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베랴에서 게네사렛 가는 길
윤국영 박사(기독인문학연구원 상임연구위원)
갈릴리 땅
이스라엘에서 기억에 남는 둘을 꼽으라면 사람들은 흔히 광야와 갈릴리 호수를 꼽는다. 독특한 자연 풍광도 이유가 되겠지만, 광야는 유랑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그리고 갈릴리 호수는 예수를 떠올리게 하는 으뜸 장소이기 때문이 아닐까? 갈릴리는 지역과 호수 이름에 모두 사용되는데, 예수께서 온 갈릴리를 두루 다니시며 복음을 전파하셨을 때 바로 이 지역을 누비셨다. 갈릴리 지역의 범위는 남으로는 이즈르엘 평원, 북으로는 레바논산맥 이남 지역, 동으로는 요단강과 갈릴리 호수, 서로는 갈멜산과 페니키아 해안지역에 맞닿아 있는 지역이다. 이 지역은 이미 구약시대 북이스라엘 왕국 때부터 발달한 인근 페니키아와 시리아 문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주전 8세기 북이스라엘 왕국이 앗수르에 멸망하면서 이방화 되어, 주전 2세기에까지 이방인이 주로 거주했다.
그러나 주전 2세기 말 하스모니안 왕조의 아리스토불로스 1세(Aristobulus I)가 갈릴리 지역을 점령하자 많은 유대인이 대거 갈릴리로 이주해 온다. 이 는 오늘날 요단 서안 지구의 유대인 정착촌을 연상케 한다. 유대 이주민들 은 갈릴리 전역에 새로운 마을들을 건설하는데 예수가 자라셨던 나사렛 마 을도 이때 생겨났을 것이다. 그리하여 예수 당대가 되면서 갈릴리 지역 주민의 대다수가 유대인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헬라식 대도시인 세포리스 (Sephoris)와 디베랴(Tiberias)를 제외하고 예수 당시 갈릴리 전역에는 약 200여 개의 크고 작은 마을이 존재했다. 예수께서는 이 갈릴리 마을들을 두루 다니시며 사역하셨다. 예수께서 종교성이 더 뛰어나다고 자부하는 남 쪽 유대 땅이 아니라 무시당하는 갈릴리 지역에서 대부분의 사역을 감당하 셨다는 것은 통쾌한 아이러니다. 어둠에 있는 자들은 빛을 볼 기회가 있지 만 스스로 광명에 있다고 착각하는 자들은 결코 빛을 볼 수 없다는 진리.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흑암에 앉은 백성 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 (마 4:15-16)
갈릴리 호수
갈릴리 호수는 지중해 바다 해수면보다 약 210m 정도 더 낮은 칼데라 호수로, 호숫가에 가까이 올수록 내리닫는 비탈 이 상당히 가파르다. 높은 고원 같은 느낌으로 이어져 있는 구릉들을 타고 동쪽으로 가다 보면 멀리 반짝이는 수면과 함께 호수가 펼쳐지기 시작한다.
로마식 대로는 서편 지중해 악고에서 곧게 뻗어 갈릴리 산지를 가로질 러 갈릴리 호수로 향하며 디베랴를 통해 호수에 다다른다. 오늘날 현대 도로도 어느 정도 비슷한 루트다. 그러나 갈릴리 산지 곳곳은 골짜기와 능선을 따라 무수한 지역 마을 길로 연결되어 있으며, 지역 길인 아르벨 언덕 아래를 지나 호숫가 성읍인 막달라에 이를 수 있다. 로마식 대로는 좀 더 후대에 더 정비되었는데 예수께서도 나사렛 산지에서 갈릴리 호수 서북쪽 가버나움으로 옮겨 가셨을 때 이 두 루트 중 하나를 지나셨을 것이다. 갈 릴리 호수가 먼발치로 보이기 시작하면서부터 게네사렛 북단까지 예수께 서 걸으셨을 여정은 우선 동쪽으로 전진하여 디베랴를 통과하거나 먼발 치로 이를 지나쳐 가셨을 것이다. 그리고 곧 아르벨 언덕을 만나고 막달라 마을을 오른쪽으로 바라보며 게네사렛 평지에 접어드셨을 것이다. 이후 게네사렛 평지의 항구 마을 게네사렛을 오른쪽으로 지나치며 게네사렛 북 단에 도달하시기까지 전체적으로 대략 2~3시간 정도 걸으셨을 거리이다.
