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프로젝트: 기후 위기 시대의 기독교] 지구의 생태환경이냐? 인간사회의 평등한 생존 및 행복이냐?


지구의 생태환경이냐?인간사회의 평등한 생존 및 행복이냐?


이인미 (기독교환경교육센터 살림 연구실장, 성공회 대학교 신학연구원 연구교수)


*본 글은 '필자와 <주간기독교>의 허락을 받아 공유함을 알려드립니다.'

*출처 : 주간기독교 (www.cnews.or.kr/news/articleView.html?idxno=2408)


다큐멘터리 ≪종의 보존 대 인류생존(Entangled)≫은 2020년 EBS 국제다큐영화제(EIDF) 상영작 중 한 편이었다. 그리고 ≪산의 균열(A Crack in the Mountain)≫은 2023년 서울 국제 환경 다큐멘터리영화제(SEIFF) 상영작 중 한 편이었다. 두 작품에 공통점이 있으니, 두 작품은 우리가 지구의 생태환경을 선택할 것인지, 인간 사회의 평등한 생존 및 행복 추구를 선택할 것인지, 더 중시할 것인지 묻는다. 딱 봐도 몹시 어려운 양자택일.


먼저 ≪종의 보존 대 인류생존≫은 생태환경 보존 활동과 기본 생계 문제가 얽히고 설킨 현실을 보여주면서 시작된다. 멸종 위기에 놓인 북대서양 참고래와 기본 생계 보장을 원하는 어민들 이야기가 주된 줄거리를 이룬다.
최근 북대서양 참고래들이 옛날보다 더 자주, 더 많이 죽는다. 기후변화로 바닷물이 너무 뜨거워져 동물성플랑크톤이 급감하자 참고래들이 먹이를 찾아 예전과는 다른 경로로 이동하게 되었는데, 새 이동 경로에 설치되어 있는 어업 장비들이 그들에게 살해 흉기로 작동한 것이다. 삼사십여 년 전엔 어쩌다 어업 장비를 뒤집어쓴 참고래가 발견되면 사람들이 배를 타고 따라다니며 풀어주곤 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상황이 달라졌다. 바닷물 속 어업 장비들은 너무 많고, 그것에 얽혀드는 참고래 숫자도 너무 많아, 일일이 풀어주러 다닐 수가 없다. 어업 장비를 되도록 바닷물 속에 드리우지 않도록 엄격히 규제하지 않으면 달리 방법이 없다.
그래서, 북대서양 연안국가인 미국과 캐나다의 정부가 각각 어업 장비 감축을 엄격히 명령했다. 그랬더니 곧장 어민들의 생계가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개인파산은 물론이거니와 관련 업종(수산물 유통산업, 해산물 레스토랑 등)까지 줄줄이 도산하게 되었다. 하여, 두 나라 정부는 규제정책을 좀 느슨하게 풀었다. 그러자 참고래 살상 사고가 도로 늘어났다. 참고래를 살리려 했더니 어민들이 죽겠다 하고, 어민들을 살리려 하면 참고래가 죽겠다 한다.

참고래의 머리 쪽 각질이 인간의 지문처럼 개체마다 고유한 탓에 구별이 가능해서, 일정 기간마다 과학자들이 생존 여부를 확인할 수 있었는데, 그 개성 가득한 참고래들이 거의 다 죽고, 겨우 300마리만 남았다. 남은 녀석들도 그리 건강한 상태는 아니다. 선박들이 내는 소음 때문에 자기들끼리 소통하지 못해 스트레스 지수가 높다. 고강도의 스트레스는 상처와 질병에 취약한 몸을 만든다. 참고래들은 취약해진 몸으로 간신히 생을 이어간다. 과학자들은 완전 멸종까지 대략 20년 정도가 남아있다고 추산한다.
이 같은 참고래의 현실을 깊이 깨달은 한 어민은 참고래를 주제로 하는 한 토론회에 참가하여 마침내 고통스러운 결심을 한다. “어쩌면 제가 가족들을 부양하지 못하겠다고 말하는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그 생각만 하면 정말이지 가슴이 미어져요. 하지만 제 배에서는 수직 밧줄을 17킬로미터 줄이겠습니다.” 그러나 회의장 바깥에서는 다른 어민이 항의한다. “우리 어민들은 참고래가 다치는 걸 바란 적 없습니다. 우리더러 어업 장비를 줄이라고만 하면 우린 어떻게 살라는 겁니까?” “지구 문제의 후유증을 왜 우리만 견뎌야 합니까?”
≪종의 보존 대 인류생존≫에는 참고래를 보존하자 주장하는 어린이, 그리고 장래희망이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따라 소박한 어민이 되는 것이라 밝히는 어린이가 같이 등장한다. 그 어린이들은 참고래 보호 집회와 규제완화 집회에 각각 참여한다.

