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윤성덕/기념비 세우기/국제신문/2021.03.31

사람은 기념비를 남긴다. 돌을 깎아서 그림이나 글을 새긴 다음 길가에 세우든지, 높은 산이나 경치 좋은 해변에 정자를 짓고 자기 이름을 남기든지, 자기가 그 자리에 없어도 남들이 자기를 알아주기 바라는 모양이다. 이도 저도 아니라면 죽고 남은 흔적을 비석에 남기기 마련이다.

기념비를 남기는 이유는 인간의 실존적 한계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죽음으로 자기 삶을 마감해야 할 존재이기 때문에, 자기가 없어질 순간을 대비해 영원히 살아남을 무언가를 짓는다는 것이다. 아니면 욕심에 한참 못미치는 인간의 능력을 무의식적으로 절감하며, 생전에 성취한 업적을 길이길이 남기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결국 사람은 자기 존재를 실제보다 더 크고 더 오래 가도록 확장하고 싶은 욕구가 있고 기념비는 그 사람의 연장된 육체라는 말인데, 과연 기념비가 그런 기능을 해줄 수 있는지 잘 생각해 보야야 한다.

인류의 고대 문명사를 살펴보면 기념비의 예는 수 없이 많이 찾을 수 있다. 고대 서아시아 사람들이 남긴 기념비 중에서 가장 유명한 ‘함무라비 석비’를 보자. 바벨 왕 함무라비는 외국에서 귀한 흑요석 기둥을 수입해 자신이 얼마나 정의로운 왕인지를 알리기 위해 법규정 모음집을 새겼다. 한 동안은 이 기념비가 광채를 발하며 수도의 중심지에 서 있었지만, 이웃 나라 엘람이 쳐들어 왔을 때 전리품으로 빼앗기고 말았고, 함무라비 왕의 기념비는 외국 땅에서 엘람의 강한 군사력을 증명하는 상징으로 변했다. 엘람이 멸망한 후 땅 속에 묻혀 있던 함무라비의 기념비는 프랑스 발굴단이 발견해서 루브르 박물관으로 옮긴 뒤 프랑스 제국주의 강국의 위엄을 드러내는 역할을 하였다. 영국도 독일도 가지지 못한 기념비를 루브르에 소장하고 있다는 자부심은 국가를 향한 충성심과 쉽게 동화되었으며, 이라크 시민들의 동의 없이 유물을 반출했다는 사실은 어디에도 언급하지 않았다.

예루살렘 지하를 흐르는 물길과 실로악이라는 저수지는 고대 이스라엘 유물 중에서 드물게 규모가 큰 건축 유적이다. 키드론 계곡의 기혼 샘에서 솟아나는 물을 성벽 안쪽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지하로 물길을 파서 실로악이라고 부르는 저수지에 저장했다. 이 물은 지하수가 솟아나와 흘러온 수질이 좋은 생활용수였을 뿐만 아니라, 종교적으로 ‘생수’로 분류되어 제의에 사용할 수 있는 귀한 물이었다. 이 지하 물길과 저수지는 유다 왕국의 히스기야 왕 때 건설한 것으로 보이는데, 지하 물길 한 가운데 돌벽에 새긴 명문이 남아 있어서 그 건설 과정을 자세히 알 수 있다. 보통 실로악 명문이라고 부르는 이 문서는 언덕 양쪽에서 시작한 굴착공사가 어떻게 땅속에서 서로 만날 수 있었는지 공사과정을 극적으로 기록하여 남기고 있다. 그런데 이 명문은 돌벽에 직접 새긴 것임에도 불구하고 제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현재 이스탄불 국립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오스만 제국이 다스리던 시기에 억지로 돌벽을 도려내었고, 그러는 과정에서 명문은 깨져서 몇 조각이 나고 말았다. 예루살렘에서 히스기야 왕의 업적을 기리고 있는 것은 이스라엘 정부가 새로 만들어 놓은 모조품일 뿐이며, 실로악 명문은 터키 땅에서 과거에 존재했던 제국의 흔적을 증거하며 관광객들을 맞고 있다.

고대 서아시아 사람들이 5000년 전부터 자기 존재를 확장하고 싶어서 만든 많은 기념비들이 역사의 굴곡을 거치면서 살아남은 것이 사실이고, 그 굽이를 지날 때마다 새 생명을 얻기도 했다. 어떤 이유에서건 현대까지 생존한 기념비들은 귀한 유물 대접을 받고 있다.

그렇지만 자연스럽게 사멸되는 기억의 한계를 넘어선 기념비들은 그것을 창조했던 자의 의도와 전혀 다른 존재로 변하고 말았고, 마치 생명이 없이 존재하는 좀비처럼 전혀 다른 기능을 수행하게 되었다.

다시 한 번 정치의 계절이 돌아오고, 거리는 기념비에 버금가는 다양한 상징들이 난무하고 있다. 곧 재활용도 할 수 없는 쓰레기가 될 현수막부터 언제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하지 못할 빈 약속들까지 다양한데, 경실련이 발표한 역대 정부들의 공약이행률을 살펴보면 20~40%대를 맴돈다. 이런 현상을 보면 대한민국 정치인들이 내세우는 기념비는 고대 서아시아의 유물들보다 훨씬 더 수명이 짧고, 당선되기 위해 잠깐 쓰는 가면이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다.

우리 국민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 사태를 겪으면서 일상생활을 포기하지 않고 이어갈 희망을 보고 싶다. 국민의 대표자로 나선 자들이 개인적인 의도로 세우는 기념비를 보며 감탄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곧 용도가 폐기될 일회성 전시형 기념비들은 모두 허물어 버리고 국민에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는 선거를 보여주기 바란다.

연세대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 전문연구원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1700&key=20210401.220190101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