공생애 시작 즈음 나사렛을 떠나 새로운 터전 갈릴리 호수에 한 걸음씩 다가서시는 예수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탁 트인 갈릴리 호수를 대면하시 며 어떤 감정이셨을까? 우기에는 노란 겨자꽃과 빨간 들양귀비로 뒤덮인 아름다움. 헬몬산의 하얀 봉우리. 건기에는 누렇게 뜬 대지의 풀들. 끊임 없이 피고 지는 자연. 그러나 계절의 풍광은 바뀔지언정 하나님 아버지께 순종함에는 변함이 없을 것임을 다시금 결단하지 않으셨을까? 갈릴리 호수는 구약의 말씀을 성취하시기 위한 순종과 결단의 장소다(마 4:13-16).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사 40:8)
디베랴(Tiberias)
예수께서 주로 활동하신 갈릴리 호수 북서쪽은 사복음서 속 많은 이야 기의 배경이다. 반면 주후 20년경 헤롯 안디바가 호수 서쪽에 건립한 행 정수도 디베랴는 성경에 별로 언급이 없다(요 6:23). 디베랴는 세포리스(Sepphoris)와 함께 예수 시대에 갈릴리 행정의 두 주요 축이다. 섣부른 자기 과시욕 때문에 세례 요한을 죽음에 이르게 했던 헤롯 안디바(마 14:1-12; 막 6:14-29;눅 9:7-9).
아마 기적을 일으키는 예수에 대한 소문도 이곳 행정수 도인 디베랴에서 적잖이 들었을 것이다. 그는 왜 3년여 기간 동안 불과 10여km 근방에서 사셨던 예수를 찾아 귀 기울이려 하지 않았을까? 세례 요한에게 그러하듯 자기애가 영혼의 소리보다 더 컸던 것일까? 오히려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위해 예수를 죽이려고까지 했다(눅 13:32). 당대 에 안디바는 갈릴리와 베레아 지역을 호령하는 최고 실력자였다. 그러나 세리와 창녀, 죄인에 둘러싸인 자가 인류의 구원자가 되고, 안디바는 로마 에 의해 추방되어 흔적도 없다.
예수 당시 갈릴리 호수 주변에서 가장 번성했던 도시 디베랴를 통해 헤롯 안디바가 추구했던 이상을 엿볼 수 있다. 서쪽 호수 강변을 따라 길게 로마식으로 뻗은 직교하는 도로들, 한때는 화려했던 공중목욕탕과 시장 터, 튼튼한 성곽과 망루, 경기장은 화려한 로마의 문화가 당시 갈릴리 지 역에 상류 문화로 자리 잡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또 한편 유대인 정결례탕 도 함께 발견되는데 이를 통해 이방과 유대의 문화와 관습이 공존했던 디 베랴의 분위기를 가늠할 수 있다. 성취와 풍요를 추구하는 것이 잘못은 아 니지만, 성취와 풍요에 중독되면 그것 없이는 살 수 없게 된다. 오병이어 사건 직후에 배들을 띄우고 예수를 찾아 나서는 디베랴 사람들(요 6:23). 그들이 진정 추구하던 바는 무엇이었을까? 예수께서는 무리 지어 당신에게 노 저어 오는 저들과 그들의 도시를 바라보시며 어떻게 생각하셨을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 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요 6:26)
아르벨 언덕
디베랴를 남북으로 가로질러 카르도(Cardo)가 나 있고 그 북쪽으로 디 베랴를 벗어나 호숫가를 따라가면 곧 왼편으로 높이 솟은 아르벨(Arbel) 언덕이 나타난다. 이 언덕에서 서쪽, 남쪽, 북쪽으로 길을 갈 수 있기에 교통의 요지이다.
그 북쪽 면 절벽에는 여러 동굴을 볼 수 있다. 이 동굴들은 헤롯 왕조의 창시자인 헤롯(Herod the Great)에 반대하는 세력(Antigonus)이 저항지로 사용했다. 헤롯은 원래 하스모니안 왕조의 가신 가문이었지만 정세 파악에 탁월하여 주전 40년경 로마에서 유대인의 왕으로 임명받아 고국 유 대 땅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갈릴리에서 예루살렘까지 그의 왕 됨을 반대 했던 옛 하스모니안 유대 왕조 세력을 전멸시킨다. 헤롯은 비록 악한 왕이었지만 열 므나 비유처럼 먼 타국으로 왕위를 받으러 가는 귀인 이야기는 당시 유대 땅의 왕위 여탈권을 쥔 로마 통치 상황과 잘 맞아떨어진다.(눅 1):11-27).
