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에 나타난 '가난한 자'
하경택 교수(장신대 구약학)
성경에서 ‘가난한 자’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각 본문에서 매우 의미 있게 사용된다. 그러나 ‘가난한 자’에 대한 폭넓은 이해가 있지 않으면 그 러한 본문들의 연관 관계를 알 수 없다. ‘가난한 자’에 대한 바른 이해를 할 수 없다. 따라서 본 글에서 구약성경에 나타난 ‘가난한 자’의 의미를 살핌 으로써 ‘가난한 자’에 대한 이해를 도울 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전하 신 복음의 의미와 ‘가난한 자’를 통해 전해지는 교훈이 무엇인지를 알아보 고자 한다.
‘가난한 자’를 표현하는 히브리어는 여러 가지가 있다. 대표적인 것이 복 수로 나타나는 <아나빔>이다. 이것은 <아나> II 동사에서 파 생된 말로서 기본적으로 ‘가난하고 궁핍하며 압제와 괴롭힘을 당하는 상 황’에 있는 사람들을 가리킨다.1) 일차적으로 사회·경제·정치적 차원에서 소외당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로 나타난다.2) 그들은 삶의 적 대적인 환경과 처지에서 곤경을 당하고 죽음의 위협 속에 있는 사람이다.3)
<아나빔>과 같은 의미로 <아나브>와 <아니> / <오니>라는 표현이 있다. 또한 <에브욘>이나 <달> 도 있다. 가난한 자로 표현된 사람들을 사회적 신분 이나 상황을 따라 분류해 보면 고아, 과부, 나그네 (출 22:21이하; 신 24:19-21), 병든 자(시 146:7-9), 갇힌 자(시 68:6, 69:33; 욥 36:8), 빚진 자(삼
상 22:2), 품꾼(레 19:13; 신 24:14) 등 다양한 그룹 들의 사람으로 나타난다.4)
이러한 ‘가난한 자’를 가장 잘 표현하는 본문이 시 편에 자주 등장한다. 시편 72편은 ‘제왕시’로 분류 되는 시편으로서 왕을 위한 기도를 보여준다. 시편
72편의 시인은 이 기도에서 왕이 해야 할 일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4절 그가 백성의 가난한 자들을 판결하며, 궁핍한 자의 자손들을 구원하고, 압박하는 자를 쳐부술 것입니다.
12절 참으로, 그는 도와 달라 부르짖는 궁핍한 자( )를 구해주며, 그를 도울 자 없는 가난한 자를 구할 것입니다.
13절 그는 약하고 궁핍한 자( )를 불쌍히 여기며, 궁핍한 자들의 목숨을 건질 것입니다.
왕이 펼쳐야 할 공평과 정의가 가난한 자, 즉 도울 자 없는 약한 자와 궁 핍한 자를 돕고 구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또한 시편 82편은 ‘야훼-제왕시’로 분류되는 시편으로서 하나님이 ‘신들’의 모임 가운데 서 셔서 그들을 재판하시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5)
3절 가난한 자와 고아에게 공평하게 하며,
곤궁한 자와 빈곤한 자에게 공의를 베풀어라.
4절 가난한 자과 궁핍한 자를 구하고, 악인들의 손으로부터 건져내라.
여기에 등장하는 가난한 자, 고아, 곤궁한 자, 빈곤한 자, 궁핍한 자 등은 동일 계열의 사람을 나타내는 표현들로서 이스라엘의 가 난한 자를 ‘총체적으로’ 보여준다. 두 곳 모두 에서 ‘가난한 자’는 법의 보호 밖에 있는 자, 곧 ‘권리 없는 자(Rechtlos)’로서 어떤 영향
력이나 신분적 배경이 없어 무제한의 힘을 가지고 있는 대적들의 처분만 을 기다리는 연약한 사람들을 가리킨다.6) 이들은 사회적 약자, 소외계층을 대표하고 타인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람들이다. 두 시편은 이들 의 권익을 지켜주고 되살려 주는 것이 왕과 재판관들과 힘을 가진 자들이 수행해야 할 본연의 임무임을 깨닫게 한다.
