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칼럼] 기념비의 땅
레바논 침략자들이 세웠던 강 옆 마뜩찮은 기념비처럼
선거마다 약속하는 새 건물…얄팍한 술수에 유권자 실망
윤성덕 연세대 기독교문화연구소 연구교수
레바논에 가면 제이타 동굴 근처 샘에서 발원해 지중해로 흘러 들어갈 때까지 약 31㎞를 흐르는 ‘나흐르 알-칼브(Nahr al-Kalb)’라는 강이 있다. 우기가 지나면서 레바논 산지에서 흘러드는 물이 풍부하게 흐르다가 건기가 되면 거의 마르는 건천이다. 이 강이 흐르는 계곡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 목록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데, 그 이유는 수도 베이루트 옆을 흐르는 아름다운 강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나흐르 알-칼브가 바다로 흘러드는 곶은 바위가 많은 지형이며 옛날부터 바닷가를 따라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장애물로 여겨졌다. 그래서 먼 곳에서 떠나 이 지역을 지나가던 사람들이 절벽에 자신이 이곳을 왔었다는 사실을 글과 그림으로 남기는 것이 관례가 되었다. 현재 나흐르 알-칼브 계곡에는 기원전 13세기부터 기원후 20세기까지 약 3000년이 넘는 기간 다양한 사람들이 세운 기념비와 부조 22개가 남아 있다.
가장 오래된 것은 이집트의 파라오 람세스 2세(Ramses II)가 신성문자로 기록한 명문과 부조이다(기원전 13세기의 기념물 3기). 고대 이집트 신왕조 파라오였던 그는 자신이 다스리는 막강한 나라의 경계가 가나안 지방을 지나 북쪽으로 레바논에 이르렀음을 자랑하기 위해 적을 내려치는 공격적인 모습을 담은 기념물을 남겼다. 그 뒤로 현대의 이라크 지역에 있던 메소포타미아 제국의 왕들이 세운 기념물 6기가 있다. 예를 들어 기원전 7세기 앗슈르 제국(Assyria)의 왕 앗슈르-악하-잇딘(Esarhaddon)은 이곳을 지나 이집트까지 남하해 그곳을 점령한 업적을 기록하고 자신의 모습을 본 따 부조를 조각해 남겼다. 또 기원전 6세기 바빌리(Babylonia)의 왕 나부-쿠두리-우쭈르(Nebuchadnezzar II)도 그와 유사한 업적을 쐐기문자로 기록했다.
헬라인들과 로마인들이 이 지역을 다스리던 시대에 세운 기념물도 3기가 남아 있으며,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로마 황제 카라칼라(Caracalla, 기원후 2세기)의 명을 받은 그의 군대가 이 지역을 통과하는 도로를 완공하고 그 일을 기념하기 위해 남긴 명문이다. 기원후 4세기 페니키아 지역을 다스리던 총독 프로쿨루스(Proculus)가 헬라어로 쓴 명문도 있다. 이슬람 시대에 들어 아랍어가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고 이 시대에 건설한 명문도 2기가 존재한다. 예를 들어 이집트의 맘룩 부르지 왕조가 득세할 때(기원후 14세기) 술탄 바르쿡(Barquq)이 도로와 교량을 건설한 뒤에 이를 기념하는 명문을 써서 남겼다.
식민지 시대에 들어 처음으로 건립된 기념물은 프랑스가 이 지역 내전에 개입한 일을 기록하고 있는데 나폴레옹 3세(Napoleon III) 시대의 일이다(1860-1861). 그 후 제1차 세계대전 시대에 프랑스와 영국, 그 연합군들이 오스만 제국 군대를 물리친 일을 언급하는 기념물들이 여럿 발견되었다.
