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타 성경이 대중을 위한 성경이라고?
- 불가타 성경과 히에로니무스-
이강선 박사(성균관대학교초빙교수,기독인문학연구원상임연구위원)
종교 경전이라는 특성상 성경은 더욱 많은 사람에게 읽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렇기에 세상에는 수천 개의 성경 번역판이 있다. 번역판마다 이름을 갖고 있고 그 이름은 저마다의 특징을 보여준다. 역사상 가장 중요하고 영향력이 큰 『70인역(B. C. 285-247년)』은 70인이 번역을 했다고 해서‘70인역’이라는 명칭이 주어졌다. 두 번째로 중요한 성경 번역판은 『불가타(Vulgata) 성경』이며, 불가타라는 이름은 ‘대중을 위한다’라는 의미가 있다. 『70인역』은 구약성경을 ‘히브리어에서 그리스어로 옮긴 성경’이고, 『불가타 성경』은 신약 및 구약성경을 ‘그리스어에서 라틴어로 옮긴 성경’이다.
번역학 입장에서 보면 이 두 중요한 성경 번역본은 또 다른 의미가 있다.
『70인역』이 말 그대로 옮기는 ‘베르바팀(Verbatim)의 방법’을 사용했다면 불가타 성경』은 의미 대 의미로 옮기는 ‘의역’을 사용했다. 번역자 히에로니무스(Eusebius Sophronius Hieronymus,A.D. 347-420년)는 성경을 번역할 때 “포로를 잡은 정복자처럼, 원문 속으로 진군하는 군대처럼 번역했다”라고 밝히고 있다. 정복자가 포로를 다루듯 원문을 마음대로 다루었다는 것으로, ‘원문을 단어 그대로 번역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의미를 옮겼다’라는 표현이다.
의역으로 인해 이단 시비를 두려워한 히에로니무스는 성경이 의미와 문장 구조 양쪽 모두에 특별한 ‘신비’가 있다고 강조했다. 자신은 성령의 안내를 따라 성경을 번역했다고 방어하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의역 때문에 사형을 당한 사람들도 많았다. 후에 이야기할 에티엔느 돌레(Étienne Dolet)라던가 흠정 성서 번역본의 근간이 된 틴데일 번역본을 쓴 윌리엄 틴데일(William Tyndale)이 그런 사람들이다.
의역 때문에 『불가타 성경』이 유명해진 것은 아니다. 『불가타 성경』이 유명한 것은 로마 교회가 불가타 판만을 진정한 라틴어 성경으로 채택했고 오늘날까지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려 1,500년이 넘는 기간이다.
그렇다면 가장 오래 사용하고 있는 성경이라고 추측하겠지만, 앞서 언급한『70인역』이 오늘날에도 사용되고 있으므로 그렇지는 않다. 70인역』은 현재 동방정교회에서 사용되고 있고, 『불가타 성경』 역시 천주교회에서 현재 정본으로 사용되고 있다(물론 판은 다르다). 라틴어로 ‘불가타(Vulgata)’는 ‘보통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 백성의 언어’라는 의미다. A. D. 382년, 교황 다마수스 1세(Damasus I)는 비서이자 언어학자인 히에로니무스에게 『헬라어 신약성경』과 『70인역 구약성경』을 정확한 라틴어로 번역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국교로 선포된 지 2년 후의 일이었다. 당시 『구 라틴어 번역판 성경』이 여럿 있기는 했지만, 역자도 각기 달랐고 질도 고르지 않았다. 교회 개혁을 하던 교황으로서는 전례를 위해서라도 제대로 된 라틴어 성경 번역본을 출간할 필요가 있었다.
교황이 강조한 내용은 ‘대중 라틴어’로 정확하게 번역하라고 한 것이다.
