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수민, 박단희 연출《약한영웅 Class 1》
2022년 11월에 OTT 웨이브 오리지널 시리즈로 방영된 8부작 드라마 《약한영웅 Class 1》의 반향은 생각보다 강하고 깊었다. 단순히 학교 폭력을 다룬 여타의 드라마와는 결이 다른 한 모범생, 공붓벌레의 저항을 그렸다는 점에서, 더욱이 일진이 일진을 소탕한다는 일종의 사이다 장르와는 전혀 다른 성격으로 학원폭력물을 다뤘다는 점에서 일종의 차별화된 드라마로 평가받았기 때문이다.
약해 보이기만 했던 주인공 연시은(박지훈 역)을 지켜보던 친구 안수호(최현욱 역)가 습관처럼 내뱉는 말 한마디가 이 드라마의 모든 걸 말해준다.
“넌 진짜 또라이야.”
그 또라이라는 말을 듣는 내내 왜 이렇게 마음이 먹먹하게 만드는지, 그건 드라마를 정주행한 이들만이 알 수 있는 설명할 길 없는 카타르시스다.
오늘의 우리 사회에 함께 호흡하는 10대는 아직은 흔들리는 청춘 이전의 청춘이다.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멋지고, 세련되게 주먹을 휘두르는 고등학생의 모습은 판타지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이는 10대가 미성숙하다는 뜻과는 다르다. 순수와 사회적 타협 사이, 그 길목에 서 있는 10대가 겪어야 할 세상을 대하는 태도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당연히 발생하는 청춘의 흔들림이 잘 구성된 각본이나 드라마의 결말처럼 매끄럽진 않다는 뜻이다.
그래서일까. 드라마의 주인공 연시은의 표정에 믿을 수 없을 만큼은 짙은 허무가 배여 있는 것도, 얌전하게 교실 한구석에 앉아 있다가도 설명할 수 없는 광기에 가까운 폭주를 선보이는 것도 계산된 카타르시스가 아닌 불완전한 10대의 초상으로 보이기만 하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드라마 제목을 떠올리게 한다. 연약한 영웅이 아니라 상식의 범주를 넘어선 폭주의 불완전함에서 비롯된 약한 영웅인 것으로.
연시은의 분노와 폭주를 촉발한 구조적 현상은 지극히 분명하다. 바로 두 얼굴을 가진 학교 폭력이다.
눈에 보이는 폭력의 세계엔 최악에 가까운 10대의 주먹이 존재한다. 하루가 멀다고 계속되는 동물의 왕국을 닮은 서열 다툼, 거기에 더 세고 강하게 보이기 위해 허세를 빙자한 탈선으로 무장한 술, 담배, 심지어 펜타닐 같은 마약 배치까지. 이 정글 같은 곳에서 살아남지 못하는 오범석(홍경 역)과 같은 왕따의 낙인이 찍힌 친구는 더 잔학한 악의 먹잇감으로 전락하고, 격투기를 배워 그나마 제 한 몸 지킬 수 있는 안수호 역시 말 그대로 할머니를 부양해야 하는 짐을 떠안고 온갖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각자도생의 처지였다.
그렇기에 진짜 학교 폭력의 얼굴은 어른들의 세계가 낳은 10대를 향한 무관심과 방치에 있다. 진심으로 이들 10대의 폭주를 걱정해 주는 어른은 적어도 ‘약한영웅’이 펼쳐 놓은 제법 사실적인 세계에선 보이지 않는다. 안수호는 아예 보호자의 대상 자체가 없다. 연시은의 부모는 철저히 연시은에게 무관심하다.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다. 오범석의 국회의원 아버지 역시 자신의 이미지 세탁의 희생양으로 입양한 아들을 이용할 뿐이다. 그리고, 학교라는 장소에 숨어버린 선생님들은 학교가 지향하는 굴절된 욕망, 무한경쟁의 굴레 속으로 아이들을 밀어 넣고 자신들의 성취에만 몰두할 뿐이다.
