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주원규/순정과 순수에 대한 갈망/주간기독교



최상열, 홍은미 연출 <순정복서>


 2023년에 방영된 KBS 《순정복서》는 여러모로 독특한 드라마다. 오히려 너무 많은 기발한 주제와 신박함이 넘쳐나는 드라마 시장에서 순수를 무기로 순정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독특하다고 볼 수 있다.

복싱 천재 이권숙(김소혜 역)과 에이전트 김태영(이상엽 역)의 인생 2막을 맞이한 한판 승부를 보여주는 이야기로 전개되는 드라마 《순정복서》는 최정상의 자리에 오르던 기쁨도 잠시, 갑자기 자발적 실종을 감행해 3년간 잠적한 이권숙이란 천재 복서가 주인공으로 분한다. 그 잠적의 이유와 사연에 주목하는 드라마는 이권숙을 링 위로 복귀시키기 위한 에이전트 김태영에 의해 역동적으로 움직인다. 김태영은 자발적 잠적을 감행한 이권숙을 찾아 그녀를 다시 링 위의 세계로 올려놓기에 이른다. 물론 처음 김태영이 이권숙을 다시 링 위에 올리는 동기는 순수, 순정과 거리가 멀다. 이권숙이 링을 떠난 이유는 단순하다. 자신을 상품과 눈요기로만 보는 어른들의 세계, 상투적인 세계에 질려 권투 글러브를 벗은 것이다, 하지만 이후에도 언론과 관계자들은 집요하게 잠적한 그녀를 추적하며, 다양한 이슈와 소식을 생산한다. 물론 그것은 다분히 루머에 가깝지만.

이런 상황에서 에이전트 김태영은 이권숙에게 확실히 그녀를 낭떠러지로 떨어뜨리는 패배를 안겨주겠다고 말했다. 김태영의 계획은 검은 흑막과 흔하디흔한 어른들의 커넥션을 닮아있다. 이권숙의 사실상 거품과 호기심, 그로 인한 여론의 관심을 힘껏 고조시킨 뒤, 단 한판의 승부조작 경기를 치러 에이전트는 큰돈을 챙기고 이권숙은 패배자로 사라진다는 것이다.


 전체적 이야기 흐름은 승부조작과 연관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순정복서》는 천재 복서 이권숙과 김태영 사이에 벌어지는 흑막과 거래, 이에 연루된 이들의 그늘을 스케치하는 데 포커스를 맞추지 않는다. 일단 이권숙이란 인물의 순수성이 이러한 흑막과의 조우를 시청자로 하여금 원치 않게 만든다. 또한 김태영 역시 세파에 찌든 인물이었을 뿐, 본심 자체가 악독하거나 욕심 가득한 인물이 아니다. 둘 모두 순정을 마음에 한가득 안은 채 다시 잠시 잊고 있었던 그 순수로 인한 순정을 찾아가는 내용으로 드라마는 흘러가고 있다. 그 순정을 찾는 여정을 그린 흐름이 물 흐르듯 유연하고 껄끄럽지 않다. 또한 자극적인 소재나 인위적으로 가공해 내는 서스펜스도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순정복서》는 분명 웰 메이드 드라마라고 봐도 괜찮을 듯싶다. 특별히 모난 구석을 찾기 어려운 드라마라고 말해도 무방하다. 특히 이 드라마는 가족이 함께 모여 시청해도 아쉬움이나 거리낌이 없을 정도의 무공해성을 자랑한다. 장면과 장면, 플롯과 플롯이 억지스럽지 않고 매끄럽게 물 흘러가듯 막힘없이 잘 흘러간다. 특히 한국 드라마에서 고질적으로 지적되는 개연성 문제로 일정 부분 해소한 짜임새가 돋보인다. 주인공 이권숙의 동기와 이유, 그의 감정선이 이해되는 부분도 그렇지만, 어쩌면 빌런이 될 수밖에 없는 에이전트 김태영의 동기가 억지스러울 수 있는 부분이 느껴질 법하지만, 그 역시 세련되게 넘어가는 구석도 작가와 연출의 유려한 세공력으로 볼 수 있을 듯하다.

하지만, 혹자들은 시청률 부분에서 아쉬움을 말하는 대목이 생긴다. 2% 남짓한 시청률을 기록한 부분에 관해서는 여러 요인이 작동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이 생기는 것은 사실이다. 이는 아마도 자극적인 소재, 신박한 캐릭터, 긴박하게 움직이는 반전 같은 트렌디한 요소가 드라마 《순정복서》에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저조한 시청률을 기록한 건 아닌지 하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순정복서》가 우리에게 환기시켜준 순정과 순수에 관한 의미의 소환, 그 자체의 울림만큼은 크다고 볼 수밖에 없다. 최근의 시청자에게 어필할 만한 자극적인 소재나 대사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드라마가 가져다준 ‘순정’이란 의미 환기가 퇴색되는 게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시대가 달라지고 세상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우리는 모두 잊고 지냈던 순정과 순수의 의미를 되살리고 싶어 한다. 점점 퇴색되고 있는 본질을 향한 향수와 갈구 역시 쉽게 간과하는 경향이 있지만, 오늘의 우리가 그 본질에 관한 갈망을 아예 잃어버렸다고 말하는 건 대단한 착오일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적인 휴머니티와 소박한 소재, 대단한 숭고함을 안겨다 주는 주제의식이 아니더라도 《순정복서》만의 매력은 충분하다. 여전히 우리가 드라마는 보는 이유, 드라마를 통해 세상을 보는 이유에 관해 조심스럽지만 분명하게 설득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2023. 11. 22.


출처 : 주간기독교(http://www.cnews.or.kr/news/articleView.html?idxno=25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