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윤국영/"예루살렘에서 엠마오 가는 길"/목회와 인문학



예루살렘에서 엠마오 가는 길

윤국영 박사(기독인문학연구원 상임연구위원)


예루살렘과 엠마오

 

엠마오의 위치에 대해서 아직 일치된 견해는 없다. 대부분의 성서 사본 에서는 예루살렘과 엠마오 사이의 거리가 60스타디온(약 12km)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일부 사본에는 160스타디온(약 32km)이라고 나온다. 이른 아침부터 해질 때까지 꼬박 걸을 수 있는 하룻길을 대략 30km로 보 았을 때 160스타디온은 하루종일 걸어야 갈 수 있는 거리이다. 두 제자가 부활하신 예수와의 만찬 직후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갔다는 점, 그리고 같은 날 예루살렘에서 제자들을 만나 예수의 부활을 전했다는 점을 고려 할 때 160스타디온이라는 거리는 다소 무리가 있는 듯하다.

 


엠마오(Emmaus)라는 지명은 ‘따뜻한 샘’이라는 뜻의 히브리어 단어에서 파생한 것으로 보는데, 고 대 여러 지명에서 이 이름 이 사용된다. 엠마오의 추정지로는 주로 네 장소가 거론되어 왔다. 이들은 모두 예루살렘 서편에 위치하는데, 가장 먼 니코폴리스(Nicopolis)는 예루살렘에서 약 28km 떨어 져 있고 가장 가까운 콜로니아/모짜(Colonia/Motza)는 거리가 약 6km, 그리고 아부 고쉬(Abu Ghosh)는 약 12km이다. 이 세 장소는 고대 예루 살렘에서 서쪽 해안으로 가는 두 주요 루트 중 아래 루트 선상에 있는 반 면, 쿠베이베(El-Qubeibeh)는 위 루트에 더 근접해 있다. 이 두 루트 중에서 아래 루트는 대략 오늘날 예루살렘-텔아비브를 잇는 1번 도로와 나란히 달린다. 구약과 신약시대에 해안 및 평지 지역과 예루 살렘을 잇는 주요 도로 역할을 했던 아래 루트를 따라 이 길에 위치한 엠 마오 후보지들을 차례로 가보는 것은 어떨까? 오늘날도 구약 율법의 연장 시대를 사는 유대인들에게 엠마오로 가는 도상에서 예수께서 하신 말씀은 기독 신앙의 핵심이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이 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 세히 설명하시니라” (눅 24:25-27) 


예루살렘 서쪽 교외 

고대의 길이 대개 그러하듯 예루살렘에서 서쪽 해안을 향하는 아래 루 트는 서쪽 해안지대와 동쪽 유다 산지의 중간지점인 아얄론 평지(Plain of Ayalon)에 이르기까지 거의 일직선을 이룬다. 해발 약 800m 가까운 예루 살렘에서 해발 약 200m의 아얄론 평지까지 30km 정도 거리를 두고 내리 막길이다. 예루살렘의 남서쪽은 힌놈의 골짜기(Valley of Hinnom)에 둘러싸여 있지만, 북쪽으로는 평지로 이어져 있다. 따라서 예수 시대 예루살 렘에서 해안을 향해 길을 나설 때 힌놈의 골짜기 북편, 즉 고대 예루살렘의 북서쪽을 기점으로 서편이나 북편으로 방향을 잡을 수 있다. 서편으로 방향을 잡을 경우 예루살렘과 해안을 잇는 두 주요 루트 중 아래 루트(예루살 렘-기럇여아림-게셀-중남부 해안)로 이어지게 되며 북편으로 방향을 잡 을 경우, 위 루트(예루살렘-기브온-벳호론-중북부 해안)로 가게 된다. 예루살렘 성벽을 서쪽으로 막 벗어나면 눈 앞에 펼쳐지는 악몽 같은 골고다 처형장. 엠 마오로 가는 두 제자는 골고다를 애써 외면한 채 성문을 빠져나와 아래와 위 루트의 기로에 서게 된다. 새벽에 예수의 무덤을 다녀간 몇 몇 제자들이 예수께서 무덤에 계시지 않고 살 아나셨다고 하나 두 제자는 믿지 않았다. 예 수를 통해 다윗의 영광을 재현할 것을 기대했 을 때 예루살렘 성벽은 웅장하고 자랑스러웠다. 그러나 이제는 거대한 좌 절과 공포의 벽. 이 짓누르는 듯한 예루살렘 성내를 서둘러 벗어나 낙향하 여 살길을 도모하고자 두 제자는 고향마을로 향하고 있었다. 


