성에 의한, 남성을 위한 성 위계적 질서 체계로, 로마 체계에 저항하셨던 예수님과 바울의 사상이나 여성관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현재 복음주의가 내세우는 가부장제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적 존재의 존엄성·독특성·상보성을 무시한 결과, 도덕적 해이와 성폭력, 억압과 종속을 불러와 그리스도의 복음과는 상반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 해방과 자유야말로
성경적이며 복음적이다
이 책은 교회 역사에서 가부장제의 목표가 끊임없이 변신하는 와중에도 여성들은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하고 가르칠 방식을 찾았다면서, 여성 리더십의 역사적 증거들을 제공한다. 책에서 이야기하듯, 캐서린 브레커스(Catherine Brekus)는 1740~1845년 사이 미국 교회에서 약 20개 개신교 교단 출신 123명의 여성이 설교하고 권징한 기록을 찾아, 각 여성을 학술 문헌의 부록으로 남겨 놓았다. 여성들이 하나님의 소명을 느끼고 이에 응답했다는 사실은 참으로 가슴 벅찬 이야기다. 가부장제의 압박과 폐허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하나님 구원의 생명과 사랑을 외친 용감한 여성들, 그리고 오늘날에도 여성들의 헌신과 도전을 기뻐 받으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위로가 넘친다.
저자는 '성경적 여성'은 성경적이지 않으며, 상호보완주의는 가부장제 권력에 의한 '여성의 종속'을 주장하는 사상이라고 결론 내린다. 그리고 예수님이 여성을 해방하셨음을 믿고 자유로이 나아가라고 촉구한다. 이것이야말로 성경적이며 복음적이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오셨고,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기 때문이다(눅 4:18, 갈 5:1~13).
밭에 감춘 보화를 발견한 사람을 '여성'이라고 상상하며 마태복음 13장 44절을 읽으면, 그는 주체적 결단으로 일상의 삶에서 '하늘의 보화를 찾는 자유'를 보여 준다. 신앙적 자유가 없는 여성은 진리의 보화를 발견할 수 없다. 진리란 추상적이고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접근 가능한 하나님의 현실이니 말이다. 진리를 찾는 자유로움이란 억압과 종속에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 신앙으로 그리스도 복음을 실천하고자 분투하는 일상적 삶의 태도라고 믿는다.
<처치 걸>은 단순히 역사 이론과 교리를 읊어 대는 '말의 모음'이 아니다. 오히려 교회사 전문가로서 직접 몸으로 깨닫고 삶으로 부딪히면서 마주한, 그리스도 복음이 요구하는 진정한 자유와 해방을 말하고 있다. 복음주의 안에서 바 교수처럼 신앙적 소신과 학자적 양심을 걸고 여성 리더십을 주장하는 사람을 찾아보기란 참 어렵다. 그렇기에 복음주의 안에서 힘들게 여성 리더십을 외치고 있는 나로서는, 이 책 <처치 걸>의 출간이 무척이나 반갑고 고맙다.
모쪼록 복음주의에 속한 여성과 남성 모두가 학문적 소신과 신앙적 삶을 던져 쓴, 베스 앨리슨 바 교수의 <처치 걸>을 꼭 읽어 보면 좋겠다. 이 책이 여러분에게 그리스도께서 주신 자유와 해방을 선사하리라 믿는다.
2023. 07. 31
출처: 뉴스앤조이 (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3055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