예수께서도 예루살렘이나 나사렛 방면으로 가시기 위해 교통의 교차점 인 아르벨 언덕 밑을 무수히 지나셨을 것이다. 불과 수십 년 전 권력을 위 해 치열하게 다투었던 현장을 지나시며 예수께서는 세상 권력과 하나님 나라 권력에 대해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막달라(Magdala)
아르벨 언덕을 지나면 곧 펼쳐지는 평평한 호숫가 평지가 게네사렛 평 지다. 호숫가를 따라 북으로 직진하는 도로를 벗어나 게네사렛 평지 초입 에서 동쪽으로 작은 길을 따라 들어가면 잠시 후 호숫가에 가까워진다. 농지, 수도원, 식당들이 자리 잡은 호숫가에 2천 년 전 막달라(Magdala=탑) 마을이 있었는데 이 마을은 디베랴로부터 약 5km 남짓 북쪽에 위치한다. 막달라는 디베랴가 건립되기 이전에는 갈릴리 호수 주변에서는 가장 큰 성읍으로 상업과 어업, 수공업이 두루 발달한 곳이었다. 성경에 예수께서 방문하셨다는 구체적 언급은 거의 없다. 그러나 주요 길목 근처에 위치하 여 아마도 자주 방문하셨을 것이다. 이곳에서 막달라 마리아에게서 일곱 귀신을 쫓아내셨다. 지난 수십 년에 걸쳐 여러 발 굴팀이 막달라 지역 일대를 발 굴해 왔다. 여러 발굴물 중 가장 특⑨적인 것은 지난 200)년 에 발견된 예수 시대의 회당이다. 최근에 또 다른 동시대 회 당이 약 200m 떨어진, 같은 성읍 내 지역에서 발견되었다.
성경에는 예수께서 갈릴리 온 지역을 회당을 중심으로 두루 다니셨다고 나오지만, 지금까지 발굴에서 발견되는 회당들은 대부분 더 후대의 것들 이었다. 물론 후대 회당의 경우 그 자리에 예수 시대의 회당들이 존재했을 가능성이 있지만, 막달라에서 예수 시대에 사용된 회당이 서로 인근 거리 에서 2개가 나란히 발견되는 것은 매우 특별한 사례다.
안식일 아침이 되면 유대인들은 적당히 걸을 만한 거리의 인근 회당으로 향했다. 예배 내용은 달랐지만, 유대인 회당의 구조와 기능을 보면 오늘날 교회와 흡사한 점이 많고 초기 기독교 시대 교회는 외형상 회당과 구분되 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예수께서는 안식일마다 갈릴리의 숱한 회당에서 무리에게 가르치시고 병을 고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다(마 14:36). 2천 년 전 예수 시대에 사용된 이 막달라 마을의 회당에서도 예수께서 나 타나셨다는 소문에 안식일 아침 회당이 사람들로 가득 메워졌으리라. 갈 릴리 온 회당마다 다니시며 하나님 나라를 전하시고 모든 병과 연약한 것을 어루만지셨던 예수. 오늘날 한국 교회도 보혜사 성령께서 예배마다 믿 음의 사람들 가운데 동일하게 역사하시리라.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마 9:35)
게네사렛 평지
막달라로부터 시작하여 호숫가를 따라 북쪽으로 약 5~6km에 걸쳐 펼 쳐지는 평지. 이곳은 인근 와디들로부터 호수로 유입되는 화산암 점토들 이 충적지를 형성하면서 고대로부터 비옥한 농경지로 이용되어 온 곳이 다. 고대로부터 팔레스타인 전통 작물인 올리브, 대추야자, 무화과 등을 주로 경작해 왔고 오늘날은 키부츠에서 이들 작물은 물론 바나나 같은 외 래 작물도 재배한다. 이 밭을 가로질러 곧게 뻗어있는 오늘날 현대식 도로 를 타고 자동차로는 게네사렛 평지를 채 5분이 안 되어 통과한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게네사렛 평지 남단 막달라 마을에서 북단 헵타페곤 가까이까지 걸으실 때 최소 1시간은 넘게 흙길을 걸으셨을 것이다. 한쪽으로는 대추야자와 올리브 밭을, 또 한쪽으로는 갈대숲과 그 너머의 갈릴 리 호수를 바라보시며.