얼핏 보면 지나치게 위악적으로 보이는 어른들의 세계이지만, 오늘의 한국 사회를 들여다보면 결코 무리수 넘치는 넘겨짚음이 아니다. 만약 이 무정한 어른들의 세계가 비현실적이고 만화적으로만 비쳤다면 드라마 《약한영웅》이 그토록 분명한 화제성을 남기거나 시청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진 않았을 것이다.
드라마는 당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놀라울 정도의 주목도를 받았다. 드라마의 높은 완성도도 그랬지만, 10대의 세계를 그린 드라마에서 보인 자극의 세기가 기존과 다른 파격을 담고 있어 더욱 주목받았는지도 모른다. 워낙 강하게 몰아붙인 어른들의 세계가 가진 부조리, 비판의식이 가져오는 불편함이 이 드라마가 가져온 비상한 관심에 한몫, 거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학교 폭력은 겉으로 드러난 폭력 일부이며, 진짜 폭력은 어른들의 무관심이 낳은 10대들의 극단적 흔들림, 이를 어쩔 수 없이 지켜볼 수밖에 없는 무기력에 관한 살풍경의 목도에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 살핌을 통해 본 시즌 2를 기다리게 하는 《약한영웅》은 어떤 의미에서는 분명 불편한 드라마다. 특히 어른과 청소년 세대가 겪을 수밖에 없는 충돌, 거기서 나타나는 모순을 바라보는 건 힘겨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불편하다고만 해서 시선을 피한다면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가 해결될 실마리는 보이지 않을 것이다. 단순한 오락적 재미 너머의 이야기로 드라마를 읽는다면 보이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에 관한 실마리는 찾는 한 단초를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약한영웅》을 통해 우리는 또 하나의 드라마 미덕을 익히기 시작한 것이다.
2024. 08. 05.
출처 : 주간기독교(http://www.cnews.or.kr/news/articleView.html?idxno=2993)
유수민, 박단희 연출《약한영웅 Class 1》
2022년 11월에 OTT 웨이브 오리지널 시리즈로 방영된 8부작 드라마 《약한영웅 Class 1》의 반향은 생각보다 강하고 깊었다. 단순히 학교 폭력을 다룬 여타의 드라마와는 결이 다른 한 모범생, 공붓벌레의 저항을 그렸다는 점에서, 더욱이 일진이 일진을 소탕한다는 일종의 사이다 장르와는 전혀 다른 성격으로 학원폭력물을 다뤘다는 점에서 일종의 차별화된 드라마로 평가받았기 때문이다.
약해 보이기만 했던 주인공 연시은(박지훈 역)을 지켜보던 친구 안수호(최현욱 역)가 습관처럼 내뱉는 말 한마디가 이 드라마의 모든 걸 말해준다.
“넌 진짜 또라이야.”
그 또라이라는 말을 듣는 내내 왜 이렇게 마음이 먹먹하게 만드는지, 그건 드라마를 정주행한 이들만이 알 수 있는 설명할 길 없는 카타르시스다.
오늘의 우리 사회에 함께 호흡하는 10대는 아직은 흔들리는 청춘 이전의 청춘이다.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멋지고, 세련되게 주먹을 휘두르는 고등학생의 모습은 판타지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이는 10대가 미성숙하다는 뜻과는 다르다. 순수와 사회적 타협 사이, 그 길목에 서 있는 10대가 겪어야 할 세상을 대하는 태도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당연히 발생하는 청춘의 흔들림이 잘 구성된 각본이나 드라마의 결말처럼 매끄럽진 않다는 뜻이다.
그래서일까. 드라마의 주인공 연시은의 표정에 믿을 수 없을 만큼은 짙은 허무가 배여 있는 것도, 얌전하게 교실 한구석에 앉아 있다가도 설명할 수 없는 광기에 가까운 폭주를 선보이는 것도 계산된 카타르시스가 아닌 불완전한 10대의 초상으로 보이기만 하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드라마 제목을 떠올리게 한다. 연약한 영웅이 아니라 상식의 범주를 넘어선 폭주의 불완전함에서 비롯된 약한 영웅인 것으로.