여기에서 ‘백성의 언어’라는 표현이 나온다. 당시의 대중은 오늘날과는 달랐다. 글자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이지만 그런데도 귀족 계급을 위한 언어가 아니라는 것에 상당한 의의가 있다. 교황은 보통 사람들이 성경을 읽어야 할 필요가 있음을 절감했을 것이다. 먼 훗날 루터(Martin Luther) 또한 동일하게 ‘보통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라틴어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한 것은 더 많은 사람이 성경을 읽어야 한다고 절감했기 때문이었다.
번역 지시를 받은 첫 2년간 히에로니무스는 열심히 작업을 했다. 그러나 A. D. 384년 다마수스 교황의 죽음으로 상황이 변했다. 교회 정치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던 히에로니무스는 베들레헴으로 이주했다. 그를 마땅치 않게 여기는 사람들을 피해 베들레헴으로 간 것이다. A. D. 386년, 그는 베들레헴에서 번역을 다시 시작했다. 이 번역은 A. D. 404년에야 완성되었고, A. D. 406년 라틴어 성경 사본을 작성하여 이를 로마제국 지역에 배포하였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불가타 성경』의 원본이 바로 이것이다.
히에로니무스의 성경 번역은 한 번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세 번에 걸쳐 이루어졌다. 히에로니무스는 『70인역』을 활용하기는 했지만, 그리스어가 아닌 히브리어에서 라틴어로 『구약 39권』을 모두 번역했다. 그가 학자들과 더불어 논쟁하면서 번역한 일은 유명하다.
오늘날 히에로니무스를 검색하면 사자와 연관된 그림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이 그림들은 실제 히에로니무스의 삶과 연관되어 있지만, 주로 전설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 그의 전설은 중세의 유명한 전설 모음집인 『황금전설』(The Golden Legend Jacobus de Voragine, A. D. 1259-1266년)에 실려 있는데, 상상력이 풍부한 중세의 사람들은 다른 여러 이야기와 합쳐 히에로니무스의 전설을 만들어 냈고 화가들은 그 내용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이 전설에서 사자는 단골 주제다. 니콜로 콜란토니오(Niccolò Antonio Colantonio)가 A. D. 1450년에 그린 이 그림은 히에로니무스의 서재를 배경으로 한다. 서가에는 책들이 널려 있고 사자 뒤에는 히에로니무스가 외출 시 사용하는 챙 넓은 모자가 놓여 있으며 히에로니무스는 사자의 발에서 가시를 뽑고 있다. 판 에이크(Jan Van Eyck)가 그린 그림에서 히에로니무스는 추기경의 옷을 입고 있다. 배경은 온통 바위투성이로 뒤에 나타난 수도자, 히에로니무스는 비쩍 말라 있다.
히에로니무스의 그림에서 자주 등장하는 또 다른 제재는 돌이다. 그가 돌을 쥐고 있는 것인데, 특히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의 그림은 인상적이다. 한쪽 무릎을 꿇고 눈을 감은 노인이 한 손에 돌을 잡고 있고 다른 손은 가슴 쪽에 얹고 있어, 노인의 갈등을 보여준다. 낮에 그는 번역하느라 고생하고 잠이 들면 성적인 유혹이 심했다고 한다. 그때마다 히에로니무스는 돌을 들어 자기 가슴을 쳤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중세인들이 그처럼 심혈을 기울였던 『필사본 성경』에도 히에로니무스의 그림이 자주 등장한다. 필사본은 일일이 손으로 쓰는 책이므로 가격이 몹시 비쌌다. 오직 귀족만이 성경을 가질 수 있었고, 필사가들과 화가들은 합작해 자신들의 예술적 기질을 발휘했다. 『예이츠 톰슨(Yates Thompson MS 16, A. D. 1492년)』이라는 네덜란드 필사본 성경의 서문에는 히에로니무스가 사자와 함께 있는 그림이 나타난다.
