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강호숙/[여성의 하나님] 교회 내 성폭력 문제,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민중의소리/2021.09.15

성별 위계 조직에서 발생하는 성폭력 문제

몇 달 전, 공군 부사관 여성이 성추행을 당했으나 공군 조직 내의 은폐, 회유, 압박 등을 견디지 못하여 스스로 세상을 등진 사건이 알려져 큰 충격을 주었다. 딸의 억울함을 풀어달라는 아버지의 국민 청원에 40만여 명의 국민동의가 이어졌고, 이에 서욱 국방부 장관은 ‘강제 추행 사건 은폐’, ‘합의 종용’, ‘피해자 보호조치 미흡’과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추가 범행’까지 확대하여 철저히 수사하겠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하지만 공군 뿐 아니라, 육군에서도 복무 중에 성폭력을 겪었다는 사례가 확인되면서, 군대 내 성폭력 문제는 성별 위계 조직에 감춰졌던 ‘고질적 병폐’임을 여실히 드러났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은 서 장관이 군대 내 수사 절차의 신뢰성을 높이고 국민의 의견을 반영하고자 외부 전문위원들로 구성된 군검찰 수사심의위원회를 개최하겠다고 말한 부분이다. 이 말이 향후 군대 내 성추행 피해자를 위한 공정한 수사로 이어질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말이다.

성별 위계 조직은 군대만 있는 게 아니다. 최근 5년 간(2014-2018), 전문직군별 성폭력 범죄 검거 인원수 현황을 밝힌 경찰청 자료를 보면, 의사(11.3%), 종교인(10.7%), 예술인(8.6%), 교수(3.5%), 언론인(1.2%), 변호사(0.6%) 순으로 나타났다. 이를 볼 때 성별 위계 구조는 우리 사회 전반에 포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전문직군별 성폭력 범죄 검거 인원수 현황을 밝힌 경찰청 자료ⓒ경찰청 자료


인터넷 매체 ‘허핑턴 포스트(Huffington post)’에서는 성범죄가 가장 많은 전문직이 ‘성직자’ 직군이라는 기사를 낸 적이 있다(권복기, “성범죄 가장 많은 전문직은 성직자”, 2014년 3월 17일). 그 당시, 이 콘텐츠가 올라온 후에 목사들의 성범죄와 관련한 기사가 SNS를 타고 퍼져나가면서 교회 내 성범죄의 실상이 폭로됐다.




누군가 위계적이며 폐쇄적인 조직으로 군대, 병원, 학교를 꼽았으며, 이 세 곳을 합친 곳이 ‘교회’라고 한 말이 생각난다. 여기엔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겠지만, 여성 입장으로 볼 때 교회 내 절대 권력을 지닌 남성 목회자에게 성폭력을 당한 여성이 피해 사실을 알리기를 두려워하는 모습이 연상됐다. 설령 소리를 낸다 해도 무조건 남성 목사 편을 드는 교단 남성들과 충성파 교인들의 편파적이며 압박하는 분위기에 눌려 성폭력 문제가 이슈화되기 어려운 상황도 떠올랐다. 교회가 반인권적이며 폐쇄성이 짙은 가부장 집단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목사 성범죄 증가는 교회의 ‘성폭력 은닉 시스템’과 관련 있다

누구보다도 거룩해야 할 ‘성직자’(聖職者)라는 정체성을 지닌 목사들의 성범죄가 증가하는 원인은 무엇일까? 필자는 종교의 특수성과 폐쇄성, 그리고 ‘교회의 남성화’가 맞물린 결과라고 본다.

구체적으로 보자면, 첫째로 남성 목사들은 사회의 간섭을 받지 않는 종교의 특수성과 폐쇄성이라는 우산 아래서, 종교 남성화의 영향을 받은 성경 해석과 설교권 행사를 계속해왔다. 이와 함께 “목회의 한 일환”이라는 변명을 핑계로 이뤄지는, 종교 체험과 치유, 설교와 교육, 상담과 심방, 그리고 접대는 얼마든지 성추행과 성희롱, 성폭력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있다.

둘째는 대부분 남성으로 이뤄진 당회, 노회, 총회라는 의사결정 기구에서 가해 남성 목사의 성범죄를 은폐하기 위한 ‘성폭력 은닉 시스템’이 작동된다. 대표적인 예는 합동 교단에 속한 전병욱 목사와 기독교대한감리회에 속한 전준구 목사의 성추행 사건이다. 두 목사의 사건은 TV 뉴스나 시사 프로그램에서 집중적으로 다룰 정도로 사회적으로도 물의를 일으켰고, 지금도 교회 내 성범죄 사건이 터질 때마다 회자 되는 대표적 사건이다. 전준구 목사로부터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는 교회가 아닌 ‘PD 수첩’이라는 방송을 통해, ‘누가 저 좀 살려줬으면“이라고 하면서, 간절히 호소하는 모습을 보였다.