왕이나 권력자들이 가지는 이러한 책무는 사실상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모습이기도 하다. 시편 146편은 ‘할렐루야 찬양시’로서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가를 잘 보여준다.
7절 그는 압제받는 자들을 위하여 공의를 행사하시며, 굶주린 자들에게 양식을 주신다.
야훼께서는 갇힌 자들을 놓아 주시며, 8절 야훼께서는 맹인들의 눈을 여시고,
야훼께서는 엎드린 자들을 일으키시며, 야훼께서는 의인들을 사랑하신다.
9절 야훼께서는 나그네들을 지키시며,
고아와 과부를 도와 일으키시고, 악인들의 길은 꺾으신다.
여기에서 야훼 하나님은 굶주린 자, 갇힌 자, 맹인들, 엎드린 자, 나그네, 고아, 과부를 돌보신다. 하나님은 그들의 고통과 곤궁을 아시고, 그들의 결 핍을 채워주신다. 굶주린 자에게는 양식을 주시고, 갇힌 자는 놓이게 하시 고, 맹인들은 눈을 뜨게 하고, 엎드린 자는 일으켜 세우며, 나그네와 고아 와 과부를 보호하신다. 여기에 등장하는 다양한 표현들도 ‘가난한 자’에 포 함시킬 수 있는 동일 계열의 사람들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시편 72편 과 82편에서 왕이나 ‘신적 권위를 가진 사람’이 실행해야 하는 가난한 자를 위한 공평과 정의는 사실상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대행하는 ‘하나님 닮 아가기(Imitatio Dei)’임을 알 수 있다.7)
또한 여기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이러한 가난한 자를 ‘의인들’(8절)과 동 일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동시에 이들을 압제하는 사람들은 ‘악인들’(9절) 로 지칭되고 있다. 이것은 ‘가난한 자’가 사회·경제·정치적 의미를 넘어서 는 영적·신학적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8) 실제로 시편을 비롯한 구약성경의 여러 본문에서 가난한 자들은 ‘스스로 가진 게 아무것도 없어서 모든 것을 하나님께 기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며, ‘깊은 절망 감 속에서 야훼 앞에 나와서 개입해 주고 구원해 주기를 간구하는’ 사람들 을 가리킨다.9) 따라서 ‘가난한 자들’로 번역된 ‘아나브’는 ‘아니’
/‘오니’와 같은 동의어적인 표현들과 함께 ‘곤고한 자’(시 18:27, 22:24, 69:32), ‘궁핍한 자’(겔 16:49; 슥 7:10; 습 3:12; 시 82:3-4), ‘온
유한 자’(민 12:3; 시 37:11, 76:9), ‘겸손한 자’(사 11:4; 습 2:3; 슥 9:9;
시 147:6) 등으로 번역된다. 또한 ‘의로운 자’(시 1:5이하, 34:16, 37:17, 29, 39; 69:29, 97:12, 125:3, 146:8), ‘신실한 자’(시 30:5, 31:24,
52:11, 79:2, 85:9, 89:20, 97:10, 116:15, 148:14, 149:1, 5, 9), ‘야훼
를 경외하는 자’(시 15:4, 22:24, 33:8, 103:17, 115:11, 118:4), ‘마음이
정직한 자’(시 7:11, 11:2, 32:11, 36:11, 64:11, 94:15, 97:11)와 동일시
되기도 한다.10)
이렇게 ‘가난한 자’가 ‘의인’ 혹은 ‘경건한 자’의 그룹으로 분류될 수 있 는 이유는 무엇인가?11) 그것은 ‘가난한 자’가 다음과 같은 이중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구약성경에서 ‘가난한 자’는 한편으로 ‘자신이 가진 결핍으로 인해 고통을 당하는 자’를 의미하고, 다른 한편으로 ‘세상에서는 가진 것이 없어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의 대상으로 삼는 자’를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가난한 자’는 ‘자신이 가진 결핍으로 인해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겸손하고 온유하며, 신실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의 사람’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러한 가난한 자의 의미를 잘 알 수 있는 본문이 이사야 61장 1-2절이 다. 이 본문은 야훼의 종으로 부름을 받은 사람이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 를 고백하고 있다.12)
1절 주 야훼의 영이 내 위에 있다.
