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이강선/"바벨탑은 번역에 어떠한 의미가 있을까?"/목회와 인문학


바벨탑은 번역에 어떠한 의미가 있을까?

이강선 박사(성균관대학교 초빙교수, 기독인문학연구원 상임연구위원)


구약의 바벨탑 

번역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구약성서의 창세기 11장 1-9절에 등장 하는 바벨탑 사건은 흔히 인간의 허황과 욕망을 이야기할 때 언급한다. 그 러나 번역학 학자들의 경우 바벨탑 사건을 번역의 시작과 연관시킨다. 창 세기에 적힌 바벨탑 사건은 다음과 같다.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 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사람들이 건설하는 그 성읍과 탑 을 보려고 내려오셨더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 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후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 시고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으므로 그들이 그 도시를 건설하기를 그쳤더라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니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창 11:4-9)


  이방인들에게 유대인들의 역사를 알리고자 했던 요세푸스(Josephus 37-100)는 『유대 고대사』(93-94)를 집필하면서 이 짧은 이야기에 서사 구 조를 부여하였다. 덕분에 많은 이가 영감을 얻어 다양하게 활용하였다. 한편으로 바벨탑이 실제로 존재했는지 에 대한 연구도 많이 이루어졌지만, 현재까지 어디에서도 실제로 존재했다는 근거는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워낙 바벨탑이 유명한 덕분에 서양의 수많은 화가가 이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아 그림을 그렸다. 네덜란드의 대 (大) 피테르 브뤼헐(Pieter Bruegel the Elder) 또한 이 이야기를 극적으로 아주 상세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림을 들여다보면 탑은 구름 위까지 솟아 있다. 탑은 성경 묘사와는 달리 도시에 자리 잡고 있고 멀리 들판이 보이며 바다와 맞닿아 있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탑의 그림자는 수많은 건물 위에 드리워져 있어 그 높이와 크기를 짐작하도록 만든다. 그림의 왼쪽 앞 부분에는 언덕이 있고, 병사들에게 둘러싸여 등장하는 인물은 공사 전체를 총괄하는 왕으로 보인다. 그의 앞에 엎드려 빌고 있는 이는 그의 권력을 대표적으로 말해준다. 더욱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양한 도구와 여러 가지 일을 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어떤 사람은 수레를 끌고 탑을 올라가고 있고 또 다른 사람은 계단을 오르는 것으로 보아 건물의 안팎에서 많은 이들이 저마다 자신이 맡은 역할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짐작을 하게 한다. 탑이 바닷가에 위치한다는 것은 건설 물자가 이 도시에서만 조달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시사한다. 이처럼 거대한 건물이라면 많은 물건이 끊임 없이 공급되어야 하니 바닷가라면 물자 공급이 쉬울 것이다. 그림의 부두 에는 많은 배가 정박하거나 항해하고 있고 항구에 부려진 짐들이 보인다.


바벨탑과 번역의 관계

 그렇다면 이 바벨탑과 번역은 어떤 연관이 있을까? 바벨탑을 쌓던 이들은 그들의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창 11:4) 라며 탑을 짓 는다. 흩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한데 모여 있자는 의미로 달리 읽으면 한마음으로 살아가자는 의미다. 한마음은 한 시각을 의미하고 한 문화를 의미 하며, 한 언어를 의미한다. 즉, 흩어지면 마음이 달라진다는 것이며, 생각이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같이 있으려고 바벨탑을 쌓던 인간들이 흩어지게 된 원인은 하나님이 그들의 언어를 여러 개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언어가 다르면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한마음이 될 수 없어서 흩어졌다는 것이다. 바벨의 사전적 의미를 찾으면 ‘여러 목소리가 한번에 말하기 때문에 혼란 스러운 소음’이라는 풀이가 나온다. 소음은 어떤 목소리도 가린다. 각자가 자기의 말을 하기 때문에 그 어느 것도 뚜렷하게 들리지 않는 것이다. 말이 뒤섞였다는 사실은 곧 번역의 출발점이 된다. 인간은 소통하지 않으면 살 수 없다. 상거래는 물론, 서로 다른 문물의 교환이 필수인 만큼 번역 또한 필수로 따라올 수밖에 없다. 여러 언어로 인간을 흩어놓은 하나님 의 시각으로 본다면 소통을 위한 번역은 바벨탑을 다시 쌓는 행위다. 그렇다면 번역은 하나님에게 반항하는 불충한 일은 아닐까?


