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민 연출 《사랑의 이해》
최근 종영한 JTBC 드라마 《사랑의 이해》는 사랑의 의미에 관한 진정성을 추구하는 인간의 마음을 해부하듯 살핀 멜로드라마다. 아니, 이 드라마는 멜로 장르의 외피를 띄고 있으나 미세하지만 분명하게 겪고 있는 한국사회의 균열과 갈등에 관한 이야기다.
은행을 두고 둘러싼 업무와 사랑 사이에서의 갈등과 화해를 그린 드라마는 네 명의 등장인물을 두고 구성된다. 네 사람은 드라마의 무대가 되는 같은 은행에서 일하지만, 서로의 출발점은 확연한 차이가 있다. 소위 타고난 재력과 높은 신분을 보유한 금수저로 불리는 미경(금새록 분), 타고난 재력은 아니지만, 명문대 출신의 정규직 은행원 신분인 상수(유연석 분), 거기에 상수와의 사이에 사랑의 줄다리기를 벌이는 수영(문가영 분)은 고졸 출신이란 핸디캡, 거기에 서비스 직종으로 입사한 은행에서 ‘텔러’의 직업을 가졌다. 끝으로 은행이란 거대 조직에서 계약직 상태로 가장 불완전한 신분을 지닌 하청업체 청원경찰인 종현
(정가람 분)이 있다. 이렇듯 나름 구성된 네 사람의 위계는 안타깝지만 분명한 힘의 관계를 나타낸다. 일례로 은행 지점장은 금수저 출신인 미경에겐 말 한마디 못하지만, 고졸 출신인 수영에겐 언어적 성희롱을 마치 작심하듯 쏟아낸다.
드라마 속 러브라인은 전형적인 플롯을 답습한다. 미경은 스마트한 엘리트 직원 상수에게 주도적으로 사랑을 표현한다. 상수는 그런 미경이 설명할 순 없지만, 왠지 부담스럽다. 반대로 상수의 시선과 마음은 고졸 출신 수영에게 닿아 있다. 수영은 상수의 관심이 싫지 않으면서도, 상수로부터 이상하리만치 멀어진다. 수영이 은행이란 공간에서 겪어야 했던 위계와 차별, 따가운 시선이 켜켜이 쌓여 움푹 파인 트라우마로 인해 상수와의 사랑마저도 자신이 ‘을’이 되고 말 거란 불길한 결말을 예감한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자신에게 마냥 순수한, 진심을 갖고 자신을 대하는 청원경찰 종현과의 사랑을 통해 아름다운 결말에 이를 수 없음 역시 뼈아프게 느끼고 있다. 순수해 보이는 마지막 사랑마저 수영은 을과 을의 연애로 전락할 수밖에 없음을 의식한 것이다.
사랑의 표현에 대해 누구보다 솔직하고, 욕심마저 없는 미경, 그녀는 상수가 자신에게 100% 마음을 줄 수 없다는 말에도 상처받지 않고 괜찮다고 말한다. ‘좋아하는 건 자신이니까’라고 말하는 미경은 그녀 자신만의 확고한 진심으로 누구나 갖고 싶은 걸 마음껏 선물한다. 그렇지만 미경이 그렇게 좋아해 줄수록 상수는 미경에 대한 사랑의 친밀함이 더 깊어지기보다는 꾹꾹 눌러두었던 열등감만 상승할 뿐이다.
