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경 박사
호서대학교 교수
들어가는 말
1972년 6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유엔인간환경회의’에서 제정된 이래, 매년 6월 5일로 지키고 있는 세계환경의 날 2021년 주제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재정립하자는 의도를 담은 ‘생태계 복원(ecosystem restoration)’인데, 이는 동물과 식물 등 생물이나 생물이 살아가는 환경을 훼손되기 이전 상태로 되돌리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미래세대를 위한 기후, 환경교육을 통해 기후 위기를 극복하자는 의미를 담아 ‘미래세대를 위한 탄소중립 실현’을 환경의 날 주제로 선언했다(유엔환경계획한국협회, 국제환경뉴스).
이렇듯 오늘날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심각한 위기는 바로 생태환경의 파괴라고 할 수 있다. 지구촌을 락아웃시키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도 생태시스템의 파괴로 발생된 것이라고 사회 각 분야의 전문가들은 추론하고 있다. 위협받고 있는 지구생태계의 지속가능한 내일을 위해서는, 지구공동체 차원에서 생태계 안전도모와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보전하고 가꾸는 인류 본래의 청지기로서의 사명을 회복하고 이에 따른 구체적 실천이 필요한 때이다.
기독교생태교육과 신학적 전통과 경험
북미 역사학자 린 화이트(Lynn T. White)는 1966년 AAAS(American Association for the Advancement of Science)에서 생태환경의 위기의 책임이 유대교와 기독교 전통에 있으며 서양적 형태의 기독교는 인간중심적이며, 인간과 자연의 이원론을 확립하였을 뿐 아니라 인간이 자연을 수단화하여 자신의 목적에 따라 자연을 이용해왔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화이트의 주장을 면밀히 살펴보면, 유대교와 기독교 전통이라기보다는 중세 이후 확립된 인간과 자연의 이원론과 인간중심주의가 과학의 발달과 결합하여 생태위기를 가져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생태위기에 대한 기독교의 책임을 묻는 이들은 또한 창세기1장 28절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기독교인들의 잘못된 행동이 오늘의 생태위기를 초래했다고 비판한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즉, ‘땅을 정복하라’와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는 말씀을 만물에 대한 착취로 오해하였기에 자연파괴를 자행해왔다는 것이다. 또한 인간이 이 땅에 존재하는 다른 피조물 위에 군림하는 존재로 착각하였기에 오늘의 위기를 초래했다는 비판이다.
그러나 이것이 기독교 일반의 이해라고 보는 것 역시 무리가 있다. 이는 최창국(2007)에 따르면, 칼빈(John Calvin)은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이 인간에게 “땅을 정복하라”고 명령하신 것을 자연 위에 지배하고 군림하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적 통치를 감사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자연에게 반영하는 특별한 임무를 부여받은 것이라고 이해했다는 것이다(222). 더글라스 홀(Douglas Hall)은 ‘정복하라,’ ‘다스리라’는 명령의 의미를 전통적인 어원학적 해석이 아닌 예수가 보여준 다스림의 모델을 적용하여 해석함으로써, ‘다스리라,’ ‘정복하라’의 의미는 하나님의 청지기인 인간에게 주어진 봉사와 보살핌의 책임이라고 이해한다(Douglas J. Hall, 184-185를 최창국, 229에서 재인용).