전병욱 목사ⓒ뉴시스


이와는 반대로, 가해자 전준구 목사는 자신이 저지른 성추행 관련 소송비를 기독교대한감리회 재정으로 충당하였고, 전 목사의 재정 비리를 지적한 ‘기독교타임즈’ 언론매체마저 없애버릴 정도로 지금도 교단 내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또, 전병욱 목사는 자신의 성추행을 반성하기는커녕 대법원에 상고하였으나, 2017년 9월, 대법원은 전병욱 목사의 성추행을 최종판결하였다.

전병욱 목사가 시무했던 당시의 삼일교회 당회와 평양노회, 그리고 합동총회에서 ‘성범죄 은닉 시스템’이 작동한 내용을 간략히 살펴보려 한다. 삼일교회 당회는 처음엔 피해 여성의 진술이 있었음에도 ‘꽃뱀’, ‘이단’이라고 밀어붙이다가, 2009년 11월에 전 목사의 성추행이 확인된 후, 2010년 7월에 삼일교회 당회는 피해 여성의 소리는 무시한 채, “치리 없이 사표 수리”하였다. 이후에 삼일교회는 전병욱 목사 성범죄 징계 청원서를 제출했으나, 평양노회는 2011년과 2013년, 피해 여성의 진술 요구 등 절차상의 문제를 들어 여러 차례 반려했다. 목사 징계 권한이 노회에 있다 보니, 교회 여성이 피해 사실을 어렵게 알렸다 해도, 목사의 성범죄가 어떻게 처리되고 있는지 당회와 노회의 기록조차 열람하기 어려운 게 현재 교계의 답답한 현실이다. 필자는 ‘교회 2.0 목회자운동’ 단체와 삼일교회 자체로 구성된 TFT와 함께 평양노회와 ‘홍대새교회’에 가서 전병욱 목사를 면직하라”는 피켓을 들며 시위를 한 적이 있다. 하지만 2016년 모두 남성으로만 구성된 합동총회는 전병욱 목사의 재판 건을 기각하고 말았다.

지금까지도 합동총회는 성범죄 목사를 판단하는 심사자들의 자격, 목사의 권징 수위 및 권징 후 목사직 처리 문제, 피해자 고발 핫라인 가동과 보호 조항 등과 관련한 교회법과 징계 조항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 이렇다 보니 합동 교단 소속이었지만 그루밍 성폭력으로 징역 7년 형을 받고 법정 구속된 김다정 목사와 그의 아버지 목사는 ‘사임’으로 교단을 탈퇴하여 훗날 다시 목사직을 수행할 수 있도록 꼼수를 쓰기도 한다.

그런데도 교계 지도자들은 “한국교회를 부흥시킨 목사이니 용서해주자”, “목사들은 하나님이 심판한다”, “피해자들이 목사를 음해한다”라는 말로 성범죄자 목사를 감싸면서, 되려 피해 여성을 가해자로 몰거나 2차, 3차 피해를 주면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이쯤 되면 교회는 군대조직보다 더 가부장적 폭력에 노출된 비윤리적이며 반인권적 집단이 아닌가. 여성들이 성의 사각지대가 돼버린 교회에 다니기가 무서운 세상이 온 것 같다. 문득 ‘요리를 잘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여성의 몸에 불을 지를 정도로 여성혐오의 전형을 보여준 탈레반 남자들이 연상돼 섬뜩해진다.


2018년 11월 9일 인천 부평구 부평경찰서 입구에서 피해자들의 대리인 정혜민 브릿지임팩트 목사, 김디모데(오른쪽) 예하운선교회 목사가 기자회견을 열고 그루밍 성범죄 관련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뉴시스


나는 교회 내 작동하는 ‘성범죄 은닉 시스템’이 남성 중심의 의사결정 권력구조 안에서 종교의 특수성과 종교의 남성화가 합작하여 빚어낸 ‘괴악하고 악한 누룩’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교회는 종교의 특수성을 악용하여 외부의 시선과 소리를 차단할 수 있으며, 성경을 ‘아전인수격’으로 얼마든지 해석할 수 있게 되어버렸다. 겉으로는 ‘성경적’이라고 주장하지만, 안으로는 남성의 잘못을 감추기 위한 온갖 거짓과 위선, 그리고 음란함과 악행이 우후죽순처럼 뻗을 수 있는 풍토로 변모할 수 있게 된 상태다.

