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윤국영/"베들레헴에서 예루살렘 가는 길"/목회와 인문학


베들레헴에서 예루살렘 가는 길

윤국영 박사(기독인문학연구원 상임연구위원)


베들레헴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심은 우리가 그를 초청한 것이 아니요, 그가 스스로 이 땅에 오셨다. 가장 천한 자리, 가장 비참한 죽음. 그러므로 그 누구도 핑계치 못하리라. 육신의 몸으로 나신 첫 땅, 베들레헴은 고대 예루살렘에서 브엘세바로 향하는 고대 도로를 따라 예루살렘의 남단 약 10km 지점에 위치한 성읍이다. 육신적 혈통으로는 다윗의 자손이셨기에 다윗의 고향 베들레헴에서 나셨다.

 

예수 당시의 베들레헴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진 바가 없으나 큰 성읍은 아니었을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 탄생교회(the Church of the Nativity) 는 베들레헴 지역 여러 산등성이 중 하나에 위치한다. 탄생교회와 그 일대 는 집중적 발굴이 이루어졌다. 반면 고대 성읍들이 종종 그러하듯 예수 당 시 베들레헴 성읍의 전체적 윤곽은 현대 도시 밑에 파묻혀 그 대략을 파악 하기 힘들다. 탄생교회가 진짜 예수의 탄생 장소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주후 5세기 초 교부 제롬(St. Jerome)에 따르면, 주후 2세기 하드리아누스 황제(Hadrian)는 기독교 흔적을 지우고자 예수의 탄생 동굴을 아도니스에게 바쳐진 신성 동굴로 바꾸었다고 한다. 이후 주후 4세기 비잔틴 시대에는 이 자리에 탄생 동굴을 중심으로 교회가 세워졌다.

 

그러나 초기 교부 중에는 그 실제성을 반박하는 이도 있다. 그 진위가 어 떠한지를 백분 알 길은 없지만, 예수께서 어떠한 분위기 속에서 이 땅에 나셨는지는 느끼는 데는 크게 부족함이 없다. 군데군데 파인 바위틈이 동굴을 이루고 그 위에 돌과 나무, 진흙으로 얽어 만든 허름한 집. 저층이나 뜰에는 가축우리나 동굴이 있고 그 위로 사람이 어우러져 사는 궁색한 풍경이었으리라. 오늘날 팔레스타인의 아랍 전통 시골 마을에서는 아직도 이러한 형태의 집들을 찾아볼 수 있다.


고지대에 위치한 베들레헴 성읍을 벗어나 동쪽으로 약 2~3km 비탈을 따라 내려가면 깊이 굽이치는 계곡면을 따라 가축우리용 바위 동굴들을 자주 볼 수 있다. 목자의 들 판이라 불리는 이 지역은 멀리 더 동편으로 유대 광야와 사해로 이어지고 수천 년간 양 과 염소를 치며 때를 따라 꼴을 먹이던 곳이 다. 다윗의 증조모 룻은 이 근방 어딘가 보리밭에서 보아스를 만났으리라. 다윗은 양떼와 함께 이 들판을 누비며 “여 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감사의 찬양을 드렸다 (시편 23:1). 그리고 그로부터 1천여 년 시간이 흘러 같은 베들레헴 들녘 에서 천군 천사가 다윗의 자손 예수의 탄생을 기뻐하며 찬양한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눅 2:14)

 

예수의 생애 첫 나들잇길

 

아기 예수께서는 나신지 8일 만에 할례를 받으셨는데 이러한 규례는 오 늘날까지도 유대인들에게 이어져 내려온다. 또한 유대인 규례에 의하면 새로 태어난 첫 남자 아기는 하나님께 거룩하게 바쳐져야 했는데 이를 속 하기 위해 그 부모는 아기가 태어난 지 한 달 이후 성소에서 예물을 드렸 다(Pidyon haben)(출 13:12-15; 민 18:15-16).

 

“너는 무릇 초태생과 네게 있는 생축의 초태생을 다 구별하여 여호와께 돌리라 수컷은 여호와의 것이니라” (출 13:12)

 

아기 예수께서는 장자로서 이 규례를 지키기 위해 그 육신의 부모의 품에 안겨 예루살렘 성전을 향하셨다(눅 2:22-24). 베들레헴 성읍에서 서쪽으로 약 1km를 걸으면 예루살렘-헤브론를 잇는 고대 주요 길(족장 길)을 만난다. 이 길을 타고 남으로 내려가면 헤브론이 나오는데 거기서 더 남쪽 으로는 브엘세바가 이어지며 헤브론 서쪽으로는 지중해 가사(Gaza)에 이 른다. 가사에서 해안길을 따라 남서 방향으로는 이집트까지 이어지는데 요셉과 마리아가 아기 예수와 함께 헤롯의 칼을 피해 이집트로 내려갔던 루트다.