‘서재와 광야’, ‘사자와 돌’이 상징하는 히에로니무스의 삶은 강렬하다. ‘서재’는 ‘히에로니무스의 학자로서의 삶’을 의미한다. 한편 ‘사자’는 ‘용맹함’의 상징이다. ‘사자를 길들인다’는 것은 ‘강한 자를 다스린다’라는 의미다. 가진 것이라고는 펜밖에 없는 그가 사자를 길들여 평생의 반려동물로 삼았다는 것은 참된 신앙이 어떠한 것인지 그 모습을 보여준다. ‘광야와 돌’은 ‘외로움과 인내’를 상징한다. 중세인은 히에로니무스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그의 성품에 비교되는 ‘사자와 돌’을 넣어 이야기를 만들었던 것이다.
히에로니무스가 그처럼 심혈을 기울여 번역한 『불가타 성경』은 오늘날에도 사용되고 있다. A. D. 1545년에서 1563년 사이, 교황은 종교개혁에 대응하기 위해 트렌트 공의회(Council of Trient)를 소집했다. 수차에 걸친 회의를 통해 (개인이 아닌) 교회만이 성경을 해석할 권한을 갖고 있고, A.D. 1546년의 공의회에서는 라틴어『불가타 성경』이 결정적인 성경 번역판이라고 선언했다. 프로테스탄트 이단에 대응해 교회에 관한 교리를 명백히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대중을 위해 만들어진 성경, 『불가타』가 정반대의 이유로 그 정통성이 다시 선언된 것이다.
오늘날 대중들이 『불가타 성경』에 대해 느끼는 인상은 이로 인해 비롯되었다. 라틴어가 과거가 되어버린 시대에 라틴어로 쓰인 성경을 주장함으로써 일반 대중이 아닌 특수층을 위한 성경이 되어버렸다. ‘불가타’가 지닌 원래의 의미와 다르고, 한편으로 더욱 널리 알려져야 할 성경의 목적과 다르고, 또한 더욱 많은 사람에게 전하기 위해 하는 번역의 목적과도 다르다. 히에로니무스는 98세에 베들레헴에서 죽었다. 그의 묘지는 베들레헴에 있고 유해는 로마에 있다.
2023. 10. 01
출처: 교회성장연구소(portal.icg21.com/board/board.php?bbs_id=humanities&ptype=view&kbbs_doc_num=93)
불가타 성경이 대중을 위한 성경이라고?
- 불가타 성경과 히에로니무스-
이강선 박사(성균관대학교초빙교수,기독인문학연구원상임연구위원)
종교 경전이라는 특성상 성경은 더욱 많은 사람에게 읽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렇기에 세상에는 수천 개의 성경 번역판이 있다. 번역판마다 이름을 갖고 있고 그 이름은 저마다의 특징을 보여준다. 역사상 가장 중요하고 영향력이 큰 『70인역(B. C. 285-247년)』은 70인이 번역을 했다고 해서‘70인역’이라는 명칭이 주어졌다. 두 번째로 중요한 성경 번역판은 『불가타(Vulgata) 성경』이며, 불가타라는 이름은 ‘대중을 위한다’라는 의미가 있다. 『70인역』은 구약성경을 ‘히브리어에서 그리스어로 옮긴 성경’이고, 『불가타 성경』은 신약 및 구약성경을 ‘그리스어에서 라틴어로 옮긴 성경’이다.
번역학 입장에서 보면 이 두 중요한 성경 번역본은 또 다른 의미가 있다.
『70인역』이 말 그대로 옮기는 ‘베르바팀(Verbatim)의 방법’을 사용했다면 불가타 성경』은 의미 대 의미로 옮기는 ‘의역’을 사용했다. 번역자 히에로니무스(Eusebius Sophronius Hieronymus,A.D. 347-420년)는 성경을 번역할 때 “포로를 잡은 정복자처럼, 원문 속으로 진군하는 군대처럼 번역했다”라고 밝히고 있다. 정복자가 포로를 다루듯 원문을 마음대로 다루었다는 것으로, ‘원문을 단어 그대로 번역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의미를 옮겼다’라는 표현이다.
