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이강선/"왕 같은 죄수인가, 새장에 갇힌 새인가?"


저자: 이강선 교수(성균관대학교 초빙교수, 기독인문학연구원 연구위원)


왕 같은 죄수인가, 새장에 갇힌 새인가?


그들이 종종 말하기를

나는 감방에서 걸어나올 때

마치 왕이 자기의 성에서 걸어나오듯

침착하고, 활기차고, 당당하다고 한다.



나는 누구인가.


그들이 종종 말하기를

나는 간수에게 말을 거넬 때

마치 내가 명령하는 권한이라도 있는 듯

자유롭고, 다정하고, 분명하다고 한다.



나는 누구인가.


그들이 또한 말하기를

나는 붕행한 날들을 견디면서 


마치 승리에 익숙한 자와 같이 

평화롭고, 미소 지으며, 자연스럽다고 한다. 


나는 정말 다른 이들이 말하는 그런 존재인가.

아니면 다만 나 자신이 알고 있는 자에 지나지 않는가.



새장에 갇힌 새처럼 불안하게 뭔가를 갈망하다 병이 들고

손들이 나의 목을 조르고 있는 듯 숨 가쁘게 몸부림치고

빛깔과 꽃들과 새소리를 갈구하며

부드러운 말과 인간적인 친근함을 그리워하고 

사소한 모욕에도 치를 떠는.


그리고 위대한 사건들을 간절히 고대하고

저 멀리 있는 친구들을 그리워하다 힘없이 슬퍼하고

기도하고 생각하고 글쓰는 일에 지치고 텅 빈,

무기력하게 그 모든 것과 이별할 채비를 갖춘 그런 존재.



나는 누구인가.이것인가, 저것인가.

오늘은 이런 인간이고 내일은 다른 인간인가.


이 고독한 물음이 나를 비웃는다.

하지만 내가 누구이든, 신은 안다.

내가 그의 것임을.

우리는 늘 자신에게 묻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자 하는 이 물음은 근원적인 것입니다. 내가 누구인지 알 때 삶을 대하는 태도는 확고해지고 살아야할 이유도 분명해지지요. 그렇게 매번 흔들릴 때마다 우리는 나는 누구인지를 묻는 것이 아닐까요.

<나는 누구인가>하고 묻는 이 시는 유명한 독일 신학자 본 회퍼가 감옥에서 쓴 시입니다. 첫 연에서 그는 말합니다. 내가 감방에서 걸어 나올 때마다 그들은 내가 왕처럼 당당하고 활기차다고 말한다고요.

그들은 아마도 간수들이거나 죄수들일 겁니다. 중요한 것은 감옥에 갇힌 이로서 왕처럼 당당하다는 데 있습니다.


죄수와 왕은 너무도 처지가 다릅니다. 하지만 화자를 보는 간수들은 화자가 승리에 익숙한 자와 같이 평화롭고, 미소 지으며 자연스럽고, 왕이 자기의 성에서 걸어나오듯 침착하며, 활기차고 당당하다고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죄수에게 이러한 표현을 쓰기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화자가 이미 유명한 신학자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시에서 화자는 자신의 어떤 것도 드러내놓지 않습니다. 그 모든 지위와 학식을 내려놓은 순전한 개인으로서 생각하죠.

화자는 두 개의 나를 생각합니다. 내가 아는 내가 나인가 아니면 간수들이 아는 내가 나인가. 두 개의 나라면 타인 앞에서 나는 위선자인가 아니면 그저 가련한 개인인가?

화자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내 안에 여러 개의 나가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타인에게 보이는 나는 내가 아는 나와 다르지요.


나는 누구일까요? 이런 고민에서 자유롭다면 그는 완벽하거나 혹은 갈 길을 정한 사람일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완벽하지도 내 삶을 아주 확정하지도 않았습니다.

내 역할, 직업은 정했을지라도 지금 흔들림 없이 그 길을 가고 있다고 해도 어떤 선택을 해야 할 때가 온다면 틀림없이 이런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아마 우리가 이 고민을 하지 않을 때는 삶의 끝에 이르렀을 때일 겁니다. 평생토록 고민하며 살아간다는 의미지요. 어떻게 하면 이런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아마 그 답은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므로 화자는 말합니다. 내가 누구던 간에 나는 신의 것이라고요.

이 시를 쓴 본회퍼는 히틀러 암살 미수 작전에 가담했다 체포되어 감옥에 갇혔고, 독일이 항복하기 한 달 전 교수형에 처해졌습니다. 그때 그는 겨우 39세였습니다


2024. 05. 10.


출처 : 마음건강 길(https://www.mindgil.com/news/articleView.html?idxno=813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