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그리스도인이 받는 풍성한 위로/이충환

그리스도인이 받는 풍성한 위로

-『내게로 오라』 독서과제-

20211048 이충환

 

『천로역정』의 저자로 잘 알려진 존 번연의 『내게로 오라』는 요한복음 6:37의 말씀을 기반으로 그리스도께로 가는 것, 다시 말해 구원론을 다루고 있다. 필자는 본 책을 읽으면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풍성한 위로를 얻었다. 사실 이번 학기 구원론을 배우기 전 한 가지 고민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책이 그 고민에 대한 답을 내려주었다. 그 고민은 구원받을 대상에 관한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실 때 그 대상은 어떻게 되는가?’ ‘택자들만 가능할 것 같은데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책은 없을까?’ 단순한 질문 같지만 이 고민은 사실 구원론의 핵심에 해당한다. ‘몇몇 학우들과 얘기를 해볼까’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자칫 잘못하다가 만인 구원론과 같은 신학적 논쟁으로 퍼질 것 같아서 물어볼 염두가 나지 않았다, 그런데 본 책의 제1장 ‘성부의 선물’에서 이에 대한 해답을 해주었다. 책에는 이렇게 써있었다. “다(all) 라는 말은 성경에서 종종 사용되는 문장에 따라 진리나 논증을 더욱 확장하거나 엄격하게 제한하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성경에서 말하는 ‘다’라는 의미는 우리가 알고 있는 의미와는 다른 것임을 알 수 있다. 보편적으로 모든 대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제한되고 한정된 의미로 “그리스도에게로 올 사람들”만을 지칭하는 것이다. ‘다’만 이런 것이 아니다. 이와 유사한 범위의 ‘모든’과 ‘주다’라는 단어 또한 제한적인 대상을 지칭하는 것에 포함된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분께로 나아오는 자들에게 변함없고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구원을 주신다. 그리고 이 구원은 이 세상과 피조물들이 창조되기 전부터 성부 하나님이 정하신 일이었다. 따라서 성부와 성자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 분들의 양자로, 자녀로 받아주시는 이 놀라운 은혜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선물이다. 하나님께서 그 분의 자녀들에게 주시는 은혜가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풍성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기본적이고 감사한 점은 죄로 인해 타락한 우리들을 그 분의 자녀로 삼아주셨다는 사실이다. 그 분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가장 비참하게 죽이시면서까지 말이다!

 

필자가 두 번째로 은혜를 받은 것은 ‘그리스도에게로 오리라는 약속의 확실성’에 관한 것이다. 앞서 구원의 대상을 다루면서 필자는 우리의 구원이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 간의 긴밀한 관계에서 온 것임을 언급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구원의 주도권 또한 절대적으로 하나님께 달려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처지나 곤경이나 상태는 이 약속의 걸림돌이 되지 못한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인가! 성경을 보면 믿음의 선조들 또한 이러한 상황을 무수히 겪은 것을 알 수 있다. 대표적으로 믿음의 조상으로 잘 알려진 아브라함은 아들을 주시겠다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다. 그 결과 그들이 어떤 상태였든지 그 약속은 성취되었다.(창18:11)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은 초월적인 것이기 때문에 어떠한 상황과 곤경에 처해있더라도 확실하다. 그리스도에게로 나아오는 자들 또한 마찬가지이다. 우리를 자녀삼으시는 약속은 사람이나 다른 피조물이 아니다. 하나님이 보증인이 되신다. 혈통으로는 아브라함의 후손이 아니더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자손과 약속의 자녀로 받아주시는 것이다.(갈3:29) 그러므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께로 나아오는 것 외에 다른 방도는 없는 것이다.

 


본 책을 읽으며 필자는 너무나 많은 은혜를 받았다. 어쩌면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많은 신학적 개념보다 한 가지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건 바로 참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일 것이다.(요17:3) 그리스도께로 나아오는 것은 어떠한 차별과 불공정이 존재하지 않는다. 저자에 의하면 그 분은 주님을 과거에 배도한 자이든 처음 그 분께 나아오는 자이든 동등하고 평등하게 받아주신다. 그것이 은혜이고 말로 다할 수 없는 감사인 것이다.

 

신학교에 입학해서 많은 공부와 과제에 치여 지내지만 필자가 생각하기에 사역자들이 잊어서는 안 될 사실이 있다면 그것은 “주님께로 나아오는 것에 대해 그대는 알고 있는가?” 라는 물음인 것 같다. 우리는 주님의 양 떼를 때로는 인도하고 때로는 먹이고 또 때로는 쳐야 할 자들이다. 그 일을 잘 수행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깊은 은혜에 감격하고 감사하고 돌아봐야 한다. 이 일을 한번에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주님과 함께 있을 때 믿음이 연약했던 베드로가 주님이 승천하고 나서는 강한 신앙의 확신 가운데 주님의 말씀을 전하고 초대교회 성도들을 목양한 것에서 필자는 큰 평안과 위로와 감사를 느낀다. 신학교에 입학할 때의 초심과 주신 소명을 잊지 않는 주님을 사랑하는 자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하며 본 글을 마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