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주원규/아프지 말자, 청춘/주간기독교

이태곤 연출 《청춘시대》

 몇 년 전까지 20대 청춘을 이야기할 때, 손쉽게 소환되던 문장이 있었다. 인기도서의 책 제목에서 유래한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한 문장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소위 MZ 세대로 불리는 청춘들 사이에서 이 문장은 여러 패러디를 낳는 등 희화화되거나 외면받는 문장이 되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한 가지 중요하고 단순한 사실 하나를 들자면 청춘에 관한 몰이해를 꼬집는데 원인이 있다고 본다.

오늘의 20대는 포장되지 않는다. 기성세대의 시선처럼 낭만적이지 않고, 청춘보다는 어린 세대가 생각하는 것처럼 마냥 두렵지만도 않다는 사실에 관한 긍정이 자리하는 게 바로 20대의 현주소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여기, 특별히 낭만적이지도, 특별히 두렵지도 않은 청춘을 정면에서 다룬 드라마가 있다. 2017년 늦여름 JTBC에서 방영된 드라마 《청춘시대》가 그렇다. 시청률보다는 높은 화제성과 반복시청에 힘입어 시즌 2까지 제작된 《청춘시대》는 외모부터 성격, 전공, 이성 친구의 취향, 연애 스타일까지, 하나같이 모두 다른 다섯 명의 여대생이 셰어하우스 ‘벨 에포크’에 모여 살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다룬 청춘 드라마다. 다이어트, 연애, 성(性), 아르바이트, 취업 등 20대 여성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기에 무엇보다 높은 리얼리티가 주목받았다.


살아온 환경이나 성격, 그 어느 것 하나 맞지 않는 대학생 다섯이 한 곳에 모여 살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로만 채워진 탓에 다소 평면적이라는 평을 듣기도 한  이 드라마는 극 중 인물들과 동년배인 20대 여성 시청자들 사이에서 팬덤에 가까울 정도의 인기를 얻었다. 스타 배우나 높은 제작비, 거기에 덧붙여지는 자극적이고 속도감 넘치는 소재로 대표되는 이른바 스타 시스템에 의존하지 않고도 호평을 얻어낼 수 있었던 건 바로 시대의 단면을 제대로 담았기에 가능하지 않은가 하는 것이다. 또한, 돋보이는 건 셰어하우스에 함께 살게 된 다섯 명의 캐릭터 모두가 비현실적 설정과 거리가 멀다는 점이다. 2010년 이후,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어느 것 하나 만만하지 않은 20대 여성의 삶을 정말 옆집에 사는 언니, 여동생의 이야기처럼 사실적으로 그려냈다는 점이 이 드라마의 최대 강점이다. 다섯 명의 인물들이 겪는 여러 갈등은 하나 혹은 둘 정도는 반드시 20대 여성 본인이나 본인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갈등이다. 이렇듯 드라마  《청춘시대》는 어쩌면 별로 마주치고 싶지 않아 하는 우리 청춘의 아픈 현실을 극사실적으로 소묘하고 있다.


근검절약이 몸에 밴 어딘가 차가운 윤진명(한예리 역)은 가족 중에 오랫동안 아픈 사람이 있는 탓에 낭만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아르바이트에 찌든 대학 시절을 보내고 있다. 또한, 취업준비를 하던 중 높은 현실의 벽에 부딪히고 그로 인해 삶의 밑바닥을 경험할 수밖에 없는 상황까지 놓이게 된다. 또 한 명의 구성원인 연애의 고수이며 여신 강림으로 통하는 강이나(류화영 역)의 경우 그 이해하기 힘든 행동의 근원에 깊은 트라우마가 담겨 있었는데, 청춘에게 어릴 적이나 근과거의 트라우마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보여주고 있다. 사랑스럽고 발랄하지만, 연애 호구로 통하는 정예은(한승연 역)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20대 여성을 보여주는데, 비록 극적으로 묘사되긴 했지만, 데이트 폭력, 가스라이팅, 이별 폭력 등. 여성이라면 경중의 차이만 있을 뿐 한 번쯤은 겪을 법한 고통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여기에 정상적인 범주를 늘 거부하는 분위기 메이커 송지원(박은빈 역), 이제 막 새내기 대학생이 된 내성적인 성격의 유은재(박혜수 역)와 같은 인물 역시 우리의 오늘, 20대 청춘이 보여줄 법한 현실 인물이라 공감이 갔다.

 

드라마  《청춘시대》의 에필로그 역시 여느 풋풋한 청춘 드라마의 전형적인 공식인 해피 엔딩을 답습하지 않아 눈길을 끌었다. 극 중 어머니가 결국 병든 아들의 산소호흡기를 자기 손으로 직접 떼고 교도소로 가게 된 걸 본 윤진명은 지금까지 번 돈으로 인생 처음으로 자신만을 위한 여행을 떠나게 된다. 정예은 역시 데이트 폭력 사건 이후 상담도 받고, 그럭저럭 괜찮은 것 같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마음 깊이 해결해야 할 숙제가 남아 있다.

이렇듯 드라마 《청춘시대》는 대단히 낭만적이지도 않고, 마냥 두려워해야 할 비극의 색채를 강요하지도 않는다. 단지 담담하게, 우리 현실에 충분히 있을 법한 아픈 청춘들을 때론 위로하고 격려하며 다음과 같은 한마디를 건네는 듯하다. “아프지 말자, 청춘”이라고.

2022. 5. 31

출처 : 주간기독교(www.cnews.or.kr/news/articleView.html?idxno=16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