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희
구약학 박사, 비블로스성경인문학연구소 연구원
성경을 해석하는 수많은 방법론 중 비교적 최근에 생겨난 생태비평이 있다. 생태비평은 지난 1990년대 말에 호주의 학자들(The Earth Bible 프로젝트)이 개발했고, 2000년대 초에 미국성경학회에서 공식 분과가 되었다. 생태비평에는 세 가지 초점, 의심(suspicion), 동일시(identification), 회복(retrieval)이 있다. 이 세 가지 초점을 적용해 예레미야 12장을 읽어보면 어떤 새로운 해석이 나올까?
본문에는 동물, 식물, 땅, 강, 사람들 등 다양한 지구 구성원이 등장한다. 특히 땅은 ‘땅’이라는 단어 외에도 여러 단어(들, 평지, 유산, 포도밭, 몫, 밭, 광야, 황무지, 이방 땅)로 가장 많이 언급되고 목소리도 내므로 지구 구성원들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본문의 핵심 부분인 야웨의 시적인 말씀(7-13절; 야웨의 산문 말씀은 14-17절)에서 특이한 점은, 유다 백성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는 말이 ‘땅,’ ‘유산(소유),’ ‘몫,’ ‘내가 사랑하는 그녀,’ ‘매,’ ‘포도밭’ 등이 나오고 인간을 가리키는 말로는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즉, 인간이 탈중심화된다.
1. 생태비평 초점 1: 의심(Suspicion)
생태비평의 첫째 초점인 ‘의심’이란 성경 본문 자체가 인간중심적(anthropocentric)으로 기록되었고, 인간중심적 관점에서 해석되어왔다는 해석학적 의문점을 가지고 본문을 읽는 것이다. 우리는 성경의 화자(narrator), 등장인물, 해석자와 독자들이 지구구성원을 도구화 및 대상화하거나 무시하는지, 즉 인간중심적으로 본문을 쓰고 해석하는지 의심하며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다. 화자는 예레미야 12장 속 지구 및 지구구성원들을 순전히 인간중심적 관점에서 대상화하는가? 화자는 주님이 인간을 벌하기 위해 지구 및 지구구성원들을 그저 ‘사용’하시는 것으로 묘사하는가? 해석자들은 이들 구성원을 어떻게 다루었는가? 성경 화자나 해석자들은 지구를 수동적인 희생자로 재현하는가? 지구가 인간의 잘못 때문에 고통을 겪는 것을 정당하거나 자연스럽게 여기는가?
먼저 성경 화자의 관심사는 대체로 인간중심적이라고 볼 수 있다. 예레미야와 주님의 대사 속에 등장하는 지구구성원들은 주체적 인물이라기보다는 본문의 신학적인 메시지를 강조하기 위한 수사학적 도구들로 보인다. 그런가 하면, 화자는 예레미야의 말을 통해 현재의 가뭄 상황 또는 임박한 전쟁으로 인한 지구구성원들의 고통에 대해 슬픔과 속상함을 표현한다. “이 땅이 언제까지 슬퍼하며, 들의 모든 풀이 말라야 합니까?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의 악 때문에, 짐승과 새도 사라집니다”(12:4).
현대 해석자들은 거의 전적으로 인간과 관련된 신학 메시지에 관심을 가졌지, 성경 화자보다도 훨씬 더 지구구성원들의 존재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해석자들은 성경 본문에서 친족인 지구구성원들이 뿌리 내리고 열매 맺고(2절, 사람들이자 나무), 도살되기 위해 따로 준비되고(3절, 양), 울고(4, 11절, 땅), 말라죽고 멸절되고(4절, 풀, 짐승, 새), 달리고(5절, 말), 일렁이고(5절, 강물), 으르렁거리고(8절, 사자), 서로 잡아먹으려 하고(새 또는 하이에나, 매들, 들짐승, 9절), 황무지로 거듭 변하고 우는데(10, 11, 13절, 땅), 이들의 삶과 죽음, 움직임, 아우성, 고통, 통곡이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는 듯하다.