 

반면 베들레헴 지역 족장 길에서 북쪽으로 향하면 예루살렘에 이른다. 예루살렘으로 아기와 함께하는 여정은 서너 시간은 족히 걸렸을 것이다. 평화의 왕으로 오신 아기 예수께서는 평온히 주무시며 지나가셨을 테지 만, 오늘날 아랍 지역과 유대인 지역을 교차하는 이 길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민족 분쟁이라는 살벌한 정치적 현실 앞에 지날 때마다 긴장감이 감 돈다. 현재 팔레스타인 완전 자치구역인 베들레헴은 높고 삭막한 분리 장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현지 아랍인들은 삼엄한 체크포 인트 건물을 통해서만 출입 이 가능하다. 사람은 보이지 않고 목소리만을 통해 지시 하는 살벌한 체크포인트 건 물 내부의 풍경을 예수 당대 에는 상상조차 못했으리라. 예수께서 만일 오늘날 말씀하신다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간 평화 해법은 과연 무엇일까?


라헬의 무덤

체크포인트를 나오면 왼쪽으로 분리 장벽을 따라 라헬의 무덤이 보인다. 라 헬의 무덤은 이미 구약 시대부터 잘 알려진 랜드마크였다(삼상 10:2). 라헬의 진짜 무덤 위치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 리지만 이곳 베들레헴(=에브라다) 초입을 그 무덤의 위치로 생각하고 순례하는 전통은 오늘날까지 유대인뿐 아니라, 기독교인과 무슬림에게도 강하게 남 아 있다. 베들레헴 가는 길에 베냐민을 출산하다가 죽은 라헬은 유대인에 게는 자식을 위해 애통해하는 어머니를 상징하는 인물이다(창 35:16-20). 예레미야는 바벨론에 끌려가는 유다 자손들을 바라보며 그 비통함을 라헬의 마음에 빗대어 표현한다(렘 31:15). 마태는 헤롯에 의해 무고히 죽어간 베들레헴의 아기들을 동일한 어미의 비통함으로 애도한다(마 2:16-18).


누구의 죄 탓에 유다 자손이 포로가 되고 또 베들레헴 아기들이 무고히 죽임을 당하는가? 어머니의 애통함이 전해 내려오는 그곳을 지나며 아기 예수의 어머니의 심정은 얼마 후 예루살렘에서 만나게 될 시므온의 예언처럼 이미 무언가를 예감했을까?

 

“시므온이 그들에게 축복하고 그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여 이르되 보라 이는 이스 라엘 중 많은 사람을 패하거나 흥하게 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받 았고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니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하더라” (눅 2:35-36)

 

자식이 힘든 세상을 살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어머니의 본능이다. 초저 출산 대한민국. 그만큼 오늘날 살기가 너무 힘든 세상이 되어 버렸다. 자 신의 태어남을 저주했던 욥처럼 누가 나를 이 힘든 땅에 태어나게 했냐고 항변하는 세상의 모든 자식들. 그런 자식의 모습을 보며 가장 고통스러워 하는 어머니. 그러나 예수는 스스로 이 땅에 오기를 자처하셨고 또 자신을 기꺼이 내어주기로 결심하셨다.

 

힌놈의 골짜기

 

베들레헴 지역을 벗어나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고대 도로는 유다 산지 의 분수령을 타고 간다. 서편으로는 상대적으로 풍부한 강수량 탓에 푸르 른 산지를 볼 수 있으나 동편으로는 척박한 유다 광야가 펼쳐진다. 베들레헴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 중간쯤에 라맛 라헬(Ramat Rachel)이라는 언덕이 나온다. 베들레헴-예루살렘 루트에서 가장 높이 솟아 있는 지점 (819m)인데 구약의 성읍 벧학게렘(렘 6:1; 느 3:14)으로 보기도 한다.