왜냐하면 야훼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셨기 때문이다.
가난한 자들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도록 그가 나를 보내셨다. 마음이 상한 자들을 싸매기 위해,
포로된 자들에게 자유를 선포하기 위해, 갇힌 자들에게 열림을 (선포하기 위해).
2절 야훼의 기쁨의 해를 선포하기 위해,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기 위해), 모든 우는 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여기에서 야훼의 종은 ‘가난한 자들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것’이 부르심을 받고 보냄을 받은 목적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 다양한 사 람들에게 전해지는 복된 소식의 내용을 열거한다. 마음이 상한 자들을 싸 매고, 포로된 자들에게 자유를 선포하며, 갇힌 자들에게 열림이 선포되고, 모든 우는 자들을 위로하는 ‘복음’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마음이 상한 자 들’, ‘포로된 자들’, ‘갇힌 자들’, ‘우는 자들’은 시편 본문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동일 계열의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들로서 ‘가난한 자’에 대한 다양한 은유적 표현이다. 야훼의 종은 하나님이 자신을 부르신 것이 이러한 사람 들을 싸매고, 위로하고, 그들에게 자유와 열림을 선포하기 위한 것임을 분명하게 선언한다. 이러한 점에서 예수께서 나사렛 회당에서 이사야의 글 가운데 이곳을 찾아 읽으시고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신 것(눅 4:16-21)은 매우 큰 의미가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예수님 의 사명이 무엇이며, 예수님이 이루고자 하였던 바가 무엇임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예수님은 이사야 61장에서 묘사된 야훼의 종의 사명을 온전히 이루신 삶을 사셨다. 예수님의 삶을 한마디 말로 요약하면 ‘가난한 자에게 전파되는 복음’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예수님과 관련하여 살펴볼 ‘가난한 자’ 본문은 민수기 12장 3절과 스 가랴 9장 9절이다. 민수기 12장 3절은 다음과 같다. “이 사람 모세는 온 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여기에서 ‘온유함’이라고 번역 된 히브리 낱말은 ‘아나브’이다. 이것은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가 난한 자’로 번역될 수 있는 낱말이다. 이 낱말이 70인경에서는 ‘프라우스'로 번역되어 있다. 또한 스가랴 9장 9절은 장차 시온, 곧 예루살 렘에 임하실 메시아 왕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분은 공의롭고 겸손한 자라고 소개한다. 겸손한 자로 번역된 ‘아니’라는 낱말도 ‘가난한 자’로 번역될 수 있는 낱말이며, 70인경에서는 민수기 12장 3절 에서처럼 ‘프라우스’로 번역되어 있다. 이와 관련하여 신약성경 에서는 예수님이 예루살렘 입성하시는 모습을 스가랴 예언의 성취라고 보 도하고 있고(마 21:4-5; 요 12:15), 예수님이 자신을 소개하실 때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라고 말씀하신다. 이때 구약의 두 본문에서 각각 ‘가난한 자’를 의미하는 ‘온유한 자’와 ‘겸손한 자’ 로 번역된 ‘프라우스’가 등장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예수님은 ‘가난 한 자’였다고 말할 수 있다.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오신 ‘가난한 자’였다. 그러한 의미에서 예수님의 복음은 ‘가난한 자가 가난한 자에게 전하는 복음’이라 말할 수 있다.
이처럼 ‘가난한 자’는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에서 소홀이 여겨서는 안 될 중요한 신학적 개념이다. 가난한 자에 대한 이해가 바르게 되어 있다면 산 상수훈 중 ‘팔복 선언’이라 일컫는 예수님의 말씀(마 5:3-12)도 이해하기 가 쉬워진다. 다양한 표현으로 등장하는 대상들, 즉 ‘애통하는 자’, ‘온유 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긍휼히 여기는 자’, ‘마음이 청결한 자’, ‘화평하게 하는 자’,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 모두 ‘가난한 자’ 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 다. 또한 이들에게 약속된 다양한 복들, 즉 위로를 받고 배부르며, 긍휼히 여김을 받고 하나님을 보 며,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 것이 모두 ‘천국’, 즉 하나님 나라의 삶을 의미한다는 사실도 알 수 있게 된다.