게네사렛 땅(마 14:34; 막 6:53)이라고 성경에 언급되는 이 평지 위로 구약시대부터 해변 길(사 ):1; 마 4:15)이라 불리는, 이집트와 메소포타미 아 사이를 잇는 고대 주요 도로가 지나간다. 이 길은 국제 무역로로서 게 네사렛 평지에서 남으로 막달라를 거쳐 서남쪽으로 이즈르엘 계곡의 요충 지인 므깃도를 지나 더 서진하여 지중해 해안을 따라 이집트까지 이른다. 또한 게네사렛 평지에서 북으로는 하솔을 거쳐 아나톨리아나 북동쪽으로 시리아/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이른다.
예수 시대에도 오랜 국제 무역로의 루트를 따라 많은 유동 인구가 게네 사렛 평지를 가로질러 왕래했을 것이다. 원근 각처에서 예수의 소문을 듣 고 호숫가 길을 따라 몰려오는 많은 사람들. 그러나 동시에 상대적으로 지역 교통망이 뜸하여 마을이 많지 않던 곳이기도 하다(막달라, 게네사렛, 리브님). 게네사렛 평지는 많은 무리를 품고 예수께서 사역하시기에 꽤 적 합한 장소였던 듯하지만, 여러 날 많은 무리가 머무르기에는 어려움이 있 는 곳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실상 가버나움 인근 일대를 비롯해 갈릴리 호수 북서쪽 지역 전체에 걸쳐 유사하게 나타난다. 예수께서는 어쩌 면 제자들과 호숫가 길을 걸으시며 많은 무리를 놓고 사역하실 장소를 마 음으로 점찍어 놓으셨을지도 모르겠다. 이곳, 이 들판, 저 언덕, 저 호숫가.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 당하는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그들을 고치시더라 갈 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 강 건너편에서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 (마 4:24-25)
게네사렛 항구
갈릴리 호수의 오늘날 해수면은 1)32년 호수 남단에 작은 댐이 건설되 면서 예수 시대보다 약 1m 정도 더 높아져 있다(해발 -210m). 지금도 위 성 사진 등을 통해 위에서 내려다보면 호수 여기저기에서 침수된 해변들 이 드문드문 물 위로 드러나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1) 70년대와 1)80년대의 가뭄으로 물 밑에 가라앉았던 고대 항구의 흔적이 갈릴리 호수 10여 곳에서 발견되었다. 게네사렛 평지 중간 지점의 한 호숫가에서도 방파제와 항구 시설이 드러났다. 이 항구 시설은 예수 시대 에 게네사렛 평지 지역으로 사람들이 배를 타고 드나들었음을 보여준다 (마 14:34; 막 6:53). 특히 예수 당시인 주 후 1세기 것으로 추정되는 배가 진흙 뻘에 밀봉된 채 좋은 보존 상태로 발견되었는데 10여 명 남짓 탈 수 있는 고기잡이 어선으로 추정된다. 이 배는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타셨던 배의 모습을 가늠케 한다. 갈릴리 호수 주변은 육로만큼이나 배로 다니기에 익숙했던 지역이었기에 이러한 배들은 고기잡이는 물론 교통수단으 로도 흔히 사용된 듯하다.