이 언덕을 오른쪽으로 바라보며 평평하게 펼쳐지는 고대 길을 한 시간 정도 걸으면 성큼 다가온 예루살렘 성벽 앞을 힌놈의 골짜기(the Valley of Hinnom)가 막아선다. 힌놈의 골짜기 서편으로는 야트막이 르바임 골 짜기가 시작되어 서남쪽으로 갈수록 깊은 골짜기를 이룬다. 르바임 골짜기(the Valley of Rephaim)는 사사시대와 왕국시대 초기 블레셋 사람들이 강성했던 때에 산지에 사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정복하기 위한 블레셋 의 주요 침공 루트였다.

 

힌놈의 골짜기는 고대 예루살렘의 서쪽과 남쪽을 두르는 넓고 깊은 천연 해자와 같아서 예루살렘 성읍의 남쪽과 서쪽 면을 든든히 수호한다. 힌놈의 골짜기 서쪽은 오늘날 야외 문화공연 공간 등으로 사용되지만 예수 시 대에는 베들레헴 인근과 헤브론 산지로부터 끌어온 물을 저장하는 거대한 물 저장소가 있었다. 헬라 시대와 로마 시대를 거치면서 예루살렘이 거대 도시화 되자 식수난을 해결하기 위해 고안한 하스모니안식 그리고 로마식 방책이다.게헨나(Gehenna) 혹은 게헨놈(Gehennom)은 ‘힌놈의 골짜기’라는 뜻이다. 이 계곡에서 구약과 신약 시대에 걸쳐 몰렉(Moloch/Molech)에 자식을 태워 바친다던가 시체나 사체, 쓰레기를 태우는 등 부정적 이미지가 축적되면서 게헨나/게헨놈은 일반 명사화되어 ‘지옥’을 지칭하는 단어로 사용하게 된다. 예수께서 사용하셨던 ‘지옥’이라는 단어도 원어 성경에는 ‘게헨나’로 표시된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마 10:28)

 

계곡 사이로 우뚝 솟은 예루살렘을 마주보며 힌놈의 골짜기 맞은편 남 서쪽 비탈에는 오늘날 스코틀랜드 교회(St. Andrew’s Scots Memorial Church)가 자리 잡고 있다. 고대 도로는 이 부근에서 계속 북쪽으로 향하 여 기브아, 벧엘, 세겜으로 이어진다. 그리나 이 대로를 따라 고대 예루살렘 동쪽 성문을 통과하기보다는 힌놈의 골짜기로 내려가 남쪽 와디길을 따라 예루살렘 남쪽 성문으로 들어가는 것이 성전으로 가기 더 수월하다. 예수 가족도 아마 후자의 루트를 택했을 것이다.

 

예루살렘 계단 거리

 

예루살렘 남동쪽은 힌놈의 골짜기와 기드론 골짜기가 만나는 지점이 다. 예루살렘 성내에서 가장 낮은 지대로 성안의 모든 물이 모여 성밖으로 흘러 나가는 지역이다. 물이 풍부하여 구약 시대에는 왕의 동산이 있었 다. 신약 시대에 이곳에 성문이 있어 남쪽에서 성전산을 향해 올라갈 수 있었는데 혹자는 수문, 또 혹자는 에센문이라고 생각하나 분명치 않다. 훗 날 겟세마네로 마지막 기도를 하러 가실 때 지나셨던 바로 그 문. 아기 예 수 가족은 이 문을 통해 예루살렘 성내로 들어갔을 것이다. 성안으로 들어서며 곧 널찍하게 펼쳐지는 연못이 실로암이다. 그 너머로 쭉 뻗은 넓은 계단식 도로(Stepped street)는 중앙 계곡(Tyropoeon Valley)을 따라 약 600m가 이어져 성전산 축대 남서쪽 귀퉁이로 향한다.

 

오늘날 발굴을 통해 실로암 연못 인근에서부터 이 길 구간 일부가 잘 드 러나 있는데, 약 8m 너비의 잘 다듬은 도로와 함께 그 아래 하수 시설도 잘 갖추어져 있는 모습이다. 발견되는 동전과 토기 조각으로 볼 때 이 도 로는 예수 시대에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600m 거리 동안 약 80m 고 도차를 보이는 가파른 이 계단 거리를 아기 예수와 함께 올라야 했기에 요 셉과 마리아에게도 절대 쉽지 않은 길이었을 것이다.

