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프로젝트: 기후위기 시대의 기독교 8] 코로나19 시대 환경과 신학의 과거와 미래


안주봉 박사

비블로스성경인문학연구소 연구위원

『생태위기와 기독교』 공동 저자

 

 코로나19 위기를 계기로 이제 기독교인들도 생태 또는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일부의 기독교인 혹은 신학자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그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나름대로 문제 원인 진단과 대안을 제시해왔다. 이에 환경 문제와 관련된 기성 신학 혹은 기독교 담론의 성격과 그 한계, 그리고 앞으로 바람직한 기독교 생태주의 관점의 흐름을 정리하고 전망해볼 필요가 있다. 

 

 먼저 우리가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갖게 만든 코로나19 팬데믹의 원인 이야기부터 시작하자. 코로나19 바이러스의 근원지에 대한 의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조류독감』의 저자 마이크 데이비스는 제3세계권에서 급속히 확대된 도시화 및 슬럼지구가 열악한 위생환경에 의해 바이러스 변종들의 온상이 될 것으로 봤기 때문에 중국, 동남아시아가 조류독감의 발원지가 될 수 있고 이로부터 팬데믹 현상이 지구를 덮칠 것으로 근 20년 전에 예상하였다. 이는 현대 자본주의의 세계적 분업화 발전 과정에서 이곳이 가금류와 축산물의 대량공급지가 된 때문이었다.  

 

 본래 사람들이 환경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원인은 지구 온난화문제 때문이었다. 물론 지구 온난화의 주원인은 탄소배출 증가 때문으로, 산업화에 따른 것이었다. 그리고 산업화와 자본주의 발전을 분리할 수 없다. 이안 앵거스 같은 학자는 생태적 위기의 원인을 자본주의에서 찾고 정치행동과 계급투쟁이 그에 대한 답이라고 생각하였다. 

 

 레오나르도 보프의 생태신학도 인간 중심적 공리주의 패러다임을 극복할 새로운 사회모델, 신학 패러다임의 변화를 추구하였다. 신비에 기초한 새로운 영성, 창조신학의 복원, 성령론의 재발견(피조물에 작용하는 성령), 기독교적 만유재신론 등이 새로운 신학의 주요 골격이었다. 그리고 그 해빙신학의 실천과 성찰의 중심에는 가난한 이들이 자리하였다.

 

 일부 학자들은 서구의 근대적 사유와 기독교의 인식론적 한계 문제에 주목하였다. 근대철학이 그 사유에서 자연을 분리시킨 때문이었다. 칸트도 하나님을 발견하기 위해 하늘의 별보다는 “내부의 윤리적 법칙”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했던 것이다. 또한 어거스틴에게서 중시된 인간의 내면에 대한 관심이 종교개혁자 루터에게까지 이어졌다는 점도 지적되었다. 

 

 한편 린 화이트(Lynn White)라는 역사학자는 생태적 위기의 원인을 땅을 정복하고 만물을 지배하도록 인간에게 명령한 성서적 위임(창1:28)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이 과정에서 자본주의의 발전과 기독교가 연결되면 생태위기, 환경 위기의 주범은 기독교가 될 것이었다. 그러나 조지 헨드리라는 연구자는 창세기 2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우주와 관련된 그의 목적을 시작하시는 출발점을 땅으로 삼음으로써 인간이 중심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였다. 

 

 이외에도 근대 자연과학의 발전에 따라 현대인의 의식이 과학 입장에서 결정되면서 분석적인 사고를 가지고 탐구하고 측정하는 대상으로서의 자연에 대한 관념을 갖고 있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그 때문에 인간의 총체적 실체의 상실, 의식의 주관성으로의 매몰이 초래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헨드리는 신학이 전 세계, 구원의 역사, 내적 생명 모두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며 지금까지의 문제를 로마서 8:18-23에 나타난 사도바울의 말로 응답했다. 그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롬 8:21)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그는 기독교의 의식 전환을 요청하였다. 즉 성령의 도움을 받아 고통 받는 자연에 대하여 연대의식을 가질 것, 복음의 관점에서 그리스도의 부활이 세계의 완성을 창조와 연결하는 연결체요 하나님의 성실성에 대한 결정적 증거로 받아들일 것, 자연에 관련된 하나님의 계획의 성취를 위해 우리에게 부과된 책임을 인식할 것 등이었다. 그런데 그도 여전히 기성 신학의 틀에 머물면서 복음의 빛, 성령을 중시했다.