2. 생태비평 초점 2: 동일시(Identification)
생태비평의 둘째 초점인 동일시란 지구를 경청하기 위해서 독자가 본문 속 지구 존재, 지구 등장인물, 지구 목소리와 동일시하는 것이다. 생태비평은 생태 주제를 다루는 것을 넘어서 인간이 다른 지구공동체 구성원들과 친족이라는 기존의 생태학적 사실을 인지하고 그들이 나오는 본문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지구와 연대하고 공감하며 읽는다. 동일시를 위해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다. 내가 사람의 악 때문에 죽게 된 식물과 동물이라면 어떨 것인가? 내가 땅이라면 어떨 것인가? 주님이 분노하셔서 나를 아낀다면서도 칼로 치고(전쟁과 폭력), 밀을 심어도 가시만 거두게 하시는데(황무지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그런가 하면, 수확을 내지 않는 것이 나에게 휴식일까? 아니면 성경 화자가 전제하듯이, 소출이 없으니 ‘수치’이고(12:13) 비생산적일까?
독자가 본문 속 비-인간 지구구성원들을 친족으로 여기고 연대하고 공감하며 읽는 동일시 단계에는 시적 상상력과 의식적 노력이 필요하다. 필자는 땅에게 목소리를 주는 시적인 상상력으로 생태 미드라쉬를 써본다.
“주님, 제가 언제까지 울어야 하며, 언제까지 제 품에서 사는 생명들이 죽어가야 하나요? 가축과 새와 사람이 다 죽게 생겼습니다. ... 외국 군대가 쳐들어와 저를 짓밟을 때 왜 보호해주지 않았나요? 그들이 마른 언덕을 넘어 몰려올 때 정말 무서웠어요. 저를 지켜주지는 못할망정 왜 그들을 부추겼나요? 왜 주님이 화를 내며 칼을 휘두르셨나요? 주님의 백성이 잘못했다고 해서 외국 군대를 동원하시는 것은 정말 이해할 수 없어요. 너무도 원망스러워요.”
3. 생태비평 초점 3: 회복(Retrieval)
생태비평의 셋째 초점인 회복이란 지구와 지구공동체 구성원들의 목소리를 회복하는 것이다. 회복이라는 초점은 지구와 지구공동체 구성원들이 본문의 관점과 해석사의 관점으로부터 고통당하고 저항하고 또는 배제당한 곳을 식별하기 위해서 본문을 다시 읽는다. ‘회복’과 관련해 다룰 질문은 이러하다. 지구를 희생자로 구성하는 것에 저항하는 목소리가 본문 속에 있는가? 지구는 인간을 위해 고통당할 운명인가? 아니면 이것은 공동의 고통 형태, 즉 지구가 인간과 공감하는 고통인가? 성경 화자가 지구 구성원과 인간을 공동 운명으로 나타낸 부분이 있는가? 주님이 지구와 공감하는가?
예레미야와 주님은 땅이 운다고 말한 바 있다(12:4, 11). 야웨의 말씀, “그녀가 나(주님)를 보고 통곡한다”에서 전치사 ‘알’을 ‘~에 대항하여’로 번역할 수 있다(8절 참조). 그렇다면 땅은 그저 슬퍼서 운다기보다는, 주님께 대항하고 원망하며 우는 것이다. 예레미야의 ‘고백’이 국가의 멸망에 대해 백성을 탓하는 주류 신학에 저항하는 목소리를 내듯이, 땅도 저항의 목소리를 낸다. 이렇게 땅은 단순히 이야기의 배경과 도구가 아니라, 역사의 주요 참여자이자 이해당사자로서 생각과 감정을 피력한다. 어쩌면 이것은 땅의 목소리와 화자의 목소리가 합쳐지는 부분, 화자가 땅에 공감하는 부분이라고 볼 수도 있다. 즉, 화자도 입으로는 외세의 침략이 배교한 백성에 대한 주님의 벌이라는 신학을 피력하지만, 속으로는 땅의 목소리처럼 그러한 벌을 원망스럽게 여긴다.
사실은 결정적으로 주님도 땅과 백성에 대한 양가성과 애증으로 어쩔 줄 몰라 하신다. 주님은 외치신다. “온 땅이 황무지가 되었는데, 참으로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구나!”(12:11)고 하신다. 주님이 신경 쓰신다! 뜻밖에도 주님은 황무지가 된 땅 때문에 몹시 애통해하는 심정이 들키신다. 주님은 백성을 향한 분노와 벌을 말하면서도 땅의 황폐화를 말할 때 억누를 길 없이 슬프다. 주님의 심정은 예레미야가 “이 땅이 언제까지 슬퍼해야 합니까?”(12:4)라고 말할 때 땅과의 동일시를 암시한 것보다 훨씬 더 깊은 동일시 차원으로 표현된다.