나흐르 알-칼브의 길고 긴 역사 속에서 1946년은 기억할 만한 해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레바논이 프랑스에서 독립하면서 외세를 몰아낸 것을 기념하는 기념물을 제작해 설치했기 때문이다. 레바논 산지에서 자라는 백향목을 새기고 아름다운 아랍어 문자로 기록한 이 기념물은 계곡 서쪽 입구 중세 시대의 다리와 터널 사이에 있다. 3000년에 걸쳐서 이 지역을 다스리던 주변 강대국들의 정치지도자가 아닌 레바논 사람들이 주인으로 돌아온 순간이었다. 아주 비슷하게 생긴 기념물이 그 근처에 하나 더 있는데, 이 명문은 이스라엘 군대가 레바논에서 철수한 일을 기념하기 위해서 가장 최근에 제작되었다(2000년).
역사적 기념비는 아니지만 나흐르 알-칼브의 풍경에 한몫을 감당하고 있는 기념물로 거대한 예수 상도 빼놓을 수 없다. 계곡 북쪽 언덕 위에는 ‘예수 왕 수도원(Couvent du Christ Roi)’이 있고, 수도원 건물 위에는 지중해 쪽으로 손을 벌리고 선 거대한 예수 상이 서 있다. 이 지역의 거주민들이 대부분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이 예수 상은 순수하게 종교적인 신심을 표현하기 위해 제작했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3000년에 걸쳐서 수많은 외국인들의 지배를 받은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는 계곡 위에 이스라엘 사람이었고 유럽 기독교의 교조인 예수가 서있다면, 그 조각상을 보는 사람들이 정말 어떻게 느낄지 의심스럽다.
또다시 선거일이 됐고 눈을 돌리는 곳마다 울긋불긋한 색으로 장식한 글과 그림들이 난무하고 있다. 지금이 2024년이 맞나 싶을 정도로 지역구 국회의원 후보들은 길을 건설하고 건물을 짓겠다는 약속을 자랑스럽게 내세우고 있다. 이 땅에 반만년 동안 뿌리를 박고 살아온 민족을 그깟 얄팍한 기념물로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한 걸까? 우리 마음을 대변하는 아름다운 그림과 글을 담은 기념비는 언제쯤 세울 텐가?
2024. 04. 10.
윤성덕 연세대 기독교문화연구소 연구교수
출처: 국제신문 (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1700&key=20240411.22019003165)
[인문학 칼럼] 기념비의 땅
레바논 침략자들이 세웠던 강 옆 마뜩찮은 기념비처럼
선거마다 약속하는 새 건물…얄팍한 술수에 유권자 실망
윤성덕 연세대 기독교문화연구소 연구교수
레바논에 가면 제이타 동굴 근처 샘에서 발원해 지중해로 흘러 들어갈 때까지 약 31㎞를 흐르는 ‘나흐르 알-칼브(Nahr al-Kalb)’라는 강이 있다. 우기가 지나면서 레바논 산지에서 흘러드는 물이 풍부하게 흐르다가 건기가 되면 거의 마르는 건천이다. 이 강이 흐르는 계곡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 목록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데, 그 이유는 수도 베이루트 옆을 흐르는 아름다운 강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나흐르 알-칼브가 바다로 흘러드는 곶은 바위가 많은 지형이며 옛날부터 바닷가를 따라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장애물로 여겨졌다. 그래서 먼 곳에서 떠나 이 지역을 지나가던 사람들이 절벽에 자신이 이곳을 왔었다는 사실을 글과 그림으로 남기는 것이 관례가 되었다. 현재 나흐르 알-칼브 계곡에는 기원전 13세기부터 기원후 20세기까지 약 3000년이 넘는 기간 다양한 사람들이 세운 기념비와 부조 22개가 남아 있다.
가장 오래된 것은 이집트의 파라오 람세스 2세(Ramses II)가 신성문자로 기록한 명문과 부조이다(기원전 13세기의 기념물 3기). 고대 이집트 신왕조 파라오였던 그는 자신이 다스리는 막강한 나라의 경계가 가나안 지방을 지나 북쪽으로 레바논에 이르렀음을 자랑하기 위해 적을 내려치는 공격적인 모습을 담은 기념물을 남겼다. 그 뒤로 현대의 이라크 지역에 있던 메소포타미아 제국의 왕들이 세운 기념물 6기가 있다. 예를 들어 기원전 7세기 앗슈르 제국(Assyria)의 왕 앗슈르-악하-잇딘(Esarhaddon)은 이곳을 지나 이집트까지 남하해 그곳을 점령한 업적을 기록하고 자신의 모습을 본 따 부조를 조각해 남겼다. 또 기원전 6세기 바빌리(Babylonia)의 왕 나부-쿠두리-우쭈르(Nebuchadnezzar II)도 그와 유사한 업적을 쐐기문자로 기록했다.