드라마의 주요 배경이 된 ‘은행’은 한국사회를 대표하는 평범하거나 조금은 동경의 대상이 되는 직장이지만, 이곳은 견고히 스며든 계급 구조를 단면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미경은 자신이 비교적 젊은 나이에 대리 자리에 오른 것을 자신의 부단한 노력의 결과라고 믿고 있다. 적어도 미경은 그렇게 믿는 것이다. 하지만, 연수원 성적 1등을 자랑하는, 어쩌면 미경과 같이 은행에서 진골로 통하지만, 미경과는 확실히 다른 위치에 선 상수는 모르지 않는다. 미경의 아버지라는 배경이 정규직 대리 자리에 미경을 안착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반대로 상수가 모르는 것을 수영은 알고 있다. 계약직으로 시작해 하나하나 스스로 쌓아 올려 주임 자리에 겨우 오른 수영은 은행이란 조직이 능력 하나만으로 그들만의 리그에 편입시켜주지 않는다는 걸 수영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자신에게 관심을 보인 상수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는 것이다. 상수가 보지 못하는 ‘을’의 그늘이 수영에겐 너무나 잘 보기 때문에, 그리고 종현의 순수함조차 ‘을’의 자장에서 벗어나지 못하기에 드라마는 수영이란 캐릭터를 어쩔 수 없는 소위 고구마 캐릭터로 몰아갈 수밖에 없게 된다.
결국, 사랑의 길목에서 수영이 자신에게서 멀어지는 이유를 상수가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상수는 미경을 통해 투영된 자신의 계급적 열등감을 보지만, 수영은 더 깊이 배인 상수의 사랑, 그 감정이 품은 그늘을 읽게 된 것이다. 그렇기에 수영이 이해한 사랑은 서글프고 아프다.
우리는 드라마 《사랑의 이해》를 통해 사랑은 낭만과 추상이 아닌 치열한 현실, 켜켜이 쌓인 비틀린 현실과 마주하는 대면의 과정이란 진실과 마주하게 한다. 그건 단지 냉소적인 현실 인식만이 아니다. 진정한 사랑의 순수만을 추출하기 위한 현실에 관한 성찰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사랑의 당위에 관한 맹목적인 강조가 아닌, 훨씬 긴밀하고 솔직한 소통과 나눔의 이해가 사랑을 더욱 풍요롭게 비칠 것이기에.
출처 : 주간기독교(http://www.cnews.or.kr/news/articleView.html?idxno=2123)
2023. 03. 08.
조영민 연출 《사랑의 이해》
최근 종영한 JTBC 드라마 《사랑의 이해》는 사랑의 의미에 관한 진정성을 추구하는 인간의 마음을 해부하듯 살핀 멜로드라마다. 아니, 이 드라마는 멜로 장르의 외피를 띄고 있으나 미세하지만 분명하게 겪고 있는 한국사회의 균열과 갈등에 관한 이야기다.
은행을 두고 둘러싼 업무와 사랑 사이에서의 갈등과 화해를 그린 드라마는 네 명의 등장인물을 두고 구성된다. 네 사람은 드라마의 무대가 되는 같은 은행에서 일하지만, 서로의 출발점은 확연한 차이가 있다. 소위 타고난 재력과 높은 신분을 보유한 금수저로 불리는 미경(금새록 분), 타고난 재력은 아니지만, 명문대 출신의 정규직 은행원 신분인 상수(유연석 분), 거기에 상수와의 사이에 사랑의 줄다리기를 벌이는 수영(문가영 분)은 고졸 출신이란 핸디캡, 거기에 서비스 직종으로 입사한 은행에서 ‘텔러’의 직업을 가졌다. 끝으로 은행이란 거대 조직에서 계약직 상태로 가장 불완전한 신분을 지닌 하청업체 청원경찰인 종현
(정가람 분)이 있다. 이렇듯 나름 구성된 네 사람의 위계는 안타깝지만 분명한 힘의 관계를 나타낸다. 일례로 은행 지점장은 금수저 출신인 미경에겐 말 한마디 못하지만, 고졸 출신인 수영에겐 언어적 성희롱을 마치 작심하듯 쏟아낸다.
