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윤국영/"가버나움, 예수의 마을"/목회와 인문학



가버나움, 예수의 마을

윤국영 박사(기독인문학연구원 상임연구위원)


가버나움(Capernaum)은 위로의 마을 혹은 후회, 회개의 마을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예수의 공생애 주요 무대가 갈릴리요, 갈릴리 사역의 중심이 가버나움이다. 이곳에서 시작된 복음은 갈릴리와 유대 지역으로 확장되었고 이곳에서 부르신 그의 제자들은 땅끝까지 이르러 그 복음의 증인이 된다.

 

가버나움은 많은 여타 갈릴리 마을들과 마찬가지로 주전 2세기에 세워 졌다. 이후 지속해서 여러 시대에 걸쳐 거주가 이어졌다. 발굴을 통해 드러난 주후 1세기 예수 시대의 가버나움 마을은 여러 거주층 사이에서 부분적인 모습만 남아 있다. 현재 가버나움 마을 터는 갈릴리 호수 북서 해안선을 따라 700m 정도 길이에 걸쳐 있다. 19세기 이래 로마 가톨릭(프 란체스코 수도회)과 그리스 정교회에서 마을 터를 양분하여 소유하고 관 리해 왔다. 프란체스코 수도회 지역은 마을의 남서쪽 부분인데 더 남쪽으 로 헵타페곤(타브가)으로 이어지며 계속해서 게네사렛 평지와 막달라, 그 리고 호수를 벗어나 예수께서 자라신 나사렛까지 이른다. 반면 가버나움 마을의 북동 지역은 그리스 정교회에서 관리한다. 마을의 북동 지역을 통 과하여 4km를 계속 걸으면 짙은 갈대밭과 수목이 어우러진 풍경 속에 갈 릴리 호수로 접어드는 요단강을 볼 수 있다. 이 요단강을 기점으로 헤롯 안디바의 영지가 끝나고 그 북동쪽 너머로 안디바의 이복형 헤롯 빌립의 관할 영지가 펼쳐진다. 베드로의 고향인 벳 새다(Bethsaida)도 이 헤롯 빌립의 영지에 속한 갈릴리 호수 북동 지역이다.

 

가버나움 북서쪽으로 약 5km 남짓 언 덕에는 고라신(Korazin)이 있다. 높이 솟 아 갈릴리 호수를 내려다보는 마을이다. 이 곳 너머로 계속 가면 페니키아 지역, 곧 두로와 시돈으로 이어진다. 비록 좀 더 후대이지만 잘 보존된 현무암 회당은 고라신이 유대 전통에 충실한 유대 마을이었음을 보여준다. 예수께서 사 셨던 마을 가버나움을 비롯하여 고라신, 벳새다는 모두 예수의 핵심 사역 지였다. ‘유대인다운’ 모범에 충실한 마을들. 율법을 따져가며 삶에 최대 한 적용하고자 애썼고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마을 거민 모두 생필 집기 하 나하나에 율법적 ‘순수’를 엄수하고자 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회개치 않는 이 마을 거민들을 책망하신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진정한 회개란 과연 무엇일까?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 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 라 심판 때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눅 10:13-15)

 

예수 마을의 풍경

 

예수의 집이 있었던 가버나움. 예수께서는 이 가버나움 어디에 집을 얻 으셨을까? 나사렛의 청년 목수 예수가 가버나움에 왔다는 소문은 이 마을주민 사이에 금세 알려졌으리라. 화산지대 이기에 화산암으로 지어진 집들. 지금은 도로로, 수도회 담장으로 단절되어 있고 회백색 등의 건축물들도 함께 세워져 있지만, 예수 시대에는 흡사 제주도 전통 마을처럼 검은 화산 돌들로 된 집들이 오롯이 한눈에 펼쳐지는 마을이다. 지난 세기부터 실시된 여 러 차례 발굴을 통해 동서남북 방향으로 고대 마을을 가로지르는 거리와 주요 건물 및 주거 지역, 그리고 마을에 인 접한 호숫가 항구의 모습이 잘 드러나 있다. 비록 오늘날 보이는 유적 대부분은 예수 시대보다 후대의 것들이지만 그 사이사이 더 아래 층위에 예수 시대의 건물 흔적도 발견된다. 예수 시대 주거지는 대개 잘 다듬은 돌 과 거친 돌을 섞어 회반죽과 흙으로 조밀하게 지었지만, 넓은 뜰을 가진 규모 있는 집도 더러 있다. 여름에는 갈릴리 호수의 무더운 열기로 인해 대개 계단이나 사다리로 2층 지붕에 올라가 잠을 청했을 것이다. 지붕은 서까래 위에 야자나무 가지 등을 얹어 회반죽으로 마감한 것이었다. 중풍 병자 친구들이 간절함을 담아 부수는 데는 속절없이 뜯겨나갈 수밖에 없는 구조다(막 2:1-12).