주님의 산문 말씀에서는 이방 땅과 백성까지도 구원하는 전망으로 구체화된다(14-17절). 주님의 자비는 이방 백성에게 야웨의 백성이 될 기회도 주신다. 예레미야의 구원신탁은 이웃 민족들(3:17; 12:14-17; 29:7 참조)은 물론 땅 자체(31:5, 12, 14, 27; 32:43-44; 33:10-13; 50:19)를 포함한다는 면에서 매우 포용적이고 생태적이다. 이 비전에서는 ‘우리’와 ‘그들’의 이분법적 구분이 흐려진다. 땅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 편과 적이라는 이분법적 구분은 아예 없다. 땅은 모두 이어져 있기에 우리 땅과 적의 땅이 따로 없다. 땅은 주님처럼 모두가 하나가 될 가능성을 제공한다.
우리는 그간의 인간중심적 성경해석을 반성하고, 본문 속에서 비-인간 지구구성원들을 주체 및 이해당사자로 여기고, 이 친족과 동일시하며 그들을 전면에 두고 해석하고자 했다. 이러한 시도가 이 절박한 기후위기 시대에 인간 지구구성원들이 비-인간 친족들과 더불어 사는 데 있어서 우리의 관점 변화와 실천에 기여한다면 기쁠 것이다.
- 프로젝트: 기후 위기 시대의 기독교 ; 생태신학 녹색교회 생명목회를 위하여 -
- 공동주최: 기독인문학연구원-이음사회문화연구원 · 기독교환경교육센터 살림 · 에이치투그룹 주식회사
- 후원 및 연대기관: 주)천일식품 · 한국교회생명신학포럼 · 비블로스성경인문학연구소
출처: http://www.gdknews.kr/news/view.php?no=12169
유연희
구약학 박사, 비블로스성경인문학연구소 연구원
성경을 해석하는 수많은 방법론 중 비교적 최근에 생겨난 생태비평이 있다. 생태비평은 지난 1990년대 말에 호주의 학자들(The Earth Bible 프로젝트)이 개발했고, 2000년대 초에 미국성경학회에서 공식 분과가 되었다. 생태비평에는 세 가지 초점, 의심(suspicion), 동일시(identification), 회복(retrieval)이 있다. 이 세 가지 초점을 적용해 예레미야 12장을 읽어보면 어떤 새로운 해석이 나올까?
본문에는 동물, 식물, 땅, 강, 사람들 등 다양한 지구 구성원이 등장한다. 특히 땅은 ‘땅’이라는 단어 외에도 여러 단어(들, 평지, 유산, 포도밭, 몫, 밭, 광야, 황무지, 이방 땅)로 가장 많이 언급되고 목소리도 내므로 지구 구성원들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본문의 핵심 부분인 야웨의 시적인 말씀(7-13절; 야웨의 산문 말씀은 14-17절)에서 특이한 점은, 유다 백성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는 말이 ‘땅,’ ‘유산(소유),’ ‘몫,’ ‘내가 사랑하는 그녀,’ ‘매,’ ‘포도밭’ 등이 나오고 인간을 가리키는 말로는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즉, 인간이 탈중심화된다.
1. 생태비평 초점 1: 의심(Suspicion)
생태비평의 첫째 초점인 ‘의심’이란 성경 본문 자체가 인간중심적(anthropocentric)으로 기록되었고, 인간중심적 관점에서 해석되어왔다는 해석학적 의문점을 가지고 본문을 읽는 것이다. 우리는 성경의 화자(narrator), 등장인물, 해석자와 독자들이 지구구성원을 도구화 및 대상화하거나 무시하는지, 즉 인간중심적으로 본문을 쓰고 해석하는지 의심하며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다. 화자는 예레미야 12장 속 지구 및 지구구성원들을 순전히 인간중심적 관점에서 대상화하는가? 화자는 주님이 인간을 벌하기 위해 지구 및 지구구성원들을 그저 ‘사용’하시는 것으로 묘사하는가? 해석자들은 이들 구성원을 어떻게 다루었는가? 성경 화자나 해석자들은 지구를 수동적인 희생자로 재현하는가? 지구가 인간의 잘못 때문에 고통을 겪는 것을 정당하거나 자연스럽게 여기는가?