몰트만(Jurgen Moltmann)은 생태학적 입장에서 최초로 창조론을 전개한 학자인데, 그는 데카르트가 자연파괴의 정서적 원인을 제공한 사람이라고 보았다(옥필훈, 8). 이는 화이트도 비판했던 이원론적 원인과도 닿아있다. 몰트만에게 영향을 받은 창조신학자들은 ‘창조’의 주제를 재발견하여 자연에 대한 인간의 청지기 역할을 강조함으로써 자연돌봄의 충분한 근거를 가질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구원의 개념에 묻혀 있었던 창조 개념을 부각시켜 올바른 이해를 돕고자 하였다. 클라우스 베스터만(Claus Westermann)은 창조와 그 피조물이 좋다고 선언된 것은 인간의 창조 이전이었음을 언급하면서 창조물의 가치는 인간의 가치와 편의성과 상관없이 모든 피조물을 하나님이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음을 통해 긍정하고 있다고 본다(Douglas J. Hall, 1990, 210을 최창국, 2007, 227에서 재인용). 따라서 창조세계에 대한 평가는 인간중심적인 것이 아니라 모든 생명 있는 존재 중심적이고 우주 중심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에 따르면, 자연세계는 인간의 구원을 위한 도구나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의 동료 피조물로 인식된다는 것이고, 인간 역시 하나님의 피조물로 다른 피조물들은 인간의 동료 피조물이 되는 것이다(소기석, 300). 월터스토프(Nicholas Wolterstorf)에 따르면, 샬롬이란 인간이 모든 관계에 있어 평화를 누리는 상태를 말하며, 이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비롯하여 자아, 동료들과의 관계 및 나아가 자연과의 관계를 포괄하는 개념이다(69-70). 토마스 베리(Thomas Berry)는 인간중심의 편협한 세계관으로부터 비롯된 지구 착취의 정당화에 자연환경 위기의 근본적 원인이 있음을 비판하고, 지구와 우주에 대하여 기독교적 신앙의 기초를 재인식해야 함을 주장한다. 화이트는 기독교가 초래한 생태위기를 기독교가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그 결과를 낙관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동방교회 전통에 있었던 아씨시의 프랜시스(St. Francis of Assisi, 1181~1226)가 보여준 자연에 대한 돌봄과 배려의 정신을 회복한다면 생태위기가 극복될 수 있다고 보았다(유지철, 김찬국, 2013, 199).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Henry David Thoreau)는 생명평등주의 가치관과 생태적 자아실현, 자연과 동화되는 소박한 삶, 체험과 탐색을 통한 자연과의 만남과 그 속에서 생태적 감수성을 얻게 된다고 보았다.
성서와 신학적 전통에 따른 기독교생태교육
기독교생태교육은 생명존중의 가치 위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인간은 청지기로서의 사명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모든 생명체는 관계성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으며 다양한 관계들이 모여 한 전체로서 조화롭게 기능할 수 있다(한국교회환경연구소 편, 233). 자연 친화적 교육, 즉 생태 지향적인 교육은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생명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하는 교육이다. 하나님은 창조기간 내내 피조물을 보시고 좋아하셨다고 성서는 기록한다. 또한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말씀하신다. 인간을 포함하여 모든 피조된 존재에 대해서 기뻐하셨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창조세계에 대한 평가는 인간중심적인 것이 아니라 모든 생명 있는 존재 중심적이고 우주 중심적이라고 할 수 있다. 창세기의 말씀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으며(창1:27), 동물의 이름을 짓는 아담의 모습을 통해(창2:19) 자연의 착취자가 아니라 돌봄의 사명을 맡은 청지기임을 상기시킨다.
또한 생태교육은 모든 생명이 더불어 살아가는 공존과 서로의 다름에 대해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서로 조화를 이루는 교육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존재 전체가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살고 있음을 머리가 아니라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에 그 지혜와 지식이 배어 있을 때 생태적 삶을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한국교회환경연구소 편, 154). 1991년 캔버라에서 개최된 세계교회협의회 제7차 총회에서는 생태계 보전에 대한 갈망을 총회의 주제 “성령이여, 오소서 – 창조세계 전체를 새롭게 하소서”에 담고 있다. 인간이 창조세계 위에 군림하는 지배자가 아니라 창조세계와 연결되어 있으며 상호 의존되어 있는 일부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윤응진, 485-486). 프란츠 알트(Franz Alt, 2003)는 “사람들과의 평화 없이는 자연과의 평화도 없다. 그러나 자연과의 평화 없이는 사람들 간의 평화도 없다(59).”고 말한다. 또한 자연스러운 발전에는 자연스러운 시간과 리듬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면서 하나님의 피조세계에서 모든 생명체가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생태교육은 하나님의 창조세계에서 보여주는 다양성을 이해하고, 이런 피조물들이 하나님의 창조섭리 가운데 서로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는 것을 알고, 더불어 살아가는 원리를 배우는 교육이다. 코로나19를 통해서 세계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으며, 연대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닫는 시간이었다고 할 수 있다.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함께 더불어 노력하는 것이 절실히 요청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 기독교교육은 생태 교육으로 욕망중심에서 생명중심의 교육으로, 개인중심에서 공동체 중심 교육으로, 인지교육 중심에서 전인교육으로 변화해야 한다. 손호현(2015)은 이미 2천 년 전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태어남으로 전체 우주와 자신의 존재론적 연대성을 표현하셨다고 말한다(245). 하나님이 흙이 되신 사건을 통해 자연과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를 하나님의 우주적인 몸을 이루도록 하셨다고 이해할 수 있다.