의역으로 인해 이단 시비를 두려워한 히에로니무스는 성경이 의미와 문장 구조 양쪽 모두에 특별한 ‘신비’가 있다고 강조했다. 자신은 성령의 안내를 따라 성경을 번역했다고 방어하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의역 때문에 사형을 당한 사람들도 많았다. 후에 이야기할 에티엔느 돌레(Étienne Dolet)라던가 흠정 성서 번역본의 근간이 된 틴데일 번역본을 쓴 윌리엄 틴데일(William Tyndale)이 그런 사람들이다.
의역 때문에 『불가타 성경』이 유명해진 것은 아니다. 『불가타 성경』이 유명한 것은 로마 교회가 불가타 판만을 진정한 라틴어 성경으로 채택했고 오늘날까지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려 1,500년이 넘는 기간이다.
그렇다면 가장 오래 사용하고 있는 성경이라고 추측하겠지만, 앞서 언급한『70인역』이 오늘날에도 사용되고 있으므로 그렇지는 않다. 70인역』은 현재 동방정교회에서 사용되고 있고, 『불가타 성경』 역시 천주교회에서 현재 정본으로 사용되고 있다(물론 판은 다르다). 라틴어로 ‘불가타(Vulgata)’는 ‘보통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 백성의 언어’라는 의미다. A. D. 382년, 교황 다마수스 1세(Damasus I)는 비서이자 언어학자인 히에로니무스에게 『헬라어 신약성경』과 『70인역 구약성경』을 정확한 라틴어로 번역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국교로 선포된 지 2년 후의 일이었다. 당시 『구 라틴어 번역판 성경』이 여럿 있기는 했지만, 역자도 각기 달랐고 질도 고르지 않았다. 교회 개혁을 하던 교황으로서는 전례를 위해서라도 제대로 된 라틴어 성경 번역본을 출간할 필요가 있었다.
교황이 강조한 내용은 ‘대중 라틴어’로 정확하게 번역하라고 한 것이다.
여기에서 ‘백성의 언어’라는 표현이 나온다. 당시의 대중은 오늘날과는 달랐다. 글자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이지만 그런데도 귀족 계급을 위한 언어가 아니라는 것에 상당한 의의가 있다. 교황은 보통 사람들이 성경을 읽어야 할 필요가 있음을 절감했을 것이다. 먼 훗날 루터(Martin Luther) 또한 동일하게 ‘보통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라틴어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한 것은 더 많은 사람이 성경을 읽어야 한다고 절감했기 때문이었다.
번역 지시를 받은 첫 2년간 히에로니무스는 열심히 작업을 했다. 그러나 A. D. 384년 다마수스 교황의 죽음으로 상황이 변했다. 교회 정치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던 히에로니무스는 베들레헴으로 이주했다. 그를 마땅치 않게 여기는 사람들을 피해 베들레헴으로 간 것이다. A. D. 386년, 그는 베들레헴에서 번역을 다시 시작했다. 이 번역은 A. D. 404년에야 완성되었고, A. D. 406년 라틴어 성경 사본을 작성하여 이를 로마제국 지역에 배포하였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불가타 성경』의 원본이 바로 이것이다.
히에로니무스의 성경 번역은 한 번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세 번에 걸쳐 이루어졌다. 히에로니무스는 『70인역』을 활용하기는 했지만, 그리스어가 아닌 히브리어에서 라틴어로 『구약 39권』을 모두 번역했다. 그가 학자들과 더불어 논쟁하면서 번역한 일은 유명하다.
오늘날 히에로니무스를 검색하면 사자와 연관된 그림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이 그림들은 실제 히에로니무스의 삶과 연관되어 있지만, 주로 전설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 그의 전설은 중세의 유명한 전설 모음집인 『황금전설』(The Golden Legend Jacobus de Voragine, A. D. 1259-1266년)에 실려 있는데, 상상력이 풍부한 중세의 사람들은 다른 여러 이야기와 합쳐 히에로니무스의 전설을 만들어 냈고 화가들은 그 내용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이 전설에서 사자는 단골 주제다. 니콜로 콜란토니오(Niccolò Antonio Colantonio)가 A. D. 1450년에 그린 이 그림은 히에로니무스의 서재를 배경으로 한다. 서가에는 책들이 널려 있고 사자 뒤에는 히에로니무스가 외출 시 사용하는 챙 넓은 모자가 놓여 있으며 히에로니무스는 사자의 발에서 가시를 뽑고 있다. 판 에이크(Jan Van Eyck)가 그린 그림에서 히에로니무스는 추기경의 옷을 입고 있다. 배경은 온통 바위투성이로 뒤에 나타난 수도자, 히에로니무스는 비쩍 말라 있다.