헬라인들과 로마인들이 이 지역을 다스리던 시대에 세운 기념물도 3기가 남아 있으며,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로마 황제 카라칼라(Caracalla, 기원후 2세기)의 명을 받은 그의 군대가 이 지역을 통과하는 도로를 완공하고 그 일을 기념하기 위해 남긴 명문이다. 기원후 4세기 페니키아 지역을 다스리던 총독 프로쿨루스(Proculus)가 헬라어로 쓴 명문도 있다. 이슬람 시대에 들어 아랍어가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고 이 시대에 건설한 명문도 2기가 존재한다. 예를 들어 이집트의 맘룩 부르지 왕조가 득세할 때(기원후 14세기) 술탄 바르쿡(Barquq)이 도로와 교량을 건설한 뒤에 이를 기념하는 명문을 써서 남겼다.
식민지 시대에 들어 처음으로 건립된 기념물은 프랑스가 이 지역 내전에 개입한 일을 기록하고 있는데 나폴레옹 3세(Napoleon III) 시대의 일이다(1860-1861). 그 후 제1차 세계대전 시대에 프랑스와 영국, 그 연합군들이 오스만 제국 군대를 물리친 일을 언급하는 기념물들이 여럿 발견되었다.
나흐르 알-칼브의 길고 긴 역사 속에서 1946년은 기억할 만한 해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레바논이 프랑스에서 독립하면서 외세를 몰아낸 것을 기념하는 기념물을 제작해 설치했기 때문이다. 레바논 산지에서 자라는 백향목을 새기고 아름다운 아랍어 문자로 기록한 이 기념물은 계곡 서쪽 입구 중세 시대의 다리와 터널 사이에 있다. 3000년에 걸쳐서 이 지역을 다스리던 주변 강대국들의 정치지도자가 아닌 레바논 사람들이 주인으로 돌아온 순간이었다. 아주 비슷하게 생긴 기념물이 그 근처에 하나 더 있는데, 이 명문은 이스라엘 군대가 레바논에서 철수한 일을 기념하기 위해서 가장 최근에 제작되었다(2000년).
역사적 기념비는 아니지만 나흐르 알-칼브의 풍경에 한몫을 감당하고 있는 기념물로 거대한 예수 상도 빼놓을 수 없다. 계곡 북쪽 언덕 위에는 ‘예수 왕 수도원(Couvent du Christ Roi)’이 있고, 수도원 건물 위에는 지중해 쪽으로 손을 벌리고 선 거대한 예수 상이 서 있다. 이 지역의 거주민들이 대부분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이 예수 상은 순수하게 종교적인 신심을 표현하기 위해 제작했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3000년에 걸쳐서 수많은 외국인들의 지배를 받은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는 계곡 위에 이스라엘 사람이었고 유럽 기독교의 교조인 예수가 서있다면, 그 조각상을 보는 사람들이 정말 어떻게 느낄지 의심스럽다.
또다시 선거일이 됐고 눈을 돌리는 곳마다 울긋불긋한 색으로 장식한 글과 그림들이 난무하고 있다. 지금이 2024년이 맞나 싶을 정도로 지역구 국회의원 후보들은 길을 건설하고 건물을 짓겠다는 약속을 자랑스럽게 내세우고 있다. 이 땅에 반만년 동안 뿌리를 박고 살아온 민족을 그깟 얄팍한 기념물로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한 걸까? 우리 마음을 대변하는 아름다운 그림과 글을 담은 기념비는 언제쯤 세울 텐가?
2024. 04. 10.
윤성덕 연세대 기독교문화연구소 연구교수
출처: 국제신문 (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1700&key=20240411.220190031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