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프로젝트: 기후 위기 시대의 기독교] 타자의 시선과 경계선의 다양성 인정하기


타자의 시선과 경계선의 다양성 인정하기


김신영 (기독환경교육센터 부소장)


*본 글은 '필자와 <주간기독교>의 허락을 받아 공유함을 알려드립니다.'

*출처 : 주간기독교 (www.cnews.or.kr/news/articleView.html?idxno=2448)

 

동물에 대한 이야기

내가 거주하던 아파트 단지에 누군가가 고양이를 한 마리 몰래 버리고 갔다. 목격자에 따르면 봉고차 한 대가 아파트 주차장에 고양이를 내려놓고 유유히 사라졌다고 한다. 그 고양이는 사흘 정도 아파트 주차장과 화단을 배회하며 지냈다. 당시 나는 군종 목사로 군 생활 중이었는데, 함께 지내던 군종 병사와 함께 그 고양이를 데리고 교회로 왔다. 고양이가 나를 선택한 것일 수도 있다. 나는 고양이에 대해 전혀 몰랐기 때문에 일단 밥그릇, 물그릇, 집, 화장실, 사료 등을 구입해 사무실 안에서 돌보기 시작했다. 이름도 칸트라고 지어주었다. 밤새 사무실에 혼자 있던 칸트는 아침이 되면 출근하는 나를 기다리며 창밖을 응시하고 있었다. 업무 중일 때는 책장 위에 올라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고, 키보드 위에 올라와 앉기도 했다. 칸트는 내 다리에 몸을 비비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내 전투복은 칸트의 털로 수북했다. 하지만 사무실에서 칸트를 계속 키울 수가 없어서 입양할 사람을 수소문했고, 한 소녀와 어머니가 와서 칸트를 데리고 갔다. 그런데 일주일 후 칸트가 갑자기 죽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입양해 간 분들은 칸트의 장례도 해주었고 나에게 칸트의 영정사진도 보내주었다. 그렇게 어느 해 봄에 시작된 칸트와의 인연은 그해 겨울에 끝났다.


동물의 시선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는 어느 날 욕실에서 씻고 나와 옷을 벗고 있는 그를 쳐다보는 고양이의 시선을 발견했고, 그 시선에 부끄러움을 느낀다는 사실에 놀라워했다. 이 경험은 그의 책 『동물, 그러니까 나인 동물(The Animal That Therefore I Am)』에 등장한다. 어려운 논의는 하지 않더라도 그동안 동물에 대한 인간의 시선이 늘 인간 중심적이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동물은 영혼이 없는 기계로 또는 인간의 목적을 위한 수단 정도로 인식되어 왔다. 하지만 데리다의 경험은 이 낡은 인식을 뒤집어 버린다. 고양이의 시선에서 그가 느꼈던 당혹감은 동물의 시선의 주체성을 드러낸다. 고양이가 시선의 주체가 되고, 인간은 시선의 대상이 되었다. 데리다는 “동물이 벌거벗은 나를 본다”, “고양이와 함께 놀 때, 고양이에게 시간을 내주는 것은 내가 아니라 고양이일 수도 있지 않은가”라고 말하며 주체와 시선의 전환을 가능하게 했다.

불편한 진실을 외면할 때 우리는 시선을 피한다. 길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들의 손길을 거부하는 방법은 그들의 손길을 피하는 게 아니라 그들의 눈길, 즉 시선을 피하는 것이다. 길에서 구호단체나 환경단체 등이 회원 모집을 할 때, 활동가들의 시선을 애써 피하면서 발걸음을 재촉한 경험이 누구나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동물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현대 사회는 육류 소비뿐 아니라 쾌락과 전시 등을 위해 동물을 끊임없이 이용한다. 우리가 사용하는 제품 가운데 동물 실험을 거친 것들도 많다. 여기서 배제된 것은 바로 동물의 시선이다. 우리가 고기를 구입할 때, 고기의 대부분은 부위별로 분해되어 포장된 채 판매된다. 소나 돼지의 눈빛은커녕 털끝 하나 보이지 않는다. 잘 포장된 것은 핏방울 하나 없다. 닭이나 오리도 마찬가지이다. 통째로 판매되는 경우에도 손, 발, 머리는 없다. 요즘에는 다리, 날개, 가슴살을 따로 판매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모양을 봐서는 이것이 무슨 고기인지도 헷갈릴 때가 있다.