끝으로,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생태교육이 필요하다. 오랫동안 지구의 지속가능성을 의심하지 못하고 살았던 인류는 지구생태계의 신음에 귀 기울이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1992년 리우에서 개최된 유엔 환경개발회의에서 채택된 ‘Agenda 21’에서는 전 지구적인 정의, 자연을 소중히 다루는 것, 자원 이용에 있어서의 혁명적 기술 혁신, 그리고 변화된 정신적 태도를 21세기를 향해 나아갈 방향으로 정하고, 환경교육에서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한 교육’으로 전환할 것을 선언하였다(윤응진, 482). 인간 삶의 변화를 위해서는 지속적인 교육을 통해, 우리 삶의 방식을 바꾸어가는 노력과 더불어 끊임없는 반복이 필요하다.
나가는 말
지속가능한 지구를 이루기 위해서 오늘 우리는 생태교육을 실천해야만 하는 역사적 요청을 받고 있다. 인류는 하나님께서 베풀어 놓으신 창조세계를 돌보고 미래 세대에게 물려줄 거룩한 책임을 맡고 있다. 2020년부터 인류는 미래세대에게 생태환경에 대한 빚을 지고 있다는 보고가 있었다. 자연의 자정작용을 할 수 있는 한계치를 넘어섰다는 것이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기독교회들이 앞장서서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보전하고 우주공동체가 하나님의 생명으로 넘칠 수 있도록 이제라도 생태교육에 사활을 걸고 매진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하나님의 은총이 충만한 그 날을 꿈꾸어 본다.
참고문헌
김균진 (2004). 기독교의 유일신론이 생태계 위기의 원인인가? 신학논단, 35, 53-76.
소기석 (2005). 기독교와 환경문제에 관한 연구: 현대 창조신학의 창조생태론을 중심으로. 종교연구, 38, 281-304.
손호현 (2015). 인문학으로 읽는 기독교이야기: 14가지 인문학 주제로 다각적 기독교 읽기. 서울: 동연.
옥필훈 (2015). 생태계 회복을 위한 기독교 환경운동과 선교신학적 발전과제. 종교문화학보, 12, 5-44.
윤응진 (2004). 생태학적 기독교교육을 위한 방향 모색. 한국기독교신학논총, 31, 477-501.
최창국 (2007). 생태와 기독교교육: 창세기 1:28을 중심으로 본 자연과 인간. 개신논집, 7, 215-243.
한국교회환경연구소 편 (2011). 생태적 삶을 추구하는 영성. 서울: 도서출판 동연.
Alt, Franz (2003). 생태주의자 예수. (손성현 역). 서울: 나무심는사람.
White, L. T. Jr. (1967). The historical roots of our ecologic crisis. Science, Vol. 155, 1203-1207.