이러한 ‘가난한 자’에 대한 고찰을 통해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첫째, ‘가난한 자’를 압제하지 말고 돌보라는 것이다.
이것은 ‘자신이 가진 결핍으로 인해 고통을 당하는 자’라는 가난한 자의 첫 번째 특징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여전히 우리 사회와 주변에는 가난한 자가 많이 있다. 다양한 결핍을 통해서 돌봄과 보호가 필요한 사람들이다. 이러한 사회의 약자들을 돌보는 것이 하나님을 닮아가야 할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어진 책무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둘째, ‘가난한 자’가 되라는 것이다. 이것은 ‘세상에서는 가진 것이 없어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의 대상으로 삼는 자’라는 가난한 자의 두 번째 특징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이때 가난한 자는 자신의 결핍을 깊이 인식하는 자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마음이 상하고 깨진 자이다. 하지만 그 사람은 자신의 결핍에 머물러 있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본다. 그럴 때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겸손하고 온유하며, 신실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다.
셋째, ‘가난한 자’의 하나님을 기대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가난한 자 를 돌보시는 분이다. 그들의 고통과 곤궁을 아시고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 기를 즐겨하시는 분이다. 이러한 하나님을 기대할 때 두 가지가 가능하다. 하나는 ‘가난한 자’에 대해서 올바로 반응할 수 있고, 다른 하나는 자신이 ‘가난한 자’로서 올바로 살아갈 수 있다.
2024. 02. 01
출처:교회성장연구소(portal.icg21.com/board/board.php?bbs_id=humanities&ptype=view&kbbs_doc_num=97)
구약성경에 나타난 '가난한 자'
하경택 교수(장신대 구약학)
성경에서 ‘가난한 자’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각 본문에서 매우 의미 있게 사용된다. 그러나 ‘가난한 자’에 대한 폭넓은 이해가 있지 않으면 그 러한 본문들의 연관 관계를 알 수 없다. ‘가난한 자’에 대한 바른 이해를 할 수 없다. 따라서 본 글에서 구약성경에 나타난 ‘가난한 자’의 의미를 살핌 으로써 ‘가난한 자’에 대한 이해를 도울 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전하 신 복음의 의미와 ‘가난한 자’를 통해 전해지는 교훈이 무엇인지를 알아보 고자 한다.
‘가난한 자’를 표현하는 히브리어는 여러 가지가 있다. 대표적인 것이 복 수로 나타나는 <아나빔>이다. 이것은 <아나> II 동사에서 파 생된 말로서 기본적으로 ‘가난하고 궁핍하며 압제와 괴롭힘을 당하는 상 황’에 있는 사람들을 가리킨다.1) 일차적으로 사회·경제·정치적 차원에서 소외당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로 나타난다.2) 그들은 삶의 적 대적인 환경과 처지에서 곤경을 당하고 죽음의 위협 속에 있는 사람이다.3)
<아나빔>과 같은 의미로 <아나브>와 <아니> / <오니>라는 표현이 있다. 또한 <에브욘>이나 <달> 도 있다. 가난한 자로 표현된 사람들을 사회적 신분 이나 상황을 따라 분류해 보면 고아, 과부, 나그네 (출 22:21이하; 신 24:19-21), 병든 자(시 146:7-9), 갇힌 자(시 68:6, 69:33; 욥 36:8), 빚진 자(삼
상 22:2), 품꾼(레 19:13; 신 24:14) 등 다양한 그룹 들의 사람으로 나타난다.4)
이러한 ‘가난한 자’를 가장 잘 표현하는 본문이 시 편에 자주 등장한다. 시편 72편은 ‘제왕시’로 분류 되는 시편으로서 왕을 위한 기도를 보여준다. 시편
72편의 시인은 이 기도에서 왕이 해야 할 일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4절 그가 백성의 가난한 자들을 판결하며, 궁핍한 자의 자손들을 구원하고, 압박하는 자를 쳐부술 것입니다.