 이에 대한 학자들의 시각도 갈린다. 그중 하나는 번역은 오히려 다양한 언어를 한데 모이게 하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이는 하나의 언어가 하나의 강물이라고 가정했을 때, 세상의 각 강물은 각각의 다양한 특징을 지니고 있으며, 강물의 종착지는 바다다. 각 강물이 지닌 다양한 특징들은 바다로 흘러든 다음에 모두 섞여 하나로 용해된다고 보는 것이다. 이 시각은 번역을 구원으로 가는 하나의 매개체로 보고 있다. 실제로 고대로부터 각 나라 혹은 부족마다 다른 언어를 갖고 있었으므로 바벨탑은 ‘왜 언어가 다를까?’ 하는 의문을 해결하기 위한 이야기이다. 그러므로 번역의 기원 역시 정반대로 해석될 만큼 상징적이다. 달리 말하면 고대로부터 번역이 존재해 왔고, 그만큼 인간 역사에서 번역이 필요했으 며, 앞으로도 번역이 필요하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왜 번역학자들이 번역의 기원을 다른 곳이 아닌 하필이 면 성경에서 찾았는지 궁금해진다. 여기서 한 가지 추론을 할 수 있다. 성 경은 종교 경전이다. 종교는 특성상 포교를 필요로 한다. 전파가 종교의 생명인 것이다. 그렇기에 그처럼 많은 사람이 포교를 생명처럼 여긴다. 포교는 타문화, 언어권으로 확장되는데 그때 꼭 필요한 것이 경전이다. 경전을 알려주기 위해서는 그들의 언어로 바꾸어 전하고 이해시킬 필요가 있는 것이다. 실제로 고대 및 중세, 그리고 근대 번역의 역사는 거의 종교와 함께 해왔다. 아니 종교가 가는 곳마다 번역이 필요했다. 동양의 번역 역사는 불교와 함께, 서양의 번역 역사는 성경과 더불어 이루어졌으며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번역의 역사

 동양에서 번역은 기원후 1세기 중국이 인도의 불교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산스크리트어 경전을 번역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종교(宗敎)는 산스크리트어를 한자로 번역한 것으로, 불교 용어다. 중국에 불교가 전래 되었을 때 능가경에서 ‘근본이 되는 가르침’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시단타 데사나를 한역한 단어가 바로 ‘종교’이다. 이 종교는 ‘으뜸 종(宗)’에 ‘가르칠 교(敎)’를 사용하고 있어, 으뜸 되는 가르침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서양에서 종교를 말하는 어휘인 ‘종교(Religion)’는 라틴어 레리지오 (Religio)에서 비롯했는데, 이 어휘의 어원은 두 개다. 키케로(Cicero)는 이 어원이 라틴어 리레게(Relego, 숭배하다)에서 왔다고 보았다. 리레게 는 Re(다시)가 레고(Lego, 읽다, Read)와 합해진 것으로, ‘다시 읽다’는 의 미가 된다. 되풀이 읽으면서 신에 대한 예배 관련 사항들을 지속적으로 살 피는 것이다. 키케로와는 달리 락탄티우스(Lactantius)는 Re(다시)가 리가레(Ligare)와 합해 ‘다시 묶다’가 되었다고 보았다. 아우구스티누스(Aurelius Augustinus) 는 이 견해를 따랐다. 즉, 종교는 흩어진 이들이 하나님께로 다시 결합하 여 하나님께 경외를 드린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고 보았다. ‘다시 묶는다’는 이 어원에서 다음을 추론해낼 수 있다.


