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주원규/침묵이어서 더 깊은 사랑의 농도/주간기독교



김윤진 연출 《사랑한다고 말해줘》


침묵이어서 더 깊은 사랑의 농도


 2023년 11월에 방영되어 현재 종영을 앞둔 지니 TV 오리지널 드라마 《사랑한다고 말해줘》는 침묵 속에 스며든 사랑의 농도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손으로 말하는 화가 차진우(정우성 역)와 마음으로 듣는 배우 정모은(신현빈 역)의 소리 없는 사랑을 다룬 이 드라마는 우리에게 사랑의 제일 높은 미덕으로 알려진 소통에 관한 전혀 다른 관점을 제시해 준다는 점에서 묘한 눈길을 끈다. 본래 소통은 정확하고 틀림없는 말을 적재적소에 배치해 상대에게 오해 없이 무결한 결핍의 상태를 지속하려고 하는 걸 뜻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더 많은 대화, 더 많은 확인과 표현을 요구하는 게 사랑의 최상 가치로 여기는 경향이 강하다. 그런데 그 더 많은 확인과 표현이 오히려 상대를 향한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소통이 아닌 일방적 자기주장으로 굴절되는 경우 역시 빈번하다. 우리는 원활한 소통을 위해 대화한다고 하지만, 때론 그 말이 상대를 상처 입히고 아프게 하는 폭력의 상흔이 되어 돌아오는 게 아닌지 묻게 된다. 혹은 말이 자신의 이기적인 결핍을 채우기 위한 욕망 충족의 수단으로만 쓰이는 게 아닌지 의심하게 되는 게 오늘의 사회, 오늘의 시대라는 점에서 이 드라마는 소리가 아닌 다른 중심, 곧 마음과 마음을 전달하는 방법을 통해 잠시 주어진 우리의 침묵 역시 사랑의 본질일 수 있음을 역설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그 발견은 우리를 꽤 먹먹하게 한다.

극 중 화가 차진우는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농인이다. 그런 그에게 유명하기를 욕망하기보다는 마음으로 연기하기를 원하는, 그래서 조금은 시대의 유행에 뒤처질지도 모를 핸디캡을 늘 품고 있는 배우 정모은이 다가온다. 그런 정모은이 차진우에게 건네는 한 마디 말 건넴은 새삼 다른 의미로 들려온다. 정모은은 차진우에게 말한다. “자신의 얘기를 들어줘서 고맙다”라고.


 정모은이 차진우를 떠올리게 된 이 상황은 그녀의 마음이 한껏 위축되고 고통받았을 때였다. 무명 배우의 설움을 톡톡히 견뎌야 할 그 상황, 아무리 연기라지만 수없이 뺨을 맞고 물세례를 당해야 하는 단역으로 촬영에 임했지만, 그조차도 다른 엑스트라가 자신의 장면을 빼앗아갈지도 모를, 그 무엇도 확실하지 않은 불안한 경쟁의 칼끝 위에 서 있는, 정모은의 고통은 소통이 불명확해서가 아니라, 말의 전달과 표현이 지나칠 만큼 정확하게, 그래서 더 불확실하고 가혹한 현실로 내몰린 기분이었다. 그럴 때, 그녀는 누군가와 마음으로 소통하길 간절히 원했고, 힘들 때 부르면 언제든 오겠다고 말한 차진우를 떠올렸다. 이때의 감정이 자기 설움과 연민 때문에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꾹꾹 담아 둔 감정을 어떤 식으로든 쏟아내고 싶은, 어쩌면 그조차 이기적이겠지만, 그 이기적인 마음을 차진우라면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겠다는 희망을 품게 되었기에 조심스럽고 힘든 하루를 보낸 정모은이 집 앞에 자신을 기다리며 서 있는 차진우를 보고는 슬며시 그의 뒤에 서서 등을 잡고 눈물을 쏟아낸다. 말로 표현하면 할수록 더 감정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악순환 속에서 때로는 말의 미망(迷妄)에 가려진 마음의 진실을 보게 하는 침묵의 힘을 드라마는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장면 역시 침묵의 숨결에 살아 숨 쉬는 사랑의 농도를 확인케 해준다.

《사랑한다고 말해줘》의 외피는 분명 세상을 향해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화가 차진우와 마음의 소리를 듣고 싶고, 그 마음의 소리인 침묵의 소리를 표현하고 싶어 하는 배우 정모은의 사랑의 본질에 관해 묻고 있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남녀 간의 사랑이란 외피 안팎으로 둘러싸인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장애에 관한 편견과 그에 관련된 무차별적인 말의 폭력, 언어의 폭력에 관한 비판적 질문을 벌이고 있다.


 극 중에서 차진우가 자신을 숨기고 벽화를 그려온 사실이 알려진다. 그런데, 그 벽화가 철거를 앞둔 지역이란 점에서 이목을 끈다. 곧 철거될 곳이며, 금방 세상 사람들의 눈과 귀에 잊힐 곳이지만, 그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고, 앞으로도 이 세상에 소외되고 잊힐 존재들의 흔적이 남아 있다는 걸 항변하기 위한 메시지가 스며들었다. 차진우는 세상의 명징한 말의 폭력, 소통을 빙자한 자기주장과 자기 욕망의 충족만이 창궐한 세태를 성찰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우리는 묻게 된다. 왜 침묵을 보다 긍정적인 소통의 도구로 생각하지 못했을까에 관해. 그것은 폭력적인 욕망의 세상이 침묵을 힘없고 비루한 것으로 규정해 놓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에 관한 혐오를 조장하고,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자기주장을 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더 가혹한 침묵을 강요해 왔기에, 바로 그렇기에 침묵은 무능하고 도태된 패배자들의 언어로 간주해 버린 것이다.

드라마 《사랑한다고 말해줘》를 보며, 사람과 사람 사이의 진심에 관해 질문하게 된다. 진심의 전달이 단지 말에만 있다고 생각하는 게 자연스러운 공식이 되어버린 지금, 어쩌면 사람의 진심은 ‘말’ 너머에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게 해주는 여지를 남긴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드라마는 침묵은 때론 말의 표현 배후에 담겨 있는, 그래서 말의 차원을 넉넉히 끌어안으면서도 이보다 더 큰 의미를 보여주는 진심을 전달하는 도구가 아닐지 생각하게 해준다.


2024. 01. 15.


출처 : 주간기독교(http://www.cnews.or.kr/news/articleView.html?idxno=26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