12절 참으로, 그는 도와 달라 부르짖는 궁핍한 자( )를 구해주며, 그를 도울 자 없는 가난한 자를 구할 것입니다.
13절 그는 약하고 궁핍한 자( )를 불쌍히 여기며, 궁핍한 자들의 목숨을 건질 것입니다.
왕이 펼쳐야 할 공평과 정의가 가난한 자, 즉 도울 자 없는 약한 자와 궁 핍한 자를 돕고 구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또한 시편 82편은 ‘야훼-제왕시’로 분류되는 시편으로서 하나님이 ‘신들’의 모임 가운데 서 셔서 그들을 재판하시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5)
3절 가난한 자와 고아에게 공평하게 하며,
곤궁한 자와 빈곤한 자에게 공의를 베풀어라.
4절 가난한 자과 궁핍한 자를 구하고, 악인들의 손으로부터 건져내라.
여기에 등장하는 가난한 자, 고아, 곤궁한 자, 빈곤한 자, 궁핍한 자 등은 동일 계열의 사람을 나타내는 표현들로서 이스라엘의 가 난한 자를 ‘총체적으로’ 보여준다. 두 곳 모두 에서 ‘가난한 자’는 법의 보호 밖에 있는 자, 곧 ‘권리 없는 자(Rechtlos)’로서 어떤 영향
력이나 신분적 배경이 없어 무제한의 힘을 가지고 있는 대적들의 처분만 을 기다리는 연약한 사람들을 가리킨다.6) 이들은 사회적 약자, 소외계층을 대표하고 타인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람들이다. 두 시편은 이들 의 권익을 지켜주고 되살려 주는 것이 왕과 재판관들과 힘을 가진 자들이 수행해야 할 본연의 임무임을 깨닫게 한다.
왕이나 권력자들이 가지는 이러한 책무는 사실상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모습이기도 하다. 시편 146편은 ‘할렐루야 찬양시’로서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가를 잘 보여준다.
7절 그는 압제받는 자들을 위하여 공의를 행사하시며, 굶주린 자들에게 양식을 주신다.
야훼께서는 갇힌 자들을 놓아 주시며, 8절 야훼께서는 맹인들의 눈을 여시고,
야훼께서는 엎드린 자들을 일으키시며, 야훼께서는 의인들을 사랑하신다.
9절 야훼께서는 나그네들을 지키시며,
고아와 과부를 도와 일으키시고, 악인들의 길은 꺾으신다.
여기에서 야훼 하나님은 굶주린 자, 갇힌 자, 맹인들, 엎드린 자, 나그네, 고아, 과부를 돌보신다. 하나님은 그들의 고통과 곤궁을 아시고, 그들의 결 핍을 채워주신다. 굶주린 자에게는 양식을 주시고, 갇힌 자는 놓이게 하시 고, 맹인들은 눈을 뜨게 하고, 엎드린 자는 일으켜 세우며, 나그네와 고아 와 과부를 보호하신다. 여기에 등장하는 다양한 표현들도 ‘가난한 자’에 포 함시킬 수 있는 동일 계열의 사람들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시편 72편 과 82편에서 왕이나 ‘신적 권위를 가진 사람’이 실행해야 하는 가난한 자를 위한 공평과 정의는 사실상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대행하는 ‘하나님 닮 아가기(Imitatio Dei)’임을 알 수 있다.7)
또한 여기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이러한 가난한 자를 ‘의인들’(8절)과 동 일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동시에 이들을 압제하는 사람들은 ‘악인들’(9절) 로 지칭되고 있다. 이것은 ‘가난한 자’가 사회·경제·정치적 의미를 넘어서 는 영적·신학적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8) 실제로 시편을 비롯한 구약성경의 여러 본문에서 가난한 자들은 ‘스스로 가진 게 아무것도 없어서 모든 것을 하나님께 기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며, ‘깊은 절망 감 속에서 야훼 앞에 나와서 개입해 주고 구원해 주기를 간구하는’ 사람들 을 가리킨다.9) 따라서 ‘가난한 자들’로 번역된 ‘아나브’는 ‘아니’
/‘오니’와 같은 동의어적인 표현들과 함께 ‘곤고한 자’(시 18:27, 22:24, 69:32), ‘궁핍한 자’(겔 16:49; 슥 7:10; 습 3:12; 시 82:3-4), ‘온
유한 자’(민 12:3; 시 37:11, 76:9), ‘겸손한 자’(사 11:4; 습 2:3; 슥 9:9;
시 147:6) 등으로 번역된다. 또한 ‘의로운 자’(시 1:5이하, 34:16, 37:17, 29, 39; 69:29, 97:12, 125:3, 146:8), ‘신실한 자’(시 30:5, 31:24,
52:11, 79:2, 85:9, 89:20, 97:10, 116:15, 148:14, 149:1, 5, 9), ‘야훼