드라마 속 러브라인은 전형적인 플롯을 답습한다. 미경은 스마트한 엘리트 직원 상수에게 주도적으로 사랑을 표현한다. 상수는 그런 미경이 설명할 순 없지만, 왠지 부담스럽다. 반대로 상수의 시선과 마음은 고졸 출신 수영에게 닿아 있다. 수영은 상수의 관심이 싫지 않으면서도, 상수로부터 이상하리만치 멀어진다. 수영이 은행이란 공간에서 겪어야 했던 위계와 차별, 따가운 시선이 켜켜이 쌓여 움푹 파인 트라우마로 인해 상수와의 사랑마저도 자신이 ‘을’이 되고 말 거란 불길한 결말을 예감한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자신에게 마냥 순수한, 진심을 갖고 자신을 대하는 청원경찰 종현과의 사랑을 통해 아름다운 결말에 이를 수 없음 역시 뼈아프게 느끼고 있다. 순수해 보이는 마지막 사랑마저 수영은 을과 을의 연애로 전락할 수밖에 없음을 의식한 것이다.
사랑의 표현에 대해 누구보다 솔직하고, 욕심마저 없는 미경, 그녀는 상수가 자신에게 100% 마음을 줄 수 없다는 말에도 상처받지 않고 괜찮다고 말한다. ‘좋아하는 건 자신이니까’라고 말하는 미경은 그녀 자신만의 확고한 진심으로 누구나 갖고 싶은 걸 마음껏 선물한다. 그렇지만 미경이 그렇게 좋아해 줄수록 상수는 미경에 대한 사랑의 친밀함이 더 깊어지기보다는 꾹꾹 눌러두었던 열등감만 상승할 뿐이다.
드라마의 주요 배경이 된 ‘은행’은 한국사회를 대표하는 평범하거나 조금은 동경의 대상이 되는 직장이지만, 이곳은 견고히 스며든 계급 구조를 단면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미경은 자신이 비교적 젊은 나이에 대리 자리에 오른 것을 자신의 부단한 노력의 결과라고 믿고 있다. 적어도 미경은 그렇게 믿는 것이다. 하지만, 연수원 성적 1등을 자랑하는, 어쩌면 미경과 같이 은행에서 진골로 통하지만, 미경과는 확실히 다른 위치에 선 상수는 모르지 않는다. 미경의 아버지라는 배경이 정규직 대리 자리에 미경을 안착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반대로 상수가 모르는 것을 수영은 알고 있다. 계약직으로 시작해 하나하나 스스로 쌓아 올려 주임 자리에 겨우 오른 수영은 은행이란 조직이 능력 하나만으로 그들만의 리그에 편입시켜주지 않는다는 걸 수영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자신에게 관심을 보인 상수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는 것이다. 상수가 보지 못하는 ‘을’의 그늘이 수영에겐 너무나 잘 보기 때문에, 그리고 종현의 순수함조차 ‘을’의 자장에서 벗어나지 못하기에 드라마는 수영이란 캐릭터를 어쩔 수 없는 소위 고구마 캐릭터로 몰아갈 수밖에 없게 된다.
결국, 사랑의 길목에서 수영이 자신에게서 멀어지는 이유를 상수가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상수는 미경을 통해 투영된 자신의 계급적 열등감을 보지만, 수영은 더 깊이 배인 상수의 사랑, 그 감정이 품은 그늘을 읽게 된 것이다. 그렇기에 수영이 이해한 사랑은 서글프고 아프다.
우리는 드라마 《사랑의 이해》를 통해 사랑은 낭만과 추상이 아닌 치열한 현실, 켜켜이 쌓인 비틀린 현실과 마주하는 대면의 과정이란 진실과 마주하게 한다. 그건 단지 냉소적인 현실 인식만이 아니다. 진정한 사랑의 순수만을 추출하기 위한 현실에 관한 성찰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사랑의 당위에 관한 맹목적인 강조가 아닌, 훨씬 긴밀하고 솔직한 소통과 나눔의 이해가 사랑을 더욱 풍요롭게 비칠 것이기에.
출처 : 주간기독교(http://www.cnews.or.kr/news/articleView.html?idxno=2123)
2023. 03. 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