두 번째 영화는 ≪산의 균열≫이다. 미국-베트남전쟁이 오래전에 종료되었건만, 게다가 21세기가 시작된 지도 어언 20여 년이나 흘렀건만 베트남의 한 시골 마을 ‘퐁냐’는 전쟁 직후 형편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동네 곳곳에서 불발탄이 발견되기도 한다. 잠깐씩 여행으로 다녀가는 서양 사람들이야 “순수하고 저렴해서 좋다, 개발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며 사려 없이 말하지만, 정작 퐁냐 사람들은 힘겹게 헐떡이며 간신히 버티며 살아가는 중이다.
2009년 어느 날, 퐁냐 마을 인근에서 ‘항손둥’ 동굴이 발견되었다. 서양 연구자들과 베트남 현지인들이 탐사팀을 이루어 항손둥 동굴을 탐사했다. 내부에 밀림이 두 개, 강이 두 개, 폭포가 한 개 들어있을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크고 넓고 높은 천연 동굴이다. 항손둥이 발견되자 인근 퐁냐 마을이 관광업으로 활기를 띠게 되었다. 정갈한 베트남 음식이 저렴하게 판매되면서 여행자들과 지역주민들이 ‘윈-윈’ 관계를 맺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항손둥 측은 1년에 천 명으로 방문객 숫자를 제한한다. 항손둥 훼손을 예방하기 위한 최선의 규제 조치다.


위의 사진은 항손둥 동굴을 찍은 데이비드 버넬(David Bunnel)의 작품이다. 동굴 외부 아니고 동굴 내부다. 아닌 게 아니라 저 동굴에 들어갔다 나온 여행자들은 이 다큐멘터리에 출연해 “굉장한 경험이었다!”라고 입을 모은다. 그들의 항손둥 체험담을 듣고 있노라면 부러움이 절로 솟는다. 그러나, 그럴 때 곧바로 베트남행 비행기 표를 예매하거나 해서는 안 된다. 다음의 세 가지 사항을 먼저 점검해야 한다. ①올해 여행자 제한 인원 천 명이 다 찼는지 확인해야 함. ②값비싼 항손둥 관광비용을 마련해야 함. ③다소 잔인한 말처럼 들릴 수 있음을 미리 사과드리며, 자기 스스로 걸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함. 바꿔 말해 장애인이거나 너무 어리거나 너무 나이 든 사람은 ‘항손둥 입장불가’라는 이야기다.
이와 같은 규제 조항들이 모두에게 공평하도록 조절해 보겠노라 나선 돈 많은 베트남 사업자들이 있다. 그들이 항손둥 개발계획을 내놓았다. ▲항손둥 1년 관광객 숫자 상향 조정하기, ▲돈이 많든 적든 항손둥을 방문할 수 있도록 여행 비용 낮추기, ▲장애인과 유아 및 노인이 소외되지 않고 항손둥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항손둥 외부와 내부를 잇는 케이블카 설치하기. 베트남 정부는 개발계획을 내놓은 사업자들에게 원칙적으로 동의하는 듯 보인다. 경제적 이해타산 때문이리라.


사업자들 맞은편에 생태환경 보전활동을 펼치는 ‘세이브항손둥’이 버티고 있다. 아직까지는 ‘세이브항손둥’이 개발업자들을 잘 막아내고 있는 편이다. 그러나 언제 뒤집힐지 모른다. 정부와 기업은 호시탐탐 항손둥 개발을 밀어붙일 타이밍을 노린다. 그런 데다 또 다른 난점도 있다. ‘세이브항손둥’ 설립자이자 활동가는 고백한다. 항손둥 동굴의 훼손을 방지하려면 ①②③이 잘 지켜져야 하지만 그렇게 되면 항손둥은 ‘시간 많고 돈 많은 비장애인’에게만 개방되는 결과를 낳는데, 그게 과연 공정한가 하는 문제다.
≪종의 보존 대 인류생존≫이나 ≪산의 균열≫은 어려운 양자택일의 문제를 우리 앞에 내어놓는다. 어느 쪽으로 결정하든 다른 쪽의 반발이 예상된다. 「주간기독교」 독자님들은 어느 쪽에 더 마음이 끌릴까 궁금하다. 혹시 두 사례가 남의 나라 이야기라서 금방 와닿지 않는다면 다음의 현대자동차 사례를 통해 양자택일 상황에 깊이 들어서길 권한다.


 2011년 현대자동차가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새로 개발해 환경친화적 자동차를 강조하는 광고를 제작했다. 한 농부가 젖소의 엉덩이에서 어마어마한 방귀 냄새를 맡고서 인상을 찌푸리는 장면 뒤로 “젖소보다도 적은 CO2 배출량”이라는 문구가 흘러나온다. 이 광고를 보고 전국의 낙농업자들이 깜짝 놀랐다. 그들은 거세게 항의하기 시작했다. 이 사태의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광고가 조기종영 되었다. 이제 다시 묻겠다. 「주간기독교」 독자님들, 강 건너 남의 일이 아니다. 어느 쪽을 선택하시겠는가. ‘지구의 생태환경이냐? 인간 사회의 평등한 생존 및 행복이냐?’ 중에서….
아닌 게 아니라 찬송가 586장 ‘어느 민족 누구게나’는 감동적으로 한 번 부르고 끝날 노래가 아닌 것이다. 참과 거짓이 싸울 때에 어느 편에 설 건지, 우리는 고민해야 한다. 또 진리 편에 서는 일을 그저 “고상하고 아름답다”라고 추상적으로 찬미하기만 할 건지, 우리 자신의 마음속을 따져보아야 한다.

2023. 07.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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