를 경외하는 자’(시 15:4, 22:24, 33:8, 103:17, 115:11, 118:4), ‘마음이
정직한 자’(시 7:11, 11:2, 32:11, 36:11, 64:11, 94:15, 97:11)와 동일시
되기도 한다.10)
이렇게 ‘가난한 자’가 ‘의인’ 혹은 ‘경건한 자’의 그룹으로 분류될 수 있 는 이유는 무엇인가?11) 그것은 ‘가난한 자’가 다음과 같은 이중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구약성경에서 ‘가난한 자’는 한편으로 ‘자신이 가진 결핍으로 인해 고통을 당하는 자’를 의미하고, 다른 한편으로 ‘세상에서는 가진 것이 없어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의 대상으로 삼는 자’를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가난한 자’는 ‘자신이 가진 결핍으로 인해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겸손하고 온유하며, 신실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의 사람’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러한 가난한 자의 의미를 잘 알 수 있는 본문이 이사야 61장 1-2절이 다. 이 본문은 야훼의 종으로 부름을 받은 사람이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 를 고백하고 있다.12)
1절 주 야훼의 영이 내 위에 있다.
왜냐하면 야훼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셨기 때문이다.
가난한 자들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도록 그가 나를 보내셨다. 마음이 상한 자들을 싸매기 위해,
포로된 자들에게 자유를 선포하기 위해, 갇힌 자들에게 열림을 (선포하기 위해).
2절 야훼의 기쁨의 해를 선포하기 위해,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기 위해), 모든 우는 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여기에서 야훼의 종은 ‘가난한 자들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것’이 부르심을 받고 보냄을 받은 목적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 다양한 사 람들에게 전해지는 복된 소식의 내용을 열거한다. 마음이 상한 자들을 싸 매고, 포로된 자들에게 자유를 선포하며, 갇힌 자들에게 열림이 선포되고, 모든 우는 자들을 위로하는 ‘복음’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마음이 상한 자 들’, ‘포로된 자들’, ‘갇힌 자들’, ‘우는 자들’은 시편 본문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동일 계열의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들로서 ‘가난한 자’에 대한 다양한 은유적 표현이다. 야훼의 종은 하나님이 자신을 부르신 것이 이러한 사람 들을 싸매고, 위로하고, 그들에게 자유와 열림을 선포하기 위한 것임을 분명하게 선언한다. 이러한 점에서 예수께서 나사렛 회당에서 이사야의 글 가운데 이곳을 찾아 읽으시고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신 것(눅 4:16-21)은 매우 큰 의미가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예수님 의 사명이 무엇이며, 예수님이 이루고자 하였던 바가 무엇임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예수님은 이사야 61장에서 묘사된 야훼의 종의 사명을 온전히 이루신 삶을 사셨다. 예수님의 삶을 한마디 말로 요약하면 ‘가난한 자에게 전파되는 복음’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예수님과 관련하여 살펴볼 ‘가난한 자’ 본문은 민수기 12장 3절과 스 가랴 9장 9절이다. 민수기 12장 3절은 다음과 같다. “이 사람 모세는 온 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여기에서 ‘온유함’이라고 번역 된 히브리 낱말은 ‘아나브’이다. 이것은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가 난한 자’로 번역될 수 있는 낱말이다. 이 낱말이 70인경에서는 ‘프라우스'로 번역되어 있다. 