예수께서 짧은 공생애 시간을 최대한 활용 하셨듯이, 제자들 그리고 예 수를 좇던 많은 무리도 때로는 육로로 또 때로는 배를 타고 모두 분주하게 갈릴리 호수 북서 지역을 누볐다. 모두 열심히 또 분주하게 각자의 삶을 살 아가는 현대인처럼. 오늘날 예수를 좇는 우리는 무엇을 향하여 마음이 그 토록 분주하고 불안한가? 자신을 좇는 자에게 너희가 무엇을 구하느냐고 예수께서는 물으신다(요 1:38). 가장 바쁘셨을 때 한적한 곳으로 물러나 하나님 음성에 귀 기울이신 예수(막 6:46; 눅 5:16). 생각건대 예수의 타임 테이블은 분명 오늘날 사람들의 그것과는 달랐을 것이다(눅 6:31-33).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 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요일 2:15-17)
2024. 03. 01
출처:교회성장연구소(portal.icg21.com/board/board.php?bbs_id=humanities&ptype=view&kbbs_doc_num=98)
디베랴에서 게네사렛 가는 길
윤국영 박사(기독인문학연구원 상임연구위원)
갈릴리 땅
이스라엘에서 기억에 남는 둘을 꼽으라면 사람들은 흔히 광야와 갈릴리 호수를 꼽는다. 독특한 자연 풍광도 이유가 되겠지만, 광야는 유랑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그리고 갈릴리 호수는 예수를 떠올리게 하는 으뜸 장소이기 때문이 아닐까? 갈릴리는 지역과 호수 이름에 모두 사용되는데, 예수께서 온 갈릴리를 두루 다니시며 복음을 전파하셨을 때 바로 이 지역을 누비셨다. 갈릴리 지역의 범위는 남으로는 이즈르엘 평원, 북으로는 레바논산맥 이남 지역, 동으로는 요단강과 갈릴리 호수, 서로는 갈멜산과 페니키아 해안지역에 맞닿아 있는 지역이다. 이 지역은 이미 구약시대 북이스라엘 왕국 때부터 발달한 인근 페니키아와 시리아 문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주전 8세기 북이스라엘 왕국이 앗수르에 멸망하면서 이방화 되어, 주전 2세기에까지 이방인이 주로 거주했다.
그러나 주전 2세기 말 하스모니안 왕조의 아리스토불로스 1세(Aristobulus I)가 갈릴리 지역을 점령하자 많은 유대인이 대거 갈릴리로 이주해 온다. 이 는 오늘날 요단 서안 지구의 유대인 정착촌을 연상케 한다. 유대 이주민들 은 갈릴리 전역에 새로운 마을들을 건설하는데 예수가 자라셨던 나사렛 마 을도 이때 생겨났을 것이다. 그리하여 예수 당대가 되면서 갈릴리 지역 주민의 대다수가 유대인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헬라식 대도시인 세포리스 (Sephoris)와 디베랴(Tiberias)를 제외하고 예수 당시 갈릴리 전역에는 약 200여 개의 크고 작은 마을이 존재했다. 예수께서는 이 갈릴리 마을들을 두루 다니시며 사역하셨다. 예수께서 종교성이 더 뛰어나다고 자부하는 남 쪽 유대 땅이 아니라 무시당하는 갈릴리 지역에서 대부분의 사역을 감당하 셨다는 것은 통쾌한 아이러니다. 어둠에 있는 자들은 빛을 볼 기회가 있지 만 스스로 광명에 있다고 착각하는 자들은 결코 빛을 볼 수 없다는 진리.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흑암에 앉은 백성 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 (마 4:15-16)
갈릴리 호수
갈릴리 호수는 지중해 바다 해수면보다 약 210m 정도 더 낮은 칼데라 호수로, 호숫가에 가까이 올수록 내리닫는 비탈 이 상당히 가파르다. 높은 고원 같은 느낌으로 이어져 있는 구릉들을 타고 동쪽으로 가다 보면 멀리 반짝이는 수면과 함께 호수가 펼쳐지기 시작한다.
로마식 대로는 서편 지중해 악고에서 곧게 뻗어 갈릴리 산지를 가로질 러 갈릴리 호수로 향하며 디베랴를 통해 호수에 다다른다. 오늘날 현대 도로도 어느 정도 비슷한 루트다. 그러나 갈릴리 산지 곳곳은 골짜기와 능선을 따라 무수한 지역 마을 길로 연결되어 있으며, 지역 길인 아르벨 언덕 아래를 지나 호숫가 성읍인 막달라에 이를 수 있다. 로마식 대로는 좀 더 후대에 더 정비되었는데 예수께서도 나사렛 산지에서 갈릴리 호수 서북쪽 가버나움으로 옮겨 가셨을 때 이 두 루트 중 하나를 지나셨을 것이다. 갈 릴리 호수가 먼발치로 보이기 시작하면서부터 게네사렛 북단까지 예수께 서 걸으셨을 여정은 우선 동쪽으로 전진하여 디베랴를 통과하거나 먼발 치로 이를 지나쳐 가셨을 것이다. 그리고 곧 아르벨 언덕을 만나고 막달라 마을을 오른쪽으로 바라보며 게네사렛 평지에 접어드셨을 것이다. 이후 게네사렛 평지의 항구 마을 게네사렛을 오른쪽으로 지나치며 게네사렛 북 단에 도달하시기까지 전체적으로 대략 2~3시간 정도 걸으셨을 거리이다.