 

비잔틴 시대 교회의 중심부에 위치한 ‘베드로의 집’이라고 추정되는 집 터도 위의 마을 풍경 속에 한 평범한 건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마 8:14- 15). 오늘날 이 집터 위에는 어부인 베드로를 연상케 하는 배 모양의 현대 교회가 세워져 있다. 유대 마을의 핵심 요소인 회당은 마을 남서쪽 중간 에 위치한다. 가버나움 회당은 예수의 갈릴리 사역에서 큰 의미를 지닌 곳 이다(막 1:21-28; 눅 4:31-37; 요 6:22-59). 예수 당대의 회당은 작은 규모로 화산암으로 지어졌고 회당 주변으로 주거지들이 인접해 있었다. 이방인 백부장이 이 회당 건립 시 도움을 주었고 또 야이로가 이곳 가버나움 회당의 회당장이었다고 전해진다(마 8:5-13, 9:18-26; 막 5:21-43; 눅 7:1-10, 8:40-56). 수백 년 후에는 예수 시대의 회당을 대체하여 같은 자 리에 더 큰 규모로 회백색 석회암 회당이 들어서서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가버나움은 해안에 매우 가까이 인접한 마을이다. 심한 동풍과 서풍이 불 때면 마을에 큰 파도가 들이치기도 하고 정박해 놓은 배들이 파선되기 도 한다. 이에 대비해 긴 방파용 방벽이 수백 m 길이로 마을 해안을 따라 세워졌다. 또한 가버나움 호숫가 앞바다에는 배들이 안전하게 정박하도록 하는 고대 방파제 및 부두의 흔적이 수백 m에 걸쳐 호수 가운데까지 발견 된다. 이들 해안 시설들의 연대는 예수 시대까지도 거슬러 올라갈 가능성 이 높다. 또한 항구 인근에는 잡은 물고기를 저장하는 거대 수조도 발견되어 당대 활발했던 어업 활동을 짐작게 한다. 어업과 농업, 그리고 가공업 은 다른 갈릴리 호수 마을과 마찬가지로 고대 가버나움에서 일상화된 경제 방식이다.

 

가버나움에서 헵타페곤(타브가) 가는 길

 

오늘날 갈릴리 호수 해안선은 예수 시대보다 약 1m가량 더 높아진 수 면으로 인해 다소 달라진 모습을 보인다. 예수께서 밟으셨던 호숫가는 지 금은 대부분 물에 잠겨 있는데 더 고운 자갈과 모래로 된 해안이었을 것 이다. 이른 아침 쌀쌀한 공기를 가르며 검은빛 가버나움 마을을 뒤로 하고 펼쳐지는 길. 왼편으로 안개 낀 갈릴리 호수와 그 너머 어렴풋한 데가볼리 고원, 오른편으로는 우기의 파릇한 언덕을 바라보며 복음 사역을 나서시 는 예수의 모습이 그려진다. 길은 오늘날의 도로와 대략 비슷한 루트였을 것이다. 고대로부터 팔레스타인과 시리아를 잇는 주요 도로 중 하나인 이


 

길을 걸으시며 아침 일찍 길을 떠나는 상인이나 나그네, 순례객들을 만나 셨을지도 모르겠다. 남서쪽 게네사렛 방향으로 걷다가 보면 멀찍이 커다란 돌무더기들이 호수 속에 잠긴 모습이 왕왕 발견된다. 이들은 고대 방파제나 정박 시설의 흔적으로 추정된다. 호숫가 갈대와 관목 수풀 사이로는 아마도 노란 겨자꽃이 만발했으리라. 그 사이로 꼿꼿이 서서 신비로운 붉은 빛을 발하는 들 양귀비들. 그리고 머리 뒤로 우뚝 솟은 희끗희끗한 헬 몬산을 등지고 걸으시는 예수.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지으신 만물이 인간 의 손으로 만든 그 무엇보다 얼마나 더 아름다운가?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 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 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마 6:28-29)

 

약 3km 호숫가를 따라 걸으면 게네사렛 평지 북단에 도달한다. 야트막한 구릉 언덕들이 해안과 거의 맞닿아 있는 이곳에는 예수 당시 작은 항구 가 있었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예수의 행적을 기념하는 교회들이 세워져 있다(베드로수위권교회, 오병이어기적교회). 예수 당시에는 수백 척의 배가 갈릴리 호수 전역을 누볐다고 하니 아침 시간이었다면 밤새 물고기를 잡고 돌아오는 배들이 여럿 보였을 것이었다. 밤새 고기잡이를 끝내고 베 드로와 안드레, 야고보 그리고 요한도 이 항구 어딘가에서 그물을 손질하던 중이었고, 예수께서는 이들을 제자로 부르셨다(마 4:18-22; 막 1:16- 20). 가버나움에서 지척인 이 항구에 오셔서 호숫가에 떠 있는 배 위에서 가르치실 때 수많은 무리가 그의 주변에 모여들었다(눅 5:1-11). 자주 이렇듯이 항구는 예수 사역의 중심 무대 중 하나가 되었으리라. 사역이 밤낮으로 길어질 때면 무리의 수는 많으나 사방은 외진 언덕이라 각자 마을을 찾아 요기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 근방 비잔틴 교회에서 발견되는 물고기와 빵이 그려진 모자이크는 오병이어 사건과 이 지역과의 연계를 말해주는 듯하다. 그러나 혹자는 오병이어의 배경 지역을 벳새다 들판 으로 보기도 한다. 예수께서 어부 출신의 제자들을 부르시고 부활 후 다시 그들에게 나타나셨던 곳. 그 리고 많은 무리들을 자주 가르치시고 기적을 행하셨던 곳. 이들 행적을 모두 안고 있 는 이 항구는 헵타페곤(Heptapegon) 또는 아랍 지명으로 타브가(Tabgha)라는 이름으 로 불리는데 일곱 개의 샘이라는 뜻의 헬라어 이름이다.  