먼저 성경 화자의 관심사는 대체로 인간중심적이라고 볼 수 있다. 예레미야와 주님의 대사 속에 등장하는 지구구성원들은 주체적 인물이라기보다는 본문의 신학적인 메시지를 강조하기 위한 수사학적 도구들로 보인다. 그런가 하면, 화자는 예레미야의 말을 통해 현재의 가뭄 상황 또는 임박한 전쟁으로 인한 지구구성원들의 고통에 대해 슬픔과 속상함을 표현한다. “이 땅이 언제까지 슬퍼하며, 들의 모든 풀이 말라야 합니까?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의 악 때문에, 짐승과 새도 사라집니다”(12:4).
현대 해석자들은 거의 전적으로 인간과 관련된 신학 메시지에 관심을 가졌지, 성경 화자보다도 훨씬 더 지구구성원들의 존재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해석자들은 성경 본문에서 친족인 지구구성원들이 뿌리 내리고 열매 맺고(2절, 사람들이자 나무), 도살되기 위해 따로 준비되고(3절, 양), 울고(4, 11절, 땅), 말라죽고 멸절되고(4절, 풀, 짐승, 새), 달리고(5절, 말), 일렁이고(5절, 강물), 으르렁거리고(8절, 사자), 서로 잡아먹으려 하고(새 또는 하이에나, 매들, 들짐승, 9절), 황무지로 거듭 변하고 우는데(10, 11, 13절, 땅), 이들의 삶과 죽음, 움직임, 아우성, 고통, 통곡이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는 듯하다.
2. 생태비평 초점 2: 동일시(Identification)
생태비평의 둘째 초점인 동일시란 지구를 경청하기 위해서 독자가 본문 속 지구 존재, 지구 등장인물, 지구 목소리와 동일시하는 것이다. 생태비평은 생태 주제를 다루는 것을 넘어서 인간이 다른 지구공동체 구성원들과 친족이라는 기존의 생태학적 사실을 인지하고 그들이 나오는 본문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지구와 연대하고 공감하며 읽는다. 동일시를 위해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다. 내가 사람의 악 때문에 죽게 된 식물과 동물이라면 어떨 것인가? 내가 땅이라면 어떨 것인가? 주님이 분노하셔서 나를 아낀다면서도 칼로 치고(전쟁과 폭력), 밀을 심어도 가시만 거두게 하시는데(황무지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그런가 하면, 수확을 내지 않는 것이 나에게 휴식일까? 아니면 성경 화자가 전제하듯이, 소출이 없으니 ‘수치’이고(12:13) 비생산적일까?
독자가 본문 속 비-인간 지구구성원들을 친족으로 여기고 연대하고 공감하며 읽는 동일시 단계에는 시적 상상력과 의식적 노력이 필요하다. 필자는 땅에게 목소리를 주는 시적인 상상력으로 생태 미드라쉬를 써본다.
“주님, 제가 언제까지 울어야 하며, 언제까지 제 품에서 사는 생명들이 죽어가야 하나요? 가축과 새와 사람이 다 죽게 생겼습니다. ... 외국 군대가 쳐들어와 저를 짓밟을 때 왜 보호해주지 않았나요? 그들이 마른 언덕을 넘어 몰려올 때 정말 무서웠어요. 저를 지켜주지는 못할망정 왜 그들을 부추겼나요? 왜 주님이 화를 내며 칼을 휘두르셨나요? 주님의 백성이 잘못했다고 해서 외국 군대를 동원하시는 것은 정말 이해할 수 없어요. 너무도 원망스러워요.”