 

 어쨌든 기성 신학 또는 기성 기독교 담론에는 시대적 인식적 한계가 나타났다. 먼저 자본주의 발전과 기독교의 관계에 관한 설명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로 제기된 이른바 베버명제에 대해 오해가 있었다. 베버명제를 둘러싼 논쟁은 결국 프로텐스탄티즘이 자본주의 발전에 도움을 주었을 수도 있다는 추측을 가능케 한 것이었을 뿐이지 본질적 동력이었다고 말하려 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또 성경을 근거로 기독교인들의 정복 성향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역사에는 기독교가 아닌 다른 종교 문화권의 사람들에게서도 수많은 정복과 팽창이 있었다. 전근대 시대의 은둔 수도사들, 순박했던 켈틱교회 전통, 베네딕트 수도원 제도, 힐데가르트의 신비주의, 프란시스코회의 영성 등은 기독교가 본질적으로 정복과 팽창을 추구하는 종교가 아니라는 근거가 될 수 있다.

 

 생태주의 신학의 관점이 사회경제적 관계를 중시한다고 볼 때 20세기 말로부터 21세기로의 전환기는 사회경제적 관계 변화가 가히 혁명적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그 변동의 폭이 컸다. 마르크스주의의 침체가 일어났고, 소련의 붕괴가 있었다. 자유자본주의 진영도 2008년 세계 금융 위기를 거치면서 신자유주의가 몰락하고 많은 기업이 국가적 지원이나 보호에 의존하게 되었다. 또한 탈산업사회로의 전환은 계급사망 론을 제기하였다. 

 한편 지식문제에 있어서는 근대성에 대한 비판이 주관주의 철학, 주체, 독단적 이성 등으로 불리는 우상을 쓰러뜨렸다. 다만 그 대안으로 권력 문제에 집착하는 푸코나, 언어사회적 인간 문제에 집착하는 하버마스 류의 관념도 여전히 인간 중심주의 사고를 탈피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치명적인 코로나19에 대한 대책인 국가적 차원에서의 격리와 폐쇄조치는 관용의 원리 위에서 타인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는 이상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주장해온 계몽사상적 자유와 충돌하였으며. 감염자 추적을 위해 통신 정보에 위한 위치추적시스템이 활용되면서 사생활의 자유 침해 문제도 제기되었다. 

 

 이상과 같은 변동들에서 제기된 것은 결국 ‘통제’라는 관념이었다. 하지만 현대경제에 대한 통제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개념정립이 미진해 보인다. 경제의 민주화라는 용어가 그나마 현실적인 용어 아닐까 싶다. 그리고 미래 생태주의 신학은 누구를 또는 무엇을 주체로 생각할 수 있을까? 

 

 한편 최근 에른스트 콘라디라는 연구자는 기독교에 의한 생태주의적 담론 현상들 여덟 가지로 분류하여 제시하였다. 그것을 나열하자면 성경 해석학적 생태주의 담론, 구성신학(Constructive Theology) 담론), 공정하고 참여적이며 지속가능한 사회 담론, 생태여성주의 기독교 담론, 토착 영성 관련 담론, 동물신학 담론, 선교와 지구보호 담론, 기독교와 다신앙 대화 담론 등이다. 

 

 정리하면 생태, 환경 위기를 꼭 기독교에 원죄가 있는 것처럼 볼 필요는 없다. 또한 계급적 방법으로 자본주의만 극복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여기는 태도는 유효하지 않다. 그보다는 소비주의에 오염되지 않는 민주적 시민에 의한 통제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나을 것이다. 그리고 이유야 어쨌든 지구적 환경위기 앞에서 기독교가 담당해야 할 몫이 있는 만큼 그 도전을 계기로 기독교의 담론이나 신학의 한계를 인지하고 개혁을 시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끝으로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절차와 방법이 필요하다. 즉 특단의 조치들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필자로서는 코로나 19의 위기에 대응하는 한국 정부처럼 위기의 심각성을 공유하고 공동의 위기관리 매뉴얼을 통해 범세계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 프로젝트: 기후 위기 시대의 기독교 ; 생태신학 녹색교회 생명목회를 위하여 - 

- 공동주최: 기독인문학연구원-이음사회문화연구원 · 기독교환경교육센터 살림 · 에이치투그룹 주식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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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www.gdknews.kr/news/view.php?no=116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