일곱 개의 샘이 갈릴리 호수로 유입되면서 특히 겨울철에 따뜻한 물이 호수에 유입되어 물고기가 많이 몰리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항구 인근에는 예수님 당대 마을이 발견되지 않는다. 이로 보건대 이 항구는 주거 마을보다는 인근 가버나움에 속한 어업장의 역할을 했을 것이다.


어부인 제자들은 왜 선뜻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라나섰을까? 수 많은 기적과 새롭고 권위 있는 말씀. 모든 것을 던져 예수를 따르기에 매 우 매력적인 조건이다. 그러나 제자들은 아마도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는 말씀을 그때는 제대로 깨닫지 못했던 듯하다(마 20:20-28; 막 10:35-45). 부활하신 예수를 다시 같은 이 장소에서 뵈었을 때 비로소 조금씩 더 참 의미를 알아가게 되었으리라. 제자들 그리고 우리들의 끊임 없는 배반에도 오래 참으시고 늘 팔 벌리시는 주님. 그럼에도 우리는 다른 사람을 참는데 얼마나 인색한가?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요 21:15)

 

헵타페곤(타브가) 해변에서 산상수훈 언덕 가는 길

 

헵타페곤 항구 남서쪽으로는 작은 평지가 인접해 있지만 북서 방향으로는 구릉 지대가 형성되며 한적하고 고즈넉한 분위기를 만든다. 오늘날 이 일대의 평평한 지대는 키부츠에서 운영하는 경작지가 사방으로 펼쳐져 있 지만 비탈이나 높은 지대에는 바윗돌과 풀이 뒤섞인 불모지가 어우러져 있다. 이곳 구릉 지대는 우기에 비가 충분히 대지를 적시는 1월경부터는 푸른 풀과 야생화들이 어우러져 제주도 유채꽃 벌판을 연상케 한다. 건기가 시작되는 4월경부터는 강렬한 햇살 아래 누렇게 변해버린 풀들이 비취 색 갈릴리 호수와 어우러져 오히려 우기 때 소성할 생명력을 강하게 예고 한다.

 


헵타페곤에서 북서 방 향으로 올려다보이는 언덕이 팔복산(Mount of Beatitudes)이라 불리는 곳이다. 경작지와 수풀을 헤치고 약 30분 정도 이 언덕을 걸으면 언덕 정상에 있는 프란체스코 수녀회에서 관리하는 팔복기 념교회에 도달한다. 언덕 정상에 못 미쳐 한 지점에는 주후 4세기에 이 언덕 아래 세워진 비잔틴 교회의 흔적도 발견된다. 정확히 예수께서 이 언덕 교회 터에 앉아 계셨는지 좀 더 아래 앉아 계셨는지 알 길은 없다. 그러나 예수 공생애의 중심지가 갈릴리요, 그 갈릴리 사역의 거점, 당신이 사셨던 마을 가버나움이 바로 2~3km 지척이기에 그 인근 빈들이나 들판은 예수님 사역의 핵심 무대였다. 초기 교회와 순례자의 증언들은 이 일대가 예수의 주요 행적들이 발생했던 장소임을 말하고 있다.

 

2,000여 년 세월이 흘렀지만 한적한 들판의 풍경은 여전하다. 언덕 여기 저기에 운집했던 무리의 풍경은 오늘날 자취를 가늠할 길이 없지만, 이곳 에서 선포된 예수의 복음은 예수를 진심으로 따르기를 갈망하는 자의 마 음에 생생하게 살아 있다. 가난한 심령에 천국을 약속하시는 주님. 어쩌면 예수께서 가버나움, 고라신, 벳새다 마을에 진정으로 원하셨던 바는 가난 한 심령이 아니었을까? 산상수훈의 시작과 끝에서 보듯, 진정 돌이킨다는 것은 가난한 심령으로 주님을 순종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듯하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 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 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마 7:24-27) 


2024. 05. 01


출처: 교회성장연구소(portal.icg21.com/board/board.php?bbs_id=humanities&ptype=view&kbbs_doc_num=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