연시은의 분노와 폭주를 촉발한 구조적 현상은 지극히 분명하다. 바로 두 얼굴을 가진 학교 폭력이다.
눈에 보이는 폭력의 세계엔 최악에 가까운 10대의 주먹이 존재한다. 하루가 멀다고 계속되는 동물의 왕국을 닮은 서열 다툼, 거기에 더 세고 강하게 보이기 위해 허세를 빙자한 탈선으로 무장한 술, 담배, 심지어 펜타닐 같은 마약 배치까지. 이 정글 같은 곳에서 살아남지 못하는 오범석(홍경 역)과 같은 왕따의 낙인이 찍힌 친구는 더 잔학한 악의 먹잇감으로 전락하고, 격투기를 배워 그나마 제 한 몸 지킬 수 있는 안수호 역시 말 그대로 할머니를 부양해야 하는 짐을 떠안고 온갖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각자도생의 처지였다.
그렇기에 진짜 학교 폭력의 얼굴은 어른들의 세계가 낳은 10대를 향한 무관심과 방치에 있다. 진심으로 이들 10대의 폭주를 걱정해 주는 어른은 적어도 ‘약한영웅’이 펼쳐 놓은 제법 사실적인 세계에선 보이지 않는다. 안수호는 아예 보호자의 대상 자체가 없다. 연시은의 부모는 철저히 연시은에게 무관심하다.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다. 오범석의 국회의원 아버지 역시 자신의 이미지 세탁의 희생양으로 입양한 아들을 이용할 뿐이다. 그리고, 학교라는 장소에 숨어버린 선생님들은 학교가 지향하는 굴절된 욕망, 무한경쟁의 굴레 속으로 아이들을 밀어 넣고 자신들의 성취에만 몰두할 뿐이다.
얼핏 보면 지나치게 위악적으로 보이는 어른들의 세계이지만, 오늘의 한국 사회를 들여다보면 결코 무리수 넘치는 넘겨짚음이 아니다. 만약 이 무정한 어른들의 세계가 비현실적이고 만화적으로만 비쳤다면 드라마 《약한영웅》이 그토록 분명한 화제성을 남기거나 시청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진 않았을 것이다.
드라마는 당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놀라울 정도의 주목도를 받았다. 드라마의 높은 완성도도 그랬지만, 10대의 세계를 그린 드라마에서 보인 자극의 세기가 기존과 다른 파격을 담고 있어 더욱 주목받았는지도 모른다. 워낙 강하게 몰아붙인 어른들의 세계가 가진 부조리, 비판의식이 가져오는 불편함이 이 드라마가 가져온 비상한 관심에 한몫, 거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학교 폭력은 겉으로 드러난 폭력 일부이며, 진짜 폭력은 어른들의 무관심이 낳은 10대들의 극단적 흔들림, 이를 어쩔 수 없이 지켜볼 수밖에 없는 무기력에 관한 살풍경의 목도에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 살핌을 통해 본 시즌 2를 기다리게 하는 《약한영웅》은 어떤 의미에서는 분명 불편한 드라마다. 특히 어른과 청소년 세대가 겪을 수밖에 없는 충돌, 거기서 나타나는 모순을 바라보는 건 힘겨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불편하다고만 해서 시선을 피한다면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가 해결될 실마리는 보이지 않을 것이다. 단순한 오락적 재미 너머의 이야기로 드라마를 읽는다면 보이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에 관한 실마리는 찾는 한 단초를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약한영웅》을 통해 우리는 또 하나의 드라마 미덕을 익히기 시작한 것이다.
2024. 08. 05.
출처 : 주간기독교(http://www.cnews.or.kr/news/articleView.html?idxno=29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