- 프로젝트: 기후 위기 시대의 기독교 ; 생태신학 녹색교회 생명목회를 위하여 -
- 공동주최: 기독인문학연구원-이음사회문화연구원 · 기독교환경교육센터 살림 · 에이치투그룹 주식회사
- 후원 및 연대기관: 주)천일식품 · 한국교회생명신학포럼 · 비블로스성경인문학연구소
출처: http://www.gdknews.kr/news/view.php?no=11778
박미경 박사
호서대학교 교수
들어가는 말
1972년 6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유엔인간환경회의’에서 제정된 이래, 매년 6월 5일로 지키고 있는 세계환경의 날 2021년 주제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재정립하자는 의도를 담은 ‘생태계 복원(ecosystem restoration)’인데, 이는 동물과 식물 등 생물이나 생물이 살아가는 환경을 훼손되기 이전 상태로 되돌리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미래세대를 위한 기후, 환경교육을 통해 기후 위기를 극복하자는 의미를 담아 ‘미래세대를 위한 탄소중립 실현’을 환경의 날 주제로 선언했다(유엔환경계획한국협회, 국제환경뉴스).
이렇듯 오늘날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심각한 위기는 바로 생태환경의 파괴라고 할 수 있다. 지구촌을 락아웃시키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도 생태시스템의 파괴로 발생된 것이라고 사회 각 분야의 전문가들은 추론하고 있다. 위협받고 있는 지구생태계의 지속가능한 내일을 위해서는, 지구공동체 차원에서 생태계 안전도모와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보전하고 가꾸는 인류 본래의 청지기로서의 사명을 회복하고 이에 따른 구체적 실천이 필요한 때이다.
기독교생태교육과 신학적 전통과 경험
북미 역사학자 린 화이트(Lynn T. White)는 1966년 AAAS(American Association for the Advancement of Science)에서 생태환경의 위기의 책임이 유대교와 기독교 전통에 있으며 서양적 형태의 기독교는 인간중심적이며, 인간과 자연의 이원론을 확립하였을 뿐 아니라 인간이 자연을 수단화하여 자신의 목적에 따라 자연을 이용해왔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화이트의 주장을 면밀히 살펴보면, 유대교와 기독교 전통이라기보다는 중세 이후 확립된 인간과 자연의 이원론과 인간중심주의가 과학의 발달과 결합하여 생태위기를 가져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생태위기에 대한 기독교의 책임을 묻는 이들은 또한 창세기1장 28절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기독교인들의 잘못된 행동이 오늘의 생태위기를 초래했다고 비판한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즉, ‘땅을 정복하라’와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는 말씀을 만물에 대한 착취로 오해하였기에 자연파괴를 자행해왔다는 것이다. 또한 인간이 이 땅에 존재하는 다른 피조물 위에 군림하는 존재로 착각하였기에 오늘의 위기를 초래했다는 비판이다.
그러나 이것이 기독교 일반의 이해라고 보는 것 역시 무리가 있다. 이는 최창국(2007)에 따르면, 칼빈(John Calvin)은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이 인간에게 “땅을 정복하라”고 명령하신 것을 자연 위에 지배하고 군림하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적 통치를 감사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자연에게 반영하는 특별한 임무를 부여받은 것이라고 이해했다는 것이다(222). 더글라스 홀(Douglas Hall)은 ‘정복하라,’ ‘다스리라’는 명령의 의미를 전통적인 어원학적 해석이 아닌 예수가 보여준 다스림의 모델을 적용하여 해석함으로써, ‘다스리라,’ ‘정복하라’의 의미는 하나님의 청지기인 인간에게 주어진 봉사와 보살핌의 책임이라고 이해한다(Douglas J. Hall, 184-185를 최창국, 229에서 재인용).