공생애 시작 즈음 나사렛을 떠나 새로운 터전 갈릴리 호수에 한 걸음씩 다가서시는 예수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탁 트인 갈릴리 호수를 대면하시 며 어떤 감정이셨을까? 우기에는 노란 겨자꽃과 빨간 들양귀비로 뒤덮인 아름다움. 헬몬산의 하얀 봉우리. 건기에는 누렇게 뜬 대지의 풀들. 끊임 없이 피고 지는 자연. 그러나 계절의 풍광은 바뀔지언정 하나님 아버지께 순종함에는 변함이 없을 것임을 다시금 결단하지 않으셨을까? 갈릴리 호수는 구약의 말씀을 성취하시기 위한 순종과 결단의 장소다(마 4:13-16).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사 40:8)
디베랴(Tiberias)
예수께서 주로 활동하신 갈릴리 호수 북서쪽은 사복음서 속 많은 이야 기의 배경이다. 반면 주후 20년경 헤롯 안디바가 호수 서쪽에 건립한 행 정수도 디베랴는 성경에 별로 언급이 없다(요 6:23). 디베랴는 세포리스(Sepphoris)와 함께 예수 시대에 갈릴리 행정의 두 주요 축이다. 섣부른 자기 과시욕 때문에 세례 요한을 죽음에 이르게 했던 헤롯 안디바(마 14:1-12; 막 6:14-29;눅 9:7-9).
아마 기적을 일으키는 예수에 대한 소문도 이곳 행정수 도인 디베랴에서 적잖이 들었을 것이다. 그는 왜 3년여 기간 동안 불과 10여km 근방에서 사셨던 예수를 찾아 귀 기울이려 하지 않았을까? 세례 요한에게 그러하듯 자기애가 영혼의 소리보다 더 컸던 것일까? 오히려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위해 예수를 죽이려고까지 했다(눅 13:32). 당대 에 안디바는 갈릴리와 베레아 지역을 호령하는 최고 실력자였다. 그러나 세리와 창녀, 죄인에 둘러싸인 자가 인류의 구원자가 되고, 안디바는 로마 에 의해 추방되어 흔적도 없다.
예수 당시 갈릴리 호수 주변에서 가장 번성했던 도시 디베랴를 통해 헤롯 안디바가 추구했던 이상을 엿볼 수 있다. 서쪽 호수 강변을 따라 길게 로마식으로 뻗은 직교하는 도로들, 한때는 화려했던 공중목욕탕과 시장 터, 튼튼한 성곽과 망루, 경기장은 화려한 로마의 문화가 당시 갈릴리 지 역에 상류 문화로 자리 잡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또 한편 유대인 정결례탕 도 함께 발견되는데 이를 통해 이방과 유대의 문화와 관습이 공존했던 디 베랴의 분위기를 가늠할 수 있다. 성취와 풍요를 추구하는 것이 잘못은 아 니지만, 성취와 풍요에 중독되면 그것 없이는 살 수 없게 된다. 오병이어 사건 직후에 배들을 띄우고 예수를 찾아 나서는 디베랴 사람들(요 6:23). 그들이 진정 추구하던 바는 무엇이었을까? 예수께서는 무리 지어 당신에게 노 저어 오는 저들과 그들의 도시를 바라보시며 어떻게 생각하셨을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 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요 6:26)
아르벨 언덕
디베랴를 남북으로 가로질러 카르도(Cardo)가 나 있고 그 북쪽으로 디 베랴를 벗어나 호숫가를 따라가면 곧 왼편으로 높이 솟은 아르벨(Arbel) 언덕이 나타난다. 이 언덕에서 서쪽, 남쪽, 북쪽으로 길을 갈 수 있기에 교통의 요지이다.
그 북쪽 면 절벽에는 여러 동굴을 볼 수 있다. 이 동굴들은 헤롯 왕조의 창시자인 헤롯(Herod the Great)에 반대하는 세력(Antigonus)이 저항지로 사용했다. 헤롯은 원래 하스모니안 왕조의 가신 가문이었지만 정세 파악에 탁월하여 주전 40년경 로마에서 유대인의 왕으로 임명받아 고국 유 대 땅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갈릴리에서 예루살렘까지 그의 왕 됨을 반대 했던 옛 하스모니안 유대 왕조 세력을 전멸시킨다. 헤롯은 비록 악한 왕이었지만 열 므나 비유처럼 먼 타국으로 왕위를 받으러 가는 귀인 이야기는 당시 유대 땅의 왕위 여탈권을 쥔 로마 통치 상황과 잘 맞아떨어진다.(눅 1):11-27).