서쪽으로 교차로를 꺾으면서 등성이를 따라 곧게 뻗은 길을 걸으면 어느 덧 예루살렘 성은 시야에서 사라진다. 현대도시 예루살렘의 중심부를 이 루는 이 구간을 따라 오늘날은 경전철이 지난다. 빽빽한 도심 속 발굴을 통해 이따금 드러나듯 예수 시대에는 이 길 양옆으로 무덤들과 작은 마을 이나 농장, 혹은 토기장이의 작업소 풍경이 펼쳐졌을 것이다. 30분쯤 걷다 보면 오른편 아래로 깊이 펼쳐지는 소렉 골짜기(Valley of Sorek), 그리고 그 너머 탁 트인 베냐민 산지의 전경. 이곳이 오늘날 신시가지 예루살렘의 서쪽 초입이다. 오늘날 도로와는 달리 서쪽으로 산등성이 사이를 곧게 뻗은 고대길은 바위를 깎아 만든 계단이 필요할 정도로 가파르게 내려간다. 그리고 어느덧 길은 소렉 골짜기 바닥에 다다르는데 이 골짜기는 베냐민 산지에서 기원하여 구불구불 이어지며 유다 산지를 타고 내려와 평지 벳 세메스를 거쳐 블레셋 평야까지 이른다.


콜로니아/모짜 

두 제자가 내딛는 가파른 내리막길이 소렉 골짜기와 만나는 지점 인근에 콜로니아(Colonia) 또는 모짜(Motza)라고 불리던 마을이 위치해 있다. 예 루살렘에서 약 6km 떨어진 지점이다. 이곳은 구약시대로부터 인근 테라 스 농경지에서 생산하는 곡물과 과실의 집산지로 알려져 있다. 이곳 인근 에서 나는 노란 빛깔의 흙은 고대로부터 예루살렘과 인근 지역 토기장이 들에게 훌륭한 태토로 사용되었다. 이 일대는 최근 발굴에서 9세기경으로 추정되는 구약시대 산당이 발견 되었는데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목이자 성전과 가까운 거리라서 상당한 반 향을 불러일으켰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정복할 때 절 대로 그 풍습을 따르지 말라고 경고하셨다(출 23:24; 신 18:9; 슥 1:4; 롬 12:2). 그러나 이스라엘과 유다 왕국 처처에 가나안의 풍습을 버리지 못하 는 산당과 이방적 제의 흔적이 발굴을 통해 드러나는데, 하나님과 이방신 숭배가 혼합된 양상도 보인다(왕상 18:21). 하나님에 대한 무지와 잘못된 개념이 낳은 모습이리라. 여호사밧, 히스기야, 요시야와 같은 유다 왕들은 종교 정화를 통해 가나안의 풍습을 제거하고 본질을 회복하려 했지만, 이방 풍속은 유다 왕국의 멸망 때까지 지속되다가 포로기 이후에야 비로소 유다 지역에서 사라진다.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는 모짜 에 ‘엠마오’라 불리는 마을이 있었다고 전한다. (유대인 전쟁 7.10.9 §217). 두 제자가 향 하던 마을이 이곳이었다면 그들은 아마도 늦은 오후 경 예루살렘을 벗어나면서 곧 부활 하신 예수를 길에서 뵈었을 것이다. 예수께서 예루살렘 성내를 수없이 드나들며 걸으셨을 그 예루살렘 서편 초입 길. 이제 엠마오 두 제자와 동행하시며 예수의 눈 에 펼쳐진 길 풍경은 어떠한 모습으로 예수께 다가왔을까? 아브라함 이래 로,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모든 성경의 역사를 지켜보았던 이 길. 가나안 시 대에는 이방 풍속을 좇아 산당으로 향하던 가나안인들. 이스라엘 시대에 접어들며 법궤를 메고 오는 레위인, 그리고 춤을 추며 그 뒤를 따르는 다 윗. 백향목을 싣고 오는 역군들을 지켜보는 솔로몬. 앗수르 왕 산헤립을 피 해 예루살렘으로 몰려드는 유다 난민들의 행렬. 예루살렘을 파괴한 후 새 로운 터전 콜로니아를 향해 이동하는 로마 군사들. 성지 탈환을 생의 소명 으로 알고 해안을 통해 몰려드는 십자군 무리. 그리고 수많은 성지 순례객. 다른 듯 숱하게 반복되는 역사의 수레바퀴. 소렉 시내를 건너 농촌 마을 엠마오-콜로니아로 접어들면서 두 제자가 예수를 통해 접한 창세로부터 하나님의 비밀은 무엇이었을까? 그 길지 않은 엠마오 동행의 순간 동안 예수께서 강렬히 전하고자 하셨던 모든 지역 과 인종을 향한 메시지.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 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눅 24:46-48) 