또한 스가랴 9장 9절은 장차 시온, 곧 예루살 렘에 임하실 메시아 왕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분은 공의롭고 겸손한 자라고 소개한다. 겸손한 자로 번역된 ‘아니’라는 낱말도 ‘가난한 자’로 번역될 수 있는 낱말이며, 70인경에서는 민수기 12장 3절 에서처럼 ‘프라우스’로 번역되어 있다. 이와 관련하여 신약성경 에서는 예수님이 예루살렘 입성하시는 모습을 스가랴 예언의 성취라고 보 도하고 있고(마 21:4-5; 요 12:15), 예수님이 자신을 소개하실 때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라고 말씀하신다. 이때 구약의 두 본문에서 각각 ‘가난한 자’를 의미하는 ‘온유한 자’와 ‘겸손한 자’ 로 번역된 ‘프라우스’가 등장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예수님은 ‘가난 한 자’였다고 말할 수 있다.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오신 ‘가난한 자’였다. 그러한 의미에서 예수님의 복음은 ‘가난한 자가 가난한 자에게 전하는 복음’이라 말할 수 있다.
이처럼 ‘가난한 자’는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에서 소홀이 여겨서는 안 될 중요한 신학적 개념이다. 가난한 자에 대한 이해가 바르게 되어 있다면 산 상수훈 중 ‘팔복 선언’이라 일컫는 예수님의 말씀(마 5:3-12)도 이해하기 가 쉬워진다. 다양한 표현으로 등장하는 대상들, 즉 ‘애통하는 자’, ‘온유 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긍휼히 여기는 자’, ‘마음이 청결한 자’, ‘화평하게 하는 자’,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 모두 ‘가난한 자’ 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 다. 또한 이들에게 약속된 다양한 복들, 즉 위로를 받고 배부르며, 긍휼히 여김을 받고 하나님을 보 며,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 것이 모두 ‘천국’, 즉 하나님 나라의 삶을 의미한다는 사실도 알 수 있게 된다.
이러한 ‘가난한 자’에 대한 고찰을 통해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첫째, ‘가난한 자’를 압제하지 말고 돌보라는 것이다.
이것은 ‘자신이 가진 결핍으로 인해 고통을 당하는 자’라는 가난한 자의 첫 번째 특징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여전히 우리 사회와 주변에는 가난한 자가 많이 있다. 다양한 결핍을 통해서 돌봄과 보호가 필요한 사람들이다. 이러한 사회의 약자들을 돌보는 것이 하나님을 닮아가야 할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어진 책무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둘째, ‘가난한 자’가 되라는 것이다. 이것은 ‘세상에서는 가진 것이 없어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의 대상으로 삼는 자’라는 가난한 자의 두 번째 특징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이때 가난한 자는 자신의 결핍을 깊이 인식하는 자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마음이 상하고 깨진 자이다. 하지만 그 사람은 자신의 결핍에 머물러 있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본다. 그럴 때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겸손하고 온유하며, 신실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다.
셋째, ‘가난한 자’의 하나님을 기대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가난한 자 를 돌보시는 분이다. 그들의 고통과 곤궁을 아시고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 기를 즐겨하시는 분이다. 이러한 하나님을 기대할 때 두 가지가 가능하다. 하나는 ‘가난한 자’에 대해서 올바로 반응할 수 있고, 다른 하나는 자신이 ‘가난한 자’로서 올바로 살아갈 수 있다.
2024. 02. 01
출처:교회성장연구소(portal.icg21.com/board/board.php?bbs_id=humanities&ptype=view&kbbs_doc_num=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