 

많은 인파로 붐비었을 이 도로는 성전이나 회당을 오를 때의 계단, 그리 고 순례길에서 보이는 계단과 유사한 형태를 보이는데, 짧은 두 계단을 오른 후 길고 평평한 하나의 계단을 몇 발짝 내딛는 방식이다. 이는 순례나 절기 때 제의 의식과 연관된 것으로 보인다. 『미슈나』에 의하면 장막절 중에 실로암 연못에서 물을 길어 성전으로 가지고 올라가 성전 뜰에서 쏟아 붓는 의식(Simchat Beit Hashoevah)을 행하는데 이러한 제의의 배경이 바로 이 계단 거리이다(Mishnah Sukkah 4:9-10). 이 제의를 통해서 유대인들은 하나님께 적절한 시기에 비를 주시기를 간구했으며, 성전산 뜰 에서는 이 의례 기간에 많은 무리가 모여 각양 악기를 동원하여 기쁨의 찬양을 노래하며 춤을 추었다고 한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삶의 갈증을 풀어 주실 이는 예수 당신뿐이라고 말씀하신다.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요 7:37-38)

이 도로를 따라 성전산 쪽으로 오르다 보면 오른편으로는 조밀한 구시 가지 옛 다윗성 지역이 보이고 왼편으로는 화려한 상류층의 윗도시가 높이 자리 잡고 있다. 길 주변으로는 성전에 쓸 각종 물건 파는 자나 담소를 나누는 자, 구걸하는 자 등으로 왁자지껄한 분위기였을 것이다. 그 사이를 한 맹인이 진흙을 눈에 붙이고 실로암으로 더듬더듬 걸어가는 모습도 보 이는 듯하다. 예수의 부모도 이 길 어딘가에서 비둘기 두 마리를 장자의 규례를 위한 제사 예물로 구입했을지도 모르겠다(눅 2:24).

 

예루살렘 성전


가파른 계단 거리를 다 올라가 거대한 성전산 축대에 다다른 순례객은 축대 남쪽 앞에 설치된 정결례탕에서 정결 예식을 행한다. 이후 넓게 펼쳐 진 계단을 올라 문들(Huldah Gates)을 통해 축대 내 지하통로로 이어지 며 성전산 뜰로 들어가게 된다. 오늘날 이 문들은 모두 막혀 있지만, 서편에는 이중문(Double gate), 동편에는 삼중문(Triple gate)의 흔적이 아직 남아 있 다. 이 문들을 통칭하여 신약시대에는 훌 다문(Huldah gates)이라 불렀다. 예수 가족은 이 문 중 하나를 거쳐 지하 통로 를 지나 성전산 뜰에 오르게 된다. 그리 고 거기서 의인 시므온과 여선지자 안나를 차례로 만난다(눅 2:25-38).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 (눅 2:30-32)


헤롯 대왕이 유대인들의 마음을 사기 위해 리모델링한 화려한 성전. 헤롯 성전이라고도 불리는 이 건물과 주변 시설물은 당대 유대인의 자랑이 었다(눅 21:5-6). 드넓은 성전산 뜰 중앙부에서 서쪽으로 좀 더 치우쳐 서 있는 성전 주위로는 이방인의 출입을 금하는 벽이 둘러쳐져 있었다. 이 담 장을 통과하여 경내로 들어가면 여인의 뜰(Court of the Women)에 들어 서는데 통상 여인들은 이 공간에 머물렀다. 더 안쪽으로 유대인 남성들은 이스라엘의 뜰(Court of Israel)이라 불리는 공간에서 머물렀다. 그리고 가장 안쪽 성전 건물 바로 앞 제사장의 뜰에서는 제사가 행해졌는데, 요셉 이 장자 예수를 위한 규례용으로 가져온 비둘기 한 쌍도 이곳에서 제물로 바쳐졌을 것이다.

 

이제 매년 오게 될 성전에서 하나님 아버지를 뵙는 가장 귀한 첫 시간, 첫 예물. 그러나 초라해 보이는 비둘기 한 쌍 뿐이었다. 초라한 구유의 탄생, 소박한 첫 제물, 평범한 목수의 아들, 목수의 삶. 그리고 비참한 십자가의 죽음. 그렇게 살기로 결심하신 예수의 삶의 여정이다. 초라함을 부끄러워 하는 이 시대와는 전혀 다른 하나님 아들의 선택이다. 


2024. 01. 01

출처: 교회성장연구소(portal.icg21.com/board/board.php?bbs_id=humanities&ptype=view&kbbs_doc_num=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