몰트만(Jurgen Moltmann)은 생태학적 입장에서 최초로 창조론을 전개한 학자인데, 그는 데카르트가 자연파괴의 정서적 원인을 제공한 사람이라고 보았다(옥필훈, 8). 이는 화이트도 비판했던 이원론적 원인과도 닿아있다. 몰트만에게 영향을 받은 창조신학자들은 ‘창조’의 주제를 재발견하여 자연에 대한 인간의 청지기 역할을 강조함으로써 자연돌봄의 충분한 근거를 가질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구원의 개념에 묻혀 있었던 창조 개념을 부각시켜 올바른 이해를 돕고자 하였다. 클라우스 베스터만(Claus Westermann)은 창조와 그 피조물이 좋다고 선언된 것은 인간의 창조 이전이었음을 언급하면서 창조물의 가치는 인간의 가치와 편의성과 상관없이 모든 피조물을 하나님이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음을 통해 긍정하고 있다고 본다(Douglas J. Hall, 1990, 210을 최창국, 2007, 227에서 재인용). 따라서 창조세계에 대한 평가는 인간중심적인 것이 아니라 모든 생명 있는 존재 중심적이고 우주 중심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에 따르면, 자연세계는 인간의 구원을 위한 도구나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의 동료 피조물로 인식된다는 것이고, 인간 역시 하나님의 피조물로 다른 피조물들은 인간의 동료 피조물이 되는 것이다(소기석, 300). 월터스토프(Nicholas Wolterstorf)에 따르면, 샬롬이란 인간이 모든 관계에 있어 평화를 누리는 상태를 말하며, 이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비롯하여 자아, 동료들과의 관계 및 나아가 자연과의 관계를 포괄하는 개념이다(69-70). 토마스 베리(Thomas Berry)는 인간중심의 편협한 세계관으로부터 비롯된 지구 착취의 정당화에 자연환경 위기의 근본적 원인이 있음을 비판하고, 지구와 우주에 대하여 기독교적 신앙의 기초를 재인식해야 함을 주장한다. 화이트는 기독교가 초래한 생태위기를 기독교가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그 결과를 낙관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동방교회 전통에 있었던 아씨시의 프랜시스(St. Francis of Assisi, 1181~1226)가 보여준 자연에 대한 돌봄과 배려의 정신을 회복한다면 생태위기가 극복될 수 있다고 보았다(유지철, 김찬국, 2013, 199).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Henry David Thoreau)는 생명평등주의 가치관과 생태적 자아실현, 자연과 동화되는 소박한 삶, 체험과 탐색을 통한 자연과의 만남과 그 속에서 생태적 감수성을 얻게 된다고 보았다.
성서와 신학적 전통에 따른 기독교생태교육
기독교생태교육은 생명존중의 가치 위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인간은 청지기로서의 사명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모든 생명체는 관계성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으며 다양한 관계들이 모여 한 전체로서 조화롭게 기능할 수 있다(한국교회환경연구소 편, 233). 자연 친화적 교육, 즉 생태 지향적인 교육은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생명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하는 교육이다. 하나님은 창조기간 내내 피조물을 보시고 좋아하셨다고 성서는 기록한다. 또한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말씀하신다. 인간을 포함하여 모든 피조된 존재에 대해서 기뻐하셨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창조세계에 대한 평가는 인간중심적인 것이 아니라 모든 생명 있는 존재 중심적이고 우주 중심적이라고 할 수 있다. 창세기의 말씀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으며(창1:27), 동물의 이름을 짓는 아담의 모습을 통해(창2:19) 자연의 착취자가 아니라 돌봄의 사명을 맡은 청지기임을 상기시킨다.
또한 생태교육은 모든 생명이 더불어 살아가는 공존과 서로의 다름에 대해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서로 조화를 이루는 교육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존재 전체가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살고 있음을 머리가 아니라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에 그 지혜와 지식이 배어 있을 때 생태적 삶을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한국교회환경연구소 편, 154). 1991년 캔버라에서 개최된 세계교회협의회 제7차 총회에서는 생태계 보전에 대한 갈망을 총회의 주제 “성령이여, 오소서 – 창조세계 전체를 새롭게 하소서”에 담고 있다. 인간이 창조세계 위에 군림하는 지배자가 아니라 창조세계와 연결되어 있으며 상호 의존되어 있는 일부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윤응진, 485-486). 프란츠 알트(Franz Alt, 2003)는 “사람들과의 평화 없이는 자연과의 평화도 없다. 그러나 자연과의 평화 없이는 사람들 간의 평화도 없다(59).”고 말한다. 또한 자연스러운 발전에는 자연스러운 시간과 리듬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면서 하나님의 피조세계에서 모든 생명체가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생태교육은 하나님의 창조세계에서 보여주는 다양성을 이해하고, 이런 피조물들이 하나님의 창조섭리 가운데 서로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는 것을 알고, 더불어 살아가는 원리를 배우는 교육이다. 코로나19를 통해서 세계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으며, 연대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닫는 시간이었다고 할 수 있다.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함께 더불어 노력하는 것이 절실히 요청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 기독교교육은 생태 교육으로 욕망중심에서 생명중심의 교육으로, 개인중심에서 공동체 중심 교육으로, 인지교육 중심에서 전인교육으로 변화해야 한다. 손호현(2015)은 이미 2천 년 전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태어남으로 전체 우주와 자신의 존재론적 연대성을 표현하셨다고 말한다(245). 하나님이 흙이 되신 사건을 통해 자연과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를 하나님의 우주적인 몸을 이루도록 하셨다고 이해할 수 있다.