성경은 음행하는 자와 사귀지도 말고 내어 쫓으라고 말씀하고 있건만(고전 5:1-13), 남성화된 교계는 도무지 성경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고 있다. 심지어는 음행한 목사를 감싸주고 있으니, 이 악한 누룩들이 점점 많아지고 부풀려져 마침내 교회를 삼켜버릴 거 같다는 두려움마저 엄습한다.

교회 남성 지도자들은 가해 남성 편만 드느라, 피해 여성의 소리를 ‘음소거’ 시켜버리고 말았다. 이는 마치 구약성경 사사기 19~21장에 나오는 내용을 연상시킨다. 사사기에 등장하는 이스라엘의 남성 인물 중 누구도 남성들의 잔인한 성폭력에 의해 희생된 피해 여성의 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사기 기자(서술자)도 ‘이스라엘에 왕이 없어서’라는 명분으로 남성 중심의 왕정 체제를 옹호하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하지만 나는 사사기 19~21장에서 가부장 권력에 의한 성폭력, 강제 혼인, 남성의 환대를 위해 성적 수단화 되는 여성들, 윤간, 토막 살인, 남성끼리의 전쟁 등과 같은 일련의 모습들을 자세히 기술한 이유를 오늘날 21세기의 눈높이에 맞게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사기 19~21장이 주는 교훈은 가부장적 폭력과 불의한 죄악에서 벗어나, 동료 인간인 여성을 존중하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공평과 정의를 이루는 것임을 알려주려는 의도 해석할 수 있다.

교회 내 성폭력 문제,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내가 공동대표로 있는 ‘기독교 반성폭력센터’는 교회 성폭력 피해자 심리 상담과 법률 조력, 의료 지원과 이슈 파이팅을 통해, 교회 성폭력 피해자를 돕고 성평등한 문화 정착에 힘쓰기 위해 세워진 범 교단 단체다. 사실 이 단체는 삼일교회에 부임한 송태근 목사가 성추행을 범한 전병욱을 대신해 피해 여성들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하면서, 성폭력 방지를 위한 재정적 지원과 협력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 반성폭력센터가 세워졌다 해도, 여전히 ‘성범죄 은닉 시스템’을 작동시켜 가해자 목사를 감싸며 피해 여성들을 절망과 비참함으로 내몰고 있는 교회나 교단의 불의와 여성 차별의 죄악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기도 자료사진ⓒ기타


나는 기독교 반성폭력센터가 하는 일은 원래 교회나 교단이 마땅히 감당할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몸의 부활을 믿는 신자는 자신의 몸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데 사용해야 하며(고전 6:13-20), 교회는 남자와 여자 모두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사람들이 모인 곳으로서, 남녀 각자의 성적 자유와 권리, 그리고 성 활동과 성 관습을 실천하는 데 있어, 누구든 소외되거나 희생되지 않도록 인권 존중과 정의가 우선되어야 할 공동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성 평등한 성인식 전환을 위해 신학교와 신학대학원에 여성 교수를 세워 양성평등 교육과 성 윤리 교육을 필수과목으로 가르쳐야 한다. 또한, 목사와 교인들에게 정기적으로 성 윤리와 성인지감수성 교육을 시행해야 한다.

아울러 신학교와 교단 내에 성폭력 특별법 제정 및 윤리위원회를 설치하고, 범 교단 차원의 성범죄 데이터베이스(data base)를 만들어 공유해야 한다. 단, 윤리위원장은 여성이 맡도록 해야 하며, 외부 인사를 영입하여 즉각적인 처벌과 공정한 심의가 이루어지도록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마지막으로 교단 내, 피해자 여성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핫라인’ 설치와 법률 상담소 및 치유와 회복을 위한 쉼터도 이루어져어야 한다.

성경의 역사나 인류 역사 속에서 가장 어두운 시대는 피해자의 억울함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할 때이다. 성경은 작은 자들 중 하나라도 실족하게 하는 건 큰 죄악임을 경고하고 있다(막 9:42). 교회는 여성들이 남몰래 흘리는 눈물을 닦아주고 부르짖는 탄원에 귀 기울여라!


링크 : https://www.vop.co.kr/A0000159763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