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주원규/초능력에 관한 예의/주간기독교


박인제, 박윤서 연출 《무빙》

 

최근 디즈니플러스를 통해 시작한 오리지널 시리즈 드라마 《무빙》은 초능력이란 거창한 주제가 소박한 능력의 활용으로 이용되는 걸 볼 수 있다. “나르는 돈가스.”란 심상찮은 별명에서부터 그렇다. 김두식(조인성 역)은 하늘을 나는 초능력을 보유했다. 초능력의 수준으로만 보면 엄청나 보이는데, 그는 이 초능력을 야근하는 이미현(한효주 역)에게 돈가스를 신속 배달하는 데 사용한다.

이는 기존에 등장하는 초능력물이 가진 거창함, 위대함을 뿌리에서부터 부정하고 새롭게 그리는 비틀기로 볼 수 있다. 오리지널 시리즈 《무빙》이 엄청난 초능력자들을 통해 그리려 하는 것은 악마를 물리치거나 세상 끔찍한 악당을 심판하는 일과 거리를 둔다. 또한, 그 반대로 빌런의 입장에서 세상을 파괴하고 엄청난 악의 수렁으로 몰아넣는 일과도 다르다고 볼 수 있다. 한마디로 소박한 우리 일상의 영역으로 초능력이 내려앉은 것이다.또한, 이 드라마에서 그리는 초능력은 일상에서의 소박함을 바탕으로 연대하고 함께 나누는 정서를 표출한다.

안기부라는 과거 한국 영화나 드라마에 단골처럼 등장하는 소재가 있다. 어둠의 악을 척결한다는 거창한 명분을 가진 안기부 요원들이 중국 연변의 한 호텔을 찾는다. 그곳에서 안기부 요원들은 조선족으로 위장해 첩자 활동을 하는 이들을 소탕하면서 상상 이상의 잔인한 행위를 시작한다. 대의를 위해 일상의 모든 루틴이나 규칙쯤은 우습게 뭉갤 수 있다는 폭력의 정당화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그런데, 미현은 이 지점에서 끔찍한 안기부 요원들의 만행을 그와 같은 수준의 만행으로 돌려주지 않는다. 그녀는 최루탄 대신 섬광탄을 사용해 호텔에 모인 모든 이들이 일시적으로 사물을 식별하기 어렵게 만든다. 그 틈을 타 잠긴 문을 열고 퇴로를 마련해주는 대목은 초능력물이 우리에게 보여준 권선징악의 보편성에 비틀기를 시도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미현은 뛰어난, 상상을 초월하는 오감의 소유자로서 엄청난 시력과 청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보지 못하는 걸 보고 듣지 못하는 걸 듣는 능력을 보유한 존재로서 얼마든지 그 능력을 활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 능력을 타인의 마음을 읽거나 함께 공감하는 데 사용한다. 언뜻 보면 이해하기 힘든 초능력의 활용이다. 평소 김두식과의 관계에서 그 부분이 두드러진다. 김두식의 수줍은 마음을 읽기 위해 초자연적인 능력의 청력으로 그의 심장 박동 소리를 들으면서 마음의 물결을 파악한다. 또한, 엄청난 시력을 활용해 사람들의 아프고 피폐한 세계의 다른 면을 들여다보고 그 어두운 세계가 세계의 전부가 아니라는 걸 속삭이듯 말해준다. 뛰어난 시력과 청력이 가진 영웅적인 능력을 그녀 미현은 새로운 세계, 공감의 세계를 열어젖히는 데 사용한 것이다.

미현의 이러한 공감의 손 건넴으로 인해 두식 역시 변화를 맞이한다. 앞서 말한 휴머니스트로의 전환이 이뤄진 것이다. 조선족들을 살해하는 것이 그에게 주어진 당연한 초능력자의 숙명이었지만, 그는 꼭 살해하는 것만이 자신에게 주어진 방법의 최선이 아님을 분명히 한다. 사람이라면 상상하기 마련인 초능력이라는 일상을 뛰어넘는 엄청난 능력을 지녔다면, 분명 일상보다 훨씬 멋지고 뛰어난 가치를 소유하고 확장하는 데 사용하는 걸 기대할 것이다. 하지만 미현을 통해 초능력으로 일상을 위무하고 일상에서 오히려 새로운 세계를 발견할 수 있다는 걸 깨달은 그는, 간단하게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그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다른 길을 선택한다. 모든 사람의 일상에 스며드는 일 말이다.

그렇듯 드라마 《무빙》은 초능력자들이 펼치는 놀라운 능력 과시와 스펙터클, 거창한 영웅 이야기에 주목하지 않는다. 드라마는 이보다 더 중요한 주제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며 그 주제의식을 밀고 나가는데 바로 초능력자들의 존재 이유가 더 강한 세계로의 나섬이 아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우리 삶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남다른 힘은 우리에게 짜릿하고 더 많은 것을 상상하게 하는 도구로 작용한다. 하지만, 드라마 《무빙》은 오히려 그 반대를 묻고 있다. 더 많은 것을 상상하고 더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공허할 수 있지 않냐고, 그보다 더 의미 있는 건 초능력이란 소재를 상상하게 하는 우리가 진짜 생각해야 할 주제는 인간다움에 관한 질문이 아니냐고. 그것이 바로 우리가 상상하는 초능력에 관한 예의가 아니냐고 묻고 있다.

출처 : 주간기독교(http://www.cnews.or.kr/news/articlceView.html?idxno=2464)


2023. 08.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