끝으로,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생태교육이 필요하다. 오랫동안 지구의 지속가능성을 의심하지 못하고 살았던 인류는 지구생태계의 신음에 귀 기울이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1992년 리우에서 개최된 유엔 환경개발회의에서 채택된 ‘Agenda 21’에서는 전 지구적인 정의, 자연을 소중히 다루는 것, 자원 이용에 있어서의 혁명적 기술 혁신, 그리고 변화된 정신적 태도를 21세기를 향해 나아갈 방향으로 정하고, 환경교육에서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한 교육’으로 전환할 것을 선언하였다(윤응진, 482). 인간 삶의 변화를 위해서는 지속적인 교육을 통해, 우리 삶의 방식을 바꾸어가는 노력과 더불어 끊임없는 반복이 필요하다.
나가는 말
지속가능한 지구를 이루기 위해서 오늘 우리는 생태교육을 실천해야만 하는 역사적 요청을 받고 있다. 인류는 하나님께서 베풀어 놓으신 창조세계를 돌보고 미래 세대에게 물려줄 거룩한 책임을 맡고 있다. 2020년부터 인류는 미래세대에게 생태환경에 대한 빚을 지고 있다는 보고가 있었다. 자연의 자정작용을 할 수 있는 한계치를 넘어섰다는 것이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기독교회들이 앞장서서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보전하고 우주공동체가 하나님의 생명으로 넘칠 수 있도록 이제라도 생태교육에 사활을 걸고 매진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하나님의 은총이 충만한 그 날을 꿈꾸어 본다.
참고문헌
김균진 (2004). 기독교의 유일신론이 생태계 위기의 원인인가? 신학논단, 35, 53-76.
소기석 (2005). 기독교와 환경문제에 관한 연구: 현대 창조신학의 창조생태론을 중심으로. 종교연구, 38, 281-304.
손호현 (2015). 인문학으로 읽는 기독교이야기: 14가지 인문학 주제로 다각적 기독교 읽기. 서울: 동연.
옥필훈 (2015). 생태계 회복을 위한 기독교 환경운동과 선교신학적 발전과제. 종교문화학보, 12, 5-44.
윤응진 (2004). 생태학적 기독교교육을 위한 방향 모색. 한국기독교신학논총, 31, 477-501.
최창국 (2007). 생태와 기독교교육: 창세기 1:28을 중심으로 본 자연과 인간. 개신논집, 7, 215-243.
한국교회환경연구소 편 (2011). 생태적 삶을 추구하는 영성. 서울: 도서출판 동연.
Alt, Franz (2003). 생태주의자 예수. (손성현 역). 서울: 나무심는사람.
White, L. T. Jr. (1967). The historical roots of our ecologic crisis. Science, Vol. 155, 1203-1207.
- 프로젝트: 기후 위기 시대의 기독교 ; 생태신학 녹색교회 생명목회를 위하여 -
- 공동주최: 기독인문학연구원-이음사회문화연구원 · 기독교환경교육센터 살림 · 에이치투그룹 주식회사
- 후원 및 연대기관: 주)천일식품 · 한국교회생명신학포럼 · 비블로스성경인문학연구소
출처: http://www.gdknews.kr/news/view.php?no=117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