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주원규/가족이란 이름의 욕망/주간기독교


민홍남 연출 <선산>


2024년 1월,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6부작 드라마 《선산》은 전통 한국형 오컬트 스릴러를 표방하고 있지만, 사실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오컬트란 장르는 거들 뿐, 그 중심을 이루는 이야기는 가족에 관한 이야기다. 하지만, 그 가족의 이야기가 드라마 선산에서는 아름답거나 숭고한 것으로 다뤄지지 않는다. 괴기스러울 정도의 집착과 일그러진 당위로 묘사되고 있다.



《선산》의 주인공 윤서하(김현주 역)은 충분히 우리 시대가 말하는 속물적이면서도 처연한 인물이다. 기약 없는 정교수 자리를 엿보는, 그래서 도제식 교육의 폐해인 줄 알면서도 자신이 시간강사로 있는 한때는 지도교수였던 교수의 책 대필까지 진행하는 등 충성을 다한다. 그래도 정교수 자리를 보장받지는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윤서하가 충격적인 사건을 맞이한다. 오래전 아버지와 절연한 탓에 존재 자체도 몰랐던 작은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전해 들은 것이다.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작은아버지의 사망을 충격적 사건이라 말하는 게 아니다. 문제는 그가 별다른 후계 없이 선산 하나를 남기게 되었고, 그것이 윤서하에게 상속되었다는 사실이다. 시골 마을의 선산이래 봐야 얼마 하겠어 하는 것이 일반의 생각이지만, 작은아버지가 남기고 간 선산은 그 주변을 둘러싸고 골프장 개발 소식이 돌고 있던 탓에 엄청난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평생에 선산을 팔지 않겠다고 공언하고 나선 작은아버지가 눈엣가시였던 마을 사람들은 그의 죽음을 왠지 반기는 분위기였다. 마을회관에 정성껏 마련해 놓은 장례식을 찾은 윤서하의 눈에 볼 때, 그곳은 장례식이 아니라 잔치를 닮았다는 인상을 받은 것이 그 증거다. 거기에 불길한 인물과 껄끄러운 갈등이 윤서하를 휘몰아친다. 이번에도 살아생전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이복동생 김영호(류경수 역)가 장례식장에 등장해 자신도 작은아버지 선산을 상속받을 권리가 있다며 난동을 부리는데, 그 난동의 수위와 농도가 심상치 않다. 어디 그뿐인가. 바람을 일삼으며 아내와 사랑 없는 결혼 생활을 유지하던 요가 강사인 윤서하의 남편 양재석(박성훈 역) 역시 갑작스럽게 상속받게 된 아내의 선산에 자신도 남편으로서 권리가 있다며 눈독 들인다. 심부름센터를 고용해 남편의 불륜 사실을 모두 수집하고 이를 토대로 이혼을 요구하는 윤서하 앞에서 부끄럽거나 함구하는 게 보통의 반응이겠지만, 양재석은 뻔뻔하게도 불륜은 불륜이고 자신은 여전히 당신의 남편, 곧 가족이기에 선산에 자신도 지분이 있다며, 선산 처분한 일정 값을 나눠주기 전에는 절대로 이혼할 수 없다고 버티기에 이른다.


 《선산》은 이렇듯 윤서하 작은아버지의 죽음, 그리고, 그가 남긴 선산이 그저 그런 시골 맹지에 가까운 땅이 아닌 고액의 가치를 가졌다는 소식을 둘러싸고 이와 관계있는 이들의 쏟아내는 날것의 욕망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그 날것의 욕망, 정점에 시골 마을 발칵 뒤집어 놓은 연쇄살인이 벌어진다. 첫 번째 희생자는 윤서하의 남편이다. 이혼 문제로 차 안에서 다투다 그만 시골 마을에 혼자 남게 된 남편 양재석이 누군가가 쏜 엽총에 의해 살해당한다. 그와 더불어 윤서하가 미행을 의뢰했던 심부름센터 직원 역시 같은 방법으로 살해되는 비극을 겪고 만다. 그러자 윤서하는 이 모든 게 선산을 두고 둘러싼 욕망이 원인이라 진단하며, 얼굴 한 번 본 적 없던 이복동생을 의심한다. 하지만, 그녀가 향하는 의심의 시선이 형사들의 눈엔 마냥 순수해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복동생의 혐의를 강하게 주장하는 윤서하 역시 그 욕망의 가장 직접적인 수혜자이기 때문이다. 연쇄살인의 피해자들 모두 선산에 관한 지분이나 지저분한 공생을 얘기했던 인물들이 대부분이다. 범인이 이복동생 김영호라고 확신하는 윤서하 역시 이른바 형사들의 눈에 볼 땐 알리바이도 확실하지 않으며, 껄끄러운 행적 일색이다.

연쇄살인 사건을 두고 숨 가쁘게 전개되는 선산을 둘러싼 실체의 파헤침 속에서 드라마 《선산》은 종결 부분에 가서 또 한 번의 긴장감과 파격을 선사한다. 연쇄살인의 배후를 추적하던 두 형사의 레이더망에 들어오는 전혀 의외의 인물이 있는데, 그 인물이 이른바 근친상간의 서사와 뒷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드라마는 근친상간이란 주제를 전면으로 내세워 그 파격에 이목을 끌게 하는 방법 대신 근친상간으로 인해 낳게 된 자식을 마을 사람에게 제대로 알리지 못하고 배후에서만 가족을 지켜야 했던 한 인물의 가족을 향한 일그러진 욕망과 집착이 끌고 온 파국에 주목한다. 연쇄살인의 진범은 윤서하 이복동생 김영호의 숨은 어머니였는데, 근친상간으로 낳은 자식이란 낙인이 찍힌 탓에 아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마음 아파하던 그녀가 선산이라도 남겨주기 위해 연쇄살인을 벌여 왔다는 사건의 실체는 말 그대로 파국과 충격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여기서 드라마 《선산》은 오컬트 스릴러의 장르적 외피를 입고 있지만, 그것은 단지 분위기일 뿐, 가족이란 이름으로 포장된 혈연에 관한 일그러진 욕망의 한 단면을 다루고 있음을 보게 된다. 작은아버지가 남기고 간 선산 역시 부동산으로 상징되는 욕망의 제물로 다뤄지고, 그 욕망의 제물 역시 왜곡된 가족애의 담보물이 되어버리는 비정한 현실을 그린 드라마 《선산》은 갈수록 개인주의로 치닫는 우리네 현실에 가족의 의미에 관해 다시금 묻게 한다. 참된 가족의 본질이 흐릿해질수록 더 개인주의화될 수밖에 없는 현실의 악순환을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2024. 02. 13.


출처 : 주간기독교(http://www.cnews.or.kr/news/articleView.html?idxno=2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