3. 생태비평 초점 3: 회복(Retrieval)
생태비평의 셋째 초점인 회복이란 지구와 지구공동체 구성원들의 목소리를 회복하는 것이다. 회복이라는 초점은 지구와 지구공동체 구성원들이 본문의 관점과 해석사의 관점으로부터 고통당하고 저항하고 또는 배제당한 곳을 식별하기 위해서 본문을 다시 읽는다. ‘회복’과 관련해 다룰 질문은 이러하다. 지구를 희생자로 구성하는 것에 저항하는 목소리가 본문 속에 있는가? 지구는 인간을 위해 고통당할 운명인가? 아니면 이것은 공동의 고통 형태, 즉 지구가 인간과 공감하는 고통인가? 성경 화자가 지구 구성원과 인간을 공동 운명으로 나타낸 부분이 있는가? 주님이 지구와 공감하는가?
예레미야와 주님은 땅이 운다고 말한 바 있다(12:4, 11). 야웨의 말씀, “그녀가 나(주님)를 보고 통곡한다”에서 전치사 ‘알’을 ‘~에 대항하여’로 번역할 수 있다(8절 참조). 그렇다면 땅은 그저 슬퍼서 운다기보다는, 주님께 대항하고 원망하며 우는 것이다. 예레미야의 ‘고백’이 국가의 멸망에 대해 백성을 탓하는 주류 신학에 저항하는 목소리를 내듯이, 땅도 저항의 목소리를 낸다. 이렇게 땅은 단순히 이야기의 배경과 도구가 아니라, 역사의 주요 참여자이자 이해당사자로서 생각과 감정을 피력한다. 어쩌면 이것은 땅의 목소리와 화자의 목소리가 합쳐지는 부분, 화자가 땅에 공감하는 부분이라고 볼 수도 있다. 즉, 화자도 입으로는 외세의 침략이 배교한 백성에 대한 주님의 벌이라는 신학을 피력하지만, 속으로는 땅의 목소리처럼 그러한 벌을 원망스럽게 여긴다.
사실은 결정적으로 주님도 땅과 백성에 대한 양가성과 애증으로 어쩔 줄 몰라 하신다. 주님은 외치신다. “온 땅이 황무지가 되었는데, 참으로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구나!”(12:11)고 하신다. 주님이 신경 쓰신다! 뜻밖에도 주님은 황무지가 된 땅 때문에 몹시 애통해하는 심정이 들키신다. 주님은 백성을 향한 분노와 벌을 말하면서도 땅의 황폐화를 말할 때 억누를 길 없이 슬프다. 주님의 심정은 예레미야가 “이 땅이 언제까지 슬퍼해야 합니까?”(12:4)라고 말할 때 땅과의 동일시를 암시한 것보다 훨씬 더 깊은 동일시 차원으로 표현된다.
주님의 산문 말씀에서는 이방 땅과 백성까지도 구원하는 전망으로 구체화된다(14-17절). 주님의 자비는 이방 백성에게 야웨의 백성이 될 기회도 주신다. 예레미야의 구원신탁은 이웃 민족들(3:17; 12:14-17; 29:7 참조)은 물론 땅 자체(31:5, 12, 14, 27; 32:43-44; 33:10-13; 50:19)를 포함한다는 면에서 매우 포용적이고 생태적이다. 이 비전에서는 ‘우리’와 ‘그들’의 이분법적 구분이 흐려진다. 땅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 편과 적이라는 이분법적 구분은 아예 없다. 땅은 모두 이어져 있기에 우리 땅과 적의 땅이 따로 없다. 땅은 주님처럼 모두가 하나가 될 가능성을 제공한다.
우리는 그간의 인간중심적 성경해석을 반성하고, 본문 속에서 비-인간 지구구성원들을 주체 및 이해당사자로 여기고, 이 친족과 동일시하며 그들을 전면에 두고 해석하고자 했다. 이러한 시도가 이 절박한 기후위기 시대에 인간 지구구성원들이 비-인간 친족들과 더불어 사는 데 있어서 우리의 관점 변화와 실천에 기여한다면 기쁠 것이다.
- 프로젝트: 기후 위기 시대의 기독교 ; 생태신학 녹색교회 생명목회를 위하여 -
- 공동주최: 기독인문학연구원-이음사회문화연구원 · 기독교환경교육센터 살림 · 에이치투그룹 주식회사
- 후원 및 연대기관: 주)천일식품 · 한국교회생명신학포럼 · 비블로스성경인문학연구소
출처: http://www.gdknews.kr/news/view.php?no=121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