 세상에 흩어져 살면서 수많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함께 경외하기 위해서는 포교가 필요했다. 포교를 위해서는 다른 언어로 성경을 번역하는 일이 필수였다. 그러므로 타국으로 나가는 선교사들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그 나라의 언어를 익히는 일이었고 현재도 그러하다. 따라서 번역의 역사는 경전의 번역사라고 해도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이처럼 포교를 위해 번역이 필요 했다면 성경은 처음 쓰인 이래 얼마나 많은 언어로 번역되었을까? 우 선 성경은 무려 1,500여 년에 걸쳐 기록되었다. 또한 성경의 저자는 1-2명이 아니라 40여 명에 이른다. 그런가 하면 성경을 기록하는 데에 사용된 언어는 3가지다. 구약은 대부분 히브리어로 쓰였고, 아주 일부가 아람어로 기록되었다. 신약은 그리스어로 쓰였다. 구약이 히브리어로 기록되어 있었으므로 유대인이 히브리어를 사용하는 동안에는 번역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아시리아, 바빌로니 아, 그리스, 페르시아, 로마 등의 영향을 받게 되면서 히브리어 지식이 사라지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히브리어 성경을 번역해야 할 필요가 생겼다. 따라서 유대인들이 알렉산드 리아에 모여 히브리어 성경을 그리스어로 번역했는데, 그것이 바로 최초의 번역 성경인 70인역으로 기원전 2-3세기에 나왔다. 


유대의 12지파가 각 6명을 보내 70(72)인이 70(72)일만에 번역해냈다고 해서 ‘70’을 의미하는 셉투아진트(Septuagint)로 불리는 이 번역에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따른다. 각자가 독방에 들어가 번역했지만, 후에 결과를 보니 번역이 동일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번역은 낱말 하나, 어구 하나를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번역했음을 의미하는 축자역(흔히 직역이라고 하지만 정확히 말해 직역은 중역이 아니라는 의미다)으로도 유명하다. 최초의 70인역 이후 성경은 얼마나 많은 언어로 번역이 되었을까? 현재 성경은 전 세계의 6,909개의 언어 가운데 2,400개 의 언어로 번역되어 있다. 성경 번역에 힘을 쏟고 있는 기관으로 돋보이는 곳은 단연 위클리프 성경번역 선교회(Wycliffe Bible Translators)다. 이 선교회의 또 다른 이름은 ‘세계 성경 번역회’로 영국의 신학자이자 종교 개혁가인 존 위클리프(John Wycliffe 1320-1380)의 이름을 따서 설립된 기관이다. 이 기관이 위클리프의 이름을 딴 것은 그가 라틴어 성경을 영어로 번역 하면서 내세운 구호 중 하나에서 기인한다. 당시 성경은 라틴어로 쓰여 있어 사제들을 비롯한 극히 소수만이 성경을 읽을 수 있었다. 위클리프는 새벽별답게 성경이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를 만들어낼 것 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모든 이를 위해 성경을 번역하고 싶어했다. 이 기관은 1942년 이래 수많은 언어로 성경을 번역하는 사역을 했다. 현재까지 600여 개의 언어로 성경을 번역했으며, 이곳에서 교육을 받은 위클리프 선교사들은 93개 나라에서 2,000여 개의 소수민족 언어로 성경을 번역하고 있다. 바벨탑이 언어를 갈라 민족을 흩어놓았다면 번역가들은 번역을 통해 하나의 바다(구원)로 흘러가도록 하기 위한 작업을 여전히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2023. 07. 01


출처: 교회성장연구소(portal.icg21.com/board/board.php?ptype=view&kbbs_doc_num=90&page=1&bbs_id=humanities&searchtype=&searchword=&searchhpcode=&searchca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