예수께서도 예루살렘이나 나사렛 방면으로 가시기 위해 교통의 교차점 인 아르벨 언덕 밑을 무수히 지나셨을 것이다. 불과 수십 년 전 권력을 위 해 치열하게 다투었던 현장을 지나시며 예수께서는 세상 권력과 하나님 나라 권력에 대해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막달라(Magdala)
아르벨 언덕을 지나면 곧 펼쳐지는 평평한 호숫가 평지가 게네사렛 평 지다. 호숫가를 따라 북으로 직진하는 도로를 벗어나 게네사렛 평지 초입 에서 동쪽으로 작은 길을 따라 들어가면 잠시 후 호숫가에 가까워진다. 농지, 수도원, 식당들이 자리 잡은 호숫가에 2천 년 전 막달라(Magdala=탑) 마을이 있었는데 이 마을은 디베랴로부터 약 5km 남짓 북쪽에 위치한다. 막달라는 디베랴가 건립되기 이전에는 갈릴리 호수 주변에서는 가장 큰 성읍으로 상업과 어업, 수공업이 두루 발달한 곳이었다. 성경에 예수께서 방문하셨다는 구체적 언급은 거의 없다. 그러나 주요 길목 근처에 위치하 여 아마도 자주 방문하셨을 것이다. 이곳에서 막달라 마리아에게서 일곱 귀신을 쫓아내셨다. 지난 수십 년에 걸쳐 여러 발 굴팀이 막달라 지역 일대를 발 굴해 왔다. 여러 발굴물 중 가장 특⑨적인 것은 지난 200)년 에 발견된 예수 시대의 회당이다. 최근에 또 다른 동시대 회 당이 약 200m 떨어진, 같은 성읍 내 지역에서 발견되었다.
성경에는 예수께서 갈릴리 온 지역을 회당을 중심으로 두루 다니셨다고 나오지만, 지금까지 발굴에서 발견되는 회당들은 대부분 더 후대의 것들 이었다. 물론 후대 회당의 경우 그 자리에 예수 시대의 회당들이 존재했을 가능성이 있지만, 막달라에서 예수 시대에 사용된 회당이 서로 인근 거리 에서 2개가 나란히 발견되는 것은 매우 특별한 사례다.
안식일 아침이 되면 유대인들은 적당히 걸을 만한 거리의 인근 회당으로 향했다. 예배 내용은 달랐지만, 유대인 회당의 구조와 기능을 보면 오늘날 교회와 흡사한 점이 많고 초기 기독교 시대 교회는 외형상 회당과 구분되 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예수께서는 안식일마다 갈릴리의 숱한 회당에서 무리에게 가르치시고 병을 고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다(마 14:36). 2천 년 전 예수 시대에 사용된 이 막달라 마을의 회당에서도 예수께서 나 타나셨다는 소문에 안식일 아침 회당이 사람들로 가득 메워졌으리라. 갈 릴리 온 회당마다 다니시며 하나님 나라를 전하시고 모든 병과 연약한 것을 어루만지셨던 예수. 오늘날 한국 교회도 보혜사 성령께서 예배마다 믿 음의 사람들 가운데 동일하게 역사하시리라.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마 9:35)
게네사렛 평지
막달라로부터 시작하여 호숫가를 따라 북쪽으로 약 5~6km에 걸쳐 펼 쳐지는 평지. 이곳은 인근 와디들로부터 호수로 유입되는 화산암 점토들 이 충적지를 형성하면서 고대로부터 비옥한 농경지로 이용되어 온 곳이 다. 고대로부터 팔레스타인 전통 작물인 올리브, 대추야자, 무화과 등을 주로 경작해 왔고 오늘날은 키부츠에서 이들 작물은 물론 바나나 같은 외 래 작물도 재배한다. 이 밭을 가로질러 곧게 뻗어있는 오늘날 현대식 도로 를 타고 자동차로는 게네사렛 평지를 채 5분이 안 되어 통과한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게네사렛 평지 남단 막달라 마을에서 북단 헵타페곤 가까이까지 걸으실 때 최소 1시간은 넘게 흙길을 걸으셨을 것이다. 한쪽으로는 대추야자와 올리브 밭을, 또 한쪽으로는 갈대숲과 그 너머의 갈릴 리 호수를 바라보시며.