히에로니무스의 그림에서 자주 등장하는 또 다른 제재는 돌이다. 그가 돌을 쥐고 있는 것인데, 특히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의 그림은 인상적이다. 한쪽 무릎을 꿇고 눈을 감은 노인이 한 손에 돌을 잡고 있고 다른 손은 가슴 쪽에 얹고 있어, 노인의 갈등을 보여준다. 낮에 그는 번역하느라 고생하고 잠이 들면 성적인 유혹이 심했다고 한다. 그때마다 히에로니무스는 돌을 들어 자기 가슴을 쳤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중세인들이 그처럼 심혈을 기울였던 『필사본 성경』에도 히에로니무스의 그림이 자주 등장한다. 필사본은 일일이 손으로 쓰는 책이므로 가격이 몹시 비쌌다. 오직 귀족만이 성경을 가질 수 있었고, 필사가들과 화가들은 합작해 자신들의 예술적 기질을 발휘했다. 『예이츠 톰슨(Yates Thompson MS 16, A. D. 1492년)』이라는 네덜란드 필사본 성경의 서문에는 히에로니무스가 사자와 함께 있는 그림이 나타난다.
‘서재와 광야’, ‘사자와 돌’이 상징하는 히에로니무스의 삶은 강렬하다. ‘서재’는 ‘히에로니무스의 학자로서의 삶’을 의미한다. 한편 ‘사자’는 ‘용맹함’의 상징이다. ‘사자를 길들인다’는 것은 ‘강한 자를 다스린다’라는 의미다. 가진 것이라고는 펜밖에 없는 그가 사자를 길들여 평생의 반려동물로 삼았다는 것은 참된 신앙이 어떠한 것인지 그 모습을 보여준다. ‘광야와 돌’은 ‘외로움과 인내’를 상징한다. 중세인은 히에로니무스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그의 성품에 비교되는 ‘사자와 돌’을 넣어 이야기를 만들었던 것이다.
히에로니무스가 그처럼 심혈을 기울여 번역한 『불가타 성경』은 오늘날에도 사용되고 있다. A. D. 1545년에서 1563년 사이, 교황은 종교개혁에 대응하기 위해 트렌트 공의회(Council of Trient)를 소집했다. 수차에 걸친 회의를 통해 (개인이 아닌) 교회만이 성경을 해석할 권한을 갖고 있고, A.D. 1546년의 공의회에서는 라틴어『불가타 성경』이 결정적인 성경 번역판이라고 선언했다. 프로테스탄트 이단에 대응해 교회에 관한 교리를 명백히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대중을 위해 만들어진 성경, 『불가타』가 정반대의 이유로 그 정통성이 다시 선언된 것이다.
오늘날 대중들이 『불가타 성경』에 대해 느끼는 인상은 이로 인해 비롯되었다. 라틴어가 과거가 되어버린 시대에 라틴어로 쓰인 성경을 주장함으로써 일반 대중이 아닌 특수층을 위한 성경이 되어버렸다. ‘불가타’가 지닌 원래의 의미와 다르고, 한편으로 더욱 널리 알려져야 할 성경의 목적과 다르고, 또한 더욱 많은 사람에게 전하기 위해 하는 번역의 목적과도 다르다. 히에로니무스는 98세에 베들레헴에서 죽었다. 그의 묘지는 베들레헴에 있고 유해는 로마에 있다.
2023. 10. 01
출처: 교회성장연구소(portal.icg21.com/board/board.php?bbs_id=humanities&ptype=view&kbbs_doc_num=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