한국에서 나의 학위를 지도한 교수님은 채식을 한다. 중학교 시절, 시장에서 살아있는 닭을 선택하면 곧바로 잡아 통닭으로 만들어 포장해 주는 장면을 목격한 것이 채식의 원인이 되었다고 한다. 동물과 시선을 주고받거나, 이름을 지어주고 불러주거나, 서로의 인사를 하고 함께 놀게 되면 동물에 대한 관점이 새로워지게 된다. 나와 시선을 나눈 그들의 존재가 인간의 윤리적 범위에 들어오게 된다. 그들은 영혼이 없는 복잡한 기계나 인간의 목적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말에 동의하지 못하는 순간이 오게 된다. 하지만 인간 중심적이고 로고스 중심적인 서양의 철학에 익숙한 경우라면 이러한 시선의 전환에 불편함과 어색함을 느끼기 십상이다. 또 그러한 철학과 함께 걸어온 기독교 신학에 익숙한 경우도 동물과 인간의 경계를 새롭게 긋는 일이 어색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인간 이외의 사람

고고학자 크리스 파울러는 ‘사람’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기를 권하고 있다. 그는 서구적 맥락에서 사람, 자아, 몸, 인간이 동일하게 인식되는 점을 지적하면서 ‘사람’의 더 많은 의미와 가능성을 탐구하였다. 최근의 생태주의의 논의에서 ‘사람다움’은 인간만이 주장할 수 있는 지위가 아니다. 다양한 민족지학 연구들은 사람에 대한 다양한 이해가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러한 발견들은 서구의 인간 예외주의에 도전하며, 인간과 동물의 관계에 대한 여러 관계 방식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러한 논의에서 사람(persons)은 인간(humans)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인간 이외의 사람(other-than-human-persons)’을 의미할 수도 있다고 본다. 인간 중심적인 관점에서 볼 때, “개도 사람이냐?”, “나무도 사람이냐?” 반론을 제기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반대 질문을 던지기 전에 인간 예외주의가 만들어낸 생태파괴와 생물 다양성 붕괴 및 기후 위기의 현실을 반성적으로 돌아보면서 인간과 타자들의 경계를 허물어보고 이들 사이의 경계선을 다양하게 그려보면서 새로운 관점을 열어보는 것도 필요하다.

실제로 반려동물, 문어, 가재, 고래, 숲, 강 등의 법적 지위가 달라지고 있다. 비록 인간중심주의적인 관점에서 완전히 벗어나고 있지는 않지만, 동물들에게서 인간과 비슷한 특징들이 발견되고, 이들이 사고하고, 놀이하고, 고통을 겪는다는 사실들이 밝혀지면서 이들에 대한 법적인 지위와 보호의 정당성이 인정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숲과 강 혹은 나무들도 인간 및 지역 문화와의 관계성 및 생태적 가치를 인정받아 마치 하나의 ‘사람’처럼 보호되기도 한다. 다른 생명과 인간의 생명이 복잡하고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분리할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하게 될 때, 무엇이 사람인지 아닌지에 대한 구분은 점차 무의미해지고, 오히려 이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가 중요하게 된다.

또 한편으로는 생물과 미생물에 대한 연구가 진행될수록 인간, 동물, 미생물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 이전에는 동물과 인간의 차이를 이성이나 감정의 유무, 감정, 언어 사용, 얼굴성 등에서 찾았다. 하지만 이러한 기준도 인간이 모든 존재 가운데 가장 우월하다는 것을 이미 전제하고 있다. 이러한 전제는 인간을 피라미드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시키고 나머지 생물들은 인간의 존재를 위해 봉사하는 것으로 이해하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우리 피부, 입속, 온몸 안팎 구석구석에 존재하며 우리의 생존에 필수적인 역할을 하는 미생물의 존재에 대해서 알아갈수록 인간은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 분명해지고 있다. 인간의 장내에는 1,000여 종의 미생물이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지만, 그들이 서로 어떤 상호작용을 하고 있는지 밝혀진 바는 매우 적은 수준이다. 그러나 이들의 복잡한 상호작용이 지금의 우리를 존재하게 한다는 것, 그들과 우리는 분리할 수 없다는 점이 분명하다.

타자의 시선과 경계선의 다양성을 인정하기

오늘날 자연을 직접적으로 경험하기 어려운 환경 속에서 인간이 아닌 다른 타자의 시선을 경험할 기회는 매우 적다. 잘 손질된 육류와 어류는 고기가 되기 위해 존재하는 사물화된 존재들의 시선을 근본적으로 차단하고 있다. 깨끗하고 신선하게 포장되어 판매되는 다양한 유제품과 계란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마주하는 시선은 이미 선별되고 차단되어 있다. 자연과 대화하고 달과 별에 말을 거는 것은 우리의 존재와는 무관한 것으로 여겨지거나, 낭만화되어 있다. 이렇게 자의적으로든 타의적으로든 인간 외 다른 존재들과의 공존하고 관계 맺는 방식을 단절하는 문화에서는 지금의 기후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방법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시선들과 탄식들을 찾아가고, 그들과 우리 사이의 경계선을 들쭉날쭉하게 새롭게 그려볼 때, 우리는 새로운 방향과 가능성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2023. 08.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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