게네사렛 땅(마 14:34; 막 6:53)이라고 성경에 언급되는 이 평지 위로 구약시대부터 해변 길(사 ):1; 마 4:15)이라 불리는, 이집트와 메소포타미 아 사이를 잇는 고대 주요 도로가 지나간다. 이 길은 국제 무역로로서 게 네사렛 평지에서 남으로 막달라를 거쳐 서남쪽으로 이즈르엘 계곡의 요충 지인 므깃도를 지나 더 서진하여 지중해 해안을 따라 이집트까지 이른다. 또한 게네사렛 평지에서 북으로는 하솔을 거쳐 아나톨리아나 북동쪽으로 시리아/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이른다.
예수 시대에도 오랜 국제 무역로의 루트를 따라 많은 유동 인구가 게네 사렛 평지를 가로질러 왕래했을 것이다. 원근 각처에서 예수의 소문을 듣 고 호숫가 길을 따라 몰려오는 많은 사람들. 그러나 동시에 상대적으로 지역 교통망이 뜸하여 마을이 많지 않던 곳이기도 하다(막달라, 게네사렛, 리브님). 게네사렛 평지는 많은 무리를 품고 예수께서 사역하시기에 꽤 적 합한 장소였던 듯하지만, 여러 날 많은 무리가 머무르기에는 어려움이 있 는 곳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실상 가버나움 인근 일대를 비롯해 갈릴리 호수 북서쪽 지역 전체에 걸쳐 유사하게 나타난다. 예수께서는 어쩌 면 제자들과 호숫가 길을 걸으시며 많은 무리를 놓고 사역하실 장소를 마 음으로 점찍어 놓으셨을지도 모르겠다. 이곳, 이 들판, 저 언덕, 저 호숫가.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 당하는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그들을 고치시더라 갈 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 강 건너편에서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 (마 4:24-25)
게네사렛 항구
갈릴리 호수의 오늘날 해수면은 1)32년 호수 남단에 작은 댐이 건설되 면서 예수 시대보다 약 1m 정도 더 높아져 있다(해발 -210m). 지금도 위 성 사진 등을 통해 위에서 내려다보면 호수 여기저기에서 침수된 해변들 이 드문드문 물 위로 드러나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1) 70년대와 1)80년대의 가뭄으로 물 밑에 가라앉았던 고대 항구의 흔적이 갈릴리 호수 10여 곳에서 발견되었다. 게네사렛 평지 중간 지점의 한 호숫가에서도 방파제와 항구 시설이 드러났다. 이 항구 시설은 예수 시대 에 게네사렛 평지 지역으로 사람들이 배를 타고 드나들었음을 보여준다 (마 14:34; 막 6:53). 특히 예수 당시인 주 후 1세기 것으로 추정되는 배가 진흙 뻘에 밀봉된 채 좋은 보존 상태로 발견되었는데 10여 명 남짓 탈 수 있는 고기잡이 어선으로 추정된다. 이 배는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타셨던 배의 모습을 가늠케 한다. 갈릴리 호수 주변은 육로만큼이나 배로 다니기에 익숙했던 지역이었기에 이러한 배들은 고기잡이는 물론 교통수단으 로도 흔히 사용된 듯하다.
예수께서 짧은 공생애 시간을 최대한 활용 하셨듯이, 제자들 그리고 예 수를 좇던 많은 무리도 때로는 육로로 또 때로는 배를 타고 모두 분주하게 갈릴리 호수 북서 지역을 누볐다. 모두 열심히 또 분주하게 각자의 삶을 살 아가는 현대인처럼. 오늘날 예수를 좇는 우리는 무엇을 향하여 마음이 그 토록 분주하고 불안한가? 자신을 좇는 자에게 너희가 무엇을 구하느냐고 예수께서는 물으신다(요 1:38). 가장 바쁘셨을 때 한적한 곳으로 물러나 하나님 음성에 귀 기울이신 예수(막 6:46; 눅 5:16). 생각건대 예수의 타임 테이블은 분명 오늘날 사람들의 그것과는 달랐을 것이다(눅 6:31-33).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 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요일 2:15-17)
2024. 03. 01
출처:교회성장연구소(portal.icg21.com/board/board.php?bbs_id=humanities&ptype=view&kbbs_doc_num=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