아부 고쉬/기럇여아림 

소렉 골짜기를 지나 길은 다시 오르막이다. 고대 길은 등성이 중턱을 따라 더 아래 현대 도로를 내려다보며 이어진다. 길 오른편은 베냐민 지 파 땅이고, 왼편은 유다 지파의 땅이다. 콜로니아/모짜로부터 두세 시간 을 더 걸으면 예루살렘으로부터 약 12km 거리인 아부 고쉬(Abu Ghosh) 라는 아랍 마을에 다다른다. 이 마을 가장 높은 지점(약 680m)에는 오늘 날 가톨릭 수도원이 자리잡고 있는데 이 수도원이 위치한 언덕은 구약시 대로부터 사람들이 거주했던 인공언덕(Tell)으로 구약의 성읍 기럇여아림 (Kiriath-Jearim)으로 추정한다. 2017년 이래 발굴을 통해 이곳에 구약 시대 이스라엘 성읍의 흔적이 드러나고 있는데 발굴자들에 의하면 하나님 의 법궤가 위치했던 언덕 정상을 지탱하기 위한 부벽으로 추정되는 흔적 이 발견되었다. 법궤는 남쪽 벧세메스로부터 이동하여 기럇여아림 언덕에 20년을 머물다가 예루살렘으로 옮겨진다. 하나님의 임재가 예루살렘에 있기를 바라는 이스라엘 백성의 간절한 기대 속에 다윗성으로 옮겨지는 법궤를 떠올리시며 예수께서는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기럇여아림은 엠마오의 또 다른 후보지인데 이는 십자군 시대 이래의 전 통에 근거한다. 예수께서 두 제자와 이곳까지 오셨는지는 명확히 알 수 없 지만, 서쪽 방향의 주요 고대 도로상에 위치하고 이 일대에서 중심적 성읍 의 역할을 담당했다는 점에서 그 가능성이 없지 않다. 이곳이 성경의 엠마 오라면 두 제자는 정오경에 예루살렘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그리고 해 질 무렵 도착한 이 마을에서 예수와 만찬을 한 후 곧 밤새 예루살렘으로 되돌 아갔다면 자정이 되기 전에는 마가의 집에 모여 있던 다른 제자들을 만날 수 있었을 것이다. 반나절 전 인간의 관점에서 절망에 싸인 채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내려가던 길. 그러나 이제 저들은 환희에 넘쳐 다시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갔다. 부활하신 주를 만나면 관점이 바 뀌고 인생의 방향이 바뀐다.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 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 (행 17:31)


니코폴리스 

유다 산지의 중턱을 가로질러 서쪽으로 약 16km를 더 이동하면서 넓고 완만한 평지가 펼쳐지는데 아얄론 평원(Plain of Ayalon)이다. 이 일대는 구약시대에 여호수아가 남방 가 나안 연합군에 승리했던 곳이자 헬라 시대에 하스모니안 왕조의 유다 마 카비가 헬라 군을 격파했던 전쟁터로 잘 알려져 있다. 이곳에서 북쪽으로 는 사마리아 지역으로 이어지고 서쪽으로는 해안 지역, 남쪽으로는 평지 그리고 더 아래로 네게브 광야가 펼쳐진다. 이 평원의 주요 교차 지점에 예수 시대에 ‘엠마오’라 불리는 규모 있는 성읍이 있었는데, 주 후 3세기 이후 이 성읍은 니코폴리스(Nicopolis)라는 이름으로 변경되어 사용된다. 4세기 초기 교부 시대부터 니코폴리스는 부활하신 주님이 나타나셨던 엠마오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예루살렘으로부터 하루를 꼬박 가야 하는 28km 거리이기에 그 적합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전통에 의하면 오늘날 이곳에 유적으로 남아있는 비잔틴 시대 및 십자군 시대 교회는 두 제자 중 하나인 글로바의 집터 위에 세워졌다고 한다. 오늘날은 주변 일대가 고즈 넉한 야외 공원이지만 예수 당시에는 상당한 중요성을 띤 성읍으로 분주한 도시적 풍경을 연출했을 것이다. 오늘날 프랑스 수도원이 관리하는 옛 교회 유적과 ‘글로바의 집터’는 아얄론 평지 너머 서쪽으로 지는 석양과 잘 어우러져 주께서 두 제자와 떡을 떼시던 그 저녁의 환희와 신비를 잘 드러내는 것 같다. 골짜기 아래 작은 농촌 마을이나 구약의 전통이 서린 언덕 위의 성읍, 또 는 탁 트인 교차로 중심에 있는 요충지 성읍 모두 두 제자가 가려던 엠마오 마을일 가능성이 있다. 세 후보지 모두 같은 연장선상인 그 길 여정을 이 따금 마음에 그려보며, 예수께서 우리 인생 여정에서 전하시고자 하는 바 를 더 깊이 묵상해 보면 어떨까? ‘우리가 가야 할 마을이 이곳일까? 저곳일 까?’ 고민하기보다는 주께서 내 앞에 펼쳐주시는 그 길 묵묵히 가다 보면 부활하신 예수도 만나고 그와 동행하는 새로운 모험의 삶이 펼쳐지리라.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 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사 55:8-9) 


2024. 07. 01


출처: 교회성장연구소(portal.icg21.com/board/board.php?bbs_id=humanities